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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4. 21. 20:38

박영선 고향 재산 학력 나이 남편 자녀 프로필 (서울시장 재도전?)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 제17~20대 국회의원이었으며, 지역구는 서울 구로구 을이었다. 기성 세대에게는 언론인 출신 이미지가 강한 정치인 중 하나이다. 제2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을 역임하였고 2021년 재보궐선거 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오세훈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박영선

朴映宣 | Park Young-sun

 

출생

1960년 1월 22일 (62세)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본관

반남 박씨

 

 

현직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

재임기간

제2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2019년 4월 8일 ~ 2021년 1월 20일

 

형제자매

2남 1녀 중 첫째

 

배우자

이원조

 

자녀

슬하 1남 (1998년)

 

학력

수도여자고등학교 (졸업)

상명여자사범대학 (불어교육과 / 1학년 수료)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 / 학사)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 / 석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에스테르)

 

 

신체

169cm , O형

 

경력

MBC 기자

열린우리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재벌개혁특위원장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당연직 위원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선진제조 및 생산(AMP) 이사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대전환위원회 위원장

 


박영선 고향 재산 학력 나이 남편 자녀 프로필 (서울시장 재도전?)

 

 

박영선 생애 고향 학력 이력

학창 시절

1960년,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에서 학교 교사인 부모님의 슬하 2남 1녀 중 첫째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창녕 토박이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이북 출신으로 6.25 전쟁 때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피난와서 부산, 마산을 거쳐 창녕에 정착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박영선이 어렸을 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다며 서울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박영선을 데리고 먼저 서울로 올라왔고, 아버지는 나중에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명절과 방학 때마다 고향으로 내려가 지냈다고 한다. 박영선의 어머니는 북녘 고향이 그리울 때면 종종 강화도 마니산 중턱에 올라 북한을 바라보며 망향가를 불렀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실향민과 북한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서울로 올라온 후 당시 학비가 비싸서 부자들이 다니기로 유명했던 사립 예일초등학교에 진학했다. 예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덕성여자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생 시절 방송국에 갔다가 가수 이장희를 보고 매료되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노래를 부르러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수도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방송반에 들어 갔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방송반하면 좋은 대학 못간다고 만류했지만 늦바람이 들어 방송반에 들어갔다고 한다. 수도여고 후배들에 따르면, 학교 선생님들이 방송반 들어가면 좋은 대학 가지 못한다면서 박영선을 그 사례로 들었다고 한다.  당시 실제 방송국 PD들이 수도여고 방송반을 자주 찾아와 도와주었고, 때문에 현직 방송국 PD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었고 실제로 고교 시절 MBC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가서 편지를 읽어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박영선은 본인의 학창 시절에 대해 "학창 시절 놀기도 많이 했고 공부도 잘 못했지만 결국 역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78년 3월, 상명여자사범대학 불어교육과에 입학하여 1년간 다니다가 1979년 3월,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 편입학하여 1982년 2월 졸업했다. 경희대에 들어가서도 방송반에 들어가 활동했으며, '퐁퐁 4중창단'을 만들었고, 작곡가 강인원이 곡을 써준 덕분에 1979년, 4중창단으로 TBC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도 했다. 

박영선은 대학 시절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큰 좌절감에 싸여 지낸 시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는 "그런 학교 다녀서 뭐하냐?"며 입학금만 내주고 등록금도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민주당계 정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정계에 진출한 후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버지가 반대해서 하지 못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정계에 투신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대통령과 동문임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문재인 저격수를 자처하며 대표적인 반문 혹은 비문재인 정치인으로 꼽혔었다. 서울특별시장 선거를 준비하면서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도시인문지리학도 부각하고 있다.

 

MBC 시절

1981년 KBS에 아나운서로 합격, 춘천 지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춘천에서 하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야 했고, 1983년에 지방 근무가 없는 MBC에 시험을 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이후 보도국으로 발령이 나며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입사 5개월 만인 1983년부터 MBC 뉴스데이트를 맡았다. 1984년 10월부터 1985년까지 여기는 MBC의 진행을 맡았다. 1985년에 외교관과 결혼을 하고 나서 미국으로 떠났지만 6개월만에 이혼한 후 1987년 귀국했다.

이후 다시 MBC에서 아나운서, 기자로 일했다. 90년대 초반에는 MBC 마감뉴스의 앵커직을 맡았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MBC 뉴스와이드의 앵커직을 맡았다. 그러나 MBC 아침뉴스 앵커시절, 김문수 의원을 인터뷰하면서 면전에서 "변절자 아니십니까"라고 말해 논란이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아침 식사 중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이후 국제부로 자리를 옮기며 앵커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전화위복의 계기가 오는데 바로 김영삼 대통령이 '여성 인력'을 강조하면서 각 방송국에 여성 특파원을 발굴하라고 지시했고, 마침 국제부로 있던 박영선이 미국 LA 특파원으로 발령나게 되었다. 이후 LA 특파원으로서 미국영화협회 출입증을 받아 헐리웃 출입기자로 활동하게 되면서 MPAA 주최 각종 행사와 할리우드 영화사 취재를 전담하게 되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취재하기도 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시걸, 조디 포스터, 클린트 이스트우드, 토미 리 존스, 메릴 스트립 등을 취재하는 등 헐리웃 유명 배우나 감독들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 방송에서 배우와 유명 감독들을 대면하면서 알게 된 그 이면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파원 시절인 1997년 3월 미국에서 재혼했다. 정동영이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1997년에 다시 귀국하여 MBC 뉴스센터 500의 진행을 맡았다가, 1998년 9월 19일부터 1999년 12월 26일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앵커직을 맡았으며, 2000년에 피자의 아침 - MBC 아침 뉴스 앵커 직을 맡았다. 2000년대 초에는 '경제매거진'의 진행을 맡으면서 MBC 보도국 경제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초·재선 시절

2004년 초 당시 열린우리당의 실세(천신정)였던 정동영의 권유로 정계 진출을 선언, MBC에서 퇴사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정동영에 의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공천받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때문에 속칭 DY계, 정동영계로 분류되었으며, 나중에는 정동영계 겸 김한길계로 분류되었다. 당시 주류인 친노계와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다.

