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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3. 1. 9. 17:07

정치인 전병헌 나이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정무수석 출신)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17, 18, 19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 국제 e스포츠 연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이었으나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사임했다. 결국 유죄 판결이 확정되어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 있는 상태이다.

 

정치인 전병헌 나이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정무수석 출신)

 

전병헌 프로필
전병헌

 

전병헌

田炳憲 | Jun Byung-hun

 

출생

1958년 3월 17일 (64세)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본관

담양 전씨

 

거주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재임기간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2017년 5월 14일 ~ 2017년 11월 16일

 

가족

부인 조영아, 슬하 1남 1녀

 

학력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경제정책학 / 석사)

 

병역

육군 학사장교 중위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예장고신)

 

약력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국정홍보처 차장

열린우리당 대변인

제5대 한국e스포츠협회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전병헌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58년 3월 17일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에서 아버지 전필수(田弼秀)와 어머니 전주 이씨 이은례(李殷禮)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등포중학교, 휘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육군 학사장교에 지원해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며 중위로 만기전역하였다. 전역 후 평화민주당 당료로 정치 경력을 시작하였다.

 

 

정치인 전병헌정무수석 전병헌

 

정치인 전병헌

평화민주당 당료로 정계에 입문, 최연소 편집국장 등을 거쳤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후보 30번으로 공천되었으나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정책기획비서관을 거쳐 2001년에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2002년 국정홍보처 차장을 지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갑 선거구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서장은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이후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초선 의원 당시 열린우리당 대변인, 정책위 상임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이명박 정부 출범 허니문 효과로 통합민주당이 대패를 했음에도 상대인 권기균 후보를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보수 계열에서 내리 5선했던 지역구에서, 정권교체 직후라는 어려운 상황을 뚫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수도권의 실력가로 떠올랐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로 미디어법 투쟁의 진두지휘를 맡았다.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을 지내고 당시 재선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정책위의장을 맡는 등 당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 결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7대 총선에 이어 두번째로 만난 새누리당 서장은 후보를 55.5%대 44.4%로 무난히 이기고 당선됐다. 19대 국회 2년차에는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같은날 동시에 치러진 양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최경환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강대강 대치구도가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원만한 호흡을 자랑했다. 대여 투쟁보다는 합리적인 협상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당내 강경파들로부터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정쟁 이슈가 많은 가운데도 국회 파행을 막고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당시 최경환-전병헌 원내지도부는 헌정 사상 역대 최대의 법안 합의 처리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이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컷오프되었다.  표면상의 이유로는 보좌진의 실형 선고였지만, 당시 김종인 비대위 체제 하에서 공천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꼽힌 박영선의 경쟁자 찍어내기에 당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전병헌이 4선에 성공했을 경우, 박영선과 함께 서울 지역에서 최다선으로 서울시장 경선 등에 있어 경쟁자가 될 수 있었다. 이어 2016년 3월 22일 공천배제에 승복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하였다. 무소속 출마, 국민의당 입당 등을 놓고 고심하던 중 양산을 방문, 문재인 당시 전 당대표를 만나 대선까지 함께 가자는 설득으로 당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더문캠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에 임명됐다. 보통 정무수석비서관은 재선의원 출신의 원외 인사가 담당하는 자리이다. 수도권 3선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던 전병헌이 맡기에는 다소 급이 낮은 직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당시 전병헌은 임종석, 노영민과 함께 유력한 비서실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국회가 여소야대의 5당 체제임을 고려해서 관례를 깨고 정무수석에 중량감 있는 전병헌을 기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2017년말 본인과 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스스로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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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논란전병헌 뇌물수수

 

