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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4. 18. 12:04

임종석 자녀 부인 고향 학력 재산 프로필 (+친북 논란, 딸 미국 유학)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 전대협 주사파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제16대 ~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으며, 줄곧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해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에는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후보 비서실장으로 합류했고, 뒤이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대통령비서실장에서 퇴임한뒤 바로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 문재인 정부 1기 참모진들과 함께 2019년 2월 18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임종석

任鍾晳 | Im Jong-seok

 

출생

1966년 4월 24일 (55세)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신기리

 

거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본관

장흥 임씨

 

현직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재임기간

제35대 대통령비서실장

2017년 5월 10일 ~ 2019년 1월 8일

 

배우자

김소희

 

자녀

딸 임동아 (딸 호화 유학 생활 논란은 아래 논란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학력

용문고등학교 (졸업 / 33회)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 / 학사)

 

병역

면제 (수형)

 

종교

가톨릭 (세례명: 프란치스코)

 

 

신체

176cm, A형

 

약력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제16대 국회의원(서울 성동구)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제17대 국회의원(서울 성동구 을)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제16대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박원순 시정)

제3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제35대 대통령비서실장(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외교특별보좌관 (UAE 특임)

 

별명

림종석, 함박웃음

 

 


임종석 자녀 부인 고향 학력 재산 프로필 (+친북 논란, 딸 미국 유학)

 

임종석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66년 4월 24일생으로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신기리가 고향이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서울용문고등학교(33회)를 졸업하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특히 국회의원쯤 되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거나(예: 문재인, 이재명, 홍준표) 특정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정치에 뛰어들거나(예: 이회창, 이명박, 안철수) 언론인 등 정치와 관련 있는 일을 해온(예: 노웅래, 최문순, 민경욱)경우가 많지만, 임종석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1학년 때, 노래패에 가담하면서부터 운동권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88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되어 1989년 한총련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일명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으면서 학생 운동권의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당시 주도한 것이 바로 임수경의 불법방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따른 경찰 수배에서 갖은 방법으로 도망치다가 결국 1989년 말 체포, 5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김영삼 정부때인 1993년 특별사면되어 3년 반만에 석방되었다. 당시 임종석은 1년 가까이 수배를 따돌리며 도망쳤고, 전국에 10만 장의 수배 사진이 붙었으며, 임종석 담당 형사(청량리 경찰서 신중현)가 과로로 사망할 정도였다는 후문이 있다. 변장 등 생각치도 못한 방법으로 수배망을 따돌리던 임종석은 '임길동'이라 불렸다.

1990년 12월 26일 대법원에서 임수경의 밀입북을 몰래 도와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판결을 받게되는데, 유죄판결에 따른 실형으로 인해 공식적 병역사항은 미필이 되었다. 1993년 5월 원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8월에 한양대 4학년에 복학하게 되고, 1995년 8월 대입 10년 만에 졸업을 하였는데 졸업식에서 총동문회장상과 공로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임종석 정치 입문

1994년 말부터 비정부기구 쪽에서 활동하였다. 가까운 동료들과 만든 청년활동단체인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직을 맡았다.

1995년 모래시계 세대 정계진출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오던 때부터 정계진출 유력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나 1996년 총선에는 당시 자격이 되지 않아 출마하지 못했고, 이후 1999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사면복권 당시 복권이 돼서야 출마 자격을 얻게 되었다.

