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의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교실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2015년에는 한국보건재단 4대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의사 인요한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인요한
印曜翰 | Ihn Yo-han
영문명
존 앨더만 린튼
John Alderman Linton
출생
1959년 12월 8일 (63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예수병원
국적
대한민국 | 미국 (복수국적)
출신
전라남도 순천시
본관
순천 인씨
학력
대전외국인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 / 석사 · 박사)
악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교실 교수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종교
개신교 (장로회)
가족
어머니, 형 5명, 누나 1명, 아내, 슬하 1남 2녀
신체
193cm
인요한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59년 12월 8일, 전라북도 전주 출생이며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하여 유년 시절을 보내고 대전광역시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4년간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원래는 단독 미국 국적이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공로(한국형 구급차 앰뷸런스 개발 등)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국적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특별귀화자 1호라고 한다.
미국 이름은 John Linton. 종교는 개신교(장로회)다. 인요한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성인 '린튼' 에서 린을 두음법칙을 적용해 인으로 하였다. 존이라는 영어 이름은 요한에서 유래한 것이며 한글 성경에는 요한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붙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2012년 귀화하면서 얻은 성씨와 본관은 순천 인씨 이다.
한국 의사 면허와 미국 의사 면허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요한 가족사
인요한의 진외증조부 유진 벨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며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다. 그의 딸 샬롯 벨은 인요한의 친할아버지 윌리엄 린튼과 결혼한다. 윌리엄 린튼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으며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전주와 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3.1 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의 지원, 해외에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적 있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0년에 3.1 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아버지 휴 린튼은 윌리엄 린튼의 3남이다. 할아버지의 선교활동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태평양 전역에서 포로로 잡힌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장교로 복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자신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의 한국 선교활동을 이어받았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며 신학대를 졸업하고 결혼을 통하여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고 현재도 한국에 거주 중이다.
형 스티브 린튼은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 벨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80회 이상 방북했으며 김일성과도 두 차례 만났다.
4대째인 인요한 자신은 2012년에 한국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인요한의 형 스티브 린튼(인세반),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인대위), 조카 레이첼 조이 린튼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고 이중국적을 허용받았다. 기사에 인요한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독립운동 기여 공로가 소개되어 있다. 뉴스영상
연세대 의과대학 동창 인연으로 만난 치과의사 출신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자녀로는 1남 2녀를 두고 있다.
2021년 4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인요한의 조카 데이비드 린튼(한국명 인대위)이 출연했다. 직업은 변호사로 인요한의 첫째 형의 아들이다.
내 고향은 전라도, 순천 촌놈 쨘이
'내 고향은 전라도'라는 책을 쓴 만큼 전라도에 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순천시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인데, 본적으로 치면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이지만 어렸을 때 성장한 전라남도 순천시를 자신의 고향이자 뿌리로 삼고 있는 듯하다. 방송에 출연하면 "나는 전라도 촌놈 인요한", "순천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등의 애향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16년 6월 16일에는 고향 순천시의 순천만국가정원 명예 홍보대사 1호로 위촉되었다.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학당 생활을 했을 때 한국어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매우 찐한 순천 사투리가 입에 붙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인요한의 순천 친구들이 회상하는 내용에 따르면, 의사가 되고 나서 한턱 쏘기 위해 친구들을 서울로 초대했는데 덩치 큰 외국인이 찐득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야~ 오랜만이다잉~" 하며 친구들을 반겨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한 에피소드부터, 첫 월급으로 부모님 장지갑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친구들 앞에서 대뜸 "깎아주쇼!" 하는 패기를 보여줬다고 한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향 말보다는 표준어를 쓰는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아들여 공식석상에서는 되도록 표준어 억양을 구사하려고 하지만 편하게 말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고향말과 고향의 억양이 튀어나온다. 요즘에는 예능 프로에도 많이 나오는데, 예능에서는 아예 100% 고향 말투로 달려버린다.
TV는 사랑을 싣고와 집사부일체 인요한 편에서 본인이 밝히기로 어렸을 때는 거의 본명처럼 불린 별칭이 인쨘이였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 상장에도 당시 인쨘이 라고 적힌 것으로 인증. 영어 본명 존 린튼에서 성씨는 할아버지 대부터 린튼씨에서 린을 따와 두음법칙으로 인이라 삼았고, 존이라는 이름은 당시의 외국 발음에 찐한 순천 사투리가 합쳐져서 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인씨네 쨘이 인쨘이라는 뭔가 미국 스타일이면서 찐한 시골풍 이름이였다고 한다.
