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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4. 25. 23:12

이외수 별세 부인 자녀 학력 고향 나이 프로필


"제가 생각하는 기인의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글이나 그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 말립니다. 춥고 배고프다 이거지요. 저는 3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제 마누라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건 기인 중에 기인이지요."

- 이외수, 예능 프로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의 발언.

대한민국의 작가. 하악하악 등의 에세이와 소설들로 유명하다. 기인, 도인의 이미지,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원로 작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SNS에서 다소 과격하고 적극적인 정치, 사회 발언으로 주목받아 많은 관심과 논란을 일으키는 등 명암이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외수1

 

이외수

李外秀 | Lee Oisoo

 

출생

1946년 9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사망

2022년 4월 25일 (향년 75세)

강원도 춘천시 교동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국적

대한민국

 

거주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본관

전주 이씨

 

신체

169cm | 50.4kg | A형

 

가족

배우자 전영자

장남 이한얼, 차남 이진얼

 

학력

기린초등학교 (졸업)

인제중학교 (졸업)

인제고등학교 (졸업)

춘천교육대학교 (중퇴)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직업

소설가

 

데뷔

1972년 소설 '견습 어린이들'

 

 


이외수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46년 9월 10일(음력 8월 15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출생했다.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바깥 외(外)자와 항렬자인 빼어날 수(秀)를 합해서 이름이 이외수가 되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가 3살 때 질병으로 타계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분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곳에서 군복무를 하였고 이외수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학교를 전학다녔는데 고향인 경상남도 함양군 상내백초등학교, 대구삼덕초등학교, 강원도 화천군 신풍초등학교, 강원도 양구군 양구초등학교,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 등을 거쳤다. 6학년 때는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교사가 되었는데 이외수의 담임을 맡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와 인제중학교를 거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한 뒤 1971년 제대하고 1972년 춘천교육대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적 꿈은 화가로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해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었으며 1973년엔 인제남초등학교 곗골(인제읍 남북리 일대)분교 소사로 잠시 근무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1970년대는 가난으로 찌든 절망의 세월이었다. 춘천에 살면서 구걸한 경험도 있고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난 적도 있으며 크림빵으로 하루를 때운다거나 생라면 한 봉지로 며칠을 때운 경험도 있다. 심지어는 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것에 본인도 한이 서리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끔씩 들어오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라는 질문에 "내가 미쳤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교육대학교 재학시절에서는 당시 학장이 이외수의 생활사정을 참작해서 조금이나마 이외수의 생활을 도와줄 정도이기도 하였다.

 

이외수2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등단해서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였고 강원일보에 기자직으로서 잠시 근무하였다. 1976년 11월 전영자와 결혼하고 춘천 세종학원과 원주 원일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였다. 장편 <꿈꾸는 식물>을 발표. 몇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창작에만 전념키 위해 79년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창작 활동에서는 가난한 시절 가끔씩 사창가에 빌붙기도 하였는데 이때의 경험이 <꿈꾸는 식물>을 집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창작집 <겨울나기>, 장편 <들개>, <칼>, <산목>, <벽오금학도> 등을 비롯해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등을 간행하였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탐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루는 이후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품으로 평가된다.

1990년 나우 갤러리에서 '4인의 에로틱 아트전', 1994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선화(仙畵)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화가로서의 경력도 있다.

2014년 10월 위출혈로 인해 진단을 받았더니 위암 2기 판정을 받아 일시적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달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였다.  위 절제 수술까지 수반해야 할 정도의 병세였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쳐서 고비는 넘겼지만 항암치료는 지속적으로 받았고, 2015년 6월에 항암치료를 마쳤다.

2018년 7월 뜬금없이 음악 단과대학인 남예종(남서울예술종합학교) 학장으로 취임했다.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입원 치료받고 있다고 한다. 2020년 9월 이외수의 아들이 이외수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고 기사가 나왔다. 2021년 7월 이외수 작가의 아들인 한얼 씨가 이외수 작가의 근황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하였다. 

7월 8일, 서투르게나마 말도 하고 조금씩 재활 중이라고 한다. 

2022년 2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병 중임에도 필문으로써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였다. 

2022년 4월 25일, 폐렴으로 투병 중 사망했다. 3월 중순부터 폐렴에 걸려 응급실에서 회복 중이었다.

