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생물물리학자. 국가 주관 대입시험 역사상 최초의 만점자로 기록된 인물로 유명세를 얻었다.
교수 오승은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오승은
吳承恩 | Oh Seungeun
출생
1980년 (43~4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학력
신동중학교 (졸업)
한성과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 /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 박사)
약력
하버드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시스템생물학과 박사후연구원 (2010 ~ 2017.05.)
하버드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강사 (2017.06. ~ 2023.06.)
UCSD 조교수
종교
개신교
오승은 생애 학력 이력
1968학년도 예비고사 도입 이후 학력고사를 거쳐 1994학년도 수능으로 변경된 입시 체제까지 30년 이상 전국 단위로 국가가 주관하여 실시하는 대학입시에서 최초로 만점을 받은 인물이다.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998년 11월 시행, 12월 성적 발표)에서 만점을 받았다. 당시 만점은 400점.
99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자가 나오기 전까지 수능 역사상 최고득점을 받은 학생은 서울과학고등학교에 다니던 한상형 군(서울대 산업공학과 진학)으로 1998학년도 수능 수리영역 II에서 1.5점짜리 문제를 하나 틀려 398.5점을 맞았다.
수능 최초 만점의 상징성으로 언론에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쓴 오답노트로 그녀의 이름을 딴 "오승은의 수능 노트"(1999년 출간) 등 참고서/교재 등이 출간되기도 했고, 자신의 노트를 출판해서 번 돈을 유학 자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당시 만 18세의 한성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으며,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오승은은 인터뷰에서 "1학년 때 잠깐 과외를 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언어영역과 사회탐구 영역은 수학 등에 비해 다소 약해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녔다"고 언급했다. 또 소립자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오승은은 부유한 가정 출신이다. 오승은의 아버지 오형환 씨는 196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 행정고시 8회 수석 합격자 출신으로, 1998년 당시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이었으며 어머니 이우인 씨는 당시 서울 송파구 방산중학교의 사회교사였다. 오승은은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1살 위 오빠인 오석준 군(당시 19세)은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부모 모두 인문계열 출신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던 집안이었는데 오승은은 자연계열을 선택해 탁월한 성적을 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항이다. 클래식 음악 감상과 독서가 취미였고, 지능지수(IQ) 150의 영재였다.
오형환 씨는 당시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석사과정을 준비하는 등 학구열이 넘쳤다고 한다. 오승은 역시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깊은 학구열 때문이었다"고 언급하며 "아버지를 닮으려고 노력했으며 교사이신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고 말했다. 또 오형환 씨는 딸에 대해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했기 때문에 일일이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고 언급했다.
당시 한성과학고등학교 3학년 주임이었던 송도찬 교사의 언급에 따르면 "머리가 총명한데다 노력파여서 모의고사에서 항상 390점대를 얻어 전교 1등을 했고, 이미 수석 졸업이 확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오승은은 중학교 때 수학 경시대회에서 입상했고, 또 강남교육청 주최 영어 듣기 대회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고교 내내 성적 석차 1등 자리를 지켰고 잠은 7시간 이상 잤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반에서 5등 정도의 석차였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초·중학교 때 영어와 수학등 기초 과목만큼은 뛰어났으나 성적은 반에서 5등 안팎. 고교 진학 때 음악과 체육 등 예능 과목 성적이 저조한 탓에 중학 졸업 성적이 전교 상위 3.7%로 과학고 지원 자격인 3%이내에 들지 못했지만,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장려상으로 입상한 경력을 인정받아 겨우 지원 자격을 얻는 행운을 안았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자연과학부 물리학전공(99학번)에 학교장추천 수시로 이미 합격한 상태였으며, 7학기(3년 6개월)만에 조기졸업했다. 2003년 8월 12일 미국 MIT 대학원 물리학과로 유학을 떠나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교 의대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Post-Doc.) 신분으로 시스템 생물학 ( system biology )을 연구했다. '동물 성장판의 세포와 뼈 길이 사이의 관계'에 논문을 2013년에 발표하며 '네이처 (Nature)'지의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학술정보 검색 서비스인 구글 스콜라(Google Scholar)에서는 오승은 박사의 논문(2021년 10월 기준 18편)이 합산하여 약 2,000회에 가깝게 인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활발히 활동 중이며 임팩트가 큰 논문들도 쓴 훌륭한 생물물리학자인 셈.
2023년 7월 기나긴 연구원과 강사 생활을 끝내고 UC San Diego에 교수로 부임한 것이 확인되었다.
수능 만점을 맞아 화제가 된 지 25년 후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최초의 수능 만점자라는 점과 다른 수능 만점자와 상반되는 이례적인 행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근황과 비하인드를 궁금해했기 때문에 반응이 뜨겁다.
오승은 여담 일화
메가스터디 대표이자 설립자 손주은의 제자라고 한다.
이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그와 가족들의 행적은 공부 쓴소리의 일종이면서 흔히 자기개발서에 많이 나오는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라는 말의 모티브로 여겨진다.
어떻게 만점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모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아이돌 H.O.T.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HOT가 뭐죠?"라고 되물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내려오지만, 실제로는 그런말을 한적이 없다. 훗날 유퀴즈에 나와서 밝히길, 당연히 H.O.T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10대 여학생들과 달리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아서 멤버들도 다 몰랐고, "잘은 모른다"는 맥락으로 대답했는데 아예 모른다는 의미로 와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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