2007년 대선 때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측의 최종 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동영 본인이 박영선을 '최종병기'라고 표현했다. 특히 BBK 관련 의혹 제기에 앞장섰다. 이때부터 이명박과의 극도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선에서 정동영이 참패하면서 정동영의 최측근이었던 박영선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평이 있었지만 이도 잠시, 박영선은 당내 또다른 비노계 핵심인 김한길의 측근이 되어 난관을 돌파해 나가게 된다. 그리하여 한때 김한길계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후 당내에서 김한길의 입지가 약화되고 박영선 본인이 당의 저격수 역할을 자임하며 스스로 당내 입지를 강화해 나가게 되면서 나중에는 김한길계라기보다는 친 김한길계 의원으로 언론에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본래 박영선은 비례대표였고, 구로 을 지역구는 기존에 김한길의 지역구였다. 그러나 김한길이 탈당 후 신당 창당 등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벌인 정계개편이 실패하자, 정계은퇴를 하면서 박영선이 이 지역구를 이어받게 된 것이다. 18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치뤄진 선거로 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상태에서 치뤄진 선거였지만, 서울에서 야당의 세가 강한 지역으로 꼽히는 구로였고, 기존에 박영선의 대중적 인지도가 한나라당의 고경화 후보와는 넘사벽이었기에 7%의 득표율 차이로 당선되었다.

박영선은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기에는 중량감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그동안 저격수로서 당에서 쌓아왔던 노력을 인정받아 당내 경선에서 나름 거물인 천정배(경선 2위), 추미애(3위), 신계륜(4위)를 꺾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안철수의 양보로 지지율이 5%에서 40%대로 수직 상승하는 이변을 낳았고, 결국 야당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제1야당의 후보가 무소속 정치 신인 박원순에게 패하는 이변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평판은 괜찮았고 의정 활동도 우수했기에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2007년 대선 때부터 민주당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했고, 이런 강성 활동을 바탕으로 당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해 나갔다. 최고의 악연이었던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그에게 대놓고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노골적으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고, 이 말을 듣고 이명박은 박영선에게 즉석에서 '''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면서 맞받아치기도 했다. 김태호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을 때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낙마시킨 일등 공신이기도 해 보수 진영에서 박영선은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이때 박영선의 행적을 보면 반대 진영에 있었던 전여옥과 행적이 상당히 비슷하다. 전직 언론인인 것까지. 사실 다른 점도 적지는 않은 게, 박영선은 지역구 관리는 기막힐 정도로 잘해서 나름대로 정치인으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2년 1월 15일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15.74%를 득표하면서 3위로 최고위원직에 당선되었으나  공천을 둘러싼 당내 계파 싸움으로 두달만인 2012년 3월 21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박영선은 "공천과정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기에 책임을 통감했다. 그리고 통감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당 지도부 일원으로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국민 여러분께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기존 민주당 계파 빅 3인 정동영, 손학규, 정세균에 더해 공천과정에서 홀대를 받아왔던 친노 출신들, 혁신과 통합에 가담했던 시민단체 출신들까지 공천 힘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친노 출신의 당내 합류를 반대한 구민주계는 지분이 없던 혁신과 통합이 5:5의 지분을 차지하는게 말이 되냐고 주장했다.

 

 

 

3선 이후

공천을 둘러싼 내홍으로 최고의원을 사퇴하고 말았지만, 이어진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61.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19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았고 이후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첫 여성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초강경파에서 온건파로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2014년 7.30 재보선 참패로 무너지면서 '국민공감혁신위원회'라고 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당대표 권한 대행을 맡게 됐다.

그러나 이 와중에 새누리당이 제시했던 세월호 특별법 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친노 야권 지지자들에게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공공의 적으로 한순간에 이미지가 떨어져 버렸다. 결국 박 위원장은 비대위원 한 명도 인선해보지 못하고 원내대표직과 비대위원장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 이미지는 20대 국회가 열린 뒤에도 한동안 계속됐었다.

자신의 뒤를 이어 비대위원장직을 맡을 후임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이상돈 교수와 진보적인 성향의 안경환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또 당내에서 큰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정계에 입문한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박영선은 대외적인 연락을 모두 끊고 칩거하며 탈당을 고심하다가 결국 당에 잔류하기로 하고 당권에서 내려왔다.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당시 대구 입성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던 김부겸에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었지만 이렇다 할 특별한 활동 없이 화제의 바깥으로 비켜나 있었다.

