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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군인 / / 2022. 5. 25. 18:04

김승겸 육군대장 나이 학력 주요보직 프로필(합참의장)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2020년 9월 21일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고, 2022년 5월 25일, 윤석열 정부의 첫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되었다.

 

김승겸 육군대장 나이 학력 주요보직 프로필(합참의장)

 

김승겸 프로필
김승겸

 

김승겸

金承謙 | Kim Seung-kyum

 

출생

1963년 4월 12일 (59세)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

 

본관

김해 김씨

 

현직

합동참모의장 후보자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6년 ~ 현재

 

재임기간

제29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20년 9월 23일 ~ 2022년 5월 26일

 

가족

배우자 김순애, 슬하 2녀

 

 

종교

개신교

 

학력

오산고등학교 로고 다크모드 오산고등학교 (졸업 / 72회)

 

임관

육군사관학교 부대마크 육군사관학교 (42기)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주요보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제3군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국군의 날 행사단장

제28보병사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

제6군단 참모장

제21보병사단 부사단장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

제35보병사단 참모장

제1보병사단 제12보병연대장

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

 

다른 신임 대장의 프로필은 아래 글을 확인해주세요.

 

>> 박정환 육군대장 프로필(육군참모총장)

>> 이종호 해군대장 프로필(해군참모총장)

>> 정상화 공군대장 프로필(공군참모총장)

>> 안병석 육군대장 프로필(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 전동진 육군대장 프로필(지상작전사령관)

>> 신희현 육군대장 프로필(육군 2작전사령관)

 


김승겸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출생~영관급 장교 시절

1963년생,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 출신으로 김영옥 예비역 중령의 아들이자 김영 예비역 대령의 조카다. 1982년 서울 오산고등학교(72회)를 졸업하고 같은 해 육군사관학교(42기)에 입교하여, 1986년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현역 국군 장성 중 유일하게 실전경험이 3번이나 있는 장군이다. 그 3번의 실전 경험은 제3보병사단 13중대장 시절 1번("은하계곡 대침투작전"), 사단장 시절 2번(14년도 북한 고사총 도발과 15년도 북한군의 포격도발)이 되겠다.

대위 시절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했는데,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무장공비 4명을 차단 및 수색, 교전을 통해 전원 사살한 5.22 완전작전(위에 설명한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에서 전초13중대장으로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김승겸 대위의 을지무공훈장 수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6.25전쟁과 베트남전 이후 전시가 아닌 평시에 수여된 최초의 을지무공훈장이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 중 유이하게 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이다.

게다가 김승겸은 미 국방부가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Legion Of Merit"도 수훈받은 바 있다.

 

위관장교 시절 1차 중대장은 특전사에서 특전중대장을, 2차 중대장은 전방사단인 3사단 전초대대(=현, 수색대대)에서 전초중대장을 하였다. 이후 소령 진급을 1차에 한 후 제3보병사단 대대 작전장교와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관, 중령 때 제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 동 사단 작전참모, 대령 때 제1보병사단 12연대장과 35사단 참모장, 합참 합동작전과장을 지냈다.

 

김승겸 대장
김승겸 대장

 

장성급 장교 시절

이후 육사 42기의 선두주자로서, 대장까지 모든 계급으로의 진급을 1차에 했다. 준장 시절 21사단 부사단장, 6군단 참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을 지냈고,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28보병사단장과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군복무 기간 중 조현천을 위시로 한 알자회 일당들에게 찍히는 바람에 거의 전역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는데, 이때 받은 보직이 한직인 2016년 국군의 날 행사단장이었다.  과거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을 필두로 한 그의 육사 선배들이 알자회의 실체를 폭로할 때 동기들과 함께 알자회 퇴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영상을 보면 패기+살기 넘치는 특유의 인상이 아니라 착잡하기 그지없는 인상이다. 공교롭게도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을 역임할 당시 취임했던 임호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알자회 출신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구사일생으로 2017년 9월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참모차장으로 보임되어 직무를 수행 중 2020년 9월 18일, 서욱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으로 취임과 동시에 전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가 되었는데 3일 만인 9월 21일, 예상대로 1차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이틀 후인 9월 23일, 이.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의 대장 진급 배경에는 넘사벽 아이템인 을지무공훈장, 중위부터 중장까지의 진급을 모두 1차에 한 것,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 임관동기인 3사 21기나 학군 24기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었다는 요소들이 있다. 결국 육사 42기 내 선두주자인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과 경쟁하였는데, 본인과 함께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이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작전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육사 1기수 후배인 안준석 국방개혁비서관 역시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여 지상작전사령관에 취임하였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20년 9월 21일 1차에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2020년 9월 23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합동참모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임명 이후 소식이 뜸하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미연합사를 방문한데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던지라 정부 출범 이후 첫 합동참모의장으로 내정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는데 특히나 김승겸의 고향 서천군은 국민의힘 충청남도지사 후보인 김태흠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지라 윤석열이 김태흠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합참의장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윤석열 정부 출범 15일 만인 2022년 5월 25일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대장이 전부 전역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전역을 하지 않고 합동참모의장에 지명되었다. 후임 부사령관은 안병석 육군참모차장이 진급하여 이동했다. 권오성 대장(육사 34기) 이후 9년만에 연합사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지 않고 영전한 케이스가 되었고, 또한 정승조 대장(육사 32기) 이후 9년만에 육사 출신 합참의장이 배출되었다.