1999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창 386 운동권 출신 영입이 활발할 때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시 상대후보였던 4선의 이세기 한나라당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다만, 임종석 자신은 의외로 전대협 의장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원은 되지는 못하였는데, 이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대변인도 했다지만, 당내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거나 거물급 의원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정계 입문 후 임종석의 의정활동은 국가보안법 폐지,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사업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초선 의원 시절인 2000년 7월 임종석은 국보법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보완책으로 간첩죄에 대해 형법상 처벌을 강화하면서 대북 접촉, 통신교류에 대해선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규제하면 된다.” 또 2004년 7월에는 의원실 주최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고, 같은 해 8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위원모임에서는 “국가보안법은 위헌적이며 반(反)민주악법의 상징이기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04년 12월에는 국보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참여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수사에도 적극 반대했는데, 대북송금 사건은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송금한 사건을 말한다. 2003년 3월, 임종석 등 당시 민주당 소장파 의원이 주축이 된 모임인 ‘정치를 바꾸는 젊은 희망’은 대북송금 특검 수사 반대성명을 냈다. 같은 해 6월에는 민주당·개혁당(대표 유시민) 소속 의원 61명과 함께 대북송금 특검 수사 마무리를 촉구하는 성명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열풍에 밀리면서 한나라당 김동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게 되고, 이후 당내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문제는 이 당시 임종석이 정치자금법 문제로 재판에 걸려 있었다는 점. 결국 19대 총선 직전 나온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면서 총선 출마가 좌절되었다. 사실 출마 자체는 할 수도 있었지만, 재판 문제로 인해 공격을 받을 것 같자 결국 포기한 것. 한명숙 당시 대표가 끝까지 만류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는 사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사무총장으로서 공천권과 관련하여 소위 노이사 공천(친노-이대-486 위주 공천)을 주도했다는 공세도 한몫 했다. 성동구 을 지역구는 그의 친구인 홍익표 교수에게 넘어갔고, 그는 사무총장직도 내놓게 되었다. 그의 사퇴 원인이 된 정치자금법 문제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면서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났다.

2014년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해당 재단은 남측 방송을 대리하여 대한민국 내 북한 저작물 이용의 저작권료를 북한에 지불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15년까지 재직하였고, 때문에 박원순계의 대표주자 정치인으로 분류되었다.

2014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임종석은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노선이나 정책이 상당히 치우쳐있다"며 "과도하게 사회, 정치적 문제에 집착하고, 국가 운영과 관련된 의지에는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윽고 2016년 제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 직을 내려놓은 후 은평구 을 지역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의 거물이었던 이재오와 겨뤄서 정치적인 재기를 모색하였는데, 그만 당내 경선에서 무명의 신인이었지만 이미 은평구 내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만들고 있었던 강병원 후보에게 패하면서 아예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정치에 입문했지만, 18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세 번의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10년 넘게 원외에 남게 되었다. 임종석과 함께 국회의원 자리에 도전한 다른 박원순계 정치인들도 기동민을 제외하면 경선과 본선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그러다가 2017년 문재인 캠프의 비서실장으로 영입되었다. 임 실장은 19대 대선 국면 동안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문재인 당시 후보를 상대로 극단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다만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임종석을 박원순계로 분류하는 이 같은 시선에 대해서는 꼭 그런 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편견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윽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 11월, 국회 국감장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의 전희경 의원과 충돌하게 되었는데, 전희경 의원은 "주사파 · 전대협이 청와대를 장악했다"면서 "전대협의 강령과 회칙을 보면 미국을 반대하고 모든 외세에 부당하다고 본다. 회칙을 보면 민족과 민중의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 구현을 밝히고 있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전대협 인사들이 이런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임종석 실장을 비판하였는다. 이에 임종석은 실장 이에 대해 "전희경 의원님 말씀에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아주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제5, 제6공화국 때 정치군인들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전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살펴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의원님께서 거론하신 대부분의 그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습니다."며 발끈했다.

