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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총수 김범수 재산 나이 학력 고향 아내 프로필


대한민국의 기업인. 카카오의 창업자이자 現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이전에 PC방 붐이 일던 시절, PC방 관리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으로 한게임을 창업해 지금의 네이버와 합병한 이력이 있다.

 

카카오 총수 김범수 재산 나이 학력 고향 아내 프로필

 

김범수 프로필
김범수 의장

 

김범수

金範洙| Kim Beom-su

 

이명

브라이언 킴(Brian Kim)

 

출생

1966년 3월 8일(56세)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두정리

 

거주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국적

대한민국

 

 

직업

기업인

 

현직

카카오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2022.03~)

카카오 이사회 의장(~2022.03.14)

카카오 임팩트 이사장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 초대 총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학력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

 

부모

아버지 김진용

어머니 한상분

 

형제자매

2남 3녀 중 장남

 

배우자

형미선

 

자녀

장남 김상빈

장녀 김예빈

 

재산

96억 달러 (한화 약 11조 6,800억원)

 

 


김범수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집안에서 2남 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다섯 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이사왔다고 한다. 김범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작 김범수의 부모님은 한번도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노는 것도 마음껏 놀고, 공부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했다. 다만 '넌 잘하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해줬다고. 훗날 김범수 본인은 그런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술회했다. 김범수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고, 다섯 남매를 다 대학에 보낼 수는 없어서 결국 김범수 혼자만 대학에 가게 됐다. 그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 베서 혈서를 쓰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웠다고 한다. 1년 후에 2개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86학번)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다. 보통 가정이 어려우면 공부를 독하게 할 법도 한데, 힘들었던 재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빠졌다. 그렇다고 학업을 놓았던 것은 아니고 4년 안에 학사, 2년 안에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1992년 석사를 졸업한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팠다. 그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다. 문태식 마음골프 대표,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등이 대표적이다.

 

 

김범수 창업 이력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김범수는 현재 카카오 대표 남궁훈과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 이라는 대형 PC방을 창업한다. 법인명은 미션엔터테인먼트.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데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천만 원을 벌 만큼 PC방은 승승장구했고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는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내던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해진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많은 돈은 받고 네이버를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창기 인터넷 기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는 검색 엔진과 서버에 많은 투자가 필요했고, 그 투자금은 한게임에서 번 돈으로 메꿨다.)

그 후,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났다. 자녀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김범수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당시에 큰 애는 고1, 둘째는 중3이었는데 '나도 재수했는데, 애들이 1년 정도 늦게 대학가면 뭐 어떤가' 싶어서 식구끼리 여행다니고, 당구치고, PC방에 다녔다고 한다. 더 무서운 건 이때 애들한테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강제로 놀게만 했다고 한다.( 식구 중에 딸이 게임을 별로 못했는데, 아들과 게임 고수인 아내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넷이서 게임을 하다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게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김범수 이해진
이해진 김범수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iPhone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다. 본인이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며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을 짐작,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위와 같은 서비스를 출시했다. 카카오톡은 PC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채팅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 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수 제한이 있었던 건 둘째 치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했다.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 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흥행을 이끌었다. 현재는 네이버의 라인과 페이스북의 메신저 등 만만치 않은 경쟁사들이 있지만 2014년까지도 경쟁사들의 성장이 더딜 때라서 김범수 의장의 시장 선점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를 보면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투자이고 사업이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 또한 통신망 투자를 한 상태에서 수익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카카오톡은 그것을 무료로 해주었던 거. 사용자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가 공짜여서 좋기는 한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네이버 합병으로 벌어들인 투자금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김범수는 카카오톡 초창기에 단 한푼의 수익도 없이 서버 투자로 매달 10억 원 이상씩 돈만 쓰고 있었다. 다만 SDS와 한게임 등을 통해 인터넷 사업을 영위해온 그간 경험에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김범수 개인 돈마저 고갈되고,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메신저 렉 걸린다고 아우성이 들리는 상황이 되고, 결국 중국에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속적으로 투자를 넓힌다.  다만 김범수의 막대한 돈, 텐센트의 투자금 계속 비용이 발생될 무렵, 카카오톡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메신저로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는데, 카카오 게임을 통해서 메신저 사업에서 수익 창출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로는 선물하기 기능 등등. 이후 김범수의 전략대로 인터넷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보고, 네이버 이해진은 일본과 그 변방 국가(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라인을 기반으로 한 메신저를 재빨리 론칭했고, 중국은 QQ를, 전 세계에서 가장 발빠른 이스라엘 기업도 메신저 회사를 만들었으나, 페이스북이 빠르게 인수한다.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한다. 한때 그의 주 파트너가 경쟁사였던 네이버였음을 감안하면 합병이긴 해도 경쟁사와 인연을 맺은 것이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카카오는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을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김범수 논란 및 사건 사고

