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대도 조세형 고향 결혼 이혼 범죄 이력 (혐의 인정)

1970 ~ 80년대에 대한민국을 주름 잡으며 활동했던 유명한 도둑. 총 전과 16범으로, 별명은 대도(大盜) 였다.

 

 

조세형

趙世衡

 

별명

대도 (大盜)

 

출생

1944년(78세)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신장

175cm

 

직업

건달 → 도둑 → 종교인, 강연업 → 도둑

 

종교

개신교

 

 


대도 조세형 고향 결혼 이혼 범죄 이력 (혐의 인정)

 

조세형 생애 고향 이력

1998년 이전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출생. 그는 고아 출신으로 15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하여 1982년 이전까지 11차례나 붙잡혀 감옥살이를 한 전력이 있었다. 한때 김준성 전 경제부총리, 장영자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부유층 등 유명인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만 골라서 털었으며, 그가 훔친 물건 중에 장영자가 소유한 막대한 가격의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세형은 자신에게 도둑질을 당한 몇몇 집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쉬쉬했다는 발언을 했으며, 사과박스 등의 뇌물같이 불법으로 얻은 돈 때문에 그랬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훔친 돈의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절도 원칙을 분명히 한 도둑으로 유명하다. 그가 2차 공판에서 밝힌 5원칙은 다음과 같은데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지켜지지 않았다.

나라 망신을 시키지 않기 위해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는다.
다른 절도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판·검사집은 들어갔다가도 그냥 나온다.
연장사용금지.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위의 5원칙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영업시간 준수(...)'라는 원칙도 있었는데, 조세형은 밤에는 전혀 밖에 나가지 않는 소위 '낮티'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사이의 시간대가 그의 영업시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조세형의 첫번째 부인은 이것 때문에 남편이 도둑일 것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그를 보석 도매업자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재벌들이 사는 집들은 난관이 있다. 바로 높은 담.

조세형은 서전트 점프 높이가 80cm로 거의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점프력이 높고, 38년생 평균 신장이 164.4cm인데 그는 10cm 더 큰 175cm이다.

 

그가 담 넘을 때 필요한 건 딱 두가지다.

1. 담벼락 돌출된 부분에다 한쪽 발을 딛고, 2. 몸을 공중으로 붕 뛰어서 담장에 손끝을 걸치면 게임 끝.

 

또 김준성 전 경제부총리 자택에서 권총 3정과 실탄 2백여 발을 훔쳐나와 장충동 파출소에 몰래 갖다 놓은 일(...)도 있었다.

당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었던 상황이라 주로 부유층을 털었던 조세형을 영웅, 의적 등으로 미화하는 풍조가 퍼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82년 11월에 체포된 조세형은 1983년 4월에 자신이 갇힌 법원 구치감에서 탈출하여 5박 6일간 피신했다. 특히 탈주 나흘째는 그야말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의는 파란 죄수복 바지에 위에는 난닝구 차림에, 퍼진 명성과는 다르게 추레한 모습으로 살았었다. 이때까지 자기가 대도로 유명해지는 걸 몰랐었지만, 부잣집만 턴다는 사실이나 자신만의 원칙 등이 민중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돼버렸다. 신문에는 자기 이름이 대문짝 만하게 나왔고, 그를 '도학의 대가', '도학박사' 라 지칭하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이 신문을 찾으러 몰렸다 하면 대도의 인기이고, 술에 꽐라가 된 취객이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아이, 그 조세혀엉... 그사람 조은 사람가타요... 안 자폈으면 조켔어요..."하면서 끊는 일도 있었다. 이 정도로 여론이 대단했다. 그는 한 2층 집 담을 훌쩍 넘으면서 그 주택에 칩입해 멀끔하고 사이즈가 딱 맞는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면서 "누굴 털어볼까?"하며 생각을 하다가 대도의 품격에 걸맞게 털 타겟을 정했으니, 바로 범 삼성가의 창업주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 회장의 집이다.