 

2.8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문재인은 당시 새누리당 당대표인 김무성과 선거법 협상을 시작한다. '선거 룰' 핑퐁게임…"내꺼부터 받아줘" 문재인은 절충된 입장으로 대선 경선은 '국민이 뽑은 대선후보'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총선 등은 현역 의원의 인지도와 선거활동의 유리함이 지나치게 보장된다는 이유로 비판적이었다. 김무성은 박영선과 비슷한 입장으로 모든 선거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오픈 프라이머리 반대자들은 경선시 반대 지지층의 역선택을 부작용의 예로 들었는데 이에 대해 박영선과 나경원은 동시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시한다. 김무성은 총선에서도 동시 오픈 프라이머리를 주장하나 민주당 혁신위와 문재인이 조건부 협상 의사를 밝히고 이를 김무성이 거부하면서 협상은 결렬된다. 당원 중심 경선은 민심을 잃어가는 정당에서 당내 핵심세력만의 공천 잔치로 변질될 수 있고, 전략공천 역시 당권을 가진 지도부의 내 사람 꽃기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에 박영선은 공천 혁신 방안으로 오래전부터 오픈 프라이머리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도 아니고 자당 대표에 의해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못했다. 박영선은 협상이 결렬되자 문재인과의 갈등이 가속화된다.

2015년 7월 박영선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문재인의 당 대표 출마를 만류했다고 밝혔으며 문재인의 리더십을 비판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문~반문 인사들이 탈당하여 국민의당을 만들고 있을 무렵 박영선도 국민의당으로 갈 것이라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가 김종인 前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선거대책위원장 겸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데려와 전권을 이양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비례대표 공천 문제로 당이 한 번 큰 위기에 휩싸이자 다른 비대위원들과 함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했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기획재정부 등을 관장하는 기획재정위원회로 배정받아 재벌 개혁 문제를 다루었다.

 

 

2017년 대선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내 경선 당시 박영선은 안희정 충남도지사 측 캠프에 합류하여, '문재인 저격수'를 자처하며 맹활약했었다.

본래 박영선은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정동영계를 대표하는 의원이자, 동시에 비노계였다. 열린우리당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된 이후에도 비노 그룹의 가장 앞 줄에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와도 2014년 이후 꽤 오랫동안 아주 불편한 관계여서 대표적인 비문 내지는 반문 정치인으로 손꼽혔다. 박영선 의원과 문재인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이후 문재인 전 대표가 본격 정계에 투신한 후에는 대선 기획위원, 상임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사태 및 이상돈 비대위원장 영입 파동 등을 거치며 친노 측과 척을 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영선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친노 세력이 박영선에게 맹공을 퍼부으면서 박영선은 정치 경력에서 치명상을 입게 되었고, 결국 원내대표를 사퇴하고 말았다. 그걸로도 모잘라 후임 선정을 놓고 당에서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다. 당시 궁지에 처한 박영선은 이상돈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을 추진했다. 이에 관하여 문재인 전 대표 및 친노 중진들과 모두 미리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라는 게 박영선 의원 측 설명이다. 하지만 돌연 친노 인사들이 박근혜를 도운 적장을 비대위원장을 앉힌다니 말이 되느냐며 박영선 의원을 맹공격했다. 이렇게 이상돈 영입 파동으로 친노 세력에게 부관참시를 당하자 탈당설이 나돌았고, 실제로 박영선 본인도 탈당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한다. 결국 탈당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고 한동안 칩거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표는 삼고초려 끝에 김종인 전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김종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당선 1등 공신이었다. 이에 박영선 의원 측이 폭발했던 것이다 박영선 측은 "김종인은 되고 이상돈은 안 된다는 친노의 어거지 논리가 어딨냐"며 격분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결국 문재인 및 친노 측에 대한 치유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2017 대선에서 박영선은 안희정 측 공격수로서 예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몰아부쳤던 것 못지 않게 문재인 후보 측을 몰아세웠다. 문재인 후보 측에 대해 "지속적인 말바꾸기", "정치적 지향점이 모호하다", "이중잣대", "문 후보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다 떠났다", "문재인 측 친노는 '싸가지 없는 친노'", "문재인 대세론은 없다"는 등 강도 높은 맹공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문재인 전 대표가 당내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였고, 이에 박영선은 이언주처럼 탈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박영선을 직접 만나 도움을 요청하였고 박영선이 문재인이 내민 손을 잡은 뒤에는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여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문재인 후보의 당내부 통합의 상징'이 되었다.

이에 친문 지지층 사이에서조차 '대표 비문(반문)이 이젠 친문 좌장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친문 지지층은 '열심히 뛰어줬으니 고맙긴 한데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변하니 좀 어안이 벙벙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좋게 보면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꾸준히 지켜보며 이전에 가졌던 생각이나 입장이 바뀐 것일 수 있다. 반면 계산적으로 해석한다면 문 대통령의 굳건한 지지층을 인정하고 허리를 숙인 정치적 판단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에콰도르의 레닌 모레노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일부 친문 지지층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박영선을 에콰도르로 보낸 것을 일종의 토사구팽처럼 여기며 통쾌해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 박영선은 에콰도르의 새 대통령 취임을 축하해 주려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에콰도르에 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를 대리하여 문재인 당시 정무특보를 특사 자격으로 보내서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게 한 바 있다. 문재인으로선 박영선에게 상당한 명예를 안겨다 준 셈인 것이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군에 박영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등 박영선의 입지가 상당히 좋아지자, '박영선이 친문 좌장처럼 행동한 이유를 알겠다'라며 쓴웃음을 짓는 사람들도 있다. 위에 언급한 '정치적 판단'이 열매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이런 모습들은 마침 국민의당으로 갔다가 이미지가 악화되고 향후 정치 진로에도 사실상 먹구름이 끼었다고 평가를 받는 이언주와 참 비교되는 모습이라 박영선과 이언주를 비교하는 언주야 패러디도 많이 나오고 있다. 또한 박영선이 공식 행사에 참석해서 후한 대접을 받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는 기사나, 이언주가 정치적으로 어려워지는 일을 다룬 기사를 보면 높은 확률로 '언주야'/'언니는'/'행복하단다' 식의 댓글 놀이가 주르륵 뜬다.

