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포드(Watford FC) 로고 일러스트레이터(AI) 파일
왓포드 로고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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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클럽의 시작은 18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때 왓포드 로버스는 헨리 그로버와 에식스 백작으로부터 카시오베리 공원에서 축구공을 차도록 허락을 받은 동료 청소년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친선경기는 1882년에 시작되었고, 마을의 다양한 장소들이 경기에 이용되었다. 첫 번째 경기는 1886년 스윈던 타운과의 FA컵이었다. 1890년 카시오 로드(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곳)에 웨스트 허츠 클럽 앤 그라운드(West Herts Club and Ground)가 설치되었고, 왓포드 로버스는 1893년 웨스트 허츠(West Herts)로 이름을 바꾸면서 축구 부문으로 입주하였다.
정규리그 축구는 1896년 웨스트 허츠가 서던리그 2부리그에 입단하면서 시작되었고, 이듬해 구단이 프로로 전향했다. 1898년 라이벌 타운 클럽인 왓포드 세인트 메리가 흡수되었고, 그 클럽의 이름은 왓포드가 되었다.
왓포드는 1900년에 챔피언으로 서던 리그 디비전 1로 승격되었으나 1903년에 강등되었다. 이때 랠프 소프가 은인으로 개입했고, 위대한 전 잉글랜드 주장이자 우승자인 존 구달(John Goodall)이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왓포드는 1904년 디비전 2의 무패 챔피언으로 다시 승격되었다.
해리 켄트는 1910년에 감독직을 이어받았고, 1915년에 이 클럽을 서던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왓포드는 이 시점에서 잉글랜드 남부에서 손꼽히는 클럽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운영이 중단되었고, 1919년 지역 Benskin의 양조장을 클럽 후원자로 하여 재개되었는데, 이 협회는 40년 이상 지속되었다. 1920년 왓포드는 서던 리그가 대거 합류하면서 풋볼 리그의 회원이 되었다.
비카리지 길은 1922년에 본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은 어려운 시기였다. 1926년까지 그 클럽은 이사 비용에 의해 야기된 재정 위기에 처했고, 대중에게 호소를 시작했다.
1930년대는 운이 좋아졌다. 이 클럽은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디비전 3 사우스에서 5회 연속 톱6 결승전을 치렀고, 1937년에는 밀월과의 사우스 섹션 컵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경기를 치렀다.
※ 위 글은 왓포드 홈페이지에서 인용했습니다.
※ 아래의 홈페이지 링크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watfordfc.com/history/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