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원봉사자 출신 정치인. 국민의힘 소속으로 부산 사하구 을의 국회의원이다.
조경태 의원 고향 재산 나이 학력 프로필
조경태
趙慶泰 | Cho Kyoung-tae
출생
1968년 1월 10일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
거주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다대현대아파트
서울특별시 강서구 염창동 강변코아루아파트
본관
함안 조씨
가족
배우자 신미숙, 슬하 1녀
학력
신평초등학교 (졸업)
사하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 40회)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 /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 / 석사 • 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기 대한민국 육군 상등병 소집해제
신체
171cm, 65kg, A형
종교
개신교 (예장합동)
경력
부산전문대학 강사
민주당 부산사하갑지구당 위원장
부산시지부 중소기업육성특위 위원장
극일운동연합 집행위원
위천공단 대책위원회 집행위원
복민정책연구회 이사
새천년민주당 부산사하을지구당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
노무현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청년위원장
열린우리당 부산시지부 청년위원장
다대어민회 명예어민
명예택시기사
을숙도대교 통행료인하 추진위원장
신평-장림-다대지하철 추진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사하구청년연합회 고문
대한민국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 객원교수
UST 초빙교수
민주통합당 정책위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장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수석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수석최고위원
홍준표 jp희망캠프 선거대책위원장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직능본부장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사하구 을 당협위원장
한-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
조경태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조경태 정계 입문 이전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에서 조재제(趙在濟)의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조씨는 아들들이 도시에서 교육을 받아야 큰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부산광역시 사하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자갈치 시장에서 지게를 지고 짐꾼으로 일하면서 아들들을 키웠다. 집은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돈이 있으면 더 가난한 집에 연탄을 사다주거나 동네 노인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평초등학교 - 사하중학교 - 경남고등학교 - 부산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돈을 빨리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공대에 간 것이었는데 공부에 욕심이 생겨 대학원에 갔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여러개 하고 대학교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박사까지 취득했다.
그 시절 대학생들이 으레 운동권에 몸 담았듯이, 그도 학생운동에 몸 담았지만, "학생운동이 자기 생각과 다르게 크게 변질됐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학생운동을 박차고 나왔다고.
조경태 정계 입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연을 맺었다. 그리고 8년 뒤인 1996년 군 복무를 마친 뒤 만 28살의 나이로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구 갑에 출마하였다. 당시 신분은 박사과정생. 비록 신한국당 서석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지만 15.5%를 얻는 파란을 일으켰다. 선거 전날 본인은 200표, 아내는 20표 득표를 예상했다고 한것에 비춰봐도 당시 상황이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당선권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낮은 득표율이었지만 당시 부산/경남권에서 절대적인 지지세를 가지고 있는 신한국당을 상대로 타 정당의 새파랗게 젊은 신인이 저 정도의 결과를 낸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으며, 지금 기준으로는 선거 비용 전액 보전이 가능한 수치다.
사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조금이나마 부산/경남권에 남아있던 야당 지지층이 정치 신인의 등장에 결집해서 저런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참고로 포스터는 부인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할 때 그대로 잔류하면서 한때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를 바꿔 사하구 을 공천을 신청했으나 공천에서 탈락.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하였으나, 박종웅 후보(57.04%)에 밀려 2위(17.50%)로 낙선하였다.
안동선 : "노무현 후보는 당장 사퇴하라. 할 말이 많지만 가만히 있겠다."
조경태 : "나도 할 말이 많아. 그만 앉아!!!"
안동선 : "난 오늘 탈당한다. 나 참 이런 정당을 다 보겠나"
조경태 : "잘 됐네. 빨리 나가라"
代국회 이사람 <1> 열린우리 조경태 당선자
조경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계기는 34살이던 2002년에 후단협의 일원인 안동선 의원이 노무현 후보 불가론을 강력 주장하며, 사퇴를 예고하자, 방청석에 있던 조경태 사하 을 지구당위원장이 반발하면서 안동선 의원과 맞다이에 가까운 설전을 벌이면서부터이다. 조경태가 1968년생이고, 안동선은 1935년생으로 무려 33년 차이라서. 사실상 아버지뻘 정치인에게 반말로 설전을 주고받은 것.
조경태 국회의원 시절
제17대 국회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마침 탄핵 역풍도 있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현직 의원 박종웅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최거훈 후보를 누르고 39.13%의 득표율로 기적에 가까운 당선을 이뤄내었다. 이 때 조경태의 나이는 불과 36세.
지하철 연장 공약의 경우, 이미 16대 총선 낙선 직후부터 지역에서 발로 뛰며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고 하며, 당선 이후에도 연약지반이라 시공이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 본인의 전공(토목공학)을 살려 백방으로 노력한다.
