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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6. 3. 15:29

박상천 사망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제47대 법무부장관)


대한민국의 정치인, 법조인.

 

박상천 사망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제47대 법무부장관)

 

박상천 프로필
박상천

 

박상천

朴相千 | Park Sang-chun

 

출생

1938년 10월 31일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사망

2015년 8월 4일 (향년 76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묘소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본관

밀양 박씨

 

재임기간

제47대 법무부장관

1998년 3월 3일 ~ 1999년 5월 23일

 

 

배우자

김금자

 

자녀

1남 2녀

 

학력

고흥동초등학교 (졸업)

고흥중학교 (졸업)

광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기 대한민국 육군 대위 만기전역 (군법무관)

 

경력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평화민주당 대변인

신민주연합당 대변인

민주당 최고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

제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제47대 법무부장관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박상천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38년 10월 31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학교(6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제13회)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검사로 근무하다가 1987년 사임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88년 초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의 재야 영입 케이스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그 해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대순 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199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고시 13기 동기인 박희태 민주자유당 의원이 대변인으로 임명되고 자신도 평화민주당 대변인이 되었다.

1992년 민주당 후보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제14대 국회 후반기 대한민국 국회 보건사회위원회(현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법무부 장관을 겸직하였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이 해 추석 귀경길 도중 정체된 차량들을 빠져나와 경찰 호위를 받으며 도로를 역주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와 대립하였다. 박관용 회고록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박상천과 정균환 이름만 들어도 질색'했을 정도였다고. 출처 이로 인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신중식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18대 국회에서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이 되길 원하였으나 전반기에는 문희상, 후반기에는 홍재형에 밀려서 되지 못하였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으로 있다가 2015년 8월 4일 지병인 혈액암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76세.

 

박상천 국회 활동
박상천 국회 활동

 

박상천 여담 일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당숙부이다. 차녀는 뮤지컬 배우 김소현의 남동생과 결혼하였다.

지독한 애연가로, 하루 3갑 넘게 담배를 피웠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다른 의원들이 그와 회의를 하는 것을 꺼릴 정도였다.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하게 담배를 피웠으며, 혐연가였던 권노갑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자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거기에 오랫동안 같이 정치를 한 한화갑 역시 박상천의 골초기질엔 학을 뗐는데 신문 사진에서도 박상천이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을때 한화갑은 담배 연기를 손으로 털어내는 사진이 찍힌바도 있다. 김성순은 자신의 시에서 “담배를 사랑하며 연기로 산다. 피우고 피우고 또 피운다. 한 번 뿜는 연기 속에 지혜가 솟고 두 번 뿜는 연기 타고 논리가 흐른다.”라고 박상천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러고도 76세까지 나름대로 장수했던게 기적. 문제는 이게 박상천 이후로 민주당계의 문화가 되어서 이해찬,문희상,김한길등도 박상천의 현역시절처럼 실내에서 마음껏 펴댄다고 한다.

 

 

보수계열 정당의 박희태와는 영원한 정치적 맞수로 유명했다. 1938년생 동갑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57학번 동기이고,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나란히 합격하였으며, 동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둘 다 1966년 검사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동시에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초선 의원 시절 각각 민정당과 평민당의 대변인으로 유명세를 날렸다. 또한, 둘 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5대 국회이던 1997년에는 함께 3선 의원으로서 각각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의 원내총무로 대립했다. 18대 국회까지 박희태는 내리 6선, 박상천은 17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2012년 2월 9일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은 돈봉투 파문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하였는데, 박상천 의원도 같은 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함께 정치 인생을 마무리짓게 되었다. 다만 둘의 성격은 대조적이었다. 박희태가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유머러스한 화법을 썼다면, 박상천은 직설적인 논평으로 유명했다. 박상천이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박희태는 "한 마리 짝 잃은 거위가 됐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박상천 이력
박상천 이력

 

박상천 선거 이력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

54,513 (68.56%) 당선 (1위)

초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

41,207 (60.88%) 당선 (1위)

재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

43,081 (77.09%) 당선 (1위)

3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

40,312 (73.06%) 당선 (1위)

4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보성

25,246 (31.43%)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보성

36,407 (56.03%) 당선 (1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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