'비서실장 자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고,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왕실장'으로 군림하며 대통령 참모 그 이상의 과도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기춘대원군'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임종석 또한 이를 반복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다. 이는 아래에 있는 대통령비서실 권한 관련 문단 참조. 반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인수위 기간 없이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초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내각 구성을 끝나고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청와대 비서실의 리더인 임 실장이 보폭이 커졌다. 그 덕에 청와대에 머물지 않고 대외적으로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해결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른팔로서, 추미애 여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장미꽃을 선물하며 당청 불화설을 일축하였고, 추경 통과를 위해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에게 대통령 대리인으로서 사과하면서 막힌 정국을 해결해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또한, UAE에 특사로 파견되어 양국의 외교적 갈등 봉합에 핵심 역할을 했다. UAE는 UAE 논란으로 야당과 언론에 뭇매를 맞고 있는데도 침묵을 지킨 임 실장을 보고 신뢰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비서실장 취임 후 1년차가 되면서 제왕적 비서실 및 자기 정치로 비판을 받았으며, 음주운전, 음주폭행 등의 공직기강 해이가 청와대에서 일어나는데 비서들은 SNS에 집중하고 있다, 겉멋만 들었다는 지적이 여당에서도 나온다. 또한 통신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이번 정권의 실질적 2인자으로 활약하면서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하면서 야권에서 행적 하나하나를 비판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한편 임 실장에 대한 여론은 긍정평가 48.9% VS 부정평가 38.7%로 드러났다.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높긴 하지만, 자기 정치 논란이 일면서 과거에 비해 지지율이 약 10%p 하락했다. 또한 매우 잘 한다, 매우 못한다 등으로 여론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9년 1월 청와대 인사 개편안을 발표하고 퇴임했다. 후임 비서실장은 노영민 주중대사.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확정된 뒤인 2018년 3월 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7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준비위원회를 꾸리라는 지시를 내렸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북정상회담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준비위원회가 구성된다고 발표되었고, 3월 16일 첫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는 중요 사항을 결정할 전체회의를 매주 또는 격주에 한 차례 열기로 했다. 준비위 전체회의와 별개로, 실무 논의는 위원장과 총괄간사, 3명의 분과장이 참석하는 분과장 회의에서 논의하며, 이 회의는 주 3∼4회 열기로 했다.

2018년 4월 28일,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오전 남북정상회담장에 자리했다. 서 원장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카운터 파트였다면, 임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가장 곁에서 보좌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카운터 파트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은 1달 동안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회담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북측과 꾸준히 사전 의제 조율 작업을 벌여 한반도 비핵화를 뺀 나머지 의제들에 대해선 회담 전에 상당부분을 남북이 합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임 실장의 역할에 주목해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전 의원의 방북을 주도하는 등 학생운동 시절부터 그가 거쳐온 인생역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최룡해와 함께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평가 받고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과 호흡을 맞춘 것이 임 실장이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를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18년 9월, 임종석은 국회의장단과 외통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등 총 9명을 제3차 정상회담에 초청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애초 불참의사를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회담 며칠 전 언론을 통해 일방적 재초청을 공표한건 정략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주영,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정기국회와 국제회의 등의 일정으로 불참한다고 했다.

 

 

 

정계 은퇴, 그 이후

21대 총선에서 종로 출마설이 1월 비서실장 퇴임 이후 수면 위로 계속 대두되면서, 점점 기정사실화가 되기도 했는데, 6월에는 종로구 평창동에 전세를 얻었다. 다만 현역 지역구 의원인 정세균 전 의장과의 교통정리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2019년 11월 17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암시하며, 민간 부문에서 통일 운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21대 총선 기간에는 고민정, 이수진 등 각 지역구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에 참여했다.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으로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사의를 표한 이후, 차기 통일부장관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상호 의원과 이인영 전 원내대표도 차기 통일부장관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우 의원은 임종석이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2020년 7월 1일 기준, 서훈을 뒤이은 차기 국정원장으로 거론되었지만, 이틀 뒤 박지원 전 의원이 내정자로 밝혀지고 본인은 외교안보특보로 임명되었다. 북한은 7월 14일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이번 외교안보라인 교체와 관련, "이인영, 임종석 두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많다"고 반응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의원직 사퇴로 공석이 된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었으나, 민주당이 종로에 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없던 일로 되었다.

