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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4. 1. 06:41

박주선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박주선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대한민국 제20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박주선

朴柱宣 | Park Joo-sun

 

출생

1949년 7월 23일 (72세)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사저

광주광역시 동구

 

본관

밀양 박씨

 

현직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장

재임기간

제20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2016년 6월 9일 ~ 2018년 5월 29일

 

배우자

이현숙

 

자녀

슬하 3남

 

학력

광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법학 / 석사)
케임브리지대학교 (법학 / 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 만기전역

 

종교

불교 (법명: 정행)

 

신장

173cm

 

경력

제16회 사법고시 수석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국민의 정부)
제16대 국회의원(전남 보성·화순)
민주당 최고위원
제18~19대 국회의원(광주 동구)
국민의당 최고위원
제20대 국회의원(광주 동구·남구 을)
제20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
바른미래당 대통합개혁위원장
국민의힘 살리는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대통령 비서실 법무 비서관, 16, 18~20대 4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원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 이었으나, 탈당하여 통합신당의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있다가 국민의당과 합당을 결정. 국민의당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이후 바른미래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지역구는 광주광역시 동구·남구 을.

박주선 고향 학력 나이 생애 가족관계 이력 

1949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보성남초등학교, 보성중학교, 광주고등학교(17회)를 다니는 동안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사법시험 16회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전남 보성 출신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검찰 최고의 '특수 수사통'으로 불릴 만큼 유능함을 인정받았고 강력한 친화력과 화술까지 갖춰, 영남 출신 대통령들과 검찰 수뇌부 아래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 2, 3과장과 서울지방검찰청 특수 1•2부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미래의 검찰총장감으로 꼽히는 검사들이 주로 맡는 요직들을 모두 맡았다.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외화 밀반출 사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촌처남 손성훈씨 비리사건 등을 처리했다. 1997년에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재직하면서, 15대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제기한 '김대중 후보 비자금 의혹' 사건의 수사 유보 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주선 정치 활동 경력 이력 

'김대중 후보 비자금 사건' 수사유보 건의로 김대중 정부의 눈에 들게 되어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비서실 소속 법무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이는 대검 수사기획관에 이어 검사장 승진과 검찰총장 후보군 입성이 확실시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그러나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퇴하고 대검찰청을 떠나야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명예회복을 위해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2004년 1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석 달 앞두고 선거구가 쪼개져 고향 보성군이 같은 당 중진 박상천의 선거구인 고흥군과 합쳐지자 탈당과 무소속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박주선과 박상천 모두 열린우리당 신중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 나라종금 사건과 현대건설 뇌물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당에 복당한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선거를 준비하였으나, 당시 한화갑 대표측의 의중으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어 선거에 출마하였고, 이로 인해 미리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중이던 김경재, 김영환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 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으나, 당시 군소정당급이었던 민주당의 지지율에 비해 선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최고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 출마를 준비하다가 불법 선거인단 모집 의혹으로 인해 당에서 해당 지역 무공천을 선언하면서 탈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선거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구속되어 1심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결국 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2014년 민주통합당이 민주당을 거쳐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자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15년 설훈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그 해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이후 2016년 1월 통합신당의 창당을 추진하면서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있었다가 국민의당과 통합을 결정했다. 그리고 2016년 2월 2일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난 선거 때 지역구였던 동구가 포함된 동구 - 남구 을에 출마해서 과반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전 지역구이자 고향인 보성에서도 박주선 국회의원 당선을 읍내에 현수막까지 걸어가면서 축하해줬다. 그리고 국회부의장 선출 이후 또다시 온 읍내가 축하 현수막으로 도배됐다..2016년 6월 9일, 국민의당 몫으로 배정된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다..2017년 3월 14일에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 국민통합과 협치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2017 3 17 예비경선을 통과했으나 이후 경선에서 안철수의 독주 속에 두각을 보이지 못하며 3위로 마무리되었다..2017 5 25,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지원 대표가 사퇴하면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8년 초반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바른미래당 창당)에서 김동철 원내대표, 주승용 의원, 황주홍 의원 등과 함께 중재파에 속해 있었으나, 이후 김동철 원내대표, 주승용 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 창당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함께 바른미래당의 공동대표를 맡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기도 한다. 그리고 2018년 2월 13일 바른미래당의 창당과 함께 대표직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7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대표직을 사임하고 당무를 거부하고 있어 사실상 탈당한 상태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 선언을 하였는데 소속 정당인 민생당에서 동구청장을 지낸 대안신당 출신 김성환 후보로 공천을 했다가 하루만에 공천을 번복하고 박주선 현 의원에게 재공천한 일이 있어 김성환 후보가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상태이다. 개운치 못한 공천 과정으로 인해 다시 명예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그간의 박주선 의원의 행보와 다르게 본인이 아니라 상대 후보가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한 셈이다. 같은 지역구에서 전국 최고, 최저 득표율을 모두 기록했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득표할지 주목을 받았으나, 결국 결과 무소속 김성환 후보에도 뒤지는 3위로 낙선했다. 2021년 10월 29일 김동철 전 의원과 함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  과정에서 "이제 정치의 뜻은 접었고, 앞으로도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면서 간접적으로 정계 은퇴의 뜻을 밝혔다. 민생당 일각에서 나오던 서울시장 재등판 요구를 사실상 일축한 .

