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그룹 총수.
삼성 이재용 프로필 나이 재산 고향 학력 이력 가족관계
이재용
李在鎔 | Lee Jae-yong
출생
1968년 6월 23일 (54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대한민국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본관
경주 이씨 (慶州 李氏)
직업
기업인
현직
삼성그룹 총수
삼성전자 부회장
학력
경기초등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 /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박사과정 수료)
부모
아버지 이건희, 어머니 홍라희
형제자매
여동생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배우자
임세령(1998 - 2009)
자녀
장남 이지호(2000년 12월 14일생)
장녀 이원주(2004년 03월 27일생)
신체
182cm, B형
병역
전시근로역 (추간판 탈출증)
종교
무종교
재산
92억 달러 (한화 약 11조 2,2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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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68년 6월 23일에 태어났고,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87학번)를 졸업했다. 이후 게이오기주쿠대학 MBA를 취득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과 관련해서 첨언하자면, 조부인 이병철 회장이 "경영학은 나중에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유해 동양사학과에 입학한 것이라고 한다. 그와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처음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했던 점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이재용이 동양사학과를 전공한 건 당시 경제대국이던 일본에 관심이 많던 부친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학사 논문도 일본의 산업 공동화에 대한 것이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당시 중국사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일이긴 하다. 다만 그래서인지 이재용도 아들은 상하이 외국인 학교에 보낸다는 말도 나오는 등 중국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 외 경쟁률 스나이핑 때문에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1987학년도 서울대 학과별 지원상황을 보면 당시 동양사학과는 2대 1의 제법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에 그것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울대 평균 경쟁률이 1.6:1이었고, 동양사학과는 문과 계열 중 5번째, 문이과 합쳐서(예체능 제외) 7번째로 경쟁률이 높았다고 한다. 1987년도 학력고사 배치표상에서도 동양사학과는 296점 이상으로 서울대 문과 계열 쪽에서는 4번째 구간이었으니 단지 서울대 입학만을 위해 무작정 과를 고른 게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재용의 대학 생활은 동기들 얘기 등을 종합해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벌집 도련님하곤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일단 부자 티를 별로 안내서 학적부처럼 아버지 직업란을 적는 곳이 있으면 회사원이라고 기입했다고 한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주변인들은 그가 재벌집 자제라는 것 정돈 알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건 80년대 당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는 운동권으로 유명한 학과였다는 것이다. 상기했듯 중국사 관련으로도 유명하다 보니 당시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공부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학과 자체가 서민친화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운동권적 성향이 강했고, 그런 곳에서 무난히 지냈으니 성격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실제 지금도 동기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재용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같은 과 1년 선배였던 최영인과 연인인 척 손을 잡고 시위에 참가해서 최루탄 맛을 경험하기도 했고, 전방 입소 거부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대학생이라면 크게 낯설진 않은 풍경이기도 하지만, 무려 삼성 후계자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과 MT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 당시 동기들과 각종 논쟁에 대한 토론도 즐겼다고 한다. 당시 동기생들에게 이재용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 이미지였다고.
한편으로는 그 역시 평범한 당시 20대 청년답게 흠모하던 여학생과 몇개월 연애도 해보고, 승마 선수 경력을 살려 상무에 입대할지 아님 학사 장교로 입대할지 등 병역 문제 고민도 했다고 한다. 종국엔 1991년 11월 허리 디스크로 면제되긴 했지만. 그리고 한달 후인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삼성전자 내에서 경영기획팀 상무보, 경영기획팀 상무, 전무,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등을 역임하며 승진했다.
1998년에는 조미료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이자 9세 연하인 임세령과 결혼했지만 2009년 합의 이혼했다. 현재 임세령은 대상그룹의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2005년에는 막내 여동생 이윤형 양이 유학 중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겪게 된다.