문재인 정부 전반에 대한 회고 인터뷰를 SBS와 가졌다. 부동산 정책, 외교안보, 조국 사태 등 청와대에 있으면서 겪었던 일의 뒷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임종석 여담 일화 인간관계

전국에 지명수배된 상황에서도 여장을 하는 등 신군부 정권의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리면서, 당시 임길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쓰인 수법 중에는 그와 비슷한 체구의 학생들이 클론처럼 돌아다니는 수법이 있었다고. 호감형 외모와 투사 이미지 그리고 신출귀몰한 행적, 전대협 의장이라는 신분 등으로 인해 당시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여고생들이 주로 보는 하이틴 잡지에서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도주 행각과 미남이라는 특성은 이후 드라마 설강화에서 주인공의 모티브가 되었다.

1996년에 결혼할때, 결혼식 기사가 경향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부인은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알게 된 사이라 하며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한총련이 2003년 미군 훈련장 난입 사건 때 과격했다고 한총련을 깠다. 임종석은 위에서 봤듯이 임수경 방북 사건과 각종 사회 운동을 주도한 전대협 제3기 의장이었다. 한총련의 문제를 최소한 인식은 하고 있을 뿐 아니라, 80년대 전대협의 행보와 90년대 이후 한총련의 행보는 성향에 다소 차이가 있다 여겨진다.

2005년에 디시인사이드에서 정사갤러들과 간담회를 가진 이후 '본인의 요청'으로 정치인으로는 최초로 임종석 갤러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7년대의 디시 갤러리들은 우후죽순 마구 만들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만두 조공을 바치고 리플로 찬성 여론을 만들어도 겨우 될까 말까 한 갤러리 개설이 김유식과 임종석의 이해관계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 없이 손쉽게 그것도 정치인의 갤러리가 개설된 것에 대한 반발이 매우 심했다. 예를 들면 당시에 매우 인기있던 문근영, 이나영 등의 여배우들은 관련 팬덤들이 만두 조공도 바치고 각종 팬카페 및 디시 갤러리에서 이용자들의 동의 리플을 부탁하는 이른바 '화력 지원'을 거쳐 갤러리가 생기는 게 관례였는데 임종석은 이러한 과정도 없었고 정치적으로 딱히 거물급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갤러리 관리 또한 다른 곳과는 다르게 본인이 직접 했었는데 과도한 글 삭제와 필터링 때문에 말이 많았으며 나중엔 본인의 이름까지 금지어로 설정해 '금지어 갤러리'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성덕선이 동생 성노을을 보호하려고 성노을의 여자친구와 여친의 친구들과 싸우다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 동생을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벽에 붙은 수배전단에 등장했다. 단순 소품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옛날 자료를 구해서 재현하여 붙혔다고 한다. 지인의 제보로 임종석 본인도 찾아보고 크게 웃었는데 키를 170cm로 표기해서 섭섭하다고 트위터에 올렸고 이에 작가진은 옛날 자료라 인쇄상태가 나빠 176을 170으로 잘못 보고 적었다고 답글을 보냈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후에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고 해서 '미스터 함박'이라는 별명이 붙혀졌다. 또한 회사생활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 '청와대 회사원'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방북해서 김정은과 조우했는데, 김정은 옆에서 입이 턱에 걸린채로 떨어지질 않는 영상이 공개되어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초청하는 만찬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오면 국무총리가 가서 인사를 나누고 임 실장이 곁에서 지킨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한 문재인 정부이지만 대통령이 귀빈 여러 사람들을 영접해야 하다보니 위안부 할머니를 세심히 챙길 수 없어서 대통령비서실장이 곁에 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고 알려달라고 해서 이루어지게 됐다.

배우 정준호와 친하다. 임종석이 2016 2 은평구 을에 예비후보로 출마했을 , 정준호가 선거사무소로 찾아와서 응원해주는 장면이 찍혔다. 홍익표 의원 블로그에 의하면, 정준호와 임종석은 서로 형동생 하는 관계라고 하며, 정준호가 사무소에서 "임종석 후보가  국회에 들어가셔서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을 해주셔야 한다" 발언했다고 한다. 