 

 

김승겸 역임 보직

대위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전중대장

제3보병사단 전초대대 전초중대장

 

소령

제3보병사단 대대 작전과장

육군사관학교 훈육관

 

중령

제2보병사단 제31보병연대 제2대대장

제2보병사단 작전참모

 

대령

제1보병사단 제12보병연대장 (2008.12 ~ 2010.07)

제35보병사단 참모장 (2010.07 ~ 2010.12)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합동작전과장 (2010.12 ~ 2013.01)

 

준장 2012년 10월 1차 진급

제21보병사단 부사단장 (2013.01 ~ 2013.04)

제6군단 참모장 (2013.04 ~ 2014.04)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 (2014.04 ~ 2014.09)

 

소장 2014년 9월 1차 진급

제28보병사단장 (2014.09 ~ 2016.05)

제68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2016.05 ~ 2016.11)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2016.11 ~ 2017.09.27)

 

중장 2017년 9월 1차 진급

제3군단장 (2017.09.28 ~ 2019.05.11)

육군참모차장 (2019.05.12 ~ 2020.09.22)

 

대장 2020년 9월 1차 진급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20.09.23 ~ 2022.05.)

합동참모의장 (2022.05. 지명)

 

김승겸 합참의장 내정
김승겸 합참의장 내정

 

김승겸 일화 사건

대대장

제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 시절 부임과 동시에 부대를 180도 바꾸어놨다. 행보관들 및 주임원사와 호형호제하던 전임 대대장과 다르게 무능한 간부를 경멸하고 병사들 보는 앞에서 연병장에서 하사/중사들을 완전무장 포복시키고 대강대강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했다. 미숙하다고 이등병을 배려, 짬된다고 상사/소령을 밥대접하는 관행은 모조리 뿌리 뽑았으며 뻘작업 또한 전부 없애고 훈련에 매진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즉각조치사격을 실시하였는데 사로 내에서 빵야빵야가 아니라 사로 위에 선 채로 분대장 명령에 따라 3점사로 3탄창을 발사하였고 K3사수는 링크탄 한 탄통을 자동사격하였다.

또한, 부식창고를 개방하여 그동안 병사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암암리에 빼돌려지던 부식, 보급품을 한꺼번에 불출하기도 했다. 당시 실제로 사단 교탄 소모량이 가장 많은 부대가 31연대 2대대였으며, 주기적으로 망실/정비를 요하는 개인화기/공용화기는 정비대로 입고하는 그야말로 FM에 수렴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이런 타이트한 전투훈련 위주의 부대관리가 순기능을 낳기도 했는데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똥군기가 부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일 오전에 사격하고 오후에 축구하고 야간에 전반야, 후반야 하고 그 다음 날 중대 전술훈련하고 그 다음 날 주특기 훈련이라는 일정에 똥군기가 시전될 정신적, 육체적 풍요로움이 있을 수가 없으며 이등병 사물함에 던져지던 건빵은 꼭 챙겨야 하는 필수템이 되었다. 훈련에서 견뎌내야 하기에 주말에 구보를 하고 체력단련을 자발적으로 하는 게 그 당시 2대대였던 것.