2014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병으로 입원한 이후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총수가 되었다. 2015년 5월 15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이후 책임을 지고 등기이사의 자리에 올라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고 국정논란 의혹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명목상으로 삼성전자 부회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기업 1인자이다. 2022년 7월 형집행 완료 처분이 되고 3대 회장 직함을 달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경영 능력
요약하면 2010년대 부회장 취임 이전과 이후의 평가가 완전히 상반되는 편이다.
부친 이건희 회장이 일선에서 활동하던 황태자 시절엔 경영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오죽하면 당시 안티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도 '마이너스의 손'이었을 정도. 다만 그 이건희 회장도 황태자 시절엔 본인이 손댔던 사업에서 실패를 겪어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사업이었다.
결국 제대로 경영에 나서지 않은 상황이었을 뿐, 국내 1등 기업이라는 삼성의 특성과 그 위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던 이건희 회장이 직접적으로 현장에 나섰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그렇게 형성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삼성
당시 이재용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고 의심받은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e삼성 실패였다. 일반인들은 e삼성 운운하는 얘기는 제법 들어봤겠지만 정작 e삼성 실패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를텐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2000년 당시 33세였던 이재용은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창업한다. 이재용이 직접 지분 60%의 대주주로 출자했고, 나머지 지분은 삼성 계열사와 특히 당시 삼성 2인자인 이학수와 김인주까지 참여한 사실상 삼성 수뇌부가 단단히 베팅한 사업이었다.
이렇게 설립한 e삼성은 IT 벤처사업 투자를 목표로 국내 투자는 e삼성, 해외 투자는 e삼성인터내셔널로 나누어 진행했다. e삼성의 설립 배경은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이재용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성과지표이자 이건희 못지않은 능력자 이미지 구축, 미국의 거대 IT 기업 아마존닷컴, Microsoft, 구글처럼 상장 대박나면 비싼 상속세 낼 필요없이 삼성 지분 사들여서 경영권 승계, 삼성그룹의 IT 사업 확장 등 성공만 했으면 이재용의 미래가 크게 바뀌는 사업이었다. 훗날 승계 문제로 된통 당하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이런 IT, 4차산업 투자로 대박난 기업 중 하나가 소프트뱅크이다. 이렇게 보면 이재용과 달리 손정의 회장은 베팅에서 제대로 대박을 친 케이스.
e삼성의 경영이 어땠는지에 대해선 여러 말이 많은데,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에서도 구체적인 정황이 많이 언급된다. 하여튼 2001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선 e삼성을 위한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 부당지원을 조사하고 경고까지 주는 등 초반부터 경영이 좋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공정위의 철퇴에 결정적으로 당시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e삼성은 폐급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2001년 e삼성인터내셔널은 설립 첫해부터 투자회사들의 적자로 76억 원의 손실을 냈고, e삼성과 나머지 해외법인, 투자한 모든 회사의 적자를 합치면 도합 173억의 적자를 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e삼성이 말아먹은 손실을 삼성 계열사로 전가했다는 것인데, 이재용의 보유 지분을 제일기획이 208억에 사들였으며, 다른 사업의 지분도 삼성SDS, 삼성SDI, 에버랜드 등 계열사가 사들이게 된다. 즉 이재용은 173억의 적자를 낸 회사를 208억에 팔고 손을 뗀 셈이다. 다만, 당시 사업체들을 전부 말아먹은 것은 아니어서 일부가 2020년대까지도 계열사의 자회사 형태로 존속하고 있으며, 멀티캠퍼스(구 크레듀), 시큐아이, 미라콤아이앤씨가 그런 회사들이다. 멀티캠퍼스, 시큐아이의 2020년 기준 시가총액에서 e삼성의 지분가치로 환산하면 지금은 어느정도 수익권이긴 하다. 20년 동안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손해를 받았고 겨우 2019년부터 흑자로 반전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성이란 뒷백을 두고도 e삼성이 실패했기 때문에 당시 이재용은 경영 능력에 큰 의심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도 배임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e삼성의 실패로 이재용의 승진길도 전무, 부사장에 머무르는 동안, 물론 개인적인 사이는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동생 이부진이 당시 기준 일반인과의 결혼, 신라호텔 사업의 성과 등으로 부각되었기에 사뭇 비교되면서 세간의 의구심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부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이건희가 갑작스레 쓰러지고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부터, 이재용은 상기한 e-삼성 실패로 일각의 우려를 받았으나 이로부터 몇년이 훌쩍 지난 2022년 현재 상황을 놓고 평가를 해보자면 삼성을 아주 잘 이끌고 있다.