 

 

 

 

임종석 약력 이력

1989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1989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1994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1999 푸른정치2000 공동대표

1999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성동)

2000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위원회 위원장

2000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

2002 제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

2003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성동 을)

2004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2005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

2006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2007 열린우리당 개헌추진위원회 부위원장

2007 대통합민주신당 원내수석부대표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후보

2008 통합민주당 서울 성동 을 당협위원장

2012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후보 캠프 정무특보

2013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후보 캠프 총괄팀장

2014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후보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후보비서실장

2017 제6대 대통령비서실장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임종석 논란 및 사건 사고 혐의 의혹

임종석은 정계 입문 전부터 현재까지 굉장히 많은 구설수를 일으켰다.

 

북한 및 안보 관련

해당 논란들로 인해 보수층으로부터 림종석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과거 과격 NLPDR 활동

 과거 대학 재학 시절, 전대협 의장으로서 임수경 방북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지명수배 되어 크게 논란이 됐었다. 지명수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을 빠져나와 각종 운동권 활동에 참가하는가 하면, 기습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덕분에 당시 임종석의 포상으로 2계급 특진과 1000만 원의 보상금이 걸려 있을 정도였으며, 임종석을 잡기 위해 12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었다. 국보법·집시법 위반 외 10여 개의 법률 위반 혐의와 임수경의 방북을 도와,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서울 고등법원 형사4부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3 그 후 상고하여 1990년 12월 26일 대법원 형사1부(주심 윤관 대법관)은 임종석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되었다.

또한 김정일의 사망 당시 임종석은 북한에 조문을 써 보냈고, 북한에게 답신을 받게 되었다. 이후 임종석은 그 조문에 대한 답신을 박정근의 구속 사유를 비꼬기 위해 트위터에 올리게 되었는데,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되자 각종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통일부의 허가를 받고 통일부에 활동내역 신고를 한 상태에서 진행된 남북교류라서 실정법을 위배하는 사안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나, 근거는 없다. 

 

본인 입장

1989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은 전대협의 핵심 간부들이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주사파라는 지적에 대해 “전대협이 지향하는 이념은 자주 민주 통일이며 북한의 주체사상은 결코 전대협의 지도 이념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종석 당시 의장은 “전대협이 북한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대협은 북한을 찬양한 적도 없었다. 전대협이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나 정부가 주장하듯 북한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이적단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산 자료 저작권료 수금 및 독촉 논란

 

임종석은 2004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 출범을 주관했고 2005년 7월 29일부터 2017년 5월 10일까지 이사장을 맡아 북한 측 저작권 대리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재단이 북한에 저작권료 명목으로 2005~2017년 13년간 187만 6700달러(22억 5206만원)의 돈을 퍼줬다. 우리나라의 방송사가 북한의 방송을 내보낼 땐 꼭 이 재단에 돈을 줘야 한다. 사실 저작권료 지급 자체는 베른 협약에 따라 국제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나라 저작물을 사용하고서도 돈을 한 푼도 주지 않는다. 이주영 당시 새누리당 의원 또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자금 흐름의 투명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고, 방송업계에서는 경문협이 영세업체들을 쥐어짠다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먼저 2000년대 중반에는 대북 저작권 문제와 관련한 무리수로 구설수에 올랐다. 북한 작가의 문학작품을 펴낸 국내 출판사들에 저작권료 67만 6000달러(약 7억 5900만원)를 챙겨 북한에 보낸 적도 있다. 대부분 영세업체인 데다 소송 제기 등의 방식으로 압박하는 바람에 원성을 샀다.

또한 임종석 의원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여당 간사였을 때,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경문협이 김일성대의 도서관을 현대화하는 사업을 하겠다며 통일부에 사업 승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통외통위 피감기관인 통일부는 이를 승인하고, 예산 8억 6000만 원가량을 지원했다. 이는 자신이 속한 상임위의 피감기관을 이용했다가 구설수에 올라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과 비슷한 케이스이다.