KeSPA 회장으로서의 전병헌

2013년 1월 24일에 제5기 KeSPA 지도부의 협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전병헌은 현직 국회의원이면서 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한 묵직한 중진이고, 문방위, 미방위, 문체위 등에서 게임 관련 법안에 관심이 많았다. 협회에서도 힘 있는 인물을 협회장으로 활용해 협회의 위상을 올리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협회 입장에서는 현직 국회의원, 심지어 제1야당의 원내대표라는 거물을 데려와서 정치적 연줄 등을 활용해 힘을 써보자 한 것이고, 전병헌 입장에서는 젊은층의 시선이 많이 몰려있는 이스포츠계에서 본인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결과물이었는데 전병헌이 퇴임할 때까지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심지어 전병헌은 이때의 성과도 어느정도 포함되어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됐다. 이와 별개로 개판이나 다름없던 케스파에 대한 억제력이 생길뿐만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고 게이머에 친화적인 국회의원, 그것도 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무게감 있는 중진 정치인 협회장이 부임하여 여러 업무를 추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계에도 게이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것 만으로도 게이머들은 기뻐한 것이다.

그가 한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이 사례. 2013년 롤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을 하면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이전에 공약을 했는데 우승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자신의 의원실에서 보좌진들의 도움을 받아 분장을 하여 인증샷을 올렸다. 멩스크 코스프레도 그렇고 젊은 층에선 게임 코스프레하는 국회의원으로 유명했다.

 

게임업계에서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은 정부의 모바일 게임 오픈마켓 사전심사 폐지 법안이다. 2010년 이전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국내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는데, 전병헌이 발의하고 통과된 이 법안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에서 국내 모바일 게임 시대가 열리게 됐다.

사실 전병헌은 케스파 회장 본연의 직무보다는, 국회의원의 위치에서 이스포츠업계에 도움을 줬다고 보는게 맞는게, 셧다운제 완화 법률을 제출, 게임물 심의 업무의 완전 민간 이양 법안의 제정이나, 입안등에 좀 더 공을 들였는데, 이는 케스파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명백히 국회의원 업무의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 이 때문에 사실 전병헌의 이스포츠 관련 업적이라는 것들은 잘 살펴보면 케스파 회장으로서의 공이라고 보기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공이라고 보는게 맞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병헌 본인에 대한 이스포츠 업계에 관한 공을 절하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당장, 최소한 같은 당 원내 대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제 전병헌이 케스파 협회장으로 있는 동안, 게임업계 탄압 관련 법안 발의는 전부 여당의 몫이었는데, 적어도 국회에서 게임업계를 대표할 사람 자체가 없어서 국회 양쪽에서 두들겨 맞고 다니던 시절보다는 훨씬 낫다는건 부정하기 힘들다.

또한 군 생활관 게임채널 차단사건에 매우 강력히 항의하여 게임을 좋아하는 죄 없는 장병들을 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국방부는 국군 장병들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다시 게임채널 차단을 해제하였다.

 

전병헌 집행유예전병헌 케스파 사유화 논란

 

국회 윤리자문위원회에서 국회의원 겸직 금지 원칙이 논란이 됐고 결국 겸직 금지 통보에 따르기로 결정하였고 2014년 12월 16일에 협회장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윤리위에서 실권이 없는 명예직은 허용한다는 입장에 따라, 이후에는 명예회장직으로 있었다.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고 난 뒤, 더이상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게 되었고 곧바로 KeSPA 지도부의 협회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2017년 5월 11일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직후 2017년 5월 16일 롤인벤, Pgr21 게임 관련 사이트에 글을 남겼다.  

