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이자 제8대 유엔 사무총장. 현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자 IOC 윤리위원장이다. 유일한 한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그룹 출신의 두 번째 사무총장이었다.
반기문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제8대 UN 사무총장)
반기문
潘基文 | Ban Ki-moon
출생
1944년 6월 13일 (78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600-1
(現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행치길 17-1)
본관
광주 반씨
현직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이사장
보아오포럼 이사장
IOC 윤리위원장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연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재임기간
제21대 외무부 경제차관보
1996년 1월 16일 ~ 1996년 3월 5일
제5대 외교통상부차관
2000년 1월 27일 ~ 2001년 4월 1일
제33대 외교통상부장관
2004년 1월 17일 ~ 2006년 11월 10일
제8대 UN 사무총장
2007년 1월 1일 ~ 2016년 12월 31일
부모
아버지 반명환, 어머니 신현순
형제자매
남동생 반기상, 반기호
여동생 반정란, 반경희
배우자
유순택
자녀
아들 반우현
딸 반선용, 반현희
학력
충주교현초등학교 (졸업)
충주중학교 (졸업)
충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 (행정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78cm, 78kg, O형
종교
개신교
경력
제3회 외무고시 합격
주인도 대사관 1등 서기관
외무부 국제연합과장
주미국 대사관 참사관 겸 총영사
외무부 미주국장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외무부 제1차관보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오스트리아 대사
주비엔나 국제기구대표부 대사
외교통상부차관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제33대 외교통상부장관
제8대 유엔 사무총장
하버드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IOC 윤리위원장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반기문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유년기
1944년 6월 13일(음력 1944년 윤 4월 23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에서 태어나 세살 때 충주군으로 이사 후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충주에서 다녔다. 당시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집안일을 도우면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으스대지 않고 진중한 성격이라 동네 어른들은 그를 내성적인 학생이라 생각했다고. 또한 미국의 원조를 받아 만든 비료 공장이 충주에 생겼고 미국인 기술자들이 머물던 사택이 생겼는데, 미국인들에게 영어를 배우러 이곳을 방문하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2년 여름에 적십자가 후원하는 에세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 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자신의 우상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그 만남에 참여했던 한 저널리스트가 장래 희망을 물어보자 그는 "외교관이 되겠다"고 말했고, 결국 그 꿈의 정점에 올랐다.
반기문이 졸업한 충주고등학교는 그의 사무총장 당선 이후 기숙사를 새로 지으면서 반기문 총장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외교관 생활
196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現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 입학했고,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 시기 국무총리이자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노신영 밑에서 외무와 정무(총리실 의전비서관)를 배웠으며, 그를 롤모델로서 존경한다고 한다.
재학 중이던 1965년, ROTC 후보생이 되었으나 2개월 만에 그만두고 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제대한 후 복학했다.
참여정부에서 정권의 성향과는 다소 상이한 인사로 제7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재직 중이던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이 납치, 피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반기문 장관은 알자지라 방송에 직접 출연해 석방을 호소하는 등 제스처를 취했으나 구출작전이나 교섭 등 실질적인 조치 없이 방송 호소만으로 씨가 먹힐 자들이 아니었고, 결국 김선일은 참수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외교부 장관 경질론까지 불거졌었고, 반 총장 자신도 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북한은 반기문 당시 장관을 두고 '친미사대 매국노'라며 비난한 적이 있다.
이듬해 반 장관은 신속대응팀을 신설, 국외 비상사태 관리를 담당하게 하도록 했으며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에서 활약했다.