탈주 엿새째, 장충동. 이 군(18)이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길을 걷다 본 한 남자가 전날 신문에서 본 조세형임을 알아채고, 뒤돌아서 다시 쫓아가서 얼굴을 다시 봤더니, 안 들킬려고 볼에 바람을 넣었다고 한다. 그 표정으로 계속 돌아다녔다고 한다. 감추는 걸 보니까 확실해진 이 군은 바로 파출소에 달려가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즉시 경찰 둘이 출동하고, 조세형을 목격하자 "야! 너 조세형이지?!"라고 말하자 "그래."라고 말한 뒤에 재빨리 도주하면서 경찰과 조세형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야! 조세형! 너 거기 안서! 야 이 자식아!" "조세형 잡아!"하면서 그 고함을 들은 주민 2백여명이 나와 버리는 바람에 골목이 막혀 독안에 든 쥐의 상황이 됐다. 조세형은 건물을 넘어다니며 경찰을 따돌리며 도주하다가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욕실에서 그 집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경찰관이 "조세형! 넌 이제 끝났어! 빨리 문 열어! 문 안 열어?!" 문을 서로 당기면서 대치했고, 결국 경찰관의 권총에 피격당한 채 검거된다.

이후 그는 법원에서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흉악범 수용으로 이름난 청송교도소의 1평짜리 독방에서 15년 내내 무릎을 꿇고 수갑을 찬 채 엄정 독거수용을 당했다. 조세형 본인은 자신이 부유층을 골라서 털어서 괘씸죄로 무거운 벌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고, 세간에서도 조세형이 출소할 시 부유층이 입막음조로 중형을 내리도록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상습 범죄자였고 워낙 도둑질한 돈이 많았던 만큼, 그리 불합리한 판결인 것은 아니다. 범죄 횟수가 11번이니까 그 범죄 하나하나에 일일이 징역을 매겨서 이어붙인 것에 불과하다 라는 주장도 있으나, 우리나라 형법 체계는 영미법계가 아닌 대륙법계를 수용하고 있어 형기를 단순 합산하는 병과주의가 아닌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을 가중해서 처벌하는 가중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흡수주의와 병과주의로 보충하기에 위의 주장은 오류가 있다고 보아야한다.

수감 중이던 1990년에 그는 기독교에 귀의했고, 형기가 끝나가던 1998년 4월에 보호감호 7년이 적용되어 청송보호감호소로 옮겨지게 되자 조씨는 '보호감호 재심 처분'을 들고 일어났으나 1심에서 법원이 재범의 우려가 있는 데다 수감 기간 동안 기술을 익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조씨가 패소했지만. 이후 항소심에서 "종교적 귀의는 진실되며, 15년의 수감 생활을 통해 쇠약해진 몸에 이미 50대에 이르러 재범 가능성은 작다"며 법원은 조씨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해 11월 26일에 마침내 출소했다.

 

 

1998년 이후

출소 뒤에는 에스원에서는 그에게 많은 수당을 주며 자문위원으로 모셨고, 경찰행정학이 개설된 대학을 비롯해 각급 학교와 청소년단체에서 선도강사로 초빙되고 교회들은 그에게 신앙간증을 요청했다. 게다가 옥중 뒷바라지를 한 여성과 결혼도 했다. 이후 목사 안수를 받아서 목사가 된다. 나중에 늘빛선교회라는 선교단체를 설립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했고, 일본의 노숙자들을 구원하겠다며 일본을 자주 방문했었다. 그것도 더불어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섭외해달라는 연락이 자자했었다. 그래서인지 SBS <주병진의 데이트라인> 1998년 12월 6일자에 출연했고, 동월 10일 및 22일에 KBS2 <추적 60분>과 MBC <PD수첩>에서도 조세형 관련 내용을 다뤘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의적에다 훌륭한 개과천선의 대명사로 꼽히는 그는 2000년 11월에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주택 3곳을 털다가 현지 경찰에게 총을 맞고 잡혔다. 초기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신분을 안 드러내려 했으나 정체가 드러나자 "일본의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러 왔다."며 궁색하게 변명했고, 결국 법원에서 주거침입/절도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받아 복역했다. 그는 모범적 수형생활과 한국 지인들의 탄원으로 2004년 3월에 출소 후 귀국해 은거했다. 그런데 2005년 3월 2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모 치과의사 집에 침입해 165만 원 어치의 손목시계를 훔쳐서 걸려 3년을 또 복역했고, 2010년 5월 4인조 금은방 강도들이 훔친 귀금속 1억 원어치를 팔고 수수료 1천만 원을 챙기는 등 장물아비 노릇하다 걸렸다. 검거 당시 전기 다리미를 휘두르면서 저항했다고 한다. 결국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위에 나온 장물알선사건으로 징역 2년을 복역하고 2011년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출소했으나, 교도소 앞 10m를 걷던 시점에서 대기 중이던 경찰에게 연행됐다. 그 이유는 2년 전 부천 강도 사건 범인 민모 씨등 2명이 조세형을 용의자로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조사 당시 그는 10년 전 강도사건 때 일본 경찰에게 총을 맞아 다친 오른팔을 근거로 "나는 도둑이며, 강도짓은 안 한다"며 결백을 증명하는 한편, 수십 년간 해온 도둑 경력을 늘어놨다. 이후 12월 22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2년 전 범행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2년부터 도서출판 행복에너지와 계약을 맺어 자서전을 내려 했으나, 2013년 4월 3일 75세 들어서도 또 강남의 고급 빌라를 털다가 빠루로 유리창을 깨고 침입했지만 바로 출동한 경찰들에게 만년필로 저항하다 바로 잡혔다. 그 결과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출소 직후인 2015년 10월에 또 구속됐다. 이는 9월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한 고급빌라에서 까르띠에, 쇼파드 등 명품 브랜드를 포함한 시계 5점과 반지 8점 등 총 5억67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이며 2016년 3월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급기야는 목사 출신 범죄자의 일례로 거론되며 개신교의 목사 배출 제도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까지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표창원(전 경찰대학 교수. 이후 20대 국회의원 역임)은 후술할 시사저널 칼럼에서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재범을 유발시켰다고 분석하여 캐나다와 영국의 사례와 같이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재범률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기출소 후 81세가 된 그는 2019년 6월 1일 오후9시 서울 광진구에 있는 다세대 주택 1층 방범창을 뜯고 침입하여 현금이 든 저금통을 훔쳐 달아났으나 범행 6일뒤에 폐쇄회로 CCTV를 분석한 경찰은 그를 동대문구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검거하였다. 비록 그가 훔친 금액은 몇만 원밖에 안 되지만 광진경찰서는 그의 범행이 상습적이라 9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2019년 8월 22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 이에 그는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1심의 실형이 그대로 선고되었다. 2022년 2월 22일에 출소 예정이었으나 2021년 12월에 출소 후, 2022년 1월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고급 전원주택에서 총 3번에 걸쳐 금품 3천 3백만원어치를 또 훔치다가 동년 2월 17일, 용인동부경찰서에 구속되었다.