삼성 역시 매우 우수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2018년에는 기록적인 반도체 호황을 기록하며 무려 영업이익 58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아버지 때도 못 이룬 업적. 반도체 호황이 끝나가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2020년 기준으로도 삼성전자의 2019년 4분기 실적은 영업이익 7조원을 넘어가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0년 3분기 발표에서 무려 영업이익 12조 3,000억의 서프라이즈를 경신하며 초호황이 끝나고도 괜찮은 경영 실적을 거두었다. 물론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코로나 사태 이후 호황인 전자산업이기 때문에 이런 실적이 나왔다고 비판할수있다.
스마트폰 경쟁사인 Apple과 비교하자면, 혁신의 아이콘이던 스티브 잡스가 죽었지만 후계자인 팀 쿡이 안정적인 경영과 탄탄한 재무운용을 바탕으로 잡스 시절과 비교가 안될 만큼 애플의 성장을 이끌고 있듯, 삼성도 이병철이 창업하여 국내 대기업으로 키워낸 것을 이건희가 공격적인 경영으로 글로벌 대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면, 이재용은 이를 지키고 굳히는 수성형에 가까운 타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삼성은 이미 초거대 기업으로 도박성이 섞인 공격적인 경영만 하다간 오히려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사이즈에서는 역으로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재용은 마이너스의 손이라던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준수한 실적을 올리며 삼성을 이끌고 있다.
개선할 부분
현재 이재용한테 필요한 능력은 사업을 조정하고, 오너인 자신이 없어도 사업체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이건희 자신이 신뢰한 몇 명의 경영진만을 내세워 삼성그룹을 통제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큰 삼성이 더 커져버린 상황에서 이건희의 측근들만으로 경영하기에는 그들이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좋게 보면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경영진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무슨 일이라도 나서 이건희를 비롯한 측근과 삼성 요직들이 자리를 비우면 아래 업무들은 그야말로 멈춤 상태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
한마디로 리스크도 크고 무엇보다 구시대적이다. 그래서인지 이재용은 자신의 측근 외에도 많은 경영진을 뽑았고, 실제로 삼성은 이재용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전무, 상무급 임원진이 크게 늘었다. 그리고 이재용의 임원진급 승진 인사 인선 과정에서 딱히 문제될 점은 없었다. 이후 이재용식 인사를 통해 뽑힌 경영진과 그 경영진들이 뽑은 사원들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이건희 시대보다 더 커진 초대기업임에도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의 몇몇 고질적인 비판점들도 개선해야 할 부분인데, 바로 부친 시대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무노조 경영이나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편법/불법 승계 문제같은 것들이다.