미국 원정 도박

2015년, 김범수가 2007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고급 호텔인 벨라지오의 카지노에서 5만 달러(약 5,800만원)를 가지고 도박을 한 것으로 미국 재무부 자료로 드러났다. 1회 평균 베팅 액수는 2,440달러(280만원) 정도였으며, 도박 이후 그는 하루도 되지 않는 사이 총 1만6,993달러(약 2,000만원)를 잃은 것으로 미국 재무부 기록으로 남아있다. 현행법상 내국인이 국내외에서 단순 오락형태가 아닌 이정도의 액수로 도박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공정위에서 '계열사 신고 누락' 조사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김 의장이 카카오의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케이큐브홀딩스의 ‘지정자료’ 신고를 누락하거나 허위로 신고했다는 이유다. 

카카오가 계열사 공시 누락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은 것은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경영권 승계 준비 의혹

20대 두 자녀에게 500억 원이 넘는 카카오 주식을 증여했는데 이 자녀들이 사실상 카카오를 지배하는 비상장 회사에 다니는 걸로 확인됐다. 김범수 의장이 100% 지분을 가진 곳이다. 이 회사를 자녀들이 물려받는다면 꼬리가 머리를 지배하는 이른바 '재벌식 승계'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범수 의장은 승계 작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별다른 투자 활동을 벌이지 않고 있는 케이큐브홀딩스가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말 기준 케이큐브홀딩스의 직원 수는 5명으로, 급여 지출은 약 14억 원이다. 

케이큐브홀딩스가 배당금 절세를 노린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2021년 공정위의 계열사 신고 누락 조사로 인해 김범수 일가가 경영권 승계를 준비한다는 의혹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 

 

케이큐브홀딩스 사익편취 여부 공정위 조사

공정위 기업집단국의 조사는 김범수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의혹으로 모이고 있다. 지주사 격인 케이큐브홀딩스를 가족회사로 활용해 부를 늘렸는지가 핵심이며, 공정위 조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케이큐브홀딩스는 뚜렷한 자체 수익원은 없지만, 카카오 지분 10.6%를 보유하고 있다. 2020년 배당수익이 88억인데 회사는 11억의 손실을 냈으며, 김범수 의장의 막냇동생이 퇴직급여로 13억 9600만 원을 수령했다. 

 

김범수 국정감사
김범수 국정감사

 

김범수 여담 일화

2018년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하였다. 작년 네이버 창업주에 이어 현재 구글과 공정한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호소하였다.

2020년 완공된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이 서울을 제외한 개인저택 공시지가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전력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며 30여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고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등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빈소에 조문을 간 바 있다. 조문을 한 이유는 자신이 유일하게 직장인으로 다닌 곳이 삼성 SDS여서라고 밝혔다.

카카오프렌즈 최고 인기캐릭터 라이언과 닮았다. 그런데 라이언의 모델이 실제로 김범수 의장이다! 카카오는 수평적 기업문화를 위해 직원들끼리 별명(영어 이름)을 부르는데, 김범수 의장의 별명이 브라이언이다.

자신의 아내, 자식들에게는 각각 6만 주의 주식을 증여했고, 친인척들에게도 각 집마다 2만 5천 주씩 증여했다. 총 33만 주를 가족 및 친인척들에게 증여한 것.  대충 계산해보면 가족들에게는 각각 250억씩, 친인척들에게는 집당 100억씩 주었다.

이사회 의장이라 경영에 직접적인 참여는 없지만 CEO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실제로 임지훈 前 카카오 대표에서 공동 대표 체제로 바꾼 게 김범수다.

2021년 2월 8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확한 금액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김 의장의 재산이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250만 주(전날 종가 기준 5조 7,000억 원) 등 총 1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최소 5조 원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부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에서 역대 최다 기부자가 된다. 다만 해당 발언이 자녀들에 대한 대규모 증여 및 케이큐브홀딩스에 대한 뉴스가 뜬 이후에 이루어진 점, 기부라는 명목으로 대규모의 재단을 설립 후 이를 자식에게 넘기는 방법이 전세계 부유층의 가장 흔한 탈세 루트라는 점 등으로 인해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해당 기부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대한상의(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추천으로 2021년 2월 대한상의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서울대학교는 재수해서 들어갔다고 한다. 재수를 해서 그런지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1학년때 온갖 게임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 경험 때문인지 청년들에게 너무 치열하게 살지말라고 조언해준적있다.

김범수의 모교인 건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에는 김범수의 이름을 딴 김범수홀이 있다. 학교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예비소집을 온 신입생들 중 열에 다섯 정도는 그 앞에서 가수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흥얼거린다고 한다.

카카오 문어발 확장이 화두에 오른 2021 9 블라인드에 김범수에 대한 카카오 직원의 글이 올라왔다. 직원 입장에선 별로 좋은 여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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