한미 FTA 찬성, 이라크 파병 찬성 등 당시 외교현안에서 한미 동맹을 중시했다. 반기문과 송민순, 윤광웅 등의 한국 핵심 관료들이 주한 미군 기지의 오염 정화비용에 대해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환경부측의 주장을 묵살하고 한국이 비용을 부담하라는 미국측 입장에 우호적으로 반응했다는 지적도 있다. 위키리크스를 통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대사는 본국에 보낸 기밀문건을 통하여 반기문을 가리켜 '미국의 모든 사안에 대해 본디 호의적이다(he is naturally sympathetic to all things American)'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선 개인의 신념은 개인의 자유고, 그 결과로 외교관 직무상 어떤 심각한 손해를 끼친 적은 없으니 그걸 가지고 가타부타 하는건 도가 지나치다는 견해와 반대로 요직의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가진 개인적 시각이 공무나 정치적 사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하면 중요한 문제고, 실제로 미군기지 사건에서 그로 인해 한국에 손해를 끼쳤으니 비판할만 하다는 견해가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선출 과정
이후 2006년 10월에 UN 사무총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전임의 아프리카 가나 출신 코피 아난에 이어 마침 아시아 대륙에서 사무총장을 낼 차례가 돌아왔는데 출마선언한 아시아 각국의 경쟁자들이 어째 죄다 결격사유가 있어서 유력후보로 급부상했다.
경쟁자 면면을 살펴보자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인도의 샤시 타루는 다 좋은데 모국이 급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라 집중 견제 당했고, 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는 반대로 모국이 상황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활동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제대로 된 득표활동을 치루기 힘들었다. 타루와 함께 유력 후보였던 태국의 수라끼얏 사티라타이는 당시 모국의 정국불안으로 무너졌고, 스리랑카 후보는 내전 중 타밀족 인권문제가 걸려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요르단 후보는 서방세계의 아랍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문제가 되면서 탈락했고, 라트비아 후보는 UN 사무총장의 대륙별 순회원칙을 무시한 유럽 후보인 바람에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무총장이 되는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프랑스는, 반기문은 프랑스어 못한다라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려 했다. 단순히 프랑스의 자존심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게, 프랑스어는 16세기 이래 세계 외교가의 표준언어인데다, UN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아프리카 대륙에선 제1 공용어다. 결격사유로써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에 반기문은 프랑스어 과외 교사를 고용해서 프랑스어를 벼락치기로 공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자크 시라크와 어느정도 대화를 하는 데 성공하여 프랑스의 지지를 받아냈다. 그리고 당시 행정부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반기문 총장 당선을 위해 부단히 움직인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당시 준비 중이던 07~08년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경합을 포기하고 경쟁자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를 지지했다. 이에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가 즉시 반기문을 지지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남아시아의 지지도 지지지만, 사무총장 배출국이 비상임이사국까지 해먹는다는 비난을 막기 위함이 컸다.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 시절 가나도 비상임이사국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적어도 2차 임기 중일 때였다.
그 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을 위해 아프리카와 유럽 지역 순방에 당시 외교장관이었던 반기문을 동행시켰고, 특히 위에서도 언급한 프랑스 표를 공략하기 위해 일부러 아셈(ASEM) 회의에 참석해서 프랑스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굳이 급하게 정상회담을 할 필요가 없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돌면서 반기문이 유세할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건 멋진 일이 아닌가?'라고 말했고, 정부 내에 전담기구를 두어 반 장관을 지원했다. 여담으로 당시 기자들은 참여정부의 총장 선거 지원 프로젝트를 'Secretary General(사무총장) Wannabe'이니 SG워너비라고 했다고. 당시 외교부 2차관이었던 이규형 차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나중에 유엔 사무차장보를 역임하게 되는 김원수 장관특별보좌관은 투표권을 지닌 이사국들의 표심을 분석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참고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대변인 전여옥은 '반 장관의 출마와 한국이 UN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라고 말했던 바 있다.
그런 노력에도 이후 계속되는 유엔 안보리 총장후보 찬반투표에서 반기문에 대한 반대표가 계속해서 1표가 나왔다. 사무총장은 만장일치 추대를 기본으로 하는데다, 무기명 투표에서 나온 반대표 1표가 상임이사국의 표일 경우, 독보적 1위라 하더라도 사무총장 취임이 불가하기에 당시 한국은 상당히 긴장했다. 다른 후보들이 계속 저조한 지지로 사퇴하는 와중에도 반기문에 대한 반대표 단 1표가 계속 등장하여 모두들 불안감에 휩싸였으나, 마지막 안보리 투표에서 찬성 14, 기권 1로 반대표가 기권으로 바뀜으로서 반기문이 최종적으로 차기 UN 사무총장이 되었다.