스포츠광 이재용
엄청난 야구 팬이라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김시진과 캐치볼도 하고 야구장에 자주 와서 같이 시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삼아 이재용을 김시진 제자라고도 한다. 이 때문인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10개 구단 모기업의 오너 중에서는 야구장 방문이 가장 잦은 편이었다. 참고로 이재용은 라이온즈의 구단주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사실상' 구단주일 뿐이다. 실제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는 이수빈이다. 이재용은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 경기가 있으면 일 년에 두세 번은 잠실을 찾고 한국시리즈 때는 시간 나는 대로 잠실구장 경기를 찾았다.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는 서울과 가까운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찾기도 했다. 자식들도 종종 데리고 와서 가족 관람을 했다. 허나 2010년대 후반 구속 이후로는 자의반 타의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골프도 잘 친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폭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구조조정본부'(지금의 미래전략실)의 핵심 인사로 일했던 시절 이재용 당시 상무와도 가까이 지냈었는데, 그와 함께 골프를 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헌데, 문제는 허리디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사람이 어찌나 골프채를 잘 휘두르는지 의아했다고 한다. 다만,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골프를 즐길 수 있고 그런 사례도 많아 무조건 병역비리인냥 호도할 일은 아니다. 실제 일각에선 골프를 통해 허리디스크 통증이 호전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1년 삼성 경기 때는 경기를 관람하고 경기 후에 삼성 덕아웃에 방문,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또한, 이때 선수 전원에게 갤럭시 탭 최신 버전을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2011년 7월, LG전에서 LG가 외야에 펼친 삼성 디스 현수막을 보고 빡쳐서 집에서 나와 5회부터 잠실구장에서 관람, 삼성이 역전승하는 데 일조한 날이기도 하다. 이날 경기 종료 후 선수단과 악수를 나누며 선수들에게 직접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날 턱돌이가 이재용, 이부진 가족과 악수를 했는데, 특히 이재용과 악수하고 난 뒤 꽤나 좋아했다.
2012년 8월 18일 슈퍼매치를 관람하기도 했다. 다만, 경기를 다 보지는 않고 나갔다고 한다.
2013년 3년 내내 정규시즌에서 단 한 번도 못 이기던 니퍼트를 삼성 선수들이 이날만큼은 박한이와 채태인의 활약으로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겼는데 이 경기에 이재용이 직접 홈구장인 대구까지 방문하여 관람해서 이재용 효과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국 1승 3패로 밀리던 팀이 결국 7차전까지 끌고 가서 우승을 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등장하여 팀의 우승을 지켜봤다. 명불허전 재용불패임을 증명했다.
2015년 5월 21일 어머니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러 왔는데, 이 날 삼성은 상대로 등판한 對 삼성전 13승 1패를 자랑하던 더스틴 니퍼트를 털어버렸다! 이날 이전까지는 2012년 8월 18일 잠실에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한 것이 유일한 기록이었다.
인터넷 기사로만 나왔던, 시즌 초에 류중일 감독이 감기에 시달린 사실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야구 기사도 많이 챙겨보는 듯하다. 덤으로 팀 4,000홈런도 직접 봤다!
아들과 같이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는데 그 짤이 그 유명한 "아빠 나 류현진 사줘"다. 참고로 아들 이지호는 오승환 팬으로 이 때문에 삼성팬들 사이에선 "오승환은 종신계약 확정이요 ㅋㅋ"드립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왔음에도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오히려 이 부회장이 친히 직관을 온 2, 3, 4차전을 내리 패했다. 그러나 시즌 후 야구단을 제일기획으로 이전시키는 행보로 인해, 이전 모습과 다르게 180도로 야구단을 팽개쳤다는 평가가 늘어나며 안현호 단장 및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와 함께 많이 까였다. 2016년 이후에는 삼성 라이온즈 역시 실용주의의 대상이 되면서 2016년에 제일기획 산하가 되었다. 그리고 제일기획에 이관한 후 한 번도 야구 직관을 가지 않았다. 게다가 "명색이 프로 구단인데 모기업에서 매년 수백억 원씩 지원을 받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즉, 앞으로 라이온즈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대구아재들이 구단을 매각하라고 아우성이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제일기획도 연루되었다는 혐의가 포착되어 삼성스포츠단 팬들의 분노를 제대로 샀다. 거기에 전년도의 박석민에 이어 FA로 풀린 차우찬과 최형우마저 거액의 총액을 받고 각각 LG와 KIA로 이적하면서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
제일기획 이전과 지원 감축의 원인을 이재용에게 돌리는 듯한 뉘앙스인데 이는 전적으로 도박으로 기업 이미지까지 실추시킨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네명의 잘못이다. 많은 연봉을 받고있고 오너가 친히 격려 차원에서 방문해 선물과 보너스까지 챙겨줬으면 스포츠맨으로 멋진 모습을 어린 팬들에게 보여주는데만 집중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 기대를 짓밟고 건달들과 어울리며 마카오 원정도박에 일부는 중범죄 행위를 저질렀는데, 구단주가 삼성이란 두글자 호적을 파버리지 않은 것만도 굉장히 관대한 처분이다. 원망을 하려면 투수조를 원망해야한다.