제18대 국회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연장선 공약으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떡실신 당하는 와중에도 최거훈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하여 부산 1호선 다대포 연장을 기어이 실현시켰다. 여론조사에서는 최거훈 후보가 앞서나갔었다.
그야말로 짜릿한 역전승. 18대 총선 당시 최거훈 - 조경태 두 후보는 17대 때(17대 때는 조경태 후보가 개표 내내 아슬아슬하게 1위를 유지하여 당선)와 달리 개표 내내 엎치락뒤치락 하는 접전이었다.
2008년 대한민국 국회 청문회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정 수정안에 반발해서 격렬하게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몰아붙여서 '조포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9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구간 기공식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으며, 8년 후 다대포에 지하철이 열렸다.
제19대 국회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1호선 적기 완공 공약을 내걸어 득표율 58.19%로 전직 부산교통공사 사장인 새누리당 안준태 후보를 꺾고 압승했다. 전 지역에서 싹 1위를 찍은 건 덤이다. 조경태의 행보에 긍정적인 사람이든, 부정적인 사람이든 전부 인정해주는 부분이 지하철을 끝내주게 잘 뚫어준다는 점. 그만큼 지역구 관리를 굉장히 잘 하는데 특히 지하철에 대한 공약은 잘 지킨다. 조경태의 박사 세부 전공이 '도시계획'인데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낙하산인 지하철 사장보다 지하철 뚫는 박사가 더 먹히고 노선도 조경태가 계획을 더 잘 잡고 그 노선에 의한 경제 활성화 같은 영향도 잘 아는 것이다.
2012년 3선 성공 직후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민주통합당 당내 경선 예비선거를 통과하지 못해 좌절되었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친노로 분류되었지만, 친노 진영의 수장으로 손꼽히는 문재인 후보와 친한 친문재인계는 아니다. 보통 2009~10년경 쯤 친문과는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본다. 2015년 초의 한 잡지 인터뷰. 오히려 2015년에는 "진정한 노무현 계승자는 바로 나"라고 하면서 친문계와 대립각을 제대로 보이는 중. 따라서 조경태는 2022년 현재까지도 범 친노이자, 비문에 속한다.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친노였다가 친문으로 가는 경우가 아주 흔하고, 대부분 이 루트를 타지만, 친문도 친노도 아닌 사람도 간혹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문재인 하나로 친문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서 당을 해치는 자로 지목되어 윤리심판원에 제소되기까지 했다. 그러자 조경태 의원은 당시만 해도 자기 발로 당을 나갈 생각이 없었는지, 자기가 꼴보기 싫다면 자길 자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이를 이끌어온 안병욱 윤리위원장이 사임하고 이어서 윤리심판원들이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징계건은 더더욱 멀어져서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었으며 탈당한 시점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옛말이 되었다.
2015년 12월 14일 의정보고서를 재빠르게 내면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2016년 1월 5일 부산일보가 낸 기사들에 따르면 지역구 지지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특히 현역 교체 비율이 압도하고 있는 부산광역시에서 현역 유지비율이 교체비율보다 높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대다수.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탈당한 2016년 1월 중순까지는, 동교동계 핵심 멤버로 꼽히는 박지원 의원과 더불어 당내 비주류계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지역 기반과 잦은 당내 충돌로 인해 당내 지지 기반과 독자적인 계파 세력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표와의 마찰을 지속하다 자기 발로 당을 나갈 생각이 없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고 2016년 1월 19일 탈당을 발표하였다.
2016년 1월 20일 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에 입당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1월 21일에 최종 거취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결국 새누리당 입당 확정 기사가 났다.
탈당 직후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서 영입 제안이 빠르게 들어왔었다고 한다. 새누리측은 12년 동안 사하구를 빼앗긴 굴욕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이며, 국민의당도 인재가 필요한 시점인데다 평소 그와 행동을 같이했던 과거 비주류계 인사들이 여기에 꽤 속해있기 때문. 21일에 기자회견을 통하여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했으며 여담이지만 당사자의 탈당으로 이번 총선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줄 열쇠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탈당으로 인해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아직까지는 판단하기 이르다는 여론이 높다. 애시당초 민주당의 친문 주류와 줄곧 거리가 멀었던데다 조경태, 문재인을 제외하고도 부산에 김영춘, 김정길, 전재수, 최인호 등등 더불어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의외로 제법 있기 때문. 그리고 결과적으로 출마한 이들은 전부 당선됐다.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첫 출마(20대 총선)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원외라 원내에 있는 조경태와는 명백히 이야기가 다르고, 문재인 대표의 불출마로 부산 총선에 대한 관심이 대폭 줄은 데다가, 새누리당은 새누리당대로 부산 12년 만에 부산 석권을 노리면서 접전 선거구에 거물을 등판시키는 등 총력전에 나설 태세라 더불어민주당의 입지는 결국 줄어들 확률이 높다. 갈 사람이 간 것이라 여겨 속 시원히 여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민주 주류가 계속 공을 들인 부산을 석권당할 수도 있는 판이니 걱정도 될 만한 것. 그러나... 정작 총선에서는 깜짝 놀랄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21일,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했으니 16년 만의 복당인 셈. 이에 대해 친문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조경태 의원은 해당행위자로 원래 출당 대상자였으며 새누리당 입당은 자기 정체성에 맞는 당에 간 것이라 비판했다. 또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에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꼼수 정치, 단물 정치, 배신의 정치라는 용어를 써가며 그를 비판했다.