이후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박영선이 서울시장 경선에 나올 거라는 설이 돌았다. 시사IN과의 인터뷰를 보면 스스로도 서울시장 출마에 관심이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3선 출마에 마음을 굳혔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어찌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통 현역 자치단체장이 연임을 천명한다면 당에서도 경선을 진행하지 않고 해당 자치단체장을 추대하기 때문이다. 다만 박원순은 만약 서울시장 경선이 치뤄진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시사IN 인터뷰에 따르면 박 시장 스스로도 박영선과 로마에서 함께 차를 마시던 중 대뜸 "페어 플레이를 하자"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 후 박원순 시장도 3선 도전으로 노선을 결정했고, 박영선도 공식 출마 선언만 안 했을 뿐, '영선아 시장가자' 등의 민생 행보를 보여주는 등 본격적인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위한 활동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박영선은 영등포구에 있는 꿈이룸학교에서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2018년 3월 18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후 당내 경선에서 박원순 시장, 우상호와 경쟁을 하였는데 결과는 박원순 시장의 승리였다. 경선 결과가 나온 후 이를 승복하고, 이후에는 지방선거의 각 지역 후보들을 지원하였다. 여기서 극한의 줄타기 능력을 선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낙향한 후 경남 양산으로 돌아올 것이니 도지사와 시장을 민주당으로 해야 한다든가, 그리고 바로 자기 지역구로 올라가 유세를 펼친다든가. 이러한 면모 때문에 친문 지지층에서는 이전부터 불려온 조롱 반 경외반의 의미인 '친문좌장'이라는 별명이 더 유행했다.

2018년 8월 25일 열릴 예정인 8.25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겠다고 7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20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2019년 1월 손금주, 이용호의 입당을 불허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결정의 대해 "순혈주의는 역사적으로 보면 개방과 포용에 늘 무릎을 꿇었다"며 "로마가 천년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힘도 곧 개방과 포용 그리고 공정이었다"라고 비판하였다. 앞서 우상호 또한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송영길은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주장했고, 우상호, 박영선은 손금주, 이용호의 입당 허용을 주장하는 등 당내 비문계 의원들이 잇따라 당의 방침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지라, 친문과 비문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2019년 3월로 예정된 문재인 정부의 개각에서 법무부장관 후보로 유력시 되었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은 경력으로 법률 비전문가라는 비판을 피해 나갈 예정이었다. 법무부장관에 취임한다면 사개특위 위원장 자리는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3월 8일 대규모 개각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 내정되었다. 벤처기업 분야 비전문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도 높았으며, 마침 지역구인 구로구 을과도 관계가 깊은 부서이기도 해 큰 문제는 없었다.

박영선 본인이 야당 시절 청문회에서 국무위원 후보자들에게 강도높은 발언들을 하기도 했었고, 개각 국무위원 후보자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기에, 박영선에 대한 청문회도 강도는 높았다. 하지만 오히려 박영선은 특유의 역공을 펼쳤다. 청문회 과정에서는 후보자인가 청문위원인가 싶을 정도의 공격력을 보여줬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여당 지지층에서는 지지를 보냈지만, 야당 지지층에서는 오만불손,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법사위원장 시절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김학의 사건 관련 CD를 보여주면서 경고했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역공을 취하며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을 비켜나가려 했다. 박영선은 황교안을 따로 만나 CD의 존재에 대해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황교안 본인은 왜곡이라고 해명했다. 박영선이 이 건을 들고 나온 것이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 논란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상당히 상쇄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의견과 박영선이 진술을 번복한 바, 이로 인해 불거진 선거법 논란 역시 일고 있다. 이 외에도 전통시장에 갔다왔다는 증거로 영수증을 요구하자 박영선 장관은 "할머니 현금영수증 끊어주세요~" 하지는 않는다고 한 답변과 자신의 유방암 수술과 관련된 질문에선 의원님이 전립선암수술을 받았다고 자신이 물어보진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중소기업, 소상공인 연합회 등에서는 조속한 임명을 촉구했다. 

결국 현직 국회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2019년 4월 8일 장관직에 공식 임명되었다. 당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임명 찬성 45.8% vs 반대 43.3%의 결과가 나왔다.

2019년 9월 13일 쇼호스트로 깜짝 등장해 완판의 과업을 달성했다. 이날 주문금액은 당초 목표인 3000만원을 훌쩍 넘은 5151만 1124원을 찍었다. 시청률도 평소의 3배 가까이 올랐다.