 

 

이외수 작품과 평가

김동리, 백낙청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김현에게서는 '이외수는 김승옥, 이청준, 조세희, 윤흥길,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언어를 통해 세상과 투쟁하려고 하는 치열한 감수성의 흔적이 보인다' 는 평을 얻기도 했다. 베스트셀러에도 여러 차례 올라간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의 과도한 고평가는 기성문인뿐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폭넓은 독서를 하지 않고 작가의 트위터나 작품만을 접하고는 마치 그것만이 통념, 상식인 것처럼 인용하거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이문열 등의 유명 문인과 비교하는 것이 그 예이다.

작가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행보를 하면서 이에 대한 호불호도 명확히 갈리기 때문에 평가에 관해서는 이견이 분분한 상태. 다만 부족한 필력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장외인간을 펴낸 이후로 6년간 에세이나 아포리즘집만 펴내다가 2011년 이금희의 특별한 만남 방송을 통해 신작을 집필중, 그리고 마지막으로 써낼 5권의 장편소설 역시 기획중이라고 시사했다.

덧붙이자면 일종의 문학만능주의적 사상을 가진 듯하다. 이외수의 소설을 보면 항상 현대의 삭막함을 비판할 때 문학을 치유책으로 내세우며 주인공이나 주요 조연들 중 긍정적인 위치에 있는 캐릭터들은 항상 명문대 문학과를 가는 것으로 나온다. 근작인 완전변태에 수록된 마지막 단편인 <대지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소설

훈장(소설) - 1975년

꿈꾸는 식물 - 1978년

실사영화화와 TV 문학관으로 실사극화된 바가 있다. 꽤나 현시창인 내용이지만 TV문학관판은 당시 방송매체의 심의문제로 인해 꽤나 순화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TV문학관판의 배우중에서 사딸라를 외치는 그 분이 있다.

겨울나기 - 1980년

장수하늘소 (소설) - 1981년

TV 문학관으로 실사극화된 바가 있음.

들개 - 1981년

- 1982년

사부님싸부님 - 1983년

우화소설이자 만화의 형식을 빌린 만화소설이라는 특징이 있다. 'ILLHYHL' 라는 단어가 나오고 온갖 사회 모순점을 풍자하는 등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매우 파격적인 내용의 소설이었다.

산목(상) - 1987년

벽오금학도 - 1992년

자신의 방에 철창을 치고 쓴 걸로 유명한 책이다. 단순히 철창만 친 게 아니라 방 자체를 감옥처럼 바꿔버렸고, 식사도 아내가 사식처럼 갖다주는 것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황금비늘 - 1997년

괴물(한국 소설) - 2002년

장외인간 - 2005년

완전변태 外(중단편소설집) - 2014년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 2017년

스토리는 권선징악에 가까워졌지만, 주인공의 능력은 이외수 월드에서 역대 최강급이다. 동물학대범, 학교일진, 여러 사회악들을 조지면서도, 대놓고 4대강을 까기로 한 건지 메인 빌런은 4대강을 찬양하는 가상의 교수와 중견 언론인, 그리고 배후에는 당연히 아무리 봐도 그분을 연상케 하는 이니셜의 인물이 등장.

영생시대 - TBA

2018년 5월 인터넷언론 인터뷰에서 집필 중이라 언급했다. 그러나 2020년 급격한 건강악화로 인해 언제 나올지는 불투명해졌다. 2022년 4월 25일 투병중 별세하면서 미완성 유작이 되었다.

 

 

시집

  • 풀꽃 술잔 나비 - 1987년
  •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 2000년
  •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 때까지 - 2006년

 

에세이

  •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 1985년
  •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 1986년
  • 감성사전 - 1994년
  •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 1998년
  • 날다 타조 - 2003년
  • 하악하악 - 2008년
  • 청춘불패 - 2009년
  • 날다타조의 리메이크다.
  • 아불류시불류 - 2010년
  • 절대강자 - 2012년
  • 사랑외전 - 2012년
  •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 2014년
  • 뚝 - 2015년
  • 자뻑은 나의 힘 - 2015년
  • 먼지에서 우주까지 - 2016년
  •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 2017년

 

기타

  • 감성사전 - 1994년
  • 흐린세상 건너기 - 2002년
  • 외뿔 - 2001년
  •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2003년
  • 뼈 - 2003년
  • 글쓰기의 공중부양 - 2006년
  •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 2007년
  • 마음에서 마음으로 -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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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활동

인터넷 서브컬처에서 이외수가 가지는 입지와 위상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다.

