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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4. 2. 6. 14:05

김기춘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제31대 대통령비서실장 역임)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대한민국 제15대~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역구는 경상남도 거제시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었고,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다.

 

김기춘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김기춘 프로필
김기춘

 

김기춘

金淇春 | Kim Ki-chun

 

출생

1939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군 장목면 시방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본관

김해 김씨

 

 

재임기간

제22대 검찰총장

1988년 12월 6일 ~ 1990년 12월 5일

 

제40대 법무부 장관

1991년 5월 27일 ~ 1992년 10월 8일

 

제31대 대통령비서실장

2013년 8월 5일 ~ 2015년 2월 22일

 

배우자

박화자

 

부모

아버지 김석윤, 어머니 강신방

 

자녀

1남 2녀

 

학력

외포국민학교 (졸업)

마산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박사)

 

병역

대한민국 해군 대위 전역 (군법무관)

 

종교

가톨릭 (세례명: 스테파노)

 

신장

172cm

 

약력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법무부 법제과장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청와대 법률비서관

대검찰청 특수 1과장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

법무부 출입국 관리국장

법무부 검찰국장

법무연수원 검찰연수부장

제29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제18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제12대 법무연수원장

제22대 검찰총장

제40대 법무부장관

숭실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제8대 KBO 총재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원 겸임교수

제15대 국회의원 (경남 거제시 / 신한국당)

제16대 국회의원 (경남 거제시 / 한나라당)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제16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제9대 여의도연구소장

제17대 국회의원 (경남 거제시 / 한나라당)

한나라당 경상남도당 위원장

제2-3대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

초대 시원공익재단 이사장

제31대 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정부)

 

서훈

홍조근정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황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

 

 


김기춘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초년시절

1939년 11월 25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거제도) 장목면 시방리 403번지에서 아버지 김석윤과 어머니 강신방 사이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외포초등학교, 마산중학교를 거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친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헌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서민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어린 시절을 가난했다고 묘사하듯이, 김기춘도 집안이 가난하여 가정교사 일을 하면서 고학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정치인 김기춘김기춘 사면

 

가정환경이나 출신이 어떻든 아무튼 그는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195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서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5.16 장학회의 1기 장학생으로 뽑혔었다. 입대 전 고등고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해군 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친다. 군복무 시절 대학원에 재학했고, 대위로 전역하였다.

이후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하여, 광주지검 근무 시절 지금의 부인 박화자와 결혼했다. 이어 부산지검, 서울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고 이후 법무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출세하게 된다.

초임 검사 시절부터 그는 출세지향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기질을 보였는데, 심재륜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검사 법무부 장관 신직수의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 언덕을 오르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 출세를 위해 상관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김기춘 여담 일화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별명은 '법꾸라지'와 '법비(法匪)'. 법조계의 비적이라는 의미이다.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가 김기춘을 법비보다 더 한 '법마(法魔)'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박정희가 김기춘을 '김똘똘'이라고 부르며 총애를 했다고 전해진다.

부인 박화자는 김기춘의 서울대 법대 동기 동창의 여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인은 광주광역시 지역 법조계의 원로였던 박찬일 변호사다.

슬하에는 1남 2녀를 뒀다. 외동아들 김성원은 의사, 큰 사위가 김도영 변호사, 작은 사위가 안상훈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안상훈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서 위원을 하기도 했으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캠프인 살리는 선대위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 사회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안상훈의 선친인 안병규 전 국회의원과는 사돈이다.

 

> 안상훈 프로필 보러가기

 

김기춘 유신헌법

 

가족사에는 비극이 있다. 중앙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활동하던 외아들 김성원이 2013년 12월 3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이후로 쭉 의식불명 상태로 있었다.  2013년경부터 줄곧 의식도 없이 미동도 하지 못한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회복이 힘든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6년 8월 22일 며느리와 공동으로 아들의 성년 후견인이 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JTBC 뉴스룸이 김기춘과 최순실이 불법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6공 시절(노태우 시절) 검찰총장을 맡았을 때, 운동권을 악의 세력이라고 지칭한 바가 있다. 그때의 별명이 미스터 법질서였다.

