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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스포츠 / / 2022. 4. 19. 12:55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 나이 학력 선수이력 프로필 (+손담비 이규혁 웨딩화보)


대한민국의 前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다. 한국 선수 중에선 유일하게 20년 이상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 나이 학력 선수이력 프로필 (+손담비 이규혁 웨딩화보) 

 

이규혁 프로필
이규혁

 

이규혁

李奎爀 | Lee Kyouhyuk

 

출생

1978년 3월 16일

 

국적

대한민국

 

학력

리라초등학교 (졸업)

신사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학 / 학사)

 

 

종목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500m, 1,000m

 

가족

아버지 이익환

어머니 이인숙

남동생 이규현

약혼자 손담비(2022년 5월 13일 결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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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선수 경력

어린 시절

피겨 스케이팅 코치인 어머니 이인숙 씨의 뱃 속에서부터 얼음판을 지친 진짜 '모태 스케이터'. 4살부터 취미 수준으로 얼음을 타다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그냥 교내 롤러스케이트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자타공인 '빙상 신동'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2살 터울 동생 이규현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으나 형에게 밀려 콩 어머니처럼 피겨 스케이팅을 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학생 때인 1992년에 처음으로 국가대표로서 주니어 대회에 출전했고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996-97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97년 12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1,0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였다. 그리하여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빙속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리스트로 기대를 모았으나, 큰 부담을 받았는지 성적은 500m 8위, 1,000m 13위에 그쳤다.

 

 

2000년대

2000-01 시즌에는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고 세계선수권에서도 메달은 따지 못했으나 상위권의 성적을 내는 등 전성기를 이어갔다. 이런 성적을 바탕으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나가노 때와 마찬가지로 성적은 500m 5위, 1,000m·1,500m 8위로 노메달. 이후 2005년까지 깊은 슬럼프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낸 가장 좋은 성적은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2관왕이 된 것이다.

2005-06 시즌부터 부활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다시 도전하였으나 1,000m에서 3위와 0.05초 차이로 4위를 차지한다. 당시 이강석이 500m에서 동메달을 땄기 때문에 이 일은 사람들에게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규혁은 이후 올림픽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이 기록이 이규혁의 올림픽 도전사에서 최고의 기록이 되었다.

절치부심한 이규혁은 2007년부터 선수 생활의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스프린트 세계선수권에서 2007-2008, 2010-2011 각각 2연패를 하며 통산 4회 우승의 금자탑을 달성한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레전드 선수들인 에릭 하이든, 제러미 워더스푼, 이고리 젤레좁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며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다.

 

2010년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때의 그는 32세로 은퇴를 고려하고 있을 때라 올림픽을 앞둔 인터뷰 등에서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올림픽일 거라고 말했다. 세계랭킹도 높았던 만큼 유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이규혁은 500m 15위, 1,000m 9위를 기록하며 후배 모태범이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옆에서 응원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력한 우승 후보였고 당시 모태범과 이상화가 인터뷰에서 훈련 당시 그가 전수해준 노하우 등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한국 국민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그에 대한 게 알려지면서 '무관의 챔피언'이라 불렸다.

사실 30대 이상의 소규모 종목 현역 선수들의 경우는 후배들의 지도까지 담당하는 코치 겸 선수가 많다. 이규혁이 그런 케이스인데 현재 남녀 스피드 스케이팅 메달리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지도받은 적이 많았다. 다만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자신의 후배들이 승승장구할 때 축하해주면서도 정작 본인은 메달이 없어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며 주변에서 아무리 위로를 해줘도 마음이 우울했었다고 고백했다. 이때 했던 인터뷰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계속 도전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때 성적이 좋아서인지 그는 예정을 바꿔 은퇴 시기를 뒤로 미뤘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도 도전을 하게 된다. 올림픽 6회 연속 출전이며 하계와 동계를 통틀어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 중 최다 출전 기록이다. 사실 이미 예전보다 세계 랭킹이 많이 떨어져서 메달권과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팬들은 그에게 마지막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500m 18위, 1000m 21위의 성적으로 그의 6번째 올림픽 도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주요 국제대회 우승을 죄다 경험하고 올림픽 메달만 없던 관계로 김동문 & 라경민과 더불어 동하계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이규혁3이규혁4

 

은퇴 이후

2016년 스포츠토토 빙상단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한국동계영재스포츠 센터의 전무이사직을 맡았었고, 최서원 씨의 조카 장시호 씨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불명예스럽게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빙상계에서 장기간 활동하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 경조사 가끔 다니던 게 전부였을 정도다. 오히려 다른 분야인 요식업 쪽으로 진출해서 쇠고기 요리점인 '규가든'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9월 28일, KH 그룹 산하 IHQ 스피드 스케이팅 팀의 감독으로 전속 계약을 체결하여 오랜만에 빙상계로 돌아왔다.

