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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_헤르만 헤세[책/독서/서평]


데미안1

노말에이를 들렸다가 지하철에서 읽기 편하겠다 싶어서 작게 나온 데미안을 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몸부림친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면 세상을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2

 



책 내용 중 가장 유명한 말이다.
특히 앞의 세 문장이 널리 알려졌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헤르만 헤세 본인도 독일의 애국주의에 동참하길 거부했으며 이 때문에 많은 비난을 들어야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크로머에게서 벗어난다. 데미안을 통해 돌아온 자신의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이 아니다. 더 이상 어린 싱클레어도 아니다. 싱클레어는 방황하고, 외롭고 고독해진다. 이 고독의 시간을 지나, 다시 구원받고
과거와 유년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게 된다. 크로머로 대변되는 현실과 평화와 데미안으로 대변되는 이상과 변화 속에서 싱클레어는 이상과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인간의 의지에 맞닿아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평소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운명은 같은 길을 걸어가고 군중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데미안은 운명이야말로 진짜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데미안에서 나오는 종교 얘기도 흥미롭다. 선과 악의 인위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둘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것.

나는 어릴 때 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녔다. 유년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에는 교회가 유일한 종교시설이었고, 초기에 3명 정도 되는 교인들 중 우리 할아버지, 어머니가 속해있었다. 내 의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니게 됐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내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갔다. 저항하려고 노력했고, 많이 충돌했다.

그때 계시던 목사님이 내가 이렇게 저항하고 부딪히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으면 너는 그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목사님도 이러한 과정을 겪고 그 깨달음이 이끄는 길은 간 것이었을까? 나는 아직 깨닫게 된 것은 없다.  계속 저항 중이고 이해하려 하고있다. 이런 과정에서 종교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타 종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솔직히 더 혼란스럽다. 기존의 종교를 갖는 것이 어리석고, 현세적인 것 처럼 느껴진다. 


데미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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