사이비 종교 오대양과 유착의혹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이와 별개로 구원파와 유착이 있다는 의혹이 있었으며,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는 실명으로 비난하는 걸개를 자신들의 집회 장소에 걸기도 했다. 2014년 이런 의혹을 제기한 검찰 후배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착 관계가 아니고 되려 적대적인 관계다라고 방송에 언급된 적이 있다. 또한, 플랜카드에 대해서는 구원파는 과거 오대양 사건의 누명에 이어 세월호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이 두 사건의 공통분모인 김기춘 실장을 지목이라도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현수막을 걸었다고 한다.

 

 

검찰총장을 퇴임할 당시의 퇴임식 광경이 한국일보 1990년 12월 6일자에 보도된 바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뭔가 씁쓸한 내용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하라는 신독의 자세를 강조해온 김 총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인천 조직폭력배 전과누락사건, 대전 조직폭력배와 현직 검사의 술자리 합석 사건 등 검찰의 체면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추문」이 연이어 터져 후배 검사들은 총장 볼 낯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총장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3분여의 짧은 퇴임사에서도 『정의를 지키려는 검사의 직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크다』며 『이는 말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지켜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후배들을 숙연케 했다.

김 총장은 또 단호한 목소리로 후배들에게 『강력한 검찰이 되고 싶은가』라고 질문을 한 다음 곧 『그러려면 높은 도덕률과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하라』고 뼈아픈 충고의 답을 밝혔다.

김 총장이 「충고의 퇴임사」를 하는 동안, 대부분의 후배 검사들은 다소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맨 뒷줄에 서 있던 한 부장검사는 『후배들이 김 총장의 생활태도를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절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총장의 퇴임사를 마음에 새기고 검사 개개인이 도덕 재무장을 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야만 한다』고 곤혹스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김기춘 박근혜 게이트 청문회

 

퇴임사에서 "학생시절의 순수성 정의감이 끝까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훗날 한홍구 교수는 "남다른 흑역사를 간직한 김기춘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학생시절의 순수성과 정의감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비웃었다. 

키는 172cm 내외로 추정되는데, 나이대를 고려하면 보통 키다. 몸무게는 66kg이라고 본인이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바둑 실력은 8급인데, 한국기원 부이사장을 역임한 바가 있다.

2013년 비서실장 취임 당시 재산을 공개했는데, 당시 재산이 39억 원이었다. 야인시절에는 거물급 변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예금성 자산(약 30억 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창동 자택과 바로 옆집인 아들네 집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불성실 신고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실 저걸 재산이라고 공개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게 평창동은 고급주택가인데다 그의 평창동 자택은 여러 차례 기사화됐다시피 32억원짜리이다. 엄청난 자산가가 아니고서야 재산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게 부동산인데 그걸 제외하고 계산한다는게 애초에 말이 안된다. 순수 예금만 30억원이면 오히려 부유층이다. 대부분의 서민층이 재산 계산할때 집을 제외한다면 수천만원대이거나 (예금+차+기타 동산) 오히려 대출금 등을 포함하면 마이너스일 것이다.

시간관념이 매우 철저하다고 한다. 법무부장관에서 물러나 집에서 야인으로 지낼 때도 짜놓은 시간에 맞춰서 움직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집 2층 서재로 출근했는데, 이때도 정장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맡은 자리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자리로 KBO 총재를 들었다. 그 당시 한일 슈퍼게임 참관차 일본을 방문하고는 도쿄돔을 보고 감명을 받아 돔구장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외국인 선수 제도도 검토하긴 하지만 본격적인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은 그가 물러난 이후에 도입되었다.

 

김기춘 젊은시절김기춘 판사시절

 

KBO 총재 시절 선동열을 주니치 드래곤즈에 보내는 것을 꺼리던 해태 타이거즈 구단주를 설득, 일본에 진출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동열이 김기춘을 고맙게 생각하고 교분이 있다고 한다.