그나마 관심은 아직 있는지 라이온즈가 2022년 7월달에 13연패라는 엄청난 부진에 빠져있을 때 그룹 고위 임원한테 '우승까지 바라진 않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삼성 스포츠 입장에서는 2022년이 암흑기인게 2022년 8월 초 기준으로 야구 팀의 경우 13연패를 찍는 기록을 달성하는등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고 축구팀의 경우 1부리그 11위 및 최하위와 승점 차이가 3점 차이로 잘못했다가는 최하위로 다이렉트 강등을 달성하는 비극이 발생할수도 있다.
이재용이 직관한 날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이 상당히 높아 팬들 사이에서는 재용불패, 재용필승, 승리요정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부르고 있다. 재용불패에 비할 수 있는 것이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용만불패가 있다.
반대로 아버지 이건희는 직관 필패로 유명한데, 이건희도 스포츠를 이재용 못지않게 좋아하지만 그 유명한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유두열의 역전 홈런을 본 충격으로 아직까지도 직관을 못 간다고 한다. 카더라에 의하면 1984년 한국시리즈 때 7차전에서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구단의 연락을 받고 이제는 이기는 것을 보겠구나 싶어 구장에 도착했는데, 도착한 순간 본 게 장효조의 만세 사건이었고 바로 다음 이닝인 8회에 유두열의 역전 쓰리런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재용 여담 일화
2015년 7월 경에 업무용 차량을 9년간 타던 에쿠스에서 체어맨으로 바꿨다고 한다. 사진 속의 차량은 에쿠스 1세대다. 이건희의 장례식 때는 팰리세이드를 직접 운전해 도착했다. 삼성 관계자에 의하면 해당 차량은 이 부회장 자가 소유이고 두 아이들 때문에 자가운전해 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제네시스 G90을 업무용으로 사용 중이다.
딸인 이원주 양이 국립발레단 산하의 주니어 발레스쿨에서 발레를 배웠던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발레 마니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6년 국립발레단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호두까기 인형의 주연을 맡고 그만뒀다고 한다. 과거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딸의 공연을 관람했다. 2011년 호두까기 인형, 2012, 2013년 프릿츠의 친구 역할로 2014, 2015년에는 주인공 '마리'의 남동생인 '프릿츠' 역할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2016년에는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 마리 역할의 아역인 어린 마리 역으로 나왔다. 이원주 양이 다녔던 학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서울용산국제학교(YISS)이다. 현재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며, 이원주 양이 재학 중인 학교는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Choate Rosemary Hall이다. 이지호 군도 재학했던 적이 있다.
