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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6. 6. 20:05

권노갑 나이 고향 학력 이력 부인 자녀 프로필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40년 넘게 그를 보좌했다. 그래서 동교동계의 좌장 또는 맏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권노갑 나이 고향 학력 이력 부인 자녀 프로필

 

권노갑 프로필
권노갑

 

권노갑

權魯甲 | Kwon No-gab

 

출생

1930년 2월 18일 (92세)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송천리

(現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서빙고 신동아아파트

 

등록기준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감문리

 

본관

안동 권씨

 

현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배우자

박현숙(朴賢淑)

 

자녀

아들 권정민, 딸 권수현

 

학력

목포북교국민학교 (졸업)

목포상업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경제학 / 학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 /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 / 박사 수료)

 

종교

가톨릭 (세례명: 스테파노)

 

신체

B형

 

병역

병역면제 (연령초과)

 

경력

목포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

민주당 김대중 국회의원 비서관

민주화추진협의회 발기인·상임운영위원

평화민주당 당무위원 겸 창당발기인

평화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제13대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 평화민주당)

민주당 총재 당무담당 특별보좌관

민주당 전라남도 지부장

제14대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 민주당)

민주당 최고위원 겸 당무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지도위원회 부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

제15대 국회의원 (전국구 / 새정치국민회의)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선거대책위원회 상임부의장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 겸 상임고문

동국대학교 총동창회 회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대통합민주신당 당무위원 겸 상임고문

통합민주당 당무위원 겸 시민행정특임고문

민주당 최고위원 겸 상임고문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국민의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국민의당 전임고문 겸 당무위원

민주평화당 전임고문 겸 대표최고상임위원

대안신당 전임고문 대표최고상임위원

 

 


권노갑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30년 2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송천리(현 안동시 송천동)에서 아버지 권치삼(權致三, 1870 ~ 1932)과 어머니 밀양 박씨(1906 ~ ?)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으나 곧, 가족들과 함께 전라남도 목포부로 이주했다. 그래서인지 김홍일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비례대표로 이적한 1996년에 잠시 국민회의 안동 을 지구당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3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홀어머니가 곧바로 재혼을 해 이부형제(아버지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권노갑 인터뷰
권노갑 인터뷰

 

그 뒤 1949년 목포상업고등학교, 1953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49학번)를 각각 졸업하였다. 이후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목포여자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래서인지 영어에 능통하여 동교동계에서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는 통역 일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최근에는 동시통역사에 도전한다든가 동시통역대학원 과정에 갔다든가 하는 소식들이 있었고, 2013년 8월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자 김대중의 개인 비서로 활동하였으며, 김대중의 계파인 동교동계에서 한화갑과 양갑으로 불리며 정치 활동을 했다. 여느 정치 계파나 다 그렇겠지만, 동교동계라고 해서 또 다 같은 동교동계는 또 아니다. 권노갑의 경우에는 김대중의 정치 초기부터 가신에 속했던 사람으로, 보통 동교동계의 좌장이자 구파의 대표자로 불렸고, 한화갑은 신파로 분류된다. 후에 새천년민주당 정풍 운동 당시 이에 대한 태도의 차이로 신구파간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는 16대 대선 정국까지도 이어진다. 다만, 권노갑과 한화갑 개인의 사이는 좀 더 이전부터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 정권 때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조작 때 고문을 포함하여 온갖 고초를 겪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서 민주정의당 최영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패배 후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치러진 199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한편 같은 해 지역구를 김대중의 장남 김홍일에게 물려주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경북 안동을지구당위원장과 경상북도지부장을 맡았다. 정권교체 이후 안동을지역구 현역의원이던 권정달의 영입에 나섰고 권정달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1997년 한보 사태로 기소되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이 되었지만 2001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를 하게 되면서 정동영을 필두로 일어난 정풍운동에 밀려서 결국 사퇴해야 했다.

 

 

권노갑은 DJ의 모든 조직과 자금을 관리할 정도로 DJ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래서 대선 과정 중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김대중 정부에서 어떤 직함도 없었지만 당정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특히 DJ의 자금까지도 모두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파워는 실로 막강했고, 자연스럽게 동교동계 전체에서 김대중 대통령 다음가는 최고 실세로 군림했다.