순천에서 일반 한국 유치원과 한국 초등학교를 다녔다. 다만 당시 인요한의 형들이 한국 학교를 다녔던 바람에 영어를 잘 못하고 한국말을 더 잘했던 경험이 있는 탓에 부모님이 막내 아들 인요한만큼은 영어 교육을 잘 시켜야겠다는 중요성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통신제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홈스쿨링 교육을 통해 이수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는 형들을 따라 대전광역시 외국인학교에 진학했지만 미국적인 분위기와 문화 차이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힘들었다고 하였다.
인요한이 예능에 출연한 일이 없어서 그럴 뿐이지, 만약 예능에 출연했다면 '나훈아 vs 남진', '최동원 vs 선동열'처럼 경상도에는 하일, 전라도에는 인요한이라는 구도가 나올 수도 있을 법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로, 할리가 마약 스캔들과 희귀암 투병을 하며 마음 고생이 심할때 인요한이 곁에서 진심으로 위로해줬다며 할리가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호남의 굴곡진 현대사와 인생을 같이했다. 대학 재학 중 5.18 민주화운동의 소문을 듣고 광주에 몰래 들어가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고,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이것이 훗날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찍혀서 데모 주동죄로 추방을 당할 뻔했다. 심지어 당시에 냉전 구도 속에서 대한민국 정치적 안정을 바라던 미 대사관에서 전두환 군부에게 항의편지가 왔다고 하면서 '니가 폭동의 주동자야!' 라는 비하를 듣기도 했다고. 당시 외신기자의 영어 통역을 맡은 것을 두고 '당신이 한 일은 통역이 아니라 데모 주동이다. 당신의 조상들이 한국에서 좋은 일을 하여 처벌은 하지 않겠으니 대한민국을 떠나라'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 국외추방, 폭동의 주동자로 구속, 경찰에게 감시당하는 조건으로 고향에서 근신하기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당시 인요한은 고향 순천 시골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고향에서 근신하기를 택했다. 집사부일체에서 푼 회고에 따르면 순천에 남기 위해 군사훈련까지 자처해서 받았을 정도였으니 인요한의 고향 사랑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문무대 훈련을 받고 대한육군협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전라도를 배신한 것 같다는 느낌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훗날 기무사(당시 보안사) 요원이 인요한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사찰 정도가 아니라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있었다는 사실, 군에서 당시 너를 죽여버리려고 준비를 다 했다는 오싹한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미국에서 넘어온 할아버지는 3.1운동을 지원하고 해외에 알린 독립운동 기여자로,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참전용사로, 손자는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리는데 참여하며 3대가 나란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참여하고 기여한 역사를 가졌다.
인요한 성향
의외로 정치적 성향은 보수에 가깝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박근혜를 지지하기도 하였으며, 햇볕정책을 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고 주장하였고, 국민건강보험을 해체하고 의료민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고향인 순천은 전라도에서 이례적으로 진보 성향의 색채가 강한 편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인물중심주의를 지향한다. 그래서 순천사람인 그가 보수성향 인것은 딱히 놀라울 일은 아니다.
다만 어쨌든 호남이 고향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호남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도 있다. 고향인 호남에 대한 애착을 보이며, 5.18 시민군 통역관을 담당했던 경험으로 보수 일각의 5.18 비하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또한 긍정적인 인물로 생각한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보수 정권 시절에 보수 매체에서 자주 초청했을 때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의료지원 문제가 트집잡힐 때면 대북 의료지원은 북한 어린이들이 병을 앓지 않고 살기 위해 계속해야 한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당시에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유도하는 보수 언론을 향해 북한의 사주나 개입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적극 반박해 왔는데, 묘하게도 이 지점에서 인요한을 적극 홍보하던 보수 우익 세력들이 인요한에 대해서 관심을 줄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이야기를 풀었다. 다른 패널들이 새누리당에 들어갔던 일을 물어봤을 때, 자신이 박근혜 정권의 입장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착오였다고 멋쩍어하며 실수였다고 밝혔다. 인요한은 결핵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사 자격으로 방북한 경험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잘 들여다봤고, 이를 통해 보수정당이 북한을 제대로 알게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추진해보았으나... 오히려 새누리당 안에서는 좌파로 취급당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현재의 성향은 박근혜 계열과는 척을 진 일반적인 중도에서 보수 사이, 그리고 고향 호남에 애착이 매우 큰 호남 기반의 중도-보수 성향 정도로 바뀌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를 푸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이제는 디테일에서 신중하게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을 표현했다. 즉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좌파에 가깝고 진보주의자 입장에서는 우파에 가깝게 여겨지는 성향의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인요한 여담 일화
최초의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순천에서 교회 자재를 싣고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큰 병원이 있는 광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안에서 운명하였다. 당시에도 앰뷸런스는 있었지만 인요한 자신의 표현으로는 그냥 누워서 가는 택시 기능밖에 못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지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아시아 토픽을 개조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간 동안 응급처치와 의료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 앰뷸런스를 자신이 뿌리삼은 전남 순천소방서에 기증하고 구급차 요원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훈련을 전국에 정착시켰다. 이후에 개량을 거듭하며 전국에 보급하였다. 대화의 희열 방송에서 요즘 앰뷸런스는 길이가 짧아 구급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대중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다. 1994년에는 독대한 적도 있다. 그 자리에서 왜 전두환에게 보복하지 않으냐고 따지자 김 전 대통령이 '보복이 도움이 되느냐.'며 자신을 타일렀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에 김 전 대통령이 배탈이 나서 탈수 증상이 왔을때 자택에 찾아가 직접 진료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인연 덕에 김 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었다. 회고하기를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에 원수나 다름없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초대한 것을 보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떠나서 '이 사람은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다.'이라고 생각했다고.