발레단 친구들과 함께 잠실에서 열린 EXO 콘서트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친구인 나 양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나와있으며, 이원주의 SNS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개인 셀카, 친구와 찍은 사진등이 언론에서 세간에 큰 관심사를 끌었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방탄소년단, 프로듀스 101, Wanna One 등의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며 화제를 모았던 해당 계정은 현재 탈퇴한 상태다. 국내 최고의 재벌 딸이라는 것만 빼면 또래 소녀들의 평범한 취향과 차이가 얼추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딸이 주인공으로 섰던 2015년 12월의 호두까기 인형 관람 후 공연장을 나서는데 한 기자가 인터뷰를 청하며 LG 휴대폰의 마이크를 들이밀자 이재용은 이를 보고 "갤럭시 쓰시는 분이면 말씀드렸을 텐데…"라는 말로 에둘러 거절했다. 아마 가족과 같이 보내는 행사인지라 말을 돌려서 좋게 거절한 것 같은데, 실제로 웃는 표정에 장난끼 가득한 말투였고 심지어는 기자가 계속 인터뷰를 청하자 아예 어깨동무까지 한 채로 함께 걸어가며 친구 대하듯 했다고 한다. 이에 기자는 사진 촬영만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이재용은 계속 갤럭시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갖고 싶은 갤럭시 기종, 색상, 사용 중인 통신사를 물었다. 기자는 그냥 장난인 줄 알고 '갤럭시 S6 엣지 골드 SK'라고 답했는데, 이재용은 주차장까지 가면서 엣지, 골드, SK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회사 차량이 마중나오자 비서를 시켜 트렁크에서 갤럭시 S6 엣지 골드 SKT 모델을 꺼내 진짜로 선물해줬다. 2016년 9월 21일에는 한 손에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아 폭발 사고를 일으켰던 갤럭시 노트7을 들고 출근하던 도중 아이폰을 들고 있는 기자를 보고서는 "여기만 아이폰이네요"라고 말했다. 이재용, '갤노트7’들고 출근하며 아이폰 든 기자에게 "아이폰이네요."
2016년 1월 11일, 김포공항에서 TWICE의 입국을 기다리던 아이돌 홈마들에게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2심 판결로 석방된 후 353일 만에 자택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로 치킨을 시켜먹었다. 이후 삼성 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백반식 저녁 식사를 준비했는데 이재용 회장이 귀가하고 나서 곧바로 치킨을 강하게 찾아 급히 배달을 시켰다고 한다. 백반식이야 수감되었을 때 질리게 먹었을 테니 치킨이 땡길만도 하다. 2021년 11월에 황교익이 치킨은 서민, 노동자가 찾는 음식이어서 부자들은 먹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여, 이 일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재용 본인이 안경을 올리고 있는 짤을 가지고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면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검색어로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대의 천재'라는 검색어가 떠서 커뮤니티에 회자된 적이 있다. 다만 이는 저 짤의 자세가 고갤 밈인 '루아녹스' 짤과 닮아서 생긴 해프닝이다. 또한, 반대로 위 짤이 일본에서 유카와 마나부를 닮아서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재즈 클라리네티스트인 베니 굿맨과 얼굴이 묘하게 비슷하다.
2심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한동안 석방되어 있던 2018년 7월 9일 당시 삼성전자 인도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여 인도에 있던 문재인 대통령과 잠시 회동을 가졌다. 이 때 이재용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5초간 4번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이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9년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방문하여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열고 EUV동 건설 현장을 시찰했는데, 이때 이재용 부회장과 회동했다. 이때 이재용이 "이거 짓는 돈이 인천공항 3개 짓는 비용입니다."라고 말하며 설명하는데 보기드문 이재용의 표정과 손짓에 인터넷에서 밈화 되었다.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제인 특별 수행원으로 참가했는데, 거기서 수많은 짤방을 양산했다. 예를 들자면 이코노미석에 탄 이재용, iPhone이라서 취재 안 받은 이재용, 평양냉면 맛 본 모습 등이 있다. 특유의 일관된 표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 중 가장 압권은 방북을 마친 후 들뜬 표정으로 돌아오는 표정이다. 사실 이코노미석이 아니고 비즈니스석인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재벌개그 드립이다. 실제로 이재용은 이코노미석도 타봤다.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방북 당시 북한의 현송월, 연예인 지코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에일리가 사진을 찍어줬다고 한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 시절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조치에 따라, 방북한 이재용도 미국 방문 시 무비자 입국이 제한되어 미국 방문시 방문 비자를 발급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미 대통령도 투자 유치 관련해 접견할 정도인 이재용을 양국 정부에서 그렇게 둘진 의문이다. 추가적인 취재가 필요해 보인다.