정치 행보는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지만 인격은 매우 예의 바르고 교양이 있다고 한다. 또한, 처세술에도 능통했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엮이지만 않는다면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철희 의원도 썰전 패널 시절 그렇게 증언한 바 있다. 영화 자백에 출연한 모습에서도 잠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부동반 일본 나들이를 위해 온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끈질기게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을 캐묻는 최승호 피디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모릅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끝까지 분노를 감추었다. 이 점이 바로 김기춘이 오랫동안 버틴 비결이다. 반면,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기까지 한 정치검사였던 우병우는 상대에 대한 태도로 잠재적인 적을 만들었으며 결국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서 검찰을 떠난다. 김기춘은 적어도 겉으로는 주위에 친절하여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암흑기 때 한직에서나마 살아남았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학식도 상당히 높았는데 썰전 에서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서 한 딴짓 썰을 풀기로 국회에서 이상배 의원과 누가 더 많이 같은 음의 한자를 쓸 줄 아는지 대결, 소위 한자 배틀을 했는데 그때 쓰인 한자들이 전부 일반적이지 않은 수준이였다고 한다. 당시 출연진인 강용석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 간부들 하고 필담 할 정도라고.

검찰 후배이자 같은 친박 정치인의 전 대법관 안대희는 "내가 아이큐 130인데, 김기춘은 170이다"라고 김기춘을 높이 평가했다. 또 다른 검찰 후배이지만 정치적 성향으로 정반대인 금태섭은 "김기춘은 항상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2인자에 만족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최순실의 전횡을 막지 않고 최순실에 이어 이인자 노릇을 하면서 권력을 공유했기 때문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재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포스코 회장을 뽑을 때 자신이 추천한 인사를 접고 최순실이 미는 인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찌보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김기춘은 최순실이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핵심 부서 검사로 재직했고 검찰총장, 국회의원까지 역임했는데 같은 엘리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도 아닌 사이비 교주 밑에서 명령을 듣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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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검찰총장

 

조응천이 초임검사 시절(1992년)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이었는데, 그 당시 조응천에게 김기춘은 "검찰에서는 거의 레전드급"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교과서 같은 말로 여겼다고 한다. 김기춘과 조응천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으나,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을 계기로 조응천이 쫓겨나면서 둘은 완전히 원수지간이 된다. 그리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이 된 조응천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김기춘을 비난하였다. 김기춘 본인 퇴진설의 실상을 조사하라고 조응천에게 지시했는데, 조응천이 보고한 바로 그 문건을 누군가에게 넘겨버렸다고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합류하기 전 야인 시절에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구매한 약물 중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프로스카는 김기춘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탈모증에도 약효가 있기 때문에 차은택설 같이 온갖 억측이 나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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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여러 의원의 질문 공세를 피했으나, 막바지에 (구)주식 갤러리에게서 증거 자료들을 받은 박영선 의원에 의해 최순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기사에 따르면 청문회 이후에 박영선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끝난 이후 박영선 의원석을 찾아가 공손하게 악수를 청했다. 자신의 약점을 온 국민 앞에서 동영상을 틀어 밝혀낸 사람에게 다가가 악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른다. "자기 속내를 100% 감출 수 있고,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음험한 남자다."라는 평가를 고려해 보면 그야말로 무서운 일이다. 수많은 높으신 분들이 자기 언행 하나 통제하지 못해 얼마나 낭패를 보는지를 생각해 보면 가히 놀라운 능력이다. 이런 자제력은 보통 자리가 높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데, 김기춘은 온갖 고관대직들을 다 지냈고 2017년 시점에서 78세인데도 저 정도였으니 정치권의 핵심 인사로 계속 살아남은 것에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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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때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이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을 언급하면서 "비서실장이 김영한 수석을 바보나 허수아비로 만들고 우병우 민정수석과 공모하여 문건 유출을 처리하고, 문제가 생기자 '국회 청문회 때 핫바지인 김영한 당신이 나가라'고 하였다. 이에 김영한 수석은 항명하고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원통함에 술을 마시다가 스트레스로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며 비망록에 있는 것을 모르쇠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기춘에게 질타하였다. 이에 김기춘이 "그분은 몹쓸 병으로 작고하셨고 본인도 애통하게 생각합니다만..."이라며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보이고 끝까지 부인하자, 화가 난 박범계가 '그 몹쓸 병을 누가! 그 몹쓸 병을 누가 걸리게 만들었습니까!'라고 일갈했으며,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한 냉혈한 늙은 악마를 보았다'고 독설을 날렸다.