조 의원의 새누리당 입당 소식에 친문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노 전 대통령을 수모에 빠지게 만든 정당에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조경태 의원 본인도 후자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사무실에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놓고 일한다고도 했고, 새누리당에 들어왔어도 늘 '노무현 정신'을 생각하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담으로, 새누리당 입당 후 2달 후 친박계에 의해 컷오프 되어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오게 되는 진영 前 보건복지부 장관도 조경태 의원이 '원조 친노'라 불리다가 비노계의 대표 주자가 되어 결국 최대의 맞수였던 정당으로 넘어갔듯이, 원래 원조 친박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노인 기초 연금 공약 후퇴에 반발하면서 비박으로 변했고 결국에는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재미있는 데칼코마니라 할 수 있다. 둘 다 20대 국회 기준 4선 국회의원이며, 2000년 16대 총선 낙선 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되어 쭉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에 '조경태↔진영 트레이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까지 했다.
그가 새누리당에 입당한 이유는 결국은 지역 민심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에서도 진지하게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산 서부라는 지역구 특성 때문에 거절했다. 새누리가 근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소 35%가량은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한다. 아무리 지역구에서 개인적 지지율이 높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하면 새누리당 후보, 사이가 안 좋았던 더불어민주당 저격수와의 3파전이 일어날 것이 뻔하고 당선도 장담할 수 없었던 것.
일단, 조경태가 민주당 계열로 3선을 기록할 정도(사실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았다. 한 번은 탄핵역풍, 한 번은 보수후보가 2명 출마하여 보수표 분산)로 지역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으로도 얼마든지 정치 행보를 이어나갈 수는 있다. 이젠 새누리당 표까지 흡수할 수 있게 됐으니 앞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당선이 예상된다.
하지만 부산 유일의 야당 3선과 부산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라는 두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사실상 차포를 뗀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부산은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새누리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은 딱히 큰 주목을 끌 일이 없지만, 민주당 계열로 3선을 기록한 것은 전국적인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조 의원이 그래도 유명했던 게 바로 그 타이틀 때문이었는데 흔하디 흔한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이제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막말로 새누리당에서 공천 안 줘도 조경태 입장에서는 기회주의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쉽게 탈당할 수도 없을뿐더러, 반발하고 무소속 출마한들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조경태의 입당이 서부산의 야권 지지세를 차단하는 데 도움이 확연하다는 큰 기대감과 동시에 부산 싹쓸이보다는 새누리당 견제 심리 결집이라는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중이다.
2016년 3월 4일 새누리당 사하을 후보로 단수 공천되어 총선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경선도 없이 단독 공천에 대한 반발로 석동현 예비후보는 당색이 맞지 않는 인물을 단독 공천한 것에 대해 김무성 대표에게 책임지라는 등 불복하고 있는 상황이며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올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으나 22일에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와 사하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돌아보겠다고 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또 다른 예비 후보인 이호열은 준비가 부족했으며 당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김갑민, 오창석 두 후보가 경선을 치를 예정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오창석 후보가 공천되어 본선에서 붙게될 듯 하다. 국민의당에서는 배관구 후보가 공천되었으며 정의당에서는 유홍 후보가 나와 곧 본선을 치를 모양이다.
제20대 국회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창석 후보를 트리플 스코어에 가깝게 누르고 승리했지만 총선 전날까지 새누리당의 부산 싹쓸이까지 예상되었던 것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에서만 무려 5석(김영춘, 박재호, 전재수, 김해영, 최인호)을 가져가는 바람에 새누리당은 조경태 입당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게다가 '3당 합당 이후 부산광역시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민주당 의원 & 부산에서 유일한 민주당 다선 의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던 시절과 달리 새누리당으로 온 뒤에는 그 당에 부산에서 많이 당선된 의원들이 수두룩한 터라 조 의원도 그냥 새누리당의 많은 부산 다선 의원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질 뿐이라 확실히 민주당 소속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눈에 덜 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부산에서 다선을 한 보수 정당 의원을 뽑으라면 무려 6선을 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여러 명이 있다.