덕분에 대체 어떤 나라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이 나왔었는데, 2008년에 출판된 존 볼턴 당시 UN 미국대사의 책 'Surrender Is Not an Option'에서는 반대표를 던진 나라로 일본을 지목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처음부터 반기문을 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계속해서 반대표가 나오자 한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을 의심했고, 이에 유엔 주재 일본대사를 찾아가 입장을 바꿀 것을 설득하자 다음 투표에서 반대표가 기권표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다만 정확한 물증은 없는지라 마냥 일본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당시 반기문 선거진영의 외교관과 측근들은 또 다른 후보였던 인도의 샤시 타루가 전임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가나를 의심하고 있었고, 일본은 아닐 것이라며 이 책을 미심쩍어하는 시선도 있는 모양.
또 반기문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졌다고 의심받던 국가로 의심받던 중국의 경우는 오히려 반 총장을 적극 밀었다고 한다. 유력 후보 중 1명이 중국의 최대 가상적국 둘 중 하나인 인도 외무장관인 샤시 타루였기에 샤시 타루 당선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서 반기문을 밀었다고. 참여정부 당시 한중관계가 나쁘지 않았기도 했다. 또한 엉뚱하게도 중국에서는 중국인의 핏줄이 UN의 수장이 된다며 기뻐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한국의 반씨는 모두 고려 시절 귀순한 중국인을 시조로 하는데, 그러므로 반기문은 중국의 후예라는 얘기도 종종 나오기도 했다. 한편, 어느 중국인 마을은 반씨가 사는 마을이라 반기문이 조국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데 반기문은 대꾸도 안했다.
사무총장 선출
2007년부터 5년 임기의 제8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했고, 재임 막바지인 2011년 6월 17일에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 결국 2016년까지 임무를 계속하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유혈사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도 손을 놓고 있는 유엔 안보리에 평소엔 보여주지 않았던 화난 모습을 보여주며 비록 레임덕인 몸이지만 개혁할 건 해놓고 떠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6년 12월 12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고별연설'을 하였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은퇴 이후 활동
국제올림픽위원회 윤리위원장
반기문 전 총장은 2017년 9월 15일에 IOC 윤리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반 전 총장의 IOC 윤리위원장 지명 안을 최종 승인했다. 그의 직책 윤리위원장의 임기는 4년이며 재선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가 윤리위원장이 된 배경은 그가 사무총장직에 있었을 당시, UN에 윤리강령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지키게끔 한 것에서 반 전 총장의 윤리위원장의 자질을 알아봤다고 IOC가 설명했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첫 취임사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은 북한의 위협에도 안전한 대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취임 첫 행보로는 리우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매수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IOC 위원들을 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2021년에 재선에 성공했으며, 2020 도쿄 올림픽 기간에 일본 나루히토 왕과의 면담을 가졌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자신이 유학했던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인 케네디스쿨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받아 2017년 5-6월 쯤 미국으로 떠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주준비를 하고 있다 한다. 정확한 직책은 DISTINGUISHED SERVICE PROFESSOR로 공직을 비롯한 사회 각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종신교수직이다. 실제로는 3개월간 초빙교수로 하버드에서 지냈다.
연세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의 석좌교수이자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으로서 2017년 7월부터 재직하게 된다. SDGs를 시작한 UN 사무총장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대해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며, 실제로 대규모 온라인 공개 강의 Coursera에서 '반기문과 함께하는 21세기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강의가 진행 예정이다.
또한, 반 전 총장의 석좌교수 취임에 맞춰 기후변화 등을 연구하는 '반기문 지속가능성장센터'가 창립될 예정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2019년, 청와대가 제안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직을 사실상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17일 서면브리핑에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반 전 총장을 만나 위원장직을 맡아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 8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할 것과 반 전 총장에게 위원장을 맡길 것을 제안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참모진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라고 지시한 바가 있다.