그러다가 2008년 7월 박왕자씨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제재로 저작권료를 북한에 보내지 못하고 2009년 5월에 법원에 공탁하였다. 그러다가 공탁금의 국고 귀속일이 임박하자, 2019년 4월에는 '회수 후 재공탁'이라는 방법을 통해 북한이 돈을 가져갈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해준 꼼수를 부렸다.

 

불투명한 자금 흐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통일부는 2009년 보고서에서 "경문협의 대북 파트너인 ‘저작권 사무국’의 실체도 확인되지 않고 저작권료가 저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저작권료 1억 2700만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원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도 불투명한 일을 경문협이 벌이고 있다며 사업 취소를 검토한 바 있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논란이 잠잠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대북 저작권료 독촉이 부쩍 심해졌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보수 정권 시기 주춤하던 경문협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중소 규모 방송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수백만~수천만원의 추가 부담이 닥치자 "북한을 챙겨주겠다며 우리 영세 방송업체를 쥐어짜고 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국군 포로 2명이 북한을 상대로 강제 노역에 시달린 배상금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고, 법원은 "북한과 김정은은 둘에게 총 42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라 경문협이 원고에게 배상을 해야 했으나 경문협은 "북한 정부 재산과 언론사 재산은 별개"라는 사유로 배상을 거부했다. 북한 언론은 실질적으로 조선노동당에 귀속된 선전 기관임에도,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이다.

 

국가 안보 기밀 누설

임 실장이 비무장지대 시찰 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렸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자기 정치 논란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기밀사항을 공개한 것이다.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 즉 GP로 들어가는 우리 측 통문이 고유 번호와 함께 위치가 공개되었는데 이 정보는 군사기밀로, 통문은 우리 장병들이 지뢰를 피해 다니는 길목이자 유일한 비상구이다. 또한 건너편에 있는 북한 초소의 위치도 드러났다. 국방보안업무 훈령에서는 경계 상태를 드러내는 내용은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청와대는 "북한 GP 초소와 국군의 무기류, 통문 숫자는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요청했지만, 정작 청와대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임 실장의 군 정보 누설은 과거의 주사파 경력과 엮여 같이 까이고 있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임 실장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안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그의 과거 주사파 경력 때문에 그가 대북문제와 안보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매우 불안해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결국 청와대는 문제의 동영상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사과했다. 해당 동영상은 수정 전까지 조회수 2만 4천 회를 기록했다.

다른 논란들과는 다르게 군사기밀 누설은 옹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비판점이다.

 

 

정치 활동 중 논란

비서실의 제왕적 권한 및 자기 정치 논란

"내각과 장관들이 소외되고 대통령비서실의 권한이 너무 크다", "행보가 비서 본연의 역할을 벗어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10차 개헌안 발표가 대통령비서실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보여주는 예시로 꼽힌다. 

사실 이러한 지적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초반부터 일자리창출, 적폐청산 등 국정현안을 다룰 때부터 제기되었다. 줄곧 주무부처가 아닌 청와대 비서실을 핵심에 두고 움직였다는 것이다. 2018년 3월 16일 출범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서는 '부통령급' '국무총리급' 비서실장이라는 뒷말도 나왔다. 기사1 또한 "청와대 참모들이 정책을 뒷받침하고 내각 장관들이 정책 전면에 나서야 하는데, 지금은 청와대가 정책방향을 정해 '톱다운'식으로 내려보내 내각과 청와대 간 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우려도 나타났다. 

 

 