장관으로서 평가는 좋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정치인 출신이 얼마나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지 우려했던게 사실인데 정말 놀랐다. 흡수력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생각하는 방향, 수준, 깊이, 관심 등은 여야나 진보, 보수를 떠나 굉장히 만족한다."라고 극찬했다. 그간 이런 정치인 경제 부처 장관은 그냥 잠시 경력 관리 하고 민원 좀 해결해주는 수준이었다. 이번엔 강력한 장관이 나서서 예산도 많이 끌어다 주고 문재인 대통령도 박영선 장관을 해외 순방에 자주 참여시키며 해외로도 커넥션을 만들어 주는 점이 호평을 이끌어 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의 민주당 후보로 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성추문 의혹을 받은 상황이라 당내에서도 이번엔 여성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는 중론이 있는데다가, 2011년·2018년 이미 두 번이나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했을만큼 서울시장직을 향한 본인의 의지도 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마하게 된다면 4선의 풍부한 의정 경험과 국무위원 직을 수행하면서 쌓은 행정 실무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8월 4일 중기부에서 발표된 2020년 상반기 벤처기업 및 벤처투자 받은 기업의 일자리 동향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최악의 경제 상황 속에서도 벤처·스타트업 일자리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총 73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는데 같은 기간 4대 기업이 창출한 69만 개의 일자리보다도 그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월 8일,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 공무원들에게 실시한 여론조사가 공개되었다. 중기부 공무원의 70% 이상이 계속 중기부에서 같이 일하고 싶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장관들 중에서도 가장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21년 1월 19일, 한동안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던 박영선 장관이 4월에 열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최종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 중진들의 설득으로 출마를 결심하게 됐고 경선 일정을 고려해 20일까지 업무를 보고 사의를 표명했다. 후임으로는 권칠승 의원이 내정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임 표명 당일 박 장관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박영선 장관은 1월 20일 오전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와 화상회의를 했다. 이날 화상회의에서 정부와 모더나는 국내에 호흡기전염 질환 백신 생산공장을 공동 설립하고, 백신 연구개발(R&D) 공동 투자를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박 전 장관은 "모더나 공장이 창동에 세워질 수 있는데 이 같은 바이오기업 유치는 일자리를 늘리고 해당 지역을 세계적인 바이오클러스터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서울시장 후보 출마, 그리고 낙선

2021년 1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21분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21분 컴팩트 도시로 서울을 재구성하는 도시공간의 대전환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창동기지 개발 방향을 지역민들이 바라는 일자리 대신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개발한다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 슬로건은 서울시 대전환, 합니다 박영선!

2021년 2월, 박영선 전 장관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내부 당원 지지층 여론조사에서 50%대 중후반대 지지율을 보여주며 20%대 후반 지지율을 보이는 우상호 의원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에서는 박영선 전 장관과 안철수 대표와의 양자대결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어 다소 묻히는 감은 있지만, 애당초 치열한 경선전이 예상되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의 시사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박영선 전 장관에 대해 호의적인 내용의 동영상을 적극 홍보하고 있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트위터에서는 박영선 전 장관이 강세고, 유튜브 및 온라인 커뮤니티(대표적으로 클리앙)에서는 우상호 의원이 강세다.특히 팟캐스트 방송 월말 김어준의 박영선 후보와의 대담본 방송이 박 전 장관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재직 시절 전의 잔존 비토 정서를 매우 중화시키는 효과를 줬다.

더불어민주당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 및 원외위원장, 시의원들의 우상호 조직세에 대항하기 위한 현역 의원 영입 및 조직세 규합도 현재까지 나쁘지 않다는 평이 많다. 친문의 복심이라 불리는 윤건영 의원, 고민정 의원을 필두로 이수진 의원, 박성준 의원, 강병원 의원, 정청래 의원, 노웅래 의원, 김병기 의원, 박용진 의원, 임종성 의원, 신현영 의원, 이수진 의원, 김경만 의원, 변재일 의원, 정춘숙 의원, 강선우 의원, 유정주 의원 등이 물밑에서 박영선 전 장관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경선에서 친문 초재선 그룹과 97세대 의원의 표심을 잡는데 다소 성공한 셈이다.

2021년 2월 중반, 야권 후보와의 양자 및 다자대결에서 선전하는 여론조사가 속출하고 맞상대를 펼치고 있는 우상호 의원이 2월 10일 박원순 전 시장과 관련한 2차 가해 논란으로 자책골을 넣으면서 점차 경선레이스의 승기를 굳혀가고 있다.

만일 2021년 3월 1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다면,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한명숙 전 총리, 나경원 전 국회의원에 이어 역대 네 번째 주요 정당 여성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가 된다. 결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결국 우상호 후보와 벌인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 경선에서 69.56% 득표로 30.44% 우상호 후보를 꺾었다.

최종적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2021년 재보궐선거를 사실상 민주당의 승리로 이끈 성과로 향후 민주당에서의 입지가 배로 커질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시장 선거에 별 어려움 없이 재차 도전할 개연성이 크며 서울시장으로서 차차기에는 대권주자 반열에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낙선할 경우 전통적으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던 정치인들은 입지가 크게 꺾여 정치판을 떠나거나, 긴 슬럼프 끝에 간신히 복귀한 사례가 많은 만큼 이번 선거에 박영선의 정치적 명운이 걸렸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 범여권 후보 단일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원래는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을 포함한 3자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김진애 의원이 거부하면서 먼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과 양자 단일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3월 6~7일 양일간 여론조사를 진행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단일 후보를 결정한다. 3월 4일에는 양 후보간 토론회가 열렸는데 부동산 문제, 소상공인 지원 문제를 두고 날카롭게 정책 토론을 펼쳤다. 3월 7일 발표된 조정훈 의원과의 단일화 경선에서도 승리했다.