그동안 조경태 의원이 지하철 연장과 같은 굵직한 인프라 개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데는 야당의 유일한 부산 지역 다선 의원이므로 당의 특별대우를 받은 점이 컸다. 지역구의 발전과 직결된 개발안의 예산 심의에서 자기들끼리 파이를 조율해야 하는 여당과 달리 야당에서는 어차피 부산 지역에 쓰일 예산이라면 조경태 의원의 지역구 말고 밀어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본인의 대학 전공인 토목건축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법이나 지반 등을 이유로 사하구 지하철 연장을 반대하던 이들을 다 때려잡았다고 한다. 정교수는 아니었지만 박사 학위를 따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 때문에 국회 내에서는 교수님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따라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되었고 게다가 자유한국당에서도 여전히 비주류로 분류되는 그가 앞으로도 이전과 같은 지역 발전 추진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6년 6월 13일, 새누리당 의원 총회를 통해 기획재정위원장으로 당선되며 여당 거물급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됐다.
이때 강성 비박계 후보인 이혜훈, 이종구를 반대하는 친박계의 압도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위가 각 당의 에이스들이 진검 승부를 벌이는 상임위라는 점에서 토목공학 전공의 조 의원이 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인데, 당선 초까지만 하더라도 본인은 정무위원장 자리를 희망했으나, 여당 내 중진 의원들의 설득으로 기재위로 방향을 돌렸다고 전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조경태가 친박계의 눈치를 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칫하면 소위 '친노 패권주의'를 견디지 못해 민주당을 떠났다던 사람이 '친박 패권주의'에는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해신공항 결정에 대해 정부에서 제시한 김해신공항을 적극 지지한다고 하였다.
살인적인 수준의 더위로 전기세 누진제가 논란이 된 2016년 8월 요즘, 정부에 전기세 누진제 개편과 전기요금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박근혜나 새누리당 내부의 친박 & 비박 갈등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기재위원장 직무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이다보니 대학교에 특강을 가도 폭풍같이 까이고 있다.
새누리당 분열 상황에서 친박들의 연석회의에 참석했지만 최순실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친박 중의 친박인 조원진도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딱히 이것으로 어떤 성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7년 3월 2일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이 국립묘지와 같은 예우 받는 법안이 통과될 때 본인은 기권을 하였다. 정확히는 전직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경우에도 묘지관리 인력 및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묘역이 어디에 있든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동등하게 한다는 취지의 법개정이었다.
3월 3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주장하였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보복에 맞서 중국과의 단교, 중화민국 정부와의 재수교를 거론하였다.
2017년 3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 17일에 열린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자 비전대회에서 "대통령께서 탄핵당하셨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정중히 사죄드리는 바이다."라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개인의 탄핵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권의 탄핵" 등의 발언을 하였다. "친노에서 친박이 되었거나 범친홍으로 전향했다."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친박이나 친홍이라고 하기엔 주류 세력과 거리가 상당한 수준이다. 조경태 본인은 탄핵소추 때는 찬성표를 던지긴 했지만. 단순히 생각하면 자유한국당 당론을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2017년 3월 18일 자유한국당 대통령 예비 경선에서 1차 컷오프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대참패한 이후, 자유한국당 우파재건회의 소속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되었다. 구성원은 조경태, 김문수, 김진태, 심재철, 유기준, 정우택. 원조 친노계 정치인에서 이제는 완전한 우파 정치인이 된 경우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출마하려다가 최고위원으로 전향하여 출마하였다. 체급을 낮추어 출마한 전략이 성공하였고, 제3차 전당대회 최고위원선거에 1위로 당선되었다. 그동안 당내에서 민주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유한국당 내의 강성 보수층의 비토가 컸었고 당내 입지도 다른 4선의원들에 비해선 현저히 적었다. 국회의원은 보통 당협위원장을 겸임해 자기 지역구의 지방선거 후보에 대한 공천권이 있는데 조경태는 자기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던 것. 그러나 이제는 민주당 출신이라는 약점을 떨쳐내고 완전히 자유한국당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경태 후보는 6만 5563표(24.2%)를 얻었고, 4만 6282표(17,1%)로 2위를 기록한 정미경 후보와 상당히 큰 표차를 보였다. 경선 과정 내내 자신은 민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민주당과 어떻게 싸워야하는지 제일 잘 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PK지역의 4선의원이라는 점을 어필하였는데, 꽤 많은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통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셈. 또한 조경태 의원이 난민 수용반대 등 우파적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왔고, 신의 한 수를 비롯한 극우 진영의 유튜브에 자주 출연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해오는 등 우파 진영의 지지자들에게 인지도를 쌓아오는 노력을 많이 했었다.
일반 최고위원이 아닌 수석최고위원으로, 당대표 유고 등의 사유 발생 시 당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하는 직급이라고 한다. 서열상으로는 당대표 바로 아랫계급인 셈.