이런 위세를 보여주는 일화로 1월 1일에 권노갑 집 앞에는 1,000명이 넘는 인파가 새해 인사를 하러 몰려가 권노갑의 집으로 향하는 일대의 도로가 모두 마비될 정도였다는 일화가 있으며. 권노갑의 아들과 큰딸 결혼식에는 수천여명의 하객이 몰려 발을 디딜 틈이 없었고, 화환이나 축의금을 일절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어떻게든 그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려는 하객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러한 막강한 실세인 그도 결국 2002년 진승현 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정치적 몰락을 하고 만다. 당시 내용을 요약하면 권노갑 의원이 국가정보원 차장인 김은성을 통하여 불법자금을 받은 것으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진승현 게이트는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권노갑 정치 활동
권노갑 정치 활동

 

구속은 되었지만 정치적 배려로 2004년 말부터 일시적 형집행정지 2005년 9월에는 형집행정지로 두달간 형집행 정지로 일시 석방 되었고, 2006년 열린우리당의 적극적 건의로 특별감형, 2007년 2월 특별 사면으로 출소하였다.

이 후 2선으로 물러나 민주당과 그 후신 새정치민주연합의 상임고문으로 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후계자인 문재인 전 대표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동교동계와 달리 문재인 대표 시절 재보선 지원유세에도 다녔으나 결국 2016년 1월 민주당을 탈당, 안철수 지지를 선언했다. 2017년에는 국민의당 상임고문으로 있었다.

2018년 야권발 정계개편에서 안철수 대표의 통합에 반발하여 이훈평, 정대철과 같은 동교동계 원로들과 함께 민주평화당의 창당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줄 알았으나 이해찬 대표가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해 총선 전에는 입당을 불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21년 재보궐선거 때 타 전직 국회의원 115명과 함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2022년 1월 13일 이재명 후보의 여권대통합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에 5년만에 복당하고 3월 22일 송영길 대표와 함께 상임고문에 신임된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이후 돌고돌아 다시 상임고문이 된 것. 

2022년 5월 24일 제8회 지선에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등판했다. 

 

 

권노갑 논란

진승현 게이트

권노갑 의원이 국가정보원 차장인 김은성을 통하여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하지만 2003년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판결받고 석방되었다.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현대그룹 관련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에게서 금강산 카지노, 면세점 허가를 비롯한 대북 사업 전반에 대한 지원을 요청받고 현대상선에서 비정상적으로 나온 20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2003년 대검 중수부에 구속되어 재판을 받다가 2004년 10월 8일 징역 5년에 추징금 200억원의 기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0억은 대체로 1인이 뇌물로 받기엔 너무 큰 돈이라 (그것도 현금으로) 정치자금이 양성화되어 있지 않던 당시 여당의 정치자금으로 썼다는 평이었고, 여권에선 개인적인 비리로 보지 않아서 그다지 비판 받지 않았으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사용용처에 대해서 수사하라며 크게 반발했었다. 

구속은 되었지만 정치적 배려로 2004년 말부터 일시적 형집행정지 2005년 9월에는 형집행정지로 두달간 형집행 정지로 일시 석방 되었고, 2006년 열린우리당의 적극적 건의로 특별감형, 2007년 2월 11일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권노갑 논란
권노갑 논란

 

권노갑 여담 일화

담배를 평생 한번도 피우지 않은걸로 유명하며 심지어 혐연가이다. 그래서 같은 동교동계 중진 동료이자 지독한 골초였던 박상천과 담배 피우는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아무튼 담배에 일절 손대지 않고 건강관리를 잘해서인지 90세가 넘었음에도 건강한 삶을 유지중이고 얼굴도 90세 넘은 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다. 발음도 정확하다.

더불어민주당 최고령 상임고문으로 1931년생 이용희, 1937년생 김원기, 1940년생 오충일, 1941년생 임채정보다 나이가 많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권노갑 선거 이력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87,735 (84.20%) 당선 (1위)

초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76,486 (82.05%) 당선 (1위)

재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4,971,961 (25.30%) 당선 (6번)

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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