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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구 회장 프로필 나이 학력 이력 고향 가족관계 (금호석유화학)


대한민국의 기업인. 금호석유화학그룹 초대 회장.

 

박찬구 회장 프로필 나이 학력 이력 고향 가족관계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프로필
박찬구

 

박찬구

朴贊求|Park Chan-koo

 

출생

1948년 8월 13일 (73세)

전라남도 광주부

(現 광주광역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종교

개신교(장로회)

 

 

본관

밀양 박씨

 

국적

대한민국

 

학력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통계학 / 학사)

 

직업

기업인

 

부모

아버지 박인천 어머니 이순정

 

형제자매

형 박성용, 박정구, 박삼구

누나 박경애, 박강자

여동생 박현주

남동생 박종구

 

배우자

위진영(1952 ~ )

 

자녀

장남 박준경(1978 ~ )

장녀 박주형(1980 ~ )

 

경력

금호실업 이사

금호건설 상무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

IISRP(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 회장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상훈

철탑산업훈장 (2000년)

금탑산업훈장 (2005년)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 (2010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상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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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구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초기 이력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창립한 박인천 전 회장의 5남 3녀 중 네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등학교(42회),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형들처럼 대학 졸업 이후에는 바로 금호실업에서 근무를 시작해, 금호건설 상무,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이 되었고,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이 되었다.

 

금호석유화학 박찬구금호 박찬구

 

셋째형 박삼구와의 갈등과 분리

둘째 형의 작고 후 셋째 형이 회장직을 승계 받았는데, 문제는 이 형이 그룹의 전통이었던 형제경영을 깨뜨렸고, 무리한 M&A의 외형확장으로 인한 그룹의 위기가 현실화 되자 두 형제간의 책임공방 다툼이 점화되었다. 박삼구는 원칙대로라면 그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 부문 회장에게 경영을 승계했어야 했지만,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려 했다. 그러기 위해 형제들끼리 합의한 서류 내용을 해마다 조금씩 수정해가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금호그룹을 패망으로 몰아간 2건의 M&A는 전적으로 박삼구가 주도한 반면 박찬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고 M&A 실패로 금호가 휘청거리자 두형제간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결국 형편없고 무능한 형의 경영능력으로 인해 박찬구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등 계열사들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매각대금으로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늘려서 2011년 석유화학 부문을 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신청, 최종적으로 2015년 12월에 계열분리를 마무리 하였다.

 

 

이 계열분리 작업은 박찬구 당시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비밀리에 단독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오늘 날의 금호석유화학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원래 금호석유화학에서 주로 근무할 정도로 화학산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많았다. 박삼구는 아시아나항공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를 용납할 수 없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던 건 덤. 외형확장을 중시하다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하게 되어 중견기업 회장으로 추락한 박삼구 회장과 달리 박찬구는 계열 분리 후 안정적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영업이익 수천억대를 꾸준히 내는 실적을 올려 이제는 형보다 더 큰 회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세간의 경영 평가를 보면, 박찬구는 내성적이고 언론 노출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재무 흐름과 현금 창출을 중시하는 안정적 경영 스타일로 M&A병자인 박삼구와 완전히 판이한 경영 스타일이다. 만약 예정대로 박찬구에게 금호그룹 회장 자리가 넘겨졌다면, 적어도 금호그룹이 이렇게까지 쇠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박삼구의 문제는 M&A뿐만 아니라 빚잔치를 벌이며 그룹을 파멸로 몰아넣는 독불장군이라 기업인으로서 할 수 없는 짓만 골라서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회장이 되지 못한 점에 대해선 비운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사실상 그룹해체 수준으로 완전히 몰락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형과 사업 측면에서 결별한 것이 오히려 박찬구 본인, 그리고 떼어내온 석유화학 계열사들에게 큰 호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찬구 대표직 사퇴 및 전문경영인 체제 선언

2021년 5월 4일, 회장직은 유지하되 대표직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하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의료장갑의 주 소재인 NB라텍스의 수요 증가로 화려한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용퇴를 결정한 이유는 형제의 난 등 굵직했었던 경영분쟁을 털고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여 이제는 그룹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췄으며, 회사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라면 전문 경영인들을 대거 이사회에 진출시켜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즉, 국내 기업 중 보기 드물었던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박찬구의 장남인 박준경 전무(영업본부장)와 장녀 박주형 상무(재무구매담당)가 각각 부사장과 전무로 나란히 승진하면서 3세 경영승계가 본격화되었다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박준경 부사장의 경우 전무로 승진한지 불과 11개월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라 승계작업에 속도가 붙은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환하는 과도기적 상황속에서 박찬구 회장의 자녀들이 구심점 역할을 하며 회사의 경영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찬구 회장

 