 

3월 9일, 열린민주당 김진애 후보와의 단일화도 합의했다. TV에서 1번, 유튜브에서 1번 총 2번의 토론회를 연 후 여론조사와 양당 당원 투표를 50%씩 반영하기로 해 17일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17일, 여론조사 결과 박영선 후보가 김진애 후보에게 승리하면서 최종 범여권(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시대전환) 단일후보가 되었다. 박 후보는 "매우 유쾌한 단일화 여정이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4·7 승리를 위해 이제 하나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단일화 논의 중인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아이들 밥그릇에 차별 뒀던 후보, 부잣집과 가난한집 자녀의 호칭을 차별하는 후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연상하게 하는 이러한 낡은 행정으로는 서울 미래를 기대하지 못한다"며 "낡은 정치의 전형, 철새 정치를 10년간 해온 방황하는 후보로도 서울의 미래를 기대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출마 선언 직후만 해도 타 후보들을 큰 차이로 따돌리며 당 내 여러 논란 속에서도 승기를 쉽게 잡아 민주당 중심의 정계 질서가 재구축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 보내는 지지와는 별개로, LH 사태가 터지고 여권 인사들의 투기 의혹까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며 전국민이 분노를 표출한 이후 여론조사상으로 야당의 주요 주자인 안철수, 오세훈과 비교할때 어느쪽과 붙더라도 15퍼센트 이상 크게 뒤쳐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야권후보들 역시 3자 구도로 가서 제살 깍아먹기보다는 단일화할 것이 유력한 만큼 본인이 15퍼센트가 넘는 격차를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하느냐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되면서 오세훈 후보와 경쟁하게 되었다.  오세훈 후보와의 격차가 안철수 후보와의 격차와는 적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희망적인 상황이지만 여전히 지지율이 15프로 넘게 뒤쳐지고 있어서 승부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말실수와 본인의 LH 사태 해결을 위한 특검 도입 주장 등으로 인해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아무리 사전투표나 재보궐선거가 여당 측에 유리하다고 하지만 15%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뒤집는 것은 내부적인 결속만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 엎친데 덮친격으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박원순 찬사 망언으로 박영선 후보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민주당 내부에서의 팀킬과 LH 사태로 인한 서울 시민들의 분노가 여전함을 반영하듯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직전인 3월 30일 실시된 매일경제의 3차 여론조사 결과 오세훈과의 지지율 격차가 더블스코어급인 27.6%까지 벌어지며 더욱 불리해 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지율이 한 자릿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거나 샤이 진보들이 훨씬 많고 바닥 민심은 다르다면서 지지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민들이 민주당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인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결국 국민들에게 정책 실패를 인정하며 읍소전략으로 '한번 더 기회를 주시면 부동산 안정에 힘쓰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주거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무한책임을 느끼며 현재 시행되는 부동산 정책들을 대거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번엔 청와대가 '현재 부동산 정책은 문제가 없으며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또다시 엇박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4월 1일 사실상 마지막 여론조사에선 여전히 20% 넘는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더더욱 상황이 어려워졌다. 세부적으로는 오세훈 후보 측이 내세우고 있는 '정권심판론'이 박영선 후보 측이 내세우는 '정권안정론'을 20% 넘는 차이로 누르며 현 정권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반영 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누구에게 투표할지 모르겠다고 밝힌 부동층도 줄었으며 대부분 오세훈 후보 측으로 이동 한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영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오세훈 후보보다 30% 가량 낮은 24.6%로 나타났다.

4월 4일 서울 서초구 모 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오세훈 후보와 만났다. 예배 초반 악수를 하긴 했으나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월 7일 재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오세훈 59.0% VS 박영선 37.7%로 큰 표차로 낙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상대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자 처음에는 결과가 안 나왔다며 인터뷰를 피하려고 했지만, 진심이 거짓을 이기길 바란 분들에게는 감사를 전하고 회초리를 들어준 분들에게는 자신이 다 받아들이겠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남기고 퇴장했다.

 

개표결과 오세훈 57.5% VS 박영선 39.18% 로 오세훈 후보가 박영선 후보보다 약 90만표를 더 얻으며 당선이 되었다. 개표 결과를 보면 1년전 총선 때와는 정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 25개 구에서 모두 오세훈 후보가 승리했으며,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는 30% 조차 넘지를 못했다. 또한 박영선 입장에서는 정계 입문 후 출마한 모든 선거 중 처음으로 낙선이 기록되었고,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구로구에서도 패배를 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3월 이후부터 구도 자체가 민주당에게 불리했던건 사실이었으나, 잦은 말실수와 시종일관 네거티브 전략을 내세웠다. 당 뿐만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인 입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선은 원래 안희정계 였다가 김종민과 함께 친문으로 전향한 정치인인데, 특이하게도 재보궐에서 39%의 득표율을 거뒀다. 이는 중도층이 이탈하고 소위 말하는 강성 친문들의 표만 흡수 했다고 볼 수 있다. 청문회 스타 시절부터 저격수로 유명했는데 토론회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준비 기간이 부족했냐는 비판도 받는다.

박영선은 우상호 후보와 당원 투표를 거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출마했고 3월초 LH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오세훈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이기고 있었으나 LH라는 치명적인 스캔들로 인하여 큰 격차로 패배했다. 오세훈 시장이 고민정이라는 정치 신인에게 패배하면서 정치 생명이 암울해졌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 처럼 1년뒤 지선에서의 결과에 따라서 행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당일에는 본인도 패배를 직감했는지 개표일에 불참했다. 

