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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3. 7. 5. 11:26

신영균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배우 출신 국회의원 역임)


대한민국의 치과의사, 배우, 정당인이다.

 

신영균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신영균 프로필
신영균

 

신영균

申榮均 | Shin Young-Kyun

 

출생

1928년 11월 6일 (94세)

황해도 평산군 금암면 필대리

 

최종 국적

대한민국

 

본관

평산 신씨

 

평주(平洲)

 

 

부모

아버지 신태현, 어머니 신순옥

 

배우자

김선희

 

자녀

1남 1녀

 

손자

친손자 3명, 외손자 2명

 

학력

경성흥인보통학교 (졸업)

한성중학교 (졸업)

한성상업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 / 학사)

서강대학교 (문학 / 명예박사)

 

신체

172cm, 68kg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

 

데뷔

1960년 영화 '과부'

 

병역

대한민국 해군 대위 전역 (군의관)

 

약력

동남치과의원 개원

한국연극영화배우협회 회장

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인협회 부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민주공화당 문화예술행정위원

한주흥산 회장

명보극장 회장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체육문화예술분과위원장

1988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이사

신영흥산 대표이사 회장

평주통상 회장

민주정의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민주정의당 성동병지구당위원장

서울방송 비상임이사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별초빙교수

제20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SBS 프로덕션 대표이사 회장

제21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제15대 국회의원 (전국구 8번 / 신한국당)

한나라당 상임고문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대표

제16대 국회의원 (전국구 5번 / 한나라당)

JIBS 명예회장

대한민국 국민원로회 최고위원

한국지역민영방송협회 회장

전국지역방송 회장단체협의회 총회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명예회장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미래통합당 상임고문

국민의힘 상임고문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신영균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28년 11월 6일, 황해도에서 태어난 실향민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와서 서울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교회 성극에서 단역을 맡게 되면서 연극의 매력에 빠진 그는 중학생 때부터 배우의 길을 모색하지만 오디션에 떨어져 실패한다. 배우의 길이 좌절된 후 고등학생 때는 종로 YMCA를 다니면서 레슬링 선수를 했는데, 같은 도장에 다니는 친구의 아버지가 극단 청춘극장의 단장이었다. 그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인정을 받아 청춘극장의 배우가 된다. 고등학생이면서 청춘극장의 연극들에서 주연을 맡아 활약할 정도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극단을 따라다니며 배우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극단이 트럭에 세트를 싣고 배우들과 배우 가족들까지 태우고 온갖 고생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그는 이런 삶을 2년 동안 하면서 '내가 이런 생활을 하다가는 가족들을 고생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로 진로를 변경한다. 1년 동안 독하게 공부한 그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지원해 합격했다.

 

배우 신영균신영균 정치활동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고, 개인 병원을 개업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치과 치료를 받으러 온 연극배우 시절 동료들이 그에게 연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으켰고 극구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한 뒤 다시 연극무대에 섰다. 이어서 32살의 늦은 나이에 첫 영화에 출연해 지명도가 높아졌고 이어진 영화들이 대성공을 거두며 당대의 최고 영화배우가 되었다. 남성적이면서 지적인 이미지 덕분에 주인공으로 감독들이나 제작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아 다소 무리를 감수하면서도 다작을 하게 되었다고. 선이 굵은 미남형 얼굴에다 당대의 인기 배우로서는 드물게도 거의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 일설에 따르면 연기자로 전향할 당시 부인에게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고 서약서를 썼다는데, 서약서를 썼다고 다 그 내용대로 행동하지는 않으므로 원래 성품 자체가 강직한 성격인듯하다.

 

 

신영균 연예계 생활

주로 60~70년대 영화에서 활동했던 배우다. 일본의 대배우 미후네 토시로를 모티브로 선이 굵은 남성적인 캐릭터를 내세웠기 때문에 사극이나 시대극, 혹은 가부장적인 남성 역할로 활동했는데,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이나 대원군 등의 역할로 유명했고,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을 소재로 한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 등으로 거의 300여 편에 달하는 영화에서 열연했던 다작 배우.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3회 수상. 그러나 1978년 <화조>를 마지막으로 개인 사업과 정치 활동으로 인해 영화배우 은퇴 상태이다.