 

방송가

이외수는 오래전부터 방송에서 일회성 출연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그 양적, 질적 비중이 커진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좀더 자세히는 「장외인간」 출판을 전후로)의 일이다. 이 시기부터 텔레비전 광고도 찍고 시트콤에서 고정 배역도 맡아보고 심지어 자기 이름을 딴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고 자연스럽게 대중적인 인지도도 대폭 상승했다.

  • MBC 코미디닷컴 - 알까기리그
  • KBS 2TV 해피선데이 1박 2일 - 강원도 화천군 편
  • MBC TV 일일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 이선장 역
  • 광고 하하하 - 피겨 도전 편
  • 광고 LG유플러스 - 온가족yo가 편
  • KBS 2TV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 죽기 전에 해야할 101가지
  • MBC 표준FM 이외수의 언중유쾌
  • 온게임넷 - 켠김에 왕까지 (73~74화)
  • KBS 프라임 이금희의 특별한 만남
  • SBS 스페셜 - 이외수 ·김태원의 청춘을 위하여 편
  • 개그콘서트 - 감수성(2012년 7월 1일 방영분)
  •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

 

인터넷

이외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컴퓨터로 작품을 써왔는데 독수리 타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원래 바닥에 엎드린 채 베개 하나 껴안고서 펜으로 글을 쓰다가 보니까 자세가 허리에 안 좋아서 대안으로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타자에 적응하지 못해서 작품이 뜻대로 써지지를 않으니까 굉장히 우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타자에 적응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채팅이었다.

이외수가 컴퓨터를 시작한 건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인 90년대 초였기 때문에 PC통신 하이텔의 대화방 등을 통해 채팅을 했었다. PC통신은 고사하고 PC조차도 보급이 많이 되지 않았던 당시 기성 작가가 이러한 첨단 매체를 이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마이컴과 같은 PC 전문 잡지에서 이외수를 인터뷰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여기서 이외수는 자기가 직접 창안한 각종 이모티콘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날 그가 문단 소설가 중 인터넷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외수는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갓 보급되는 여명기부터 개인 홈페이지 OISOO를 개설하고 방문객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싸이월드가 뜨니까 미니홈피 또한 개설했으며 트위터가 뜨니까 과연 트위터 역시도 재깍 만들어서 단박에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트위터리언이 되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인터넷의 각종 변화와 새로이 보급되는 문물에 대한 적응이 대단히 빠르다.

디시인사이드와는 이래저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 행보나 이미지가 아햏햏과 상당히 잘 맞을 것 같은데 아햏햏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인지도가 부족했는지 해당 문화적 코드와 엮여서 주목받는 일은 없었다.

 

 

양자 사이의 최초의 본격적인 접촉은 아마도 과거 디씨를 주름잡던 초특급 악플러인 런던귀공자가 이외수에게 악플을 달기 시작한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런던귀공자의 악플에 시달리던 이외수는 그를 고소하고 실제로 재판소까지 갔다. 훗날 이외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재판에서 검사에게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됐으면 좋겠으며 이 일로 인생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외수와 디씨의 관계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바로 2007년 7월 디씨뉴스와의 인터뷰. 바로 위에서 밝힌 런던귀공자와의 일화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거의 모든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눈팅한다고 밝히는 등 디씨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보이면서 폐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양자의 훈훈한 관계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8월 이외수 갤러리를 개설하는 시점에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그가 디씨에서 활동하면서 재조명된 대표적인 서브컬처 코드로 어둠에다크에서 죽음의데스를 느끼며, 유리코 오메가 등이 있다. 한편으로 2008년작 에세이인 하악하악 역시도 그가 디씨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영감의 산물이다.

여담이지만 이외수는 애플의 맥을 쓴다. 블루스크린 때문에 쓰던 글이 날아가는 끔찍한 경험을 몇 번 한 뒤로 맥으로 갈아탔다고 한다. 2015년 이후로는 트위터보다는 페이스북 위주로 SNS 활동을 한다. 영세커뮤니티 엠봉유저로 알려져있다. 최근 몇 년 새 트위터에 간간이 엠봉 링크를 올려 엠봉 유저들 사이에서만 꽤 알려진 사실. 2016년 새해에 첫 인증글을 게시했다.