노 실장은 반 전 총장과의 면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뜻을 전달했고, 반 총장은 이에 대해 "미세먼지 문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며 "국제 환경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에 도움이 될 기회를 주신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으나, 단기간에 해결하긴 어려운 과제여서 본인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칠까 부담과 걱정이 있다"며 "범국가기구는 모든 정당, 산업계, 시민사회 등까지 폭넓게 포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범국가기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고 돌아온 자리에서 "중국에 간 사흘동안 하늘이 참 맑았다. 미세먼지 절감에 대한 노력을 우리나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야 경제규모 차이라던가 중국도 황사 보호나 공장 이전을 위해 쓰는 돈이 적은게 아니긴 한데, 이 발언을 들은 사람들은 우리보고 노력을 하라고 그 자리 앉힌게 아니란 입장이라 그래도 UN에서 한 게 있으니 잘할거란 기대감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동시에 '먼저 국내적으로 미세먼지 배출원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4월 29일자로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출범하면서 위원장에 정식 취임하였고, 2021년 4월 30일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기능이 중첩되는 2050 탄소중립위원회와 통합되면서 자연히 퇴임했다.
반기문 정치/인권 성향
정치 성향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했지만, 일단 정치적으로는 보수 쪽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성소수자 및 에이즈 환자 인권
70개국 이상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범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회적 통념의 뿌리가 깊다는 것 물론 알고 있습니다. 사회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문화적 태도와 보편적 인권이 대립할 때에는, 보편적 인권이 반드시 우선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 반감이나, 심지어 사회적인 반감이 있을지라도, 체포, 구금, 감금, 괴롭힘이나 고문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2010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처벌 철폐” 행사에서
세계의 인권 사각지대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챙기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성소수자 인권 분야로, 국내에도 성소수자 인권 옹호 발언이 가끔 소개되기도 한다. 처음 사무총장직에 올랐을 때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던 부분이다. 고령의 나이에 보수적인 한국 출신이라는 점이 선입견을 만든 셈. 이 예상을 제대로 깨버렸다. 다뤄야 할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개선까지 해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반기문 전까지 UN에 등록되어 협의지위를 받은 LGBT NGO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원래 공무원 사회가 보수적이듯 UN도 상당히 보수적인 기관이니 놀라지 말 것.
모국인 한국의 상황을 직접 언급한 적도 있다.
대선 출마설이 한창 가열되던 2016년 5월 한국 방문 중에도 성소수자 인권 이야기를 꺼냈다.
사각지대 중 사각지대인 에이즈 인권도 신경을 쓰고 있는 중.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에이즈 외국인 입국 금지 철폐에 나서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경우, 국내 방문중 김황식 총리를 만나 장문의 설교를 해 겨우 성공시킨 것 같다.
2014년 5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유엔의 동성애자 직원들이 여전히 차별에 시달린다는 고충을 들어왔다" "평등은 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유엔의 LGBT 직원과 가족들이 여전히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유엔의 모든 직원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2014년 7월 7일 "모든 유엔 직원의 평등을 신장한 데 자부심을 느끼며, 모든 유엔 멤버들이 호모포비아 반대에 힘을 모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유엔 직원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국가에서 결혼을 하면 기혼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정책을 실행하였다.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이자 성소수자 관련 단체에게도 지지와 환영의 성명을 표시할 정도.
2015년 9월 29일경 뉴욕에서 열린 성 소수자 인권 이벤트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 안건에 대해 매우 강한 목소리로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이날 반기문은 12개의 UN 산하기관이 모인 자리에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 소수자 핍박에 대해 "성 소수자의 인권이 학대당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권이 깎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목숨은 값집니다. 어떤 목숨도 다른 것보다 덜 값지지 않습니다.""내가 이끄는 UN은 차별과의 싸움에서 절대 작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위험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이들을 지키는 일에서 절대 도망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으로서의 약속이 아닙니다. 이는 기관으로서의 약속입니다."