 

 

 

낙선 이후

낙선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를 비판하는 행보를 꾸준히 보이고 있는 중이다.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1년 남짓인 데다, 민주당 내에서도 서울특별시장 후보군이 마땅치 않다 보니 1년 후 있을 차기 지방선거에서 박영선의 재차출설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장 2위 낙선자는 사실상 정치 활동이 끝장나는 징크스를 감안하면,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박주선이나 노회찬처럼 재기를 위해 활동 무대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지역구였던 구로 을에서의 평가가 매우 좋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 윤건영 의원 역시 딱히 별다를 논란이나 문제점을 일으키지 않았다 보니 본인 지역구로 다시 돌아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대선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0.7%p차 석패로 끝난 직후에도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하마평에 오르던 서울특별시장이나 경상남도지사 선거 중 어느 자리에도 후보로 지원하지 않았다.

한편 4월 12일, 송영길 전 대표가 박홍근 원내지도부가 추진 중인 검수완박 입법안에 대하여 사법고시 합격해서 변호사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검찰에 비해서 경찰은 훨씬 권력을 잘 따르지 않겠느냐"는 실언을 하자 페이스북을 통해 "경찰비하 발언이 아닌지"라며 "사법고시 선민의식?"이라고 꼬집었다.

4월 19일,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 송영길 전 대표, 박주민 의원이 전부 컷오프되면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다시 차출될 가능성이 생겼다. 실제로 전략공천이 유력하고 본인에게 의사를 타진 중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박영선 여담 일화 재산 인간관계

키가 169cm로 굉장히 크다. 동나이대 여성의 평균 키가 약 155cm인 것을 감안했을 때, 요즘 기준으로는 170 중후반 정도인 셈. 이렇게 큰 키 때문인지 배구선수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청문회에서 "배구를 한 적도 없고, 운동을 그렇게 잘 하는 편도 아니다"라고 해명해 루머로 밝혀졌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첫 대국 전 이세돌 9단을 찾아가 사진을 찍은 것을 공개하여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각종 스포츠 경기 직전에는 선수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이거나 경기를 대비하여 최종 컨디션을 조절할 만큼 민감한 상태다. 실제로도 경기 직전에는 코치나 감독을 비롯한 관계자를 빼면, 인터뷰와 고위 인사를 무조건 배격할 정도로 선수에게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매체에서는 경기 직전 선수에게 부담을 주는 인터뷰나 과도한 사진 촬영을 엄금한다. 하지만 이후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이세돌 9단이 직접 박영선을 지지하는 공개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이 영상에서 이세돌 9단은 2002년 박영선이 MBC에서 인터뷰를 하면서부터 인연이 생긴 사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2016년의 이 사건도 지위를 이용했다기보단 그냥 개인적 인연으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 

지역구 공약 이행률은 96%에 달해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의원들 중에선 톱 랭커로 꼽힌다. 박 의원 본인이 굉장히 일을 잘하는 데다가 또 열심히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대 총선에서는 60%대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했고, 온라인 지지층 민심이 안 좋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던 20대 총선에서도 무난하게 4선(지역구에서는 3선)에 성공했다. 덕분에 의원실 보좌진들이 고생한다고 하는데, 어쩌다 어른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손석희 전 JTBC 대표이사 사장보다 4살 연하이지만, 경력으로만 따지만 손 전 사장보다 MBC 1년 선배라고 한다. JTBC 뉴스룸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 박영선 의원을 연결해 인터뷰를 했는데 언뜻 보면 둘이서 뉴스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2018년 들어서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준비했을 때에는 매스컴에 얼굴을 자주 드러내며 홍보활동을 많이 했었다. 어쩌다 어른에 나와서 의원실 보좌진들을 엄청나게 굴리는 것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등 대중매체 노출 빈도를 높이고 있다. 위의 윤성빈 선수 인증샷 논란 역시 자기 홍보의 일환으로 벌였다가 실패한 사례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도 상승은커녕 비호감으로 낙인 찍히며 역효과를 맛보기도 했다.

김정숙 영부인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도 닮았다고. 세 명 다 수사자 상이라고 한다. 박영선 본인도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인상차이는 크다. 김정숙은 온화한 인상이지만, 박영선은 대부분의 정치인 특성상 김정숙 여사에 비하면 좀 더 선이 굵고 날카로운 이미지다. 오히려 메르켈 총리와 인상이 비슷한 격이다. 미국 전 국무장관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도 인상이 비슷하다는 말도 있다.

윤성빈 선수 인증샷 논란에서 많이 욕을 먹었지만 다음 날 이 사건은 어느 역대급 사건에 의해 비난 여론이 사그러들었다. 물론 화살이 다른 방향으로 갔을 뿐, 관련 기사만 나오면 여지없이 까인다. 본인 스스로도 이 이야기가 나오면 "그 일로 많이 배웠다"며 사과의 뜻을 표한다.

지역구의 이름을 따서 '구로박'이라는 별명이 유명하다. 바리에이션으로 '구로마검'이라는 별명도 있다. 상대 정당을 향해 상당히 강한 공격과 반박을 서슴치 않지만 상술한 각종 논란 때문에 더민주 정당 이미지에 흠집을 낸 적도 있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언주야 시리즈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이언주의 총선 낙선 후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대선 직전 민주당 탈당 나만 할 줄 몰랐다."라고 발언한 걸 볼 때, 이종걸과 박영선 의원에게 속닥거리는 사진이 진짜 국민의당으로의 영입제의였던 것이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박영선 또한 원외인사가 되었지만, 경선에서도 떨어진 이언주와는 달리, 본선에서 붙어서 떨어졌다는 게 그나마도 이언주 보다는 낫다.