 

 

이외수의 비판

이외수는 오래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각종 시사적, 정치적 발언을 남겼는데 대중적 인지도가 오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논객이 되었다. 전체적인 성향은 민족주의에 가깝고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물의를 빚어왔기 때문에 그런 그의 모습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뉴라이트 교과서 비판

2008년 12월 자신의 홈페이지에다가 올린 수정된 교과서-애국애족 대신 매국매족을?이라는 글에서 뉴라이트의 수정된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올리며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않아 이순신 장군을 살인마라고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 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로 김구=테러리스트 논란은 물론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여부를 놓고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후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해명을 올렸다.

 

구로다 가쓰히로의 발언 비판

2009년 12월 29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의 비빔밥에 관련된 망언에 "음식문화를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회나 스시가 원시상태음식" 이라고 발언했다.

 

 

셧다운 제도 비난

2011년 셧다운 제도를 신랄하게 깠다. 트위터에서 몇 번 의견을 피력하였고 온게임넷 켠김에 왕까지의 출연 에피소드에서는 초기 취재진과의 대담에서도 역시 셧다운 제도를 신랄하게 깠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독설

최시중 등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의 비리가 연이어 터지자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이라며 자화자찬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비꼬아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임을 증명하시는 분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라며 이명박 정부에 팩트독설을 날렸다.

 

김진태의 촛불 발언 비판

2016년 11월 김진태의 민중총궐기 촛불 관련 발언에 대한 대답격 트윗. 이 영향으로 진짜 시위대들 사이에서 꽤 LED촛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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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기타 여담 일화

그 특유의 장발 꽁지머리는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다. 그가 장발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거 없고, 20대 시절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머리 관리할 여력도 없어서 봉두난발로 방치하다 보니 어쩌다 그리 된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수필에서 여러 번 피력한 적이 있다. 군 복무 이후 그가 머리를 깎은 때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일례로 2014년 투병할 때 그 장발을 잘랐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예삿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청년 시절 춘천의 다방 DJ 생활을 하며 밥을 벌었던 그는 글도 쓰고 잠도 잤던 자신의 구석진 테이블에 처음 본 여성이 앉자 '내 자리'라고 말하다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그 여성과 연애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스 강원 출신의 이 여성은 지금의 부인 전영자 씨다. 

몽환적이고 도가적인 독특한 작품 세계와 맞물려 작가 스스로도 여러가지 기행을 하였다. 흔히들 말하는 출판계 은어인 통조림을 본인 스스로 하기도 하며 문학계의 기인으로 불렸다.

인사동에 있는 카페인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해 자연스럽게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며 특히 중광 스님, 천상병, 이외수는 이곳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

 

 

1990년대 그가 일약 입소문을 슬슬 타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부산 등에서는 그의 사칭이 이미 등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칭이 활개칠 때 당시 그는 상술한 통조림 모드에 들어가면서 집필 중이었는데 이외수 사칭이 여자들과 끼고 술 먹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아내가 그에게 뭔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2번째 사칭은 1번째 사칭보다 더 그럴싸했는데, 서명까지 쓰면서 이외수를 사칭했지만 서명의 이름이 Lee WeSoo라서 사칭이라는 게 뻔히 드러나고 말았다.

춘천시에서 30여년을 살며 춘천 3수라 불리기도 했지만, 참고 2006년에 이주, 현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8월 12일에는 문학관이 개장했는데, 지자체 단위에서 생존 작가에 대한 문학관을 건립한 것은 이외수 문학관이 국내 최초라고 했다.

현재 화천군에 있는 군부대인 제7보병사단, 제27보병사단, 제15보병사단 병사들의 상담을 하고 있으며,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 있는 15사단의 명예홍보대사다. 

춘천 지역 문화계에서 이외수의 영향력은 대단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춘천 지역 뮤지션들이 모여서 결성한 락밴드인 철가방 프로젝트.

잡기로 '젓가락 던지기' 의 달인이기도 하다. 술집에서 막걸리 마시는데 주변에서 술꾼끼리 시비가 붙어 분위기 험악해지면 젓가락을 그쪽 벽에다 던져 꽂아서 상황을 진압한 적도 있다고. 이런 점과 과거 '기인' 이미지 때문인지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도 작중 인물의 회상씬에 등장하는 '백풍'이라는 이름의 카메오로 나왔다. 군부 독재 시절에 도술로 저항하기 위해 기를 모으다가 최루탄 가스 마시고 돌아가시는 역이었다.