당시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도 나왔던 노도 유격장을 가기 위해선 네 발로 기어야 하는 고바위의 대공기지를 넘어야 했는데, 5중대부터 중화기 8중대까지 밀고 끌면서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단시간 주파에 성공했다. 여러모로 후임 28사단장인 윤의철(육사 43기)과 상반되는 지휘관. 윤의철이 밑도 끝도 없는 체력단련만을 강조한다면 김승겸은 중대장 시절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죽이고 나와 내 동료들이 살아남는 법을 강조했다. 게다가 당시 소수 있었던 특전사 출신 전역대기 부사관들이 당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보병 부사관들에게 특수전 및 여러 훈련 노하우를 전파해주는 등 분위기가 매우 진취적이었다.

뱀발로, 신병이 전입을 오면 고참들이 "너 군생활 꼬였다"라고 으름장을 주기도 했는데, 그 주체가 다름아닌 대대장이었다. 이유가 걸작인데, 나중에 별 달 사람이라고. 우스갯 소리였겠지만 저때 김승겸 장군은 중령이었던 걸 생각하면 흠좀무. 주특기 훈련 중 초과달성을 하면 그 소대, 분대는 그날 자유일과를 주었다. 하지만 훈련을 나가야 하기에 자유시간은 사실상 정비시간.

실전적인 성향답게 우의 제외 병사들의 복제에 그리 참견하지 않아서 훈련 때 비니를 쓰거나 어느정도 사제 장비를 착용하거나 혹서기에 수통을 2~3개 결속하는 것에 대해 지엽적인 지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대장 임기 종료와 동시에 제2보병사단 작전참모로 영전하였다.

 

 

연대장

제1보병사단 12연대장 시절 일화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GOP 순찰 시 소초 생활관에 들어와서는 "야! 연대장 온다고 생활관에 이상한 거 뿌리지 마라!"
실제로 보면 체격도 좋고 키도 크고 자세도 꼿꼿하며 눈매나 용모가 빈틈이 없다. 누가 봐도 지휘관 그 자체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바짝 긴장시키는 아우라가 있다. 당시 도라대대 장병(특히 소초, CP상황병)이었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 것이다.
매주 화요일~목요일 저녁만 되면 15연대 통일대교 근무병들의 예통에 전 소초 병력이 촉각을 곤두세움. "연대장님 통일대교 남단 통과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부대가 미친듯이 바빠지기 시작함. 그 이후에는 캠프 그리브스, CP, AOP, 백학 방향인지를 놓고 상황병들이 바짝 긴장함. 그것이 어느 소초로 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 보통은 소초 상황실만 들르지만 가끔 철책선을 직접 순찰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초병들이 예통 받으랴 브리핑 구절 외우랴 수하 연습하랴 늘 정신이 없었음. 의외로 근무중인 병사들에게는 엄하게 대하지 않고 어깨 한 번 툭 쳐주고 감(대신 소대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는 매우 엄격함).
GOP 소초에서 똥줄 타며 브리핑했더니 아무 말 없이 어깨만 딱 한 번 짚고 내려감.
연대장 덕분에 최우수 소초로 선발된 소초는 소초 전체 포상 나감.
연대장님 관사에 모셔다드리고 출발하다가 그만 연대장 사모님 승용차를 레토나로 박음. 당시 운전병은 병장이었는데 연대장에게 욕 먹고 연대장은 수송대장 (준위)을 호출함. 그날 회식운행이 있었는데 연대장이 관사에서 내리면서 "1호차 운전병이 사고나 내고!" 악수 청하고 껄껄 웃으며 관사로 들어감. 일주일 뒤에 사모님은 차 바꿈.
이분이 내린 명령이면 이 한 몸 불살라 적진에 뛰어들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듦. 연대장을 보면서 나도 육사 갈걸 하는 병사도 있었음.
연대장님 이임식에서 아쉬운 마음에 우는 장병들도 있었음.
장병들의 특급전사 달성을 지시해놓고 연대장 본인이 제일 먼저 연병장을 돌고 있음. 으아아악
남아공 월드컵 때 소초 연등하고 있는지 하루도 안 빼놓고 순찰 나감. 본인이 공관에 있으면 자기도 축구를 볼 것 같다고 소초 순찰 마치고 연본 앞 길가에서 대기하다 축구 끝나고 복귀함. 우루과이 전이었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민통선 내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월드컵 경기 시청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2002년 때처럼 북이 축제 분위기를 틈타 도발을 시도해 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페바에 있던 운천, 마정 장병들이 신나게 월드컵을 보고 있을 동안 GOP와 GP에서 근무하는 도라대대 장병들과 수색대원들은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 추가로 연대장 본인은 경기일에 직접 소초 순찰을 나갔다. 그리고 실내에 있으면 자기도 축구를 볼 것 같아서(...) 축구 끝날 때까지 본부에 안 돌아갔다.
소초 순찰 뿐만이 아니라 수색대대원들의 수색-매복도 직접 모니터링하는 경우가 많았다. DMZ진입 할 때 병사들의 간격, 진형, 위치, 수색대 투입 당시의 주변 부대의 경계작전 상태 (더 자세히는 보안사항) 등을 직접 체크하곤 했다.
kctc훈련 중 예하대대와 직할대들이 계속 패배함. 당시 감독관 평가는 이러했음. "대한민국 최고의 장교가 최고의 전술로 지휘하는데 부하장교들과 병력들이 따라가지 못함." 이후 참가 대대인 마정대대의 김택수 중령이 kctc 끝나고 연대장실에 불려가 1시간 동안 갈굼을 당함.
교회 집사님이었는데 교회에서 유일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가족들이 한 달에 한두 번씩 같이 예배 보러 왔음. 딸이 2명 있었는데 첫째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했고, 딸의 이름은 (밝히진 않지만) 과거 무장공비 소탕 작전의 이름을 따서 지었음. 사모님이 굉장히 착하셨고 내조를 잘 했음. 기독교 신자로서 믿음도 특출하여 새벽에 혼자 예배당을 찾아 새벽기도를 하기도 함. 12연대 이임식 때 따님 두 분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다들 웅성웅성거렸음.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 장교들도 사격 훈련을 시켰고, 본인이 앞장서서 모든 훈련에 임함. K5 권총 사격 기준 미달인 장교는 계속 사격 훈련을 시켰는데 이때 부족한 총알은 사단에 연락해서 충당 했음. 당시 사단장이었던 신현돈 장군의 신임이 굉장히 두터웠음.
당시 연대본부에 근무했던 병사들은 진심으로 연대장을 무서워하기보다 존경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간부들은 연대장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두려워했음. 특히 연대장 주특기가 작전이었고 육사 작전 교본을 만든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기에 작전과장 및 작전장교는 매일 밤샘 근무와 주말이 없이 일했음. 하지만 거의 맨날 갈굼 당함. 다만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기에 장교들도 두려워 했지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음.