 

 

 

조세형 여담 일화 인간관계

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버릇은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시기도 하다.

대도라고 불렸던 인물이지만 현재는 좀도둑 노인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해도 손색이 아니다. 본인도 잡혀올 때 마다 떳떳하게 고개 들지 못하는걸 보면 더더욱. 게다가 젊은 시절의 도둑질 원칙마저 깨버리고 있으니 스스로가 더 젊은 시절의 모습과 멀어지는걸 괴로워하고 부끄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도둑질 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2019년 6월 26일자 경향신문 장도리에도 등장하는데 새로 들어온 자가 "대도 조세형 선생 아니십니까 명함 좀" 이라고 하자 내가 도둑명함을 내밀겠냐고 했다. 조씨망신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어린 시절 김춘삼 밑에서 말단거지로 있었다고 한다. 소설 왕초나 드라마 왕초의 내용이 100% 거짓이라고 폭로한 것도 조세형 본인이었다.

김성모의 대털에 따르면 한국 최고의 대도라고는 불리나 시대상을 감안해 봤을 때 후대의 김강용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다고 한다.

 

 

조세형 대중매체에서

1989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 '80년대 10대사건 시리즈 범죄' 3탄에서 다룬 바 있는데, 배우 이동신이 연기했다.

1993년 5월 23일자 KBS1 <다큐멘터리극장>에서는 배우 김종구가 연기했다.

1995년 10월 14일자 KBS2 <그때 그 사건>에서 재연극 형식으로 다룬 바 있는데, 극본은 김미경, 연출은 나상엽 PD이며 배우 강태기가 연기했다.

1996년작 영화 <투캅스 2>에서 한성식 배우가 연기한 역할이 조세형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도 본명 언급 없이 대도라는 별명으로만 불리고 체포될 뻔 하다가 도망치는 장면도 있는데 제법 날랜 모습을 보여주며 부유층, 고위층(작중에서는 무려 검찰총장) 집을 터는 점, 집안 곳곳에 물건을 숨겨 둔 방법이나 물방울 다이아도 나오는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

황지우 시인의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이라는 시에서도 조세형이 언급되는데, 이 시는 1983년에 낸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수록됐으며 2014년 수능특강 국어 B형에서 나왔다. 또 천재교육과 미래엔 고등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2021년 6월 3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의 13화에서 해당 사건을 다뤘다. 상술된 이혼한 아내도 출연했다.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