최고위원이 된 이후, 김진태 및 김순례 의원 징계에 대해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라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황교안 대표께도 우리 당이 매일 바뀌는 모습, 국민을 바라보고 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특정 계파, 특정 세력에 묶여서는 저희 당이 내년 총선에서 더 어려운 선거를 치를 수 있다"라며 "지금부터라도 좀 더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당이 대개조하는 마음으로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바뀌고 또 변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최고위원 당선후 황교안 대표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이 보도 되었다.
최고위원 자리에 차지한 덕분에 민주당시절부터 주장해오던 비례대표 폐지와 국회의원 정수 감축을 당론으로 관철시키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2019년 10월 25일에는 국산 게임에 2년이 넘게 판호를 내주지 않는 중국 정부에 항의의 뜻을 표하고자 주한 중국대사관 앞을 찾아 1인시위를 단행했다.
2020년 1월 28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중국인에 대해 입국 금지를 할 것을 주장했다.
제21대 국회
지도부의 삽질과 막말을 비롯한 여러 악재 속에서 소속 정당인 통합당이 부산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산의 거의 대부분의 후보들이 접전을 벌인 반면에 하태경과 함께 단 둘만이 당연하다는 듯이 압승을 거두면서 5선에 성공했다. 21대 총선에서 대부분의 보수 중진들이 낙선하는 와중에 최고위원들 중 유일하게 승리하면서, 당 대표에까지 도전해볼만한 상황이 된 것은 덤이다. 당 대표뿐만이 아니라 미래통합당 최다선 의원이 돼서 국회부의장도 가능하다. 미래통합당 소속 또는 미래통합당 출신 21대 국회 내 최다선인 5선 의원은 조경태 외에 홍준표(탈당 후 무소속 당선), 정진석, 주호영, 서병수뿐이다. 이 중에서 홍준표는 대권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네 명 중 두 명이 전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할 가능성이 높다. 주호영 의원은 원내대표가 됐으므로, 국회부의장은 정진석(전반기) - 조경태/서병수 중 하나(후반기)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다만 조경태는 5선 의원이면서도 굉장히 젊은 축에 들기 때문에 체급을 더 올리면서 차기만이 아닌 차차기 그 이후 대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나이라 다른 쪽으로 빠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총선 패배 수습을 위해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이 김종인 비대위 카드를 꺼내들자 이에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 최고위원과도 대립했다.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 추인에 강력 반발했다고 한다.
5월 31일 중국에서 입법이 진행중인 이른바 홍콩 국가보안법 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다.
6월 2일 조경태 의원은 '부산해양특별시 설치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2일 법안 발의에는 조 의원을 포함한 부산지역 통합당 의원 15명 전원이 동참했다.
2020년 7월 17일 21대 국회 개원식이 열렸는데, 관례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개원연설을 한 후 본회의장을 돌며 인사할 때 아예 등을 돌린 채 눈을 마주치는 것도 거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 당시, 야권 의원으로써 홀로 기립하여 경청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20년 10월 21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조 의원은 이제 비대위를 끝내고 조기 전대로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며 김 위원장을 직격했다. 김 위원장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단호한 반응을 보여 당내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27일 장하성 주중대사가 고려대 교수 재직 시절에 저지른 법인카드 부정 사용을 국정감사장에서 위증했다며 해임을 촉구했다.
2021년 3월 7일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같은 당의 윤희숙 의원이 고추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며 부적절한 발언을 하자 지방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비판했다.
2021년 4월 12일 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을 언급하며 2013년 김영란법과 함께 처음 만들어졌으나 9년째 관련법안들이 표류하고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른바 이해충돌방지법은 4월 28일 법안 통과되었다.
2021년 6월 9일 ,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전수조사를 의뢰하려고 감사원을 방문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조사하는 것은 감사원의 업무가 아니라서 퇴짜를 맞고 말았다.
2021년 11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현역병들의 이러닝 학점 이수에 대해 "군인은 군인다워야 되지요. (중략) 군대에 가 있는 60만 군인들이 다 이런 식으로 취지를 이용해 하겠다면 이게 군대가 당나라 군대가 되지요."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2021년 5월 11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5월 1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중 진행자인 김현정 PD가 조해진 의원이라고 이름을 잘못 부르자 반발했다.
5월 24일에는 박근혜 석방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이자 현재도 비박계로 분류되어 국민의힘 지지자들로부터 주류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데 이런 말을 해봤자 표를 더 얻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분위기다.