이 부분은 정치인 반기문에 회의를 느끼는 민주당계 정당,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도 까임방지권을 받는 부분이다. 다만 일부 야권 지지자들과 보수계를 막론하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반기문을 찍으면 안된다며 비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비록 반기문이 한국에서 이 문제를 UN의 수장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진지하게 거론한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성소수자 인권향상에 반하는 증오 발언을 한 적도 없으며, 사실상 국내에서 관료 생활을 할 때는 아예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가 UN을 주무대로 활동하면서 이 문제에 눈을 떴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그렇기에 반기문은 성소수자 인권의식에 있어서만큼은 새누리당의 기존 세력들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편으로, 차별금지법 관련 논란으로 고생이 많은 국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 입장에선 희망이 되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관심을 갖기는 한다 수준일 뿐, 실제로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의 주류는 여성운동권, 노동운동권 출신을 비롯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라 친LGBT 성향만 보고 무조건 반기문을 지지할 이들은 절대 아니다.
물론 김홍걸의 반기문 칭찬에 달린 부연처럼 국내에 와서 입을 씻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반기문이 가진 성소수자 인권의식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지만, 새누리당이 모셔온 자리에서 LGBT 지지를 일부러 꺼내면서 새누리당 의원과 지지자들을 데꿀멍시키는 2016년까지의 행보를 보면 상당히 일관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리가 어쨌든 일단 2016년까지의 'UN 사무총장 반기문'으로서 그렇다는 것일 뿐 2017년 가시화될 '대권주자 반기문'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반기문에 대한 평가는 2016년 기준으로도 의문부호가 달려있다. 각종 행보에서 성소수자 지지를 가장 강력히 표하는 대권주자가 반기문이지만, 반기문의 이력이나 논란거리, 정치적 행보 등 여러가지 면에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 노동운동, 자본주의 비판, 사회민주주의 등 진보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성소수자들의 주된 정서와는 영 코드가 안 맞다보니 성소수자들은 한국 와서 정치판 뛰어들면 입 싹 다물 것 같다는 시선을 보내면서 UN 사무총장이 아닌 대권주자 반기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보수정당의 후보가 성소수자를 지지한다고 하면 그 반동으로 기존의 중도/진보 야권 후보들까지 질세라 성소수자 지지 경쟁에 나서는 '열풍'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성소수자들이 온갖 의문부호는 달지언정 반기문을 아예 지워버리지는 않는 것은 야권 후보들에게서도 적극적인 지지 선언을 이끌어낼 원동력으로 기대해봄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영국에서 보수당의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 "나는 보수이기 때문에 동성혼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후 노동당 등의 좌파 진영에서도 상당히 신선한 바람이 불었던 바 있다. 늦어도 이 시기 즈음에는 '대권주자 반기문'이 성소수자들에게 보이는 태도를 통해 국내 성소수자들의 반기문에 대한 평가가 일관적으로 정리될 전망이다.
다만 2016년 11월~12월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정국이 반기문에게는 지지도는 물론 출마 가능성마저 한없이 불리해지게끔 굴러가는 중이라 퀴어계의 '반풍'이 본격화하기 이전에 좀더 스펙터클한 탄핵정국이 펼쳐진 뒤 야권주자들만의 경쟁구도로 조기 대선이 치뤄질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된다면 반기문의 눈에 띄는 성소수자 인권의식은 국내 정치판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전망.
애당초 국내 퀴어 단체들이 진보~신좌파 성향이 강하고, 당장 반기문이 LGBT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지지한다고 해도 새누리당으로 출마한다면 소수자 단체의 표는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성소수자들은 그간 보수도 아니고 중도세력에게 뒤통수를 맞은 전례도 많다보니 웬만한 감언이설로는 흔들리질 않는다. 또한 민주노총 등의 여러 노동운동, 진보성향 운동권과 '연대'를 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반기문을 섣불리 지지했다간 지난 20여년 이상을 공들여 키운 진보세력과의 연대가 박살난다는 점도 있다. 길어야 5년이면 사그라들 반풍만을 이유로 보수성향 후보를 지지할 여유 따윈 없다. 반기문이 아예 새누리당과의 연결고리를 온전히 끊어내고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에 입당하는게 아니라면 퀴어계에서 반풍이 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편이다.