실질적으로 한국 e스포츠의 발전은 블리자드,라이엇 게임즈같은 게임사와 온게임넷같은 방송사의 노력이 큰 비중을 담당했던게 사실이다. 따라서, 전병헌 체제의 KeSPA가 주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적어도 케스파가 이전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밥상을 뒤엎으려는 짓을 하진 않았고, 케스파는 적어도 전병헌 재임기간에는 이미지 개선을 이뤄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e스포츠협회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전병헌 체제의 KeSPA가 한 업무는 스포츠 협회라면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지만, 전병헌 이전, 전병헌 이후의 케스파가 그 당연히 해야되는 일을 제대로 한 사례가 없다시피한걸 생각해보면, 단순히 '당연히 해야되었던 일'이라고 평가 절하당할만한 사실은 아니다. 괜히 중간만 가는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는게 아니다. 당시에도 한국의 나이 좀 있는 정치인들이 게임 관련 방침을 정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시대착오적인 꼰대질로 망가지는 일이 빈번했는데, 전병헌은 전술된 코스프레부터 게이머 친화적인 언행들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여 이미지 메이킹을 잘 했고, 또한, 중견급의 힘있는 정치인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상술한 것처럼 게임업계에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도움이 된건 분명한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e스포츠계에 기여를 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케스파 협회장으로서의 커리어에 흠집이 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2017년 11월 8일 검찰은 2015년 전병헌의 보좌진들이 롯데홈쇼핑에서 수억 원대 로비 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입장문’에서 "언론에 보도된 롯데홈쇼핑 건과 관련, 어떠한 불법에도 관여한 바 없습니다"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심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이후 검찰은 2015년 당시 롯데홈쇼핑이 전병헌이 회장을 맡은 한국 e스포츠협회에 3억원대 후원금을 낸 것을 사업권 재승인 청탁 댓가로 보고 제3자 뇌물혐의를 적용했고, 일부가 전병헌 비서관이었던 윤모씨 등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점을 들어 전병헌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을 두고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검찰이 수사를 착수했던 메인 사건인 e스포츠협회 뇌물 사건은 전부 무죄가 나왔다. 보좌진에 흘러 들어갔다는 돈도 대부분 개인이 유용한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찰도 이를 의식했는지 제3자 뇌물 혐의 기소에서 그치지 않고 기재부에 대한 e스포츠 예산 배정 직권남용 등 총 15개 혐의를 기소했다. 이를 두고 표적수사냐 아니냐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 이중 11개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 유죄가 나온 혐의는 4가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대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게 했던 시발점이었던 롯데홈쇼핑과 GS홈쇼핑, KT의 e스포츠협회에 대한 제3자 뇌물 혐의의 경우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검찰은 스폰서 광고를 문제 삼았는데, 검찰 논리상으로는 K리그, 프로야구 등 모든 스포츠 이벤트에 광고를 넣는 기업들에 제3자뇌물 적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병헌 케스파

 

문재인 정부가 당시 사법개혁을 외치며 검찰의 민정수석실 수사 보고 등을 폐지했는데, 이 때문에 문재인 청와대는 전병헌 수사를 전혀 몰랐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초기 당시 실세 정무수석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가능했던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전병헌에 대한 수사를 당시 청와대 내부 권력갈등의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 등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한 청와대에서 비운동권으로 정치 경력과 나이가 임종석보다 위인 전병헌이 결론적으로 내쳐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적폐청산 기조로 검찰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이뤄지고 이에 따라 변창훈 검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로 인한 검찰 내부의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에 대한 강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병헌 수사를 택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후 조국사건 등을 통해 수면으로 드러난 윤석열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기의 시작은 전병헌 수사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정권 초기 갑작스럽게 이뤄진 전병헌 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이후 조국 사건을 통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과 문재인 청와대의 반목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결론적으로 정권마저 내주면서 전병헌 수사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시 전병헌 수사 책임자는 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었고, 진두지휘는 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한동훈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을 앞두고 특별사면에서 전병헌을 사면했는데 이로 인해 정계 복귀의 길이 열렸다.

 

> 윤석열 프로필 보러가기

> 한동훈 프로필 보러가기

 

 

전병헌 사면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을 맡아 당사자를 기소했던 사람들이다.

 

전병헌 사면

 

전병헌 재산

2022년 기준 재산은 20억 원이다.

 

 

전병헌 선거 이력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4,971,961 (25.3%) 낙선 (30번)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

46,291 (43.2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

38,014 (44.86%)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

56,794 (55.56%) 당선 (1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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