예비경선에서 당원, 일반 여론조사 모두 한자리수에 머무는 부진 속에서 간신히 최하위인 5위로 턱걸이 통과하였다. 때문에 대표 선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5월 31일 MBC 백분토론 특집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로 인해 역대 최고로 역동적인 당내경선이 되고 있다며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준석 역시 나경원 후보가 주장한 청년할당제를 비판하면서 혈혈단신으로 출마했던 조경태를 논거로 들었다. 또한 국적법 개정 이슈나 사법시험 부활 이슈를 들고 나오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6월 1일 MBN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는 정책적인 부분에서 약진했는데 특히 다른 후보들은 이야기 하지 않은 도쿄올림픽 불참 문제와 함께 가상화폐 과세 문제 ,대학입시 정시 확대 문제 , 가덕도 신공항과 대구경북권 신공항 문제 , 부동산 과세 , 주식시장 공매도 규제 문제 등을 내놓고 토론했고 민주당 출신임을 살려 현재 제1야당이 당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까지 토로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회자측에서 당대표가 된다면 박근혜 탄핵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사과는 할 생각이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후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6월 7일 TV조선 토론회에서는 탈원자력발전 기조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공시지가와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지방자치제 개혁과 세금배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대기업 본사를 탈서울시키는 방법을 제안했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언급하면서 일선학교에 입법을 통해 상담전문교사 배치를 의무화한것처럼 군부대에도 상담전문인력을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8일 국민의힘XSBS 토론에서는 기조연설에서 통합을 강조했고 당 운영 방안에 대해 계파논쟁 없는 덧셈의 정치를 주장했다. 오늘도 정책보따리를 풀어 기업의 해외이전 문제 해결을 위한 규제 완화 , 청년창업을 위한 민간주도 청년창업펀드 신설 , 신생기업 판로개척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외부 감사와 사용내역공개를 통해 여당보다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친북 친중 노선에 반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6월 9일 국민의힘XKBS 토론에서는 대선 경선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국민 참여형 경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서 호응이 좋았다. 그리고 여당 의원 12명의 부동산 관련 의혹으로 국회의원 전수조사에 대해 질문이 오자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민주당 출신이어도 공무원으로서의 양심을 믿고 전수조사를 맡길 수 있다고 답변했다.
당대표 당선에 실패하였긴 했지만, 아무와도 다투지 않았고, 여러 정책 현안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조용한 승자라는 평이 나왔다. 실제로 국회의원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이런저런 외적인 일들로 전 세대 막론하고 아는 사람이 많은 이준석, 다선 중진들인 나경원과 주호영에 비해 5선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들에 있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후보지만, 이번 계기로 젊은 층들에게도 인지도가 많이 상승했고, 이준석과 타 후보들을 중재하는 모습까지 보이기에 좋은 이미지가 쌓이는 중이다. 실제로 당대표 토론회 감상평을 보면 이준석 토론 보러 왔다가 조경태, 홍문표를 발견했다며 좋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최근 젊은 층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홍준표 상승세를 견인하면서 젊은 층에 더 긍정적인 인지도를 착실히 쌓아올리는 중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홍준표를 도와 그의 jp희망캠프에서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홍준표 선택은 역선택이 아닌 '교차투표'라고 진단했다.
이후 윤석열 후보의 경선 승리에 승복했으며, 윤석열 측의 연락으로 그를 돕기로 결정했다.
살리는 선대위 출범 당시,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선대위에 합류 했으나, 1월 초 선대위가 전면해체되면서 자리를 놓게 되었다.
며칠 뒤, 슬림화 된 국민의힘 선대본의 직능 본부장을 맡게 되었다. 선대위와 선대본에 두 군데에 모두 참여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결국 윤석열의 승리로 끝나면서 다음 국회에서 소속 정당이 과반이상으로 승리하면 국회의장도 노릴 전망이다.
조경태 기타 일화 여담 인간관계
직업 정치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길을 가다가 단속당해 망가지는 노점을 본 뒤 서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한 후 어느 날 정장에 구두를 신은 모습이 거만해 보였다고 한다. 그 후에는 공식 석상이 아닌 경우에는 주로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고 한다.
지역구 사정에 매우 밝은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사하구에 있는 가로등 수 같은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알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봐도 지역구 내에서의 평판이 상당히 좋은 국회의원으로, 이는 사하구 을에서만 내리 5선을 한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오죽하면 별명으로 사하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각종 정치 커뮤니티에서는 농담이 아니라 조경태가 사하구에만 계속 있는다면 전대미문의 10선 의원도 가능 할 거라고 얘기하곤 한다.