이후에는 자기 정치를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임종석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유럽 순방 중 서훈 국가정보원장 · 정경두 국방부장관 ·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대동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의 화살머리 고지를 시찰하고, 이후에는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 임 실장의 내레이션을 실은 방문 영상을 올렸다. 해당 사건은 자기 정치 논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군 정보를 누설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행동이다. 아래 문단 참조. 이 논란을 두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 또 하나의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다"며 "비서실장은 나서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 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했다. 기사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국방위원회 질의응답 때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맥아더 흉내를 내며 자기정치를 하냐고 비판하였다. 애초에 임종석은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현장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 자격으로 현장을 방문했기에 김성태의 비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전여옥 전 의원 또한 "비서실장이 권력을 과시하고 다닌다"고 임 실장을 비판하였으며,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또한 "참 특이한 비서실장이다. 대부분의 역대 비서실장들은 대통령 그림자도 안 밟으려고 했다"고 평했다. 반면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글라스 끼는 것은 자유다"라며 "앞으로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하면 되는데 마치 큰 사고를 친 것처럼 몰아세우니 과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야권에 반응에 대해, 차기 대권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우려해 이를 견제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있다. 청와대는 임종석 실장의 자기 정치 논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표했다.

임종석 자기 정치 논란과 리선권 냉면 논란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3.2%p 하락한 55.5%로 조사되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논란

2018년 11월 13일,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회도 줄였는데 청와대는 특수활동비를 줄이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자유한국당 이양수 의원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50%를 삭감하는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용역비도 삭감하겠다고 밝히자 임종석 실장은 "구체적인 정책은 부처가 만들겠지만, 정책이 적절한지, 부처 간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지, 국민 여론과 부합하는지는 저희가 해야 하는 업무라서 관련 용역은 더 필요하다"며 "의원님 저 삭감하지 말아주십시오"고 요청했다. 이에 김수현 정책실장을 비롯한 좌중이 미소를 띄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181억원을 책정했고, 2019년도 예산안에서도 동일한 181억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2017년도 대비 50억원, 2016년도 대비 80억원을 이미 선제적으로 삭감한 수치로 최근 10년간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평균 258억원 규모였던 점을 고려하면 적은 편이다. CBS는 예산 자체를 '하나도 안 줄인' 것은 맞지만, 2018년도 예산부터 눈에 띄게 낮아서 오는 착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계 은퇴 후 논란

최재형 감사원장 맹비난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해 감사하자,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 "전광훈, 윤석열, 그리고 이제는 최재형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최재형 원장을 원색적으로 맹비난했다.

임종석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의 최재형 원장 공격에 대해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감사원은 감사를 위해 독립기관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 고유 업무를 여권 인사들이 이렇게 공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며 "검찰이든 감사원이든 여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공격 대상이 되는 형국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방역수칙 회피한 꼼수 가족모임 논란

2021년 설날에 페이스북을 통해 "어떻게 하면 서로 엇갈리게 부모님을 방문할지 작전을 짰다"며 "막내 며느리는 어제 저녁에, 막내아들은 오늘 이른 아침에, 그리고 오전에는 저희 부부가 찾아뵈었다"고 밝혔다. 한편 방역당국은 코로나19에 따라 설 연휴를 앞두고 고향 방문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특히 직계가족이라도 주소지가 다르면 5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

따라서, 임종석 전 실장은 결과적으로 5인 이상 모임 금지 수칙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방역수칙을 교묘히 회피해서 가족 모임을 최대한 자제시키려 한 방역당국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엇갈려서 가도 바이러스는 옮겨진다"며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감염자가 있다면 (동시 모임과 마찬가지로)연쇄 감염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 피해자 2차 가해 논란

오세훈이 보수 야권의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확정된 2021년 3월 23일, 임종석이 박원순은 가장 청렴한 공직자라는 발언을 하여 2차 가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작 박영선은 다음날 피해자에게 상처 주는 발언을 하지 말라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성범죄자 박원순을 옹호하는 망언을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같은 당 후보로 공식선거운동에 나선 박영선이 직접 자제를 촉구했음에도 조국과 함께 계속하는 중이다.  당 대표였던 이낙연 역시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이러한 실언 악재가 겹치며 더불어민주당은 2021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첫손에 꼽히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외 논란

임종석 딸 호화 유학 생활 논란

(업데이트 중)

 

 

임종석 재산

2019년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6억 5천만원을 신고했다.

 

 

임종석 선거 이력 경력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68,481 (48.39%)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36,467 (49.61%) 당선 (1위)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6,718 (46.67%)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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