2016년 12월 12일 TV조선 보도로 반기문의 입장중에서 동성애에 관련하여 “UN 입장에선 만민이 평등하다 그런 개념이지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는 주변인(반사모 소속 임덕규 전 의원)의 말로 옹호론자가 아니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반발하며 해명을 요구하였다. 이를 냉소적으로 보는 진보언론들은 그간의 행보는 핑크워싱일 뿐이었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비판을 가하는 중.
한편 귀국편 기내 인터뷰에서 자신의 업적으로 LGBT 인권을 당당히 꺼내며 국내에서도 관련 행보를 계속 이어갈지에 대한 기대를 높히고 있다.
“많이 비난 받았던 것이 유엔의 LGBT(성소수자)차별금지결의안 문제다. 이게 유엔에서 상당히 논란이 됐다. 재임 10년 간 내가 한 결정을 유엔 회원국들이 뒤집자고 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다. 러시아를 포함해서 최소 50~60개국이 반대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많은 회원국이 나를 지지해서 그 결의안이 통과됐다. 소치올림픽 때 푸틴이 ‘LGBT는 초청도 안 한다’고 했는데 제가 그걸 비판했다. 그래서 러시아와 나의 관계가 아주 미묘하다. 그리고 중국에서 2008년 올림픽 할 때도, 러시아와 조지아 간 전쟁이 났을 때도 제가 비판했다. 러시아ㆍ중국과 (저와의) 관계가 미묘해서 자칫하면 제2기 연임도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아까 LGBT에 관해 한마디 더하겠는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종교계 계신 분이 오해가 있는데 제가 얘기하는 건 사람이 태어날 때 그런 성향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많다. 의외로. 신체부자유로 태어날 수 있고 지체 부자유도 있고, 여러가지 성별, 인종, 종교 등에 관계없이 만민이 평등하다, 인격이 보장돼야 한다. 예외가 없다. LGBT든 누구든. 교황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종교계를 직접 언급했는데, 이혜훈 의원의 주장처럼 그동안 차별금지법 권고의 배후가 반기문이었다는 주장의 무게에 힘을 더해주는 발언이다.
다만 국내에 와서 한 관련 발언 중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 있었다.
반기문 업적
파리 기후 협정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사실상 최대 업적.
아시아
- 미얀마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국제사회의 인적 지원을 거부했었다. 문제는 내부적으로 물류를 소화할 능력도 안되면서 큰 소리만 치고 있었다는 것. 20년간 지켜온 체제가 외국인 유입으로 무너지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었지만 반기문의 방문 이후 마음을 바꿔 원조를 허가한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아웅 산 수 치를 비롯한 수감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에 나서며 미얀마의 민주화의 큰 공을 세웠다. 결국 미얀마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2012년 재방문,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환영을 받으며 미얀마 국회에서 연설한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아프리카
- 이집트
아랍의 봄 문서로. 호스니 무바라크 퇴진정국 당시 국제적 정당성이 부족하던 시위대에 힘을 실어준 최초의 국가원수급 인사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은 기류를 읽지 못하고 친미인사인 무바라크를 계속 지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행보.
- 코트디부아르
직접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 프랑스군과 합동작전을 펼쳐 대선 결과를 무시하고 버티던 독재자 로랑 그바그보를 무력으로 잡아 끌어낸 건. 유엔평화유지군이 직접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가 연이어 벌어졌었다. 식민모국인 프랑스의 조언을 따라 빨리 개입한 것도 매우 칭찬할 만한 일이다. 과거 유엔이 벨기에 정보당국의 첩보를 무시했다가 르완다 학살 등 뼈아픈 과오를 지켜보기만 했던 것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 남수단
반기문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남수단이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재빠른 평화유지군 투입으로 기독교 민병대가 무슬림 셀레카 반군을 학살하는 것을 상당히 빠른 시일 내에 멈출 수 있었던 건. 부정선거를 두고보지 못한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반군들이 무슬림을 중심으로 뭉쳐 독재자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었고, 군인들이 민간인을 해치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기독교를 중심으로 민병대가 결성되었다. 그 후 서로가 서로를 종교적 이유로 학살하는 사태까지 급진전. 이 모든게 굉장히 종교색채가 옅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셀레카 반군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온건 무슬림이긴 하나, 근처 나이지리아 보코하람의 개입 여지가 상당히 높았고 이를 끊어버린 데서 매우 칭찬받아야 할 건이지만 불어권 언론 말고는 별로 언급이 없다.