박찬구 사건 사고

1999년 12월 30일, 박찬구 당시 금호석유화학 사장은 네 형제와 함께 1998년 4월 계열사인 금호타이어와 금호건설이 합병한다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금호타이어 주식 5만5천주씩을 사들인 뒤 같은해 12월 이를 금호석유화학에 되팔아 2억3천만원씩의 차익을 얻은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2000년 2월 15일, 법원은 박찬구 사장에게 증권거래법 위반죄를 적용하여 5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011년, 112억원 상당의 횡령 및 21억 8,000여 만원 상당 배임 등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4년 1월, 1심은 107억 중 아들에게 빌려준 34억원만 유죄로 판단하였으며 그 해 10월, 2심은 배임 혐의 인정액을 늘렸으나 1심과 같이 횡령은 인정하지 않았다.

2018년 11월, 대법원은 상고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확정.

 

이후 2019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으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 10조 2항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14조 1항에 의해 취업제한으로 법무부로 부터 취업제한 통보를 받은 후, 취업승인을 신청했으나 불허되었다. 이에 취업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21년 2월 1심은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한 취업제한은 형 집행이 종료된 때가 아니라 유죄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법원 판결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2022년 5월 19일 진행된 2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취업제한 기간에 집행유예 기간을 포함하도록 해석할 수 없다"며 법무부의 취업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고 박찬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국민에게 불리한 조항을 해석할 때에는 당연히 엄격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본적인 법 해석의 태도”라며 “특경법 문구 자체도 집행유예 기간이 취업 제한 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했다.

2021년 6월 7일, 금호석유화학이 2016~2020년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박찬구 회장의 처남 회사 2곳을 누락시킨 혐의로 그룹 본사에서 현장조사를 받은 바 있다. 해당 계열사들은 박 회장의 처남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곳들로 작년까지 계열사 명단에 올리지 않다가 올해 처음으로 명단에 올랐다. 사측에서는 두 회사를 계열사를 분리하는 과정에 있다며 자료 누락은 전혀 고의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찬구 횡령

 

박찬구 여담 일화

오늘날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국내 최고 수준의 석유화학 기업으로 우뚝 발전했고, 금호아시아나 시절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당시 형을 말렸다고 하니 어느 정도 선구안이 있는 셈이다. 차라리 3남 말고 정도경영을 중시하는 박찬구 회장이 후임 회장이 되었다면 금호는 건실한 대기업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몰락하면서 이제 박찬구의 금호석화그룹이 직계가 된거나 다름없어졌다.

김광두 전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1년 선후배사이로 굉장히 돈독한 사이였으나 2011년 금호아시아나그룹 형제의 난 당시 김광두 전 부의장이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편을 들고 자신의 해임안에 주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져 극도록 사이가 나빠졌다.

임직원들 사이에서 박찬구 회장은 '가족'이자 '동지'로 불리며, 젊은 시절부터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금호석유화학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해 임직원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재벌 회장 아들이라기보단 여느 직원들과 다름없이 실무 경험을 쌓아 왔으며, 항상 식사는 물론 일과 후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사내에서 그를 때로는 '아버지' 내지 '삼촌'처럼 우대하는 임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1987년 노동조합 설립 이후 여태까지 무분규 노사 협상이라는 기록적인 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장본인이다. 형제의 난, 조카의 난이 터질 때도 노조원 전원이 박찬구 회장을 전적으로 지지했을 만큼 노사 간 갈등의 일색인 국내 기업환경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소탈하고, 더불어 검소한 생활습관은 선친인 박인천 회장과 비슷하다는 평을 듣는다. 또한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부사장 역시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티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재계인사들과 달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한 두마디 정도 발언을 한다. 언론과의 인터뷰 자료도 상대적으로 박삼구에 비해 현저히 적은 편이며 형제의 난 이전엔 사진과 이름만 간단히 소개되었을 정도다. 다만, 사내에서는 임직원들과의 소통과 의견 조율을 중요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둑과 골프가 취미라고 한다. 박찬구 회장의 바둑 실력은 아마추어 3급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둑을 접하게 된 것도 아버지인 박인천 회장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골프의 경우 아시아나CC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로 꽤 수준급이라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범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국내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 지역 경제를 조금이나마 살리자는 취지로 그룹 전 계열사 직원에게 격려금 100만원을 지급했다. 박찬구 회장은 힘든 시국을 의연하게 견디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에게 이번 격려금이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3월엔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지역에 약 3억원 상당의 의료용 라텍스 장갑 200만장을 기증했고 네팔의 쩌우리저하리 병원에 코로나19 구호금 1억 원을 기부했다.

의전 차량으로 기아 더 뉴 카니발 하이리무진과 제네시스 EQ900을 사용 중이다.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 시절에는 1997년도에 1세대 체어맨, 2011년도에는 2세대 체어맨W 리무진을 사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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