다만 상술한 지역구 관리능력과는 달리 지역사무소 바로 길건너의 생탁 노동자 문제는 외면하여, 부산지역 진보성향 활동가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8대 국회에서 활동할 당시 쇠고기 문제로 청문회에서 정운천 당시 농림부 장관에게 강경하게 나가 조포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로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조포스라고 ID를 쓰는 거 보면 좋아하는 듯. 아이러니하게도 8년 후인 2016년 조경태가 민주당을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20대 총선 때 둘 다 같은 당 후보로 당선되기까지 했는데 정운천은 새누리당 분당 사태 당시 탈당해 바른정당-바른미래당으로 간 반면 조경태는 탈당하지 않고 자유한국당에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 미래통합당 출범 이후 정운천이 합류하면서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당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보수 지지세가 강한 부산광역시에서 민주당 깃발로 3선을 한 것으로 유명하여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 중 하나로 불렸다. 그 3선 중에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고, 당선 당시 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우 놀라워했다고 하는데, 이런 탓에 당시 당선자들 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유일하게 호출을 받아 대통령을 독대하여 극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까지도 야권 내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대연정 파동 때 당내외 여론이 악화되는 와중에 대연정 제안을 강력히, 꽤 문제되는 발언까지 섞어 가며 옹호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은 영향을 준 바가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6.4 지방선거 때 적지인 대구광역시에 출마하였으나 안타깝게 석패. 훗날 20대 총선에서 마침내 당선되었으며.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예산폭탄 공약을 내걸고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의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상대측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서갑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바가 있다.
민주당 시절에는 비주류인 탓에 당내 지지층이 전무했다. 한 예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한명숙 지도부는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 사상구는 자주 들렀지만 사상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그의 사하구 을 선거구에는 아무도 방문을 안 했다. 의외로 그의 지역구에서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이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이곳에서 적극적인 유세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새누리당 측에서 조경태 의원이 상당한 강적임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건 본인이 당내 지지층을 갉아먹는 행보를 보인 것도 있었다. 김한길 대표 시절에 최고위원을 했던 당시에도 지역 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읊었던 정치인이라 지역민의 평판은 좋았지만 당 주류이자 부산시당의 다수를 이루는 친문 인사들과 다양한 현안에서 끝없이 대립각을 펼친 탓에 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지역 당원으로부터도 지지를 잃은 정황들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재선 의원 당시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낙마한 적도 있고, 막말 논란으로 징계위에 회부되었을 때 그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을의 당원들이 그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라고 청원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또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 언론사가 지역 여론을 취재했는데 몇몇 노년층 유권자들이 ''조경태가 일은 정말 잘한데이. 그런데 요즘 들어 왜 자꾸 문재인한테 개겨서 일을 만드노?"라는 말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 입지가 약해 누구도 어려울 거라 예상했던 최고위원직에 자력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 하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으로, 지도부 총 사퇴와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정계 입문 후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당론과 다른 행보를 자주 보여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정체성을 의심받는 일이 더러 있었고, 특히 골수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에게 자주 공격받았다. 이 때문에 둘의 사이는 굉장히 견원지간이다. 정청래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라 진보 성향이 뚜렷해 보수 성향이 진한 조경태 의원과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정청래는 조경태를 향해 "내무반에 총질 말라.", "민주당에 쓴소리 하듯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비난하자 이에 대해 조경태는 원전 비리, 밀양송전탑 문제, 대일 외교 저자세 등에 대해 비판해 왔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때도 조경태 의원은 "당에 물의를 일으킨 김현을 출당시키고 일벌백계 해야 한다."라는 발언에 정청래 의원은 "조경태를 출당시켜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PK 3선 의원이라는 민주당 입장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기록을 세운데다 한때 원조 친노로 분류됐을 정도였음에도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위에 나온 정청래와의 설전이 대표적인 예. 과거 보수정당에 몸 담았다가 민주당계 정당으로 넘어온 손학규나 진영, 김부겸이 양대 정당의 험악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 소속, 심지어 범친박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과도 아직까지 막역한 사이인 것을 보면 꽤 씁쓸한 부분이다.