정부로부터 특사 자격을 받아 유럽 등지에서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출장을 준비 중이었는데, 구속으로 인해서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법조계, 산업계의 익명 주장이고 정부 공식 반응은 기사에 없다. 결국 질병청에서 논의한 적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2021년 시점 앞선 보도의 정정 보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300억원을 먼저 냈고,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 등 연수원 2곳을 수도권 생활치료센터로 쓰도록 했다.
부친의 장례식장에 팰리세이드를 타고 왔는데, 본인이 아들과 딸을 태우고 운전기사 대동 없이 직접 운전했다고 한다. 또한, 차량을 조회해 보니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한 것으로 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았다는 루머와 관련해 "아버님께 야단을 맞은 것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제가 당황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해 방청석에서 웃음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실제 삼성의 이 사건에 대한 스탠스는 당시 대통령에게 기업 오너가 협박당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박근혜 정부는 삼성이 관리한다고 생각하던 JTBC의 반정부적 보도 스탠스 등과 엮여 삼성이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를 한다고 생각한 모양.
재벌 총수치고 젊어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2020년대 초 기준 이미 50대 중반이다. 동갑인 톰 요크와 비교해 보면 이재용이 얼마나 동안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재용의 경우 대기업 총수이기에 업무량도 많을 것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관리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옥에선 제대로 된 관리는 못 하기에 2021년 출소 직후의 모습을 보면 조금 수척해지긴 했다만, 후술되어있듯 이 기간 13kg이나 빠진 다이어트의 영향도 있을듯. 그럼에도 여전히 동안이다.
밖에서 비춰지는 얼굴 표정이 거의 항상 웃는 듯한 표정이라 이에 대해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웃어서 친숙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재용의 웃는 표정을 포커페이스의 변형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사실 본인 입장에선 어색해서 웃는듯한 얼굴 표정이 나오는것일수도 있다.
입술이 매우 얇다. 집안의 내력인 것인지 두 동생도 그렇다.
상당히 좋은 목소리와 발성을 가지고 있다. 사족으로 여동생 이부진도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구치소에 있었던 시기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일반인들이 재벌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21년 3월 19일 급성 충수돌기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초기에 빠르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라 특혜 논란이 있을 수 있기에 참았고, 결국 상황이 악화되어 대장의 일부를 절단해야 했다고 한다.
2021년 8월 9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최증 승인했다. 207일 만에 경영 복귀…법무부, 이재용 가석방 승인.
구치소에 있는 7개월 동안 몸무게가 13kg이나 빠져 나름 화제가 되었는데 스트레스로 빠졌다기보단 본인이 운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독방에서 매일 스쿼트 300회, 30분씩 주어진 운동 시간에는 운동장을 전력질주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웃통 벗고 달리는 JY가 구치소 내에서도 화제였다고 한다. 한 출소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수감된 모 대기업 회장은 이 전 부회장과는 달리 매일 환자복 입고 환자방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직접 영업을 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 은행들은 업무 기밀 유출을 우려해 기술담당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휴대폰만 업무용으로 사용한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사내 기술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아이폰과 블랙베리만 사용해왔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골드만삭스 경영진과의 미팅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직접 영업에 나서 뜻을 관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엔지니어를 대동해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에 찾아갔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엔지니어들은 삼성 갤럭시의 장점과 보안 기능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했다. 결국 골드만삭스 기술부서는 삼성 갤럭시에 특별 인증을 내줬다. 골드만삭스 임직원들은 아이폰, 블랙베리 대신 갤럭시폰을 업무용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공적 만남을 가졌다.
2011년에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에게 갤럭시탭을 선물하고, 2015년에는 LG폰을 사용하는 기자에게 삼성 갤럭시 S6 엣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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