2014년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들어왔던 우병우의 일 처리 방식이 김기춘과 비슷하다고 해서 청와대 내에서는 별명을 '리틀 김기춘'으로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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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몰락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김기춘이 최저임금 7%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2014년 6월 26일자의 내용을 거론하며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을 김기춘이 사실상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2017년 1월 27일 방영된 썰전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김기춘이 국회의원 시절에 박근혜도 같은 국회의원이었는데, 박근혜에 대해 주군(主君), 하명(下命) 등의 높임말을 썼다고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 박근혜와 김기춘의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당시의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대통령은 탄핵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등의 발언을 했으며,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 김기춘은 "대통령이 헌재에 불출석하는 것은 탄핵 사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탄핵 사태는 국회의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이 자초한 잘못이다.", "나라가 잘되는 것도 대통령의 공로이고, 이 같은 사태를 오게 한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등의 발언을 한 전적이 있다. 그리고 13년 뒤인 2017년 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고 직무 정지가 된 박근혜는 헌법재판소에 불출석하고 서면으로만 입장을 전달하였는데, 이때 본인들이 직접 지껄였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받았다는 점에서 사필귀정이라는 비웃음을 받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경찰박물관에 2007년 6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전시된 경찰에서 압수한 불법무기들 중 이 분이 기증한 나치 독일 제 마우저 HSc 권총이 있다. 아예 설명에서도 대놓고 제 15·16·17대 국회의원 김기춘 기증이라고 나와있는지라 빼도 박도 못한다.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잠깐 볼 수 있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검열판에서는 수염이 삭제되어 나왔는데, 그 모습이 하필 김기춘을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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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은 저서 《오만과 무능》에서 김기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기를, (김기춘은) 만날 때마다 늘 책을 읽고 있었으며, 동서의 고전에 능숙하고 무척이나 영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박근혜에게 삼류 수준의 아부를 떨어대는 것과 달리 그는 박근혜가 커터칼 테러를 당했던 당시 "실로 천운이었다. 하지만 이리 무사하신 걸 보니 하늘이 더 큰 사명을 내릴 것 같다,"고 하자 박근혜는 무척 기뻐했으며, 전여옥은 아부도 저 정도면 예술의 경지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세월호 7시간 사건을 질의하던 당시 김기춘이 관저에 있었는지 집무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TV로 들었는데, 그는 박근혜보다 먼저 일어나 집무실에 가서 박근혜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저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잠드는 사람이었다면서 그걸 아예 모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저 대화를 할 때까지 며칠이나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변명도 많은데 아예 모른다는 것은 진짜로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문고리 3인방 때문인가 싶었지만 전임이라면 모를까 김기춘이 그들에게 막힐 정도는 아니라면서 최순실에게는 그라도 꼼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세월호 7시간 사건의 진상을 보면 당시 김기춘은 박근혜를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고 제대로 된 연락도 되지 않았던지라 말 그대로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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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수형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한국판 아이히만'이라면서 전형적인 '악의 평범성'을 보여줬다고 평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셜록 김기춘은 직장에서는 점잖고 성실한 타입이었고 집에서는 가정적이어서 가족을 아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을 번듯한 모습으로 꾸몄지만 한편으로는 공안 검사로서, 노회한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쌓은 법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불법만큼은 피해나가며 헌정질서와 다수의 공익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터라, 많은 이들로부터 '법비(法匪, 법으로 도적질하는 무리)' 내지 '미꾸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권력구조를 비롯한 각종 법체계는 필연적으로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부득이 그 틈을 개개인의 선량한 도덕심이나 윤리 규범 등이 메우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결정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법에는 어긋나지 않게끔 만들어서 이걸 가볍게 무시했다. 더구나 그가 가진 권력은 자신 내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군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 단 한 번도 제대로 제지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고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주군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권력을 적정한 수준에서 행사하는 걸 넘어서 월권까지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실하고 번듯한 모습으로 꾸민 채 최고 권력자의 옆에 붙어서 묵묵하게 뒷처리를 도맡은 건 아이히만에 견줄 만하고,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만큼은 교묘하게 피해가는 모습은 아이히만을 능가한다고 평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유신 때 중앙정보부 수사국장이 사람이 고문도 많이 하고 했다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서바이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참 대한민국이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고 평했다. 참고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박영수 특검이 수사했는데 당시 수사팀장이 윤석열 검사였다.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을 맡아 당사자를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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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직역김기춘 감옥

 

김기춘 선거 이력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47,989 (76.53%)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33,379 (47.50%) 당선 (1위)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34,729 (43.50%) 당선 (1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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