2019년, 채널A '길길이 산다' 5회와 CBS '어른성경학교' 49회에 출연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2018년,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다. 명백한 서양인 아저씨의 외모에선 상상하기 힘든 걸쭉하고 구수한 순천 사투리의 진수와 어렸을 때 이야기에서 비범한 스토리텔링을 느낄 수 있다.
인요한의 친구들이 방송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회상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빼빼 마른 인상이였는데 자라면서 키가 190cm가 넘고 풍채가 상당한 거구가 되었다고 한다.
인요한은 자신의 조부가 3.1운동, 자신의 부친이 6.25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신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통역관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의 조상은 119년간 4대에 걸쳐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의 진외조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는 1895년 미국에서 조선에 온 후 전라도 등 남부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인요한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William Linton)은 유진벨 선교사의 사위이다. 린튼 가문과 벨 가문의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한남대학교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세우고 결핵환자, 한센병 환자 등 아프고 어려운 이들을 품었다.
특별귀화 1호 한국인이다.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특별귀화는 한국 정부가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국적이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편에 의하면 순천기독진료소에 가끔씩 내려와 지역주민들에게 진료를 해준다고 한다. 순천의료원에서 매산중 방향으로 살짝 들어가면 있는 곳이다. 참고로 이 순천기독 진료소는 할아버지인 인돈 선교사가 세웠고, 현재 2층과 3층은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외국계 방송인 중에서는 한국어 실력이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다. 타일러, 일리야, 다니엘 린데만 등이 인요한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한국으로 유학왔으며 후천적인 공부와 노력을 통해 학술적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쪽이므로 약간 경우가 다르다. 인요한은 애초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기 때문에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사고방식이 내재된 '토박이 한국어'를 구사하며 억양, 발음, 시제, 조사, 서울말, 전라도 사투리 등도 완벽하게 구사한다. 일부 발음이 약간 어색할 때도 있긴 하지만 평범한 토종 한국인들도 이 정도 어색한 경우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역시 네이티브급이다. 본인은 방송에 나와 하일처럼 영어를 잘 못한다고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 상황에서 고향과 주거지가 한국이라도 영어를 아예 안 접하기는 어렵다. 저서에 따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미국인 가정교사에게 홈스쿨링을 받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영어권 외국인학교를 다녔으며, 어렵다는 미국 의대 과정까지 졸업한 사람이 영어를 서툴게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광주 MBC 인터뷰 영상에서 연세대병원 국제 진료소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들과 유창한 영어로 소통하며 진료하는 모습이 나왔다. 대화의 희열에서는 자신들의 큰 형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대부분 인요한처럼 네이티브 영어를 한다.
e스포츠의 전설인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이름이 참 비슷하다. 임요환도 인지도가 엄청 높은 인물이라 헷갈리기 쉽다.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당시 피해자였던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치료한 의사 중 한 명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석해균 선장을 오만에서 한국으로 이송할 때 이국종 교수가 에어 앰뷸런스를 섭외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에도 급유나 한국 내 이송 등을 도왔다고 한다. 참고로 이국종 교수는 인요한 교수의 제자였던 적이 있기도 하다.
로버트 할리가 필로폰 투약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희귀암에 걸렸을때 치료해준 의사 중 한명이다. 로버트 할리가 가장 힘들 때 큰 도움이 되어줬다고 한다.
한국유엔봉사단(총재 김성재)의 고문 및 자문위원단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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