 

이후 2021년 12월 5일 살리는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다만 국민의힘 당적은 없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현재로써는 지방선거 출마보다는 국무총리 등 임명직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자살로 궐위가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재기를 모색할 수도 있다. 예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어 나간 적이 있고, 민생당 내부에 서울특별시장 후보군이 될 만한 인물이 박주선 외에는 없다는 점도 힘을 실어주는 요인. 다만 서울특별시장 낙선 이후 2년도 안 돼서 광주로 지역구를 옮긴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헌데 동년 11월 12일 이수봉 민생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박주선의 이름을 거론한지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다만 이수봉 비대위원장이 3지대 단일화를 요구한 것이 변수가  가능성이 있다

결국 2월 19일 당무회의에서 이수봉 비대위원장을 전략공천함에 따라 민생당 후보로는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경선 패배가 아닌 전략공천에 따른 공천 배제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한다면 무소속 출마나 당적 변경 이후 출마도 가능하지만, 총선 이후 최근까지 정치 활동이 전무한 것으로 보아 사실상 불출마를  상태. 사실 박주선 본인 입장에서도 정계를 은퇴하거나 정치생명을 이어가더라도 20 대선 출마나 8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장 출마라는 선택지가 있어 보선 출마는 그다지 메리트가 크지 않다고  수도 있다.

 

 

박주선 논란 사건 사고 

'스팀 규제' 논란

스팀의 한글화 게임에 대한 심의 요구를 하여 게이머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다만 조금 주의해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는데,

미국, 유럽, 독일, 일본 등에서는 등급분류를 받으면서 한국정부의 등급분류를 받지 않겠다는 스팀사의 이중플레이는 한국 법체계만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다. 동시에 국내 게임업체의 해외 시장진출 장애와 스팀사의 홈페이지 차단조치 우려 등을 이유로 등급분류 조치를 미적거리는 우리 정부 역시 논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부가 국내게임업계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해외게임업계에는 느슨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는 국내 게임업계에 대한 역차별이다. 국내외 게임업체를 동일한 잣대로 규제할 역량이 부족하거나, 게임 등급분류를 엄격히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서 방치하는 것이라면 그런 규제는 폐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스팀에서 유통되는 해외 게임들도 국내법에 따라서 등급분류를 받도록 강제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국내 게임 개발사들도 해외처럼 풀어주든지 정부가 빨리 결정을 내리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는데, 안 그래도 각종 규제에 학을 뗀 게이머들이었기 때문에 "해외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강제"라는 부분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박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법을 적용하려면 엄격하게 적용하고, 내외국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법치국가의 원리", "외국 게임을 등급분류할 수 없고 불법 게임물 유통이 방치될 수밖에 없다면, 내부 법을 고쳐서라도 동등한 대우를 해야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라고 발언하기도 했고(참고기사), 이후에는 게임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하는 등 국내 게임 등급분류 개선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러나 박주선 의원의 의도가 어쨌든, 국내에 지사를 두고 있지 않은 스팀이 한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등급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법체계를 무시하는 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미국, 유럽, 독일, 일본 등에서는 등급분류를 받으면서 한국정부의 등급분류를 받지 않겠다는 스팀사의 이중플레이는 한국 법체계만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다."라는 주장을 펼쳤으나, 스팀은 사용권을 제공하는 곳으로서 등급분류를 해야하는 회사가 아닌데다가 해외에서의 게임 등급분류는 완전 자율이며 등급분류를 받는 경우도 소매점 판매를 위한 것이다. 동등한 대우라는 것도 그것이 등급분류를 의미한다면 외산 게임들이 굳이 우리에게 요구할 이유도 없는 것이며 게임에 대한 대우라는 것도 사용자들의 평가나 그 게임의 매출과 같은 것이 보다 지표로서 적합한 것이지 등급분류 여부가 그것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은 스팀과 게이머 뿐 아니라 스팀에 게임을 올리는 제작사 및 유통사에게도 영향을 끼쳤는데 가령 그냥 어디 영세제작사도 아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이 발언에 지레 겁먹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와 헤일로 워즈 결정판들을 제외한 모든 상품에 한국 지역락을 걸어버렸으며, 이 지역락은 2021년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등급분류 개선안 내용에도 논란은 있는데, 청소년 이용불가에 대한 게임물이 자율심의에서 제외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의 과정에서 선정성 · 폭력성 콘텐츠에 대해 국제적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기준을 적용해 등급거부를 남용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횡포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에서의 태도