과거에 담배를 하루에 8갑씩 피웠다고 한다. 지금은 금연한다고 한다. 썰에 의하면, 금연 클리닉에 가서 "8갑쯤 피운다"고 했더니 의사가 "끊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좀 줄이거나 단단히 각오를 하셔야 한다. 아니면 그냥 피우시라"고 했다고 한다. 8갑이면 160개피이고, 하나 피우는데 5분만 잡아도 하루 13시간을 담배만 물고 있어야 된다. 사실상 잠자고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피웠다는 소리다.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에 의하면 '죽는 데 별로 미련은 없는데 대표작 1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서 4갑 피던 것을 하루 아침에 단방에 금연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당연히 병원에 입원. 그외 가난했던 시절에는 거의 알코올 의존증자 수준으로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한적한 두메산골 분교의 객원교사로 있으면서 손발이 오그라들 수준의 금단증세와 유명해지기 전까지 따라다녔던 곤궁함을 겪으면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경험을 자신의 수필 등으로 피력한 바가 있다.

요새는 스트레스를 술 대신에 노래로 푼다고 한다. 저택에 아예 노래방 기계를 사다 놓고 하루에 두 시간씩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실제로 1박 2일 촬영 당시 아침에 멤버들이 찾아갔는데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절대 설정 아니라는 자막은 덤이다.

한때는 소설 집필을 위해 요트를 장만했다고 한다. 완전변태에 수록된 <파로호> 집필 활동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소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호수 위에서 써야 소설이 술술 써질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요트를 하나 장만한 거라고 한다.

김세영과 허영만 원작의 만화 '사랑해'에선 작품에서 쓰레기가 되는 느낌을 알고 싶어서 스스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한참을 지낸 적도 있다고 한다. '식객'에서 밝힌 일화에는 언 밥의 날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밥을 얼려 먹기도 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DAW를 사용해서 자작곡 인스트루멘탈도 하는 듯하다. 단 작곡 같은 경우는 취미 삼아서 하는 듯. 주로 쓰는 DAW 프로그램은 Reason이라고 한다. 그가 작곡한 음원은 이외수 문학관 내의 BGM으로 나온다.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 출연하여 밝히기도 했다.

2015년 후반기에 들어서는 동방 프로젝트 봇 계정들을 다수 팔로잉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4월 22일 아내와 결혼 44년 만에 결별하였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으나 결국 졸혼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다만, 갑자기 갈라선 건 아니고 결별 위기는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우먼센스와 전 부인 전영자 씨의 인터뷰. 이외수와의 삶에 대한 회고와 결별을 결심한 이유 등에 대해 쓰여 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 갑자기 2020년 3월 22일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라고 한다. 아들인 이한얼 씨가 이외수의 페이스북에 현재 상태를 올렸는데 고비가 계속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졸혼관계였던 아내 전영자씨가 졸혼을 종료하고 아내와 자식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 기사 이후 4월 24일부로 상태가 많이 좋아져 지금은 일반병실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후 재활병원으로 옮겨 재활 치료를 시작했지만, 최근 폐렴에 걸려서 다시 일반병원으로 옮기기도 했으며, 아직 연하장애로 음식물 섭취, 말하기 등이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10월 1일 아들 이한얼씨가 추석 겸 이외수의 생일을 맞아 아버지의 회복 상황을 전했다.  2021년 7월에 다시 한번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2022년 4월 25일에 폐렴으로 인해 사망했다.

2011년경 켠김에 왕까지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바닥을 기는 저질스러운 게임 실력을 보여주였다. 처음 고른 게임인 FIFA 11에서는 팀을 맨유를 선택했는데 중국과의 경기에서 무려 0-3으로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나중에는 Wii Music을 선택했는데 핸드벨 모드에서 초반에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계속 0점이 나왔다.

윤형빈이 남자의 자격-금연 편에서 이외수한테 "그 머리에서 냄새나게 생기신 분."이라고 독설을 했지만 곧장 사과했다.

배철수와 매우 닮았다. 그래서인지 어떤 팬이 배철수에게 가서 책 잘 읽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배철수는 책을 한 권도 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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