사실 애초에 조경태는 정계 데뷔부터가 진보 정치인들과는 연관이 없는 편이다. 민주당에 있을 때도 당 내에서 보수적인 편이었던 데다 신보수인사라고 분류되었으니, 진보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과 마찰을 빚는 건 당연할 터. 이는 조경태가 친문을 친노의 후예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꼬마민주당에서 정계 데뷔를 했으나, 합당 때 조순, 이기택, 김부겸, 강창성, 제정구와 같이 넘어왔다가 16대 총선 공천 때 진영과 다르게 고배를 마시고 탈당 직후 민주당으로 넘어왔었다. 국립대인 부산대학교를 다닐 때도 가난했던 집안 때문에 고학으로 졸업할 정도였으니, 운동권 인사들과 사이가 별로 좋진 못했다. 다만, 군사정권 자체는 운동권보다도 적대적으로 본다. 정의당에서 한창 비례대표제 확대를 요구 했을 당시, "비례대표는 유신정우회 때 나온 것이다. 독재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한 것이 비례대표인데 무슨 확대요?"라고 비판하며, 정의당은 물론이고 군사정권까지 세트로 비판했을 정도.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한다. 정계 입문도 노무현에 의해 영입되었고, 한때 원조 친노라고 불렸을 정도로 줄곧 노무현의 최측근으로 있었다. 대표적으로 반노였던 후단협이 맹비난할 당시, 끝까지 노무현을 비호한 적도 있었고, 보수정당으로 당적을 바꾼 지금까지도 노무현 추도식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10주기 추도식 때도 보여지는데,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황교안이 불참했을 때도 조경태는 자유한국당 의원 신분으로 참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통합 뜻을 받들어야 한다."며 여야 모두를 비판한 적도 있었다. 다만 친노의 후예로 여겨지는 문재인 및 친문 세력과는 사이가 나쁘다. 조경태는 처음부터 문재인을 비판한 건 아니었고, 노무현 사후, 문재인이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노선이 달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였다. 첫 당선 당시, 노무현이 "조경태 학습법을 배워야 한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강용석 전 의원과는 견원지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안 좋았었던 적이 있었다. 서로 반말까는 것은 기본이고, 육두문자만 안 쓸 뿐이지, 국회의원들 간의 언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현재는 같은 진영이 됐지만, 강용석이 각종 사건사고들로 더 이상은 정계에 복귀할 수 없게 되면서 다행히(?) 마주칠 일도 없게 되는줄 알았는데, 2021년 10월달에 강용석이 소장으로 있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하면서 오랜만에 마주앉아서 좋은 얘기를 나눴다.
당선 인사를 경남고 대선배인 김영삼 전 대통령에 갔더니 큰일을 해냈다고 칭찬받았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어록으로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는가?"가 있다. 해당 발언은 조경태가 보수정당으로 이적하기 전인 2015년에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한 말이다. 나중에 조경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 등을 거치며 인지도가 오른 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에 대해 언급될 때 종종 등장하고 있다. 아예 줄여서 "죽저맛"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윤석열을 당선시키면서 꼴갤과 새보갤 중심으로 재소환 중이다.
그가 당에 머무를 때마다 그 당이 선거당일에 징크스를 맞는 편이다. 실제로 그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옮겨갔을때 새누리당 내에서 부산권을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그 결과는... 심지어, 이적 이전에 자신이 공격했던 사람들이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4년 후의 결과는 더 처참했다. 다만 1년 뒤 재보궐선거는 압승했고 20대 대선은 이대남과 TK 그리고 강남3구의 압도적인 힘으로 신승했다.
보수 정당 소속 PK 다선 의원들 중 인지도가 높은 편이고, 지역구 장악력이나 인기도 높은 편이라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그간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던 김세연 의원이나 박민식 전 의원에 비해 의원 선수도 높고 본래 민주당 출신이라 중도 확장성도 저 둘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 이 때문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김세연 의원과는 은근히 기싸움이 오고 가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강남 병 공천사태 당시 김세연 의원이 "이 정도는 쿨하게 넘어가주자"라고 했던 데에 조경태 수석최고위원이 절대 안 된다며 공관위를 압박해서 공천을 철회시키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해운대에서 조경태와 비슷한 스코어로 민주당 후보를 털어버린 하태경 의원도 부산시장 후보군에 꼽히면서 다음 시장 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점점 치열해지는 듯.
열린우리당으로 당선된 이후 새누리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지역사무소 간판에 당 로고만 제거한 채 열린우리당의 색상인 노란색 간판을 유지했었다.
대표적인 반중 친대만 성향의 정치인 이미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보수 정당 당적을 가지기 전인 민주당계 정당 의원 시절에도 노골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대만 재수교 주장도 통합민주당 의원이었던 18대 국회 시절에 발언한 것이었다.
민주당계 정당에 소속되었던 시절에는 소속 의원들이 종편 채널 출연을 거부하던 것과는 달리, 박지원 전 의원과 더불어 종편채널에 자주 출연하였다.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고 다문화 정책 제정에도 힘쓰고 있는 국회의원 중에 한 명이다. 2017년 자유한국당 의원 시절 다문화가족 지원센터협회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2018년에는 한국당 난민대책특위 위원장으로 일했다.
민주당계 출신이지만, 최근에는 친박과 친황 다음가는 강경보수인 친홍으로 구분된다. 홍준표 캠프 소속이기도 하다. 만약 홍준표가 국힘 대선후보에 선출되고 당선까지 됐다면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토교통부장관으로 입각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는데, 홍준표가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국민의힘 선대본의 직능 본부장으로 들어가면서 입각 가능성이 다시 생겼다.
조경태 재산
2021년 3월 기준으로 14억 1335만 6천원을 신고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2억원 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조경태 선거 이력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갑
10,835 (15.51%)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13,351 (17.50%)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36,614 (39.13%)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1,330 (44.89%)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49,849 (58.17%) 당선 (1위)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0,337 (59.65%) 당선 (1위)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59,042 (58.79%) 당선 (1위)
5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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