1950-1960년대 홍콩 최고의 여배우였던 임대(林黛, Linda Lin Dai, 1934년 12월 26일 ~ 1964년 7월 17일)가 1964년 갑작스레 자살했을 당시 신영균에게 고백한 사랑이 거절당하자 괴로워하다 죽음을 결심했다는 소문이 몇몇 미디어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무근이다. 임대와 신영균은 홍콩의 쇼 브라더스와 한국의 신필름의 합작 영화 달기에서 같이 연기했던 적이 있다. 다만 신영균은 촬영 중 린다이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신영균 연기활동신영균 연기자 활동

 

은퇴 이후

원로 영화배우 중 김지미와 더불어 배우 생활은 물론이고 개인 사업으로도 굉장히 성공한 인물이다. 1977년에는 명동의 랜드마크 격인 명보극장을 인수했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 하였다. 1991년에는 한국맥도날드의 한국 법인인 신맥을 설립하는 등 현금으로만 500억을 상회하는 개인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원로 배우 상당수가 그러했듯이 예총 회장을 거쳐 연예계 몫으로 신한국당, 한나라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두 차례 지내기도 했다. 다만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통일민주당 박용만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0년, 당시 500억 원 상당의 가치를 가진 명보극장과 제주특별자치도 신영영화박물관을 영화계, 예술계의 공유재산으로 기증해 모처럼 영화계의 좌우합작을 이끌었고, 서울대에 발전기금으로 100억 원 상당의 토지를 기부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이순재, 심양홍 등 서울대 연극동아리 출신 후배들과 함께 '하얀 중립국'이라는 연극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모처럼 배우로서 존재감을 보였다.

 

 

2011년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 후 특별한 근황이 없다가 2015년에도 영화배우 후배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한 사진이 올라왔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위촉되어 있으나, 자유한국당 시절 인터뷰에서는 정당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당적만 가지고 있는 수준.

2019년 11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욕심이 없다. 그저 마지막으로 가지고 갈 것은 40~50년 된 내 성경책 하나다. 가족들에겐 나중에 관 속에 이 성경책과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2020년 TV조선에서 진행한 트롯 어워즈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트롯 100년 심사위원 특별상의 시상자로 나와서 시상을 진행하였다. 구순이 넘은 몸에도 여전히 정정하였다.

2019년부터 공군작전사령부 주관 공중사격대회 시상식에서는 영화 '빨간 마후라'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공군 조종사들에게 영공방위의 자부심을 심어준 신영균을 기념하여 '신영균 특별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2022년에는 신영균 본인이 직접 시상에 참여했는데,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지팡이나 휠체어의 도움 없이 조종사와 직접 기념촬영에 임하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신영균 원로배우신영균 재산

 

신영균 출연 작품

1961년

상록수

박동혁

 

마부

수업

 

5인의 해병

오덕수

 

1962년

연산군

연산군

 

폭군 연산

연산군

 

1963년

열녀문

머슴

 

혈맥

원팔

 

1964년

빨간 마후라

나관중

 

잉여인간

채익준

 

달기

주왕

 

1965년

갯마을

상수

 

저 하늘에도 슬픔이

김동식

 

1966년

시장

도명

 

물레방아

방원

 

1967년

산불

규복

 

1968년

대원군

이하응

 

미워도 다시 한번

신호

 

1969년

속 미워도 다시 한번

신호

 

봄·봄

춘삼

 

1970년

미워도 다시 한번 제3편

신호

 

속 저 하늘에도 슬픔이

김동식

 

1973년

삼일천하

김옥균

 

1975년

애수의 샌프란시스코

신성호

 

 

신영균 선거 이력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병

36,142 (30.87%) 낙선 (2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6,783,730 (34.52%) 당선 (8번)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7,365,359 (38.96%) 당선 (5번)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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