- 2014년 에볼라 사태 대응
에볼라 사태 당시 확산을 막기 위해 UN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보건유지군으로 볼 수 있는 에볼라 비상대응단(UNMEER)을 창설시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전례가 없는 건으로, 전담기관인 세계보건기구의 늑장으로 인해 에볼라 유행이 심각해 진 상태에서 유엔이 개입 할 수 있는 사실상의 최대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기존의 세계보건기구가 의학적인 부분을 전담한다면 비상대응단은 물류를 비롯해 사망자의 시체 처리를 비롯한 활동 부분을 담당하여 이후 빠른 속도로 에볼라 유행 진정에 성공했다. 에볼라 유행 당시 유일하게 관련 서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한 국가원수급 인사로, 현지에서 앞으로 악수보다는 팔꿈치 부딪히기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반기문 여담 일화
반기문의 손녀딸의 이름은 반태란이다.
처음 선출되었을 때 엉뚱하게도 중국의 한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네는 '반'씨 집성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족보를 뒤져보면 "남당(南唐) 시기에 태사(太師)를 지낸 62세손 반우(판여우, 潘佑)의 셋째아들 반문절(판원제, 潘文節)와 넷째아들 반문장(판원장, 潘文壯)이 흉노족 남당과 전쟁중 포로로 잡혔다. 고려 사신과의 인연과 추천으로 거제도에 내려와 뿌리를 내렸다"라고 한다. 확실히 중국계 성씨이긴 하다. 뭐 1천 년도 더 전 일이니 반씨 성이 중국인이네 뭐네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지는 거다. 좀 뒤의 일이지만 2015년 베트남에서는 반기문이 베트남 반씨와 혈연이 있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결국 이게 씨가 되었는지 위키피디아 중문판에서 일부 혐한 중국 네티즌들이 악의적으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본토) 국적의 소수민족을 의미하는 조선족이라고 적어두었으나,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아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성씨 "반"(Ban)은 영어로 "금지하다"와 철자가 같고, 문(Moon)은 "달"과 같아서 두 가지로 다 놀림과 오해를 샀다. 심지어는 Ki-Moon이라니까 선명문, 그러니까 통일교의 문선명과 같은 핏줄인줄 오해 받기도 했다. 취임하며 사무총장으로서의 다짐을 발표하는 자리에선 "제 이름은 '반'입니다. '본드'가 아니고요."라고 본인의 성씨를 이용한 유머를 날리기도 했다. 그 유머 직후에도 직무 중 반영할 대략적인 외교 계획을 노래 가사로 만들어 부르기도 하며 청중의 웃음을 유도했다. 오해를 피하려면 Gimoon Ban으로 했어야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팸플릿에 그의 친필 사인을 받았는데, 함께 방문한 학생들이 이 팸플릿을 돌려보다 사인이 지워져서 아쉬웠다고. 이때 케네디는 "정부끼린 잘 지내기 어렵더라도 사람들끼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여러분이 미래의 희망이다", "우리가 서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의지만 있다면 국경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때의 말이 반 총장에게 인상적이었는지 이후 외교관이 되어 공익에 몸바칠 것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이 일화와 함께 "세계 시민이 돼라. 그리고 세계에 봉사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다"란 요지의 글을 한 국내언론의 사설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무총장에 선출된 직후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이 당시 두 사람이 만난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프리즘 폭로 사건이 터지고 미국 정보기관들이 UN까지 도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또한 도청한 미국 정보기관들을 풍자한 영상을 직접 제작했는데, 이게 진중한 UN 사무총장이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병맛이다. 지상파 뉴스도 탔다. 총 세 가지의 영상인데, 첫째는 반기문이 집무실에서 춤을 추는 영상이 유출되는 내용. 둘째는 반기문이 UN 직원들에게 Hardest working(제일 열심히 일하기)을 요구했는데 정보기관 공작원들이 Hardest twerking(제일 열심히 엉덩이춤 추기)로 알아들어 반기문 사무총장의 엉덩이춤을 금지하는 결의안이 제정되는 내용이라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현금을 줄 테니 어서 물건을 가져오라는 말을 공작원들이 도청하곤 꼬투리를 잡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피자를 시켜먹는 것이었던 내용.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대해, 이슬람적이지도 않고 정상적인 의미의 국가도 아닌 이 단체의 이름을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IS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는 주장에 따라 UINS(Un-islamic Non-state, 非 이슬람 非 국가)라는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젊은 시절에 모습이 축구선수 손흥민과 매우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아니, 아예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라고 의심할 만큼 빼다박은 수준이다.