 

공통적인 평이 능력자, 영화배우, 꽃중년, 몸짱 등 요새 표현으로 종합하면 "사기 캐릭터"였다고 한다. 위 일화들로 정리하자면 FM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연대장 역임 후 제35보병사단 참모장과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을 역임했으며 준장 진급 후 제21보병사단 부사단장, 제6군단 참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을 역임했다.

 

 

사단장

제28보병사단장 취임 때는 이찬희 살인사건("윤일병 사건")으로 부대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태였다(사건 발발로 인해 전임자가 경질되고, 후임자로 취임한 것임). 하지만 어수선한 28사단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과 서부전선 포격 사건 도발에 대응하여 완전작전을 한 것으로 평가받음으로써 군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즉 병영문화도 쇄신하고, 완전작전까지 해낸 엄청난 능력자라는 것이다.

빡셀 땐 한없이 빡세지만 편할 땐 가장 편했던 사단장이었기에 인권은 뒷전이고 오로지 강한 훈련만 요구한 후임자인 윤의철(육사 43기)이 휘하 장병들에게 악명을 떨치는 바람에 김승겸 장군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병, 간부를 가리지않고 항상 공평하고 청렴하게 대했다고 한다. 사단장이 먼저 살갑게 병사들에게 다가오는 경우는 없지만 전역 직전의 병사들을 마주할 때엔 그간 수고 많았다는 의미로 악수를 시전했으며, 8.20 완전작전이 끝나고는 간부식당에 지시해 대규모 회식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때 병사들도 고생많았다며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 김승겸 사단장은 28사단의 병영문화혁신을 위해 취임 당시 28사단 신병교육대를 방문하였는데 위병소 근무 인원만을 제외한 모든 간부, 기간병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모든 부조리의 시작은 신교대에서 출발한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부조리를 행하는 사람은 교관, 조교를 가리지 말고 모두 내보내라" 라고 강조하였다.

심지어 "신교대 인원이 부족하여 신병교육 임무수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 라고 말하였다.