대선기간 동안 문준용 특혜제보를 조작해서 이용했다는 것부터가 당의 존망을 좌우하는 최악의 정치공작 사건임에도 자숙이나 반성은커녕, 기자간담회를 열어서 되려 민주당을 비난하며, 이번 사건은 이유미의 단독범행임을 강조하면서 국민도 속고 국민의당도 속았다# 발언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7월 12일엔 '검찰도 지난주 중반까지는 이유미 단독 범행으로 종결을 지으려 한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실장이 국민의당에 방문해 청와대의 추경 협의 의견을 전달할 때 추미애 대표의 사과를 받았는가에 대한 헤프닝이 있었다. 이후 후속보도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전화 통화 후 청와대에서 추 대표 발언에 대한 유감내지 사과에 대해 공식 부인했으나 임종석 비서실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한것이 맞다.

이후 사과는 받아들이겠으나 추미애 대표에 대해 협치에 걸림돌이 된다며 발언을 무시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박주선 여담 일화 인간관계 인맥 사건 사고

5번이나 기소된 적이 있고 그중 4번 구속되어서 4번 모두 무죄판결로 풀려난 특이 경력이 있다.

보통 구속될 정도의 사안이면 대부분 실형이나 못해도 집행유예 판결은 받아내지만 한번도 아니고 네 번을 모두 무죄판결 받는 경우는 박주선 의원의 경우 빼곤 거의 없다. 이는 검찰의 정치 편향성 때문으로 보기도 하는데 보통 검찰에서 야당계 의원들에게 무리한 기소를 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반 형사사건에선 피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검사가 시말서를 쓰거나 심하면 징계성 인사를 당하는게 보통인데 야당 정치인을 구속해서 재판을 몇년간 질질 끌다 무죄가 나와도 검사가 도리어 영전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기 때문.

일각에선 벌금 80만원의 유죄라며 거품물고 대단한 범죄라고 주장하는데 구속된 사건과 별건이 병합심리 되어 술자리에서 동장들에게 법에 허용하는 선에서 도와달라 발언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유죄로 인정되어 80만원 벌금형을 선거 받은것이다. 보통 80만원 벌금형은 약식재판으로 기소하며 선거법의 경우만 정식재판이 열린다. 벌금 80만원형은 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당선무효가 되는 국회의원들에게 별다른 타격이 없고 검찰도 체면을 세우는 법원의 솔로몬 재판급 고정형량에 가깝다.

선거 관련하여 특이한 사항으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해당 선거 당선자 전국 최고득표율과 최저득표율을 모두 경험해본 기록이 있다. 최고득표율은 18대 총선에서의 88.7%, 최저득표율은 그 다음 총선인 19대 총선에서의 31.6%다. 2018년 현재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69세로, 최고령 국회의원이다. 통합 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각각에서는 박지원, 강길부가 최고령이었다.(둘다 76세) 바른미래당에 가장 최근에 합류했고, 국민의당 내 중재파여서 출범 당시 기대 반 우려 반이 있었으나, 정작 공동 대표가 된 이후 구 바른정당 측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도 특히 정치 스타일이나 정치력 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박종진 前 앵커와는 형동생 사이라고 한다.

국민의당 내에서는 바른정당과 통합에 대해서는 반대파로 분류되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중재파로 분류되었다가 통합에 찬성해서 바른정당 통합 반대파가 세운 민주평화당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다보고있다. 막내아들은 IT 사업가인 듯 하다. ##  영향으로 20 국회의원 시절에는 IT/블록체인 산업 쪽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에 중소기업뉴스와의 인터뷰를 했다. # 장남과 차남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점이 없다. 다만 21 총선 직전에 유튜브에 얼굴이 공개되었다.

 

18대 대선 박근혜 지지 해프닝

당적을 갖지 않고 무소속 신분으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활동하던 시절,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지지하려고 했으나 지지자들 및 지역구 주민들의 극렬한 반발로 무산된 경력이 있다.

참고로 18대 대선 당시에는 구 민주계의 주요인사였던 한화갑, 한광옥을 시작으로 김경재, 김원길, 안동선, 이윤수 등이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상황이었다. 무공천 관련해서 친노계 지도부와의 앙금이 있던 박주선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다른 동교동계 인사들을 따라서 가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박주선은 동교동계 중에서도 민주당 쪽을 지지하는 권노갑을 따르지 않고 보수화된 한화갑을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20대 대선에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였다.

 

 

박주선 선거 이력 경력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보성·화순

무소속

46,484 (59.92%)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고흥·보성

23,876 (29.73%) 낙선 (3위)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304,565 (7.71%) 낙선 (3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동

34,625 (88.74%)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

15,372 (31.55%)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동·남 을

43,190 (54.70%)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8,613 (10.10%)

낙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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