맹목적인 친미 성향은 아니고 중국, 러시아가 UN 상임이사국 이고 강대국이기도 하다보니 이 두 나라와의 친분 성향도 있긴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도 같이 했었고 김종필의 대만 방문을 중국을 고려해서 만류하기도 하고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한테서 우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6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서 축사를 남겼다. 또한 IOC 위원장에게 감사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비판받는 수준으로 남발하는 '우려' 표명은 해외에서도 알려져 있으며 반기문을 비아냥거릴 때 사용되고 있다. 9GAG에서도 반기문이 2014년에 140번의 '우려'를 표시했고, 이는 사흘에 하루 꼴이라고 할 정도.
페이지가 아닌 페이스북 계정을 오픈했으나, 적극적 SNS 활동을 하겠다는 게시물, 봉하마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관련 게시물에 비난 댓글이 폭주하고 있다. 짧은 지지자 댓글과 장문 또는 링크 등을 건 비난 댓글로 혼돈 상태가 지속되던 와중 2017년 1월 17일 오후 3시경 페이스북을 닫았다.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계정 자체를 삭제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2017년 1월 18일 9시경 접속되며, 개설 이후의 글이 그대로 살아있다.
안티들에겐 장어, 혹은 기름 장어로 불린다. 반기문은 외교 전문가인 특성상 각종 외교적 수사에 매우 능하다. 그래서 곤란한 상황에 빠져도 장어처럼 교묘하게 잘 빠져 나온다는 뜻에서 장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 UN 사무총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붙여진 별명이다.촛불이 기름장어를 구워버렸다
2017년 6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의해 IOC 윤리위원장으로 지명했다고 한다. 9월 페루의 리마에서 개최되는 IOC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선출된다.
마블 코믹스에 등장한 적이 있다. 빌런 플래그 스매셔가 UN을 습격할 때 죽을 뻔 했으나 프로그맨이라는 듣보잡 히어로에게 구해졌으며, 얼티미츠에서는 와칸다에서 블랙 팬서에게 도움을 요청하다가 문전박대 당하는 안습한 역할.
명진출판사에서 2006년에 이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후 2012년에 2권이 출판하였으며, 현재 3권을 출판 중이라고 한다. 1권에서는 반기문의 인생에서 ‘꿈’이 가진 강력한 힘과 시골 소년이 ‘외교관’이라는 꿈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고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꿈이 있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고 느끼게 해 준 내용을 담았다면, 2권에서는 1권에서 담지 못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그에 대한 세계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어 연임에 성공한 내용을 담았다. 이 도서는 어린이용으로 제작된 '어린이를 위한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로도 다른 출판사에서도 만들어졌다.
UN 사무총장 시절, 2013년 4월 6일에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 CF VS 레반테 UD와의 경기에서 킥오프를 앞두고 시축을 했다.
2020년 3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前 유엔사무총장이 사망하면서 전직 유엔사무총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생존해있다.
북핵에 대해서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WHO 탈퇴에 대해서 비판했다.
핵무기금지 조약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조약 참가를 촉구했다.
40년대생 한국인이지만 키가 178cm로 시대를 감안하면 키가 매우 크다.
충청도 출신이라 한화 이글스의 팬이다. 옛날 빙그레 시절 시구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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