사단장 보직 종료 후 제67주년 국군의날 행사기획단장으로 임무수행하였고, 이후 연합사 작전차장으로 영전한다.

 

군단장

사단장 시절 윤 일병 사건 뒷처리를 맡았던 탓인지, 군단장 시절 인권에 대해 간부들에게 수없이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현행작전부대들의 전투준비태세와 완전작전태세를 거듭 강조하였다. 특히, 군단장 시절 불시 현장지도, 불시 상황조치훈련 등을 자주 하였는데, 일례로 군단 사령부 전 참모들을 대동해 전방 GOP 사단을 대상으로 말단 소초부터 불시 상황을 걸어서, 사단급 불시 GOP 상황조치훈련(FTX)를 직접 주관하여 실시한 적도 있다.(해당 사단장도 모르고 있다가 상황조치를 하러 사단 지휘소로 급하게 들어왔었다는 후문이 있다. 전 사단 병력이 예기치않게 불시에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었다.) 한번은 예하 사단에서 호국훈련을 실시했는데 화상으로 현황 보고받던 중 실제로 사단장을 혼내기도 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로, 전방 현장지도 간 지휘기(헬기)를 타고 전속부관과 이동 중에 탑승석 방향 출입문이 하늘 위에서 개방되는 일이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부관이 헬기가 착륙할 때까지 문 옆에서 군단장을 잡고 있었는데, 이 일로 감동을 받았는지 차후 군단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충성심"의 사례로 언급하면서 교육을 했다.

 

그리고 군단장 시절 부하(간부,병사)들을 챙겨주는 일이 정말 많았다.

전방 현장지도시 경호 병력으로 수행하는 군사경찰 특임중대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주고 매번 현장지도가 끝나면 고생했다고 악수해주었다.당시 군단장 임기간 매번 전방 현장지도 경호임무를 수행했던 부하(하사)의 경조사를 직접 챙겨주기도 하였다.
휴가 복귀 전에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는 대신 계산해주고 탕수육까지 시켜주고 가기도 했다.
군단사령부 본부대와 지휘관 경호를 전담하는 군사경찰단 특임중대 인원들에게 주기적으로 회식을 시켜주었다.
군인교회에서 활동하는 군종병들도 살갑게 챙겨주었다.
심지어는 군 병원에 외진 나온 군단사령부의 병사를 알아봐 준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산악회관과 산악코스텔 등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면 퇴장 전에 주방까지 들어가 관리병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는데, 특히 군단장 이임 전 간부식당에서의 마지막 식사 후에도 주방까지 들어가 취사병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시전했다.

 

 

군단장 시절 정말 병사들을 많이 생각해주고, 챙겨준다는 것이 병사들에게까지 느껴졌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유해지긴 한 듯.

참모차장이라는 요직으로 영전한 이후에도 윤의철 군단장의 사건사고 보고를 계속 듣게 되어서 쉽지만은 않았겠구나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군단장 이임 후,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였으며 이후 대장으로 진급. 현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근무했다.

 

 

김승겸 여담 일화

참고로 웃는 얼굴은 교회에서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며 키, 체격에 얼굴마저 날카로운 미남으로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 하지만 휘하 병사들에게 살갑거나 인간미적 요소는 그리 없었다. 전형적인 맹장스타일. 체격이 크고 특유의 살기 넘치는 위압감에 차가운 인상이라 다가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역병들에게는 "나 너무 미워하지 마라"라고 농담을 걸기도...(영관장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랬었던 듯. 군단장 시절은 인간미가 넘쳤다.) 대대장 시절 용접을 하고 있는 병사에게 "뭐 하냐? 밖에선 뭐 했냐?" 어디서 배웠냐고 묻자 병사는 대학생이고 군대와서 배운 거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대답은 여기서만 하고 전역하면 전공에 열중하라고. 그리고 대대장 시절 깡패로 유명했던 모 행보관을 강제 전역시켰다.

자신의 운전병을 "아가" 라고 지칭하는 등 굉장히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가족으로 부인과 2녀가 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 이 글에 나와있다.

28보병사단장으로서는 김현집 사단장(육사 36) 이후 6 만의 대장 진급자이며 전임 3군단장이었던 김병주 예비역 대장(육사 40) 연이어 진급하여 3군단장 역시 대장 진급에 있어 1군단, 5군단과 함께 요직 코스가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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