2015년 박지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하면서 많이 잊혀진 사실이지만,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 박지원과 역대급 케미를 선보이면서 청문회에서 정부 인사들을 대거 낙마시키는 등 맹활약을 해서 박지원과 세트로 박남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게다가 이 둘은 민주당 내에서도 대표적인 비문(非文)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영선 또한 박지원처럼 국민의당으로 탈당할 거라고 점쳐지기까지 했을 정도면... 하지만 박지원만 탈당하고 박영선 본인은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하면서 박남매는 갈라서는 듯 했으나, 결국엔 돌고 돌아 이 둘은 각각 문재인 정부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는 1세대 3주택자였다. 이 중 1채는 일본에 있다. 서대문구 연희동 단독주택, 종로구 교북동 경희궁자이 4단지 오피스텔을 보유하고 했으며,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도 아파트가 있다. 본인 말로는 도쿄 아파트는 이명박 때문에 샀다고 한다.  

2020년 8월 18일 91살의 시어머니가 사는 종로구 교북동 오피스텔을 매도하면서 한국에서는 1세대 1주택자가 됐다. 시어머니는 연희동 주택에서 모실 예정이라는 듯. 

2021년 1월 TV조선 아내의 맛 131회에 출연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130회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8년 3월 tvN 인생술집 61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2021년 2월 음성 채팅 플랫폼 Clubhouse를 통해 수백명 유권자들과 이색적인 소통을 했다.

두 배로라는 문구를 매우 좋아한다. 선거 때마다 두 배로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적어 왔는데, 공교롭게도 두 배로라는 문구를 쓰지 않은 2021년 재보궐선거 때는 낙선했다.

 

 

박영선과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와 진행했던 토론이 재밌고 웃기다는 반응이 많다. 유튜브 다시보기 영상에는 재밌어서 하루에 한번씩 본다거나, 여러번 돌려보고 있다, 두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씩 토론해 달라, 우울할 때 다시 본다 같은 댓글이 많다. 일반적으로 재미와는 거리가 먼 정치주제를 토론형식으로 진행하는데도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

2021년 3월 17일 오후 1시쯤 박영선이 사용하는 트위터 계정에는 "가상화폐 이벤트 감사합니다. 방금 2천400 루나를 받았다(Thank you for your crypto event! I just got 2400 $LUNA)"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당신과 함께하는 서울(Seoul with you!)" "루나 투 더 문($LUNA To the moon)"이라는 문구도 담겨있었다. 이에 박영선 캠프 측은 공지를 통해 해당 멘션은 해킹으로 인한 것이라며 즉시 삭제 조치했다고 밝혔다. 캠프 측은 “현재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박 후보 트위터의 특정 멘션은 계정 해킹으로 인해 발생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2021년 3월 본인과 배우자, 아들의 재산으로 56억6천912만원을 신고했다.

동아일보에서 4.7 재보선을 앞두고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후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서 "베일에 싸여 있는 진실 1가지를 말해주는 수정구슬이 있다면 무엇을 알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본인만 혼자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셀프보상 의혹을 알고 싶다"고 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4.7 재보궐선거 당선인들을 축하하면서 오세훈과 함께 박영선을 거론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부산시장 당선인 박형준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오세훈과 박영선에 축하를 표한 것. 댓글을 통해 잘못된 표현임을 확인하고 정정하였다.

비디오머그에서 각각 오세훈과 박영선 문서의 비판 및 논란 항목을 직접 읽으며 각 후보자에게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으나 오세훈 편이 올라오고 일주일 뒤에 올라온다는 영상 말미와 다르게 일주일이 지나서도 영상이 올라오지 않다가 4월 5일이 돼서야 비디오머그가 박영선 측에서 일정상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고 거부했다는 것을 밝혔다.

2021년 4월 6일, 선거를 하루 앞두고 클리앙 회원들에게 서신을 썼다. 본인이 클리앙에 직접 올린 것은 아니고 우상호 공동선대위원장을 통해 올렸다.

2021년 8월 3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재명 지사와 함께 대담을 나누는 영상을 올리며 사실상의 이재명 지지 선언을 했다. 열린캠프에선 "지난 4·7 재보궐 선거 이후 미국·중국 패권경쟁과 4차 산업혁명 물결 속 한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온 박 전 장관이 화두를 던지고, 대전환의 시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고자 나선 이 지사가 답하는 '선문명답'을 통해 두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난다"라고 소개했다. 

 

 

 

 

박영선 선거 이력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8,145,814 (38.26%) 당선 (9번)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구로 을

34,783 (47.30%)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54,902 (61.95%) 당선 (1위)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0,526 (54.14%) 당선 (1위)

4선

 

2021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1,907,336 (39.18%)

낙선 (2위)

 

 

박영선 저술 활동

박영선의 인터뷰 - 사람 향기 (나무와숲, 2002)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라 (마음의숲, 2012)

누가 지도자인가 (마음의숲, 2015)

박영선, 서울을 걷다 (가나출판사, 2018)

《박영선과 대전환, '21분 컴팩트 도시 서울'을 향한 큰 걸음》 (비타베아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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