 

 

평가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전인 2010년대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쇼트트랙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사실 상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을 20년 가까이 홀로 떠 받쳤던 선수다. 중학생 시절부터 성인부의 김윤만, 제갈성렬 등 쟁쟁한 선배들과 대등, 또는 그 이상의 실력을 보이며 '차세대 유망주'로 불렸고, 1997년 1,000m, 2001년 1,500m 세계신기록 수립을 비롯해 스프린트 세계선수권 4회 우승, 종목별 세계선수권 1회 우승, 아시안 게임 4회 우승 등의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스프린트 세계선수권 4회 우승은 에릭 하이든, 제러미 워더스푼, 이고리 젤레좁스키 등 스피드 스케이팅의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기도 하다. 빙속 세계 최강국인 네덜란드에도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이 부문에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였고, 상술한 것 처럼 빙속의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였으나, 올림픽과는 유난히 인연이 없어서 6회의 올림픽 출전에도 불구하고 한 1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했다. 만약 올림픽에서 본인 실력만큼의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면 상술했던 선수들과 함께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규혁5이규혁6

 

이규혁 수상 기록 이력

세계선수권(스프린트)

금메달

2007 해머

스프린트

 

금메달

2008 헤이렌베인

스프린트

 

금메달

2010 오비히로

스프린트

 

금메달

2011 헤이렌베인

스프린트

 

은메달

2012 캘거리

스프린트

 

세계선수권(종목별)

금메달

2011 인첼

500m

 

은메달

2008 나가노

500m

 

은메달

2009 헤이렌베인

500m

 

동메달

2007 솔트레이크시티

1,000m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000m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500m

 

금메달

2007 창춘

1,000m

 

금메달

2007 창춘

1,500m

 

은메달

1999 강원

1,000m

 

은메달

2007 창춘

500m

 

은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팀추월

 

동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1,500m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1997 무주·전주

500m

 

동메달

1997 무주·전주

1,500m

 

이규혁7

 

이규혁 논란 사건 사고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이규혁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었으며, 장시호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내놨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전무이사 자리에 있는 그가 장시호와 최순실 사이의 중계 및 검토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규혁의 집이 장시호의 '누림기획' 사무실 사이 200m 거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누림기획 설립에 깊숙히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이에 대해 처음엔 장시호를 모른다고 말했다가, 며칠 뒤에 그녀는 중학교 후배로 가까운 친구인데 바뀐 이름인 시호라는 이름은 낯설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기자는 그가 장시호를 모른다고 했을 때 장유진(장시호의 개명 전 이름)을 모르냐고 다시 질문했었고 이때도 그는 모른다고 했었기 때문에 신변의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해보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참고로 장시호는 과거 SNS에 이규혁과의 20년 우정의 친분을 과시하는 글을 게재했다. 20년 우정과 함께 장시호의 아들의 스승이란 표현이 눈에 띄는데 장시호가 아들의 지도를 이규혁에게 잠시 부탁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장시호랑 함께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골프 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의혹이 나왔다.

이러한 의혹들로 인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되었고 당일 출석했다. 채택된 30인의 증인 및 참고인 가운데 출석한 15인 중 한 명인데 아침 10시를 넘긴 시간부터 시작된 청문회장에서 오후 5시가 넘어가도록 단 한 명의 의원도 이규혁에게 심문하지 않자 결국 김성태 위원장이 나서서 직접 의혹 관련 질문을 하기도 하였고 더 이상 이규혁에게 질문이 없으면 조기 귀가 시켜도 되겠냐는 제안까지 의원들에게 했다.

 

 

워낙 이날 청문회에서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 의혹과 관련된 증인들에 대한 심문이 쏟아진 터라 이후에도 새누리당의 이만희 의원과 정의당의 윤소하의 한 차례씩 심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규혁에게 심문을 하지 않았고, 12시간 동안 3번 말하고 귀가했다. 그래서 일부 네티즌 중에서는 커넥션 의혹이 짙은 장시호가 증인으로 나왔을 때 같이 증인으로 불렀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한편, 스포츠토토 빙상단의 총감독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1994년 12월 이규혁이 일본 오비히로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대회 후 저지른 성추문을 김종이 묵인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대회 후 파티가 끝나고 이규혁이 일본 여자선수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던 게 일본 빙상계 관계자들에게 알려졌다가 5개월 후에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빙상연맹에서 이규혁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고 그낭 넘어갔다. 

다만 상식적으로 상대가 한국 선수도 아닌 일본 선수인데가 의혹대로 성폭행이 있었다면 이걸 그냥 무마 시킬수가 없다. 그냥 최순실과 엮여서 같이 날려 보내려고 만든 트집 잡기로 보여질 뿐이다. 만약 성폭행이나 추행이 있었다면 성추문이라는 애매한 단어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진해서 스포츠토토 빙상단 감독을 사퇴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평이 많아져서 그동안 세웠던 명예가 말 그대로 먹칠되었다.

 

그는 2017년 2월, 법정에서 장시호와 김동성이 연인 관계였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도 둘이 기획한 것이지만, 사이가 틀어지면서 자신이 영재센터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장시호가 2015년에 자신이 김동성과 교제했다고 말해 이규혁의 말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김동성은 둘이 불륜 관계였던 것도, 스포츠영재센터에 관여한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 동안의 업적으로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행사 때에 피겨스케이팅 원로인 어머니 이인숙과 함께 때 반드시 나와야 할 비중의 인물이나, 최순실 게이트 연관 때문에 본인과 어머니 전부 못 나왔다. 물론 해설자 자리도 없고, 그 흔한 언론사 기사조차도 나오지 않고 있다.

동생 이규현은 김예림 성추행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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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기타 일화 여담 인간관계 

아버지 이익환 씨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1968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 참가했으며 어머니 이인숙 씨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현재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동생 이규현도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으로 피겨 코치로 일하고 있다. 온 가족이 빙상 국가대표 출신인 빙상 명문가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본인 레이블인 규 스포츠(Kyu sports)를 갖고 있고, 스피드 / 숏트랙 스케이트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모르고 선수들이나 쓴다. 카본 FRP등 복합 소재로 만든 해외 첨단 스케이트에 비하면 구조나 디자인 면에서 떨어지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쓰는 선수들이 많다. 이 또한 옛말로 국산은 쎈스포츠가 점유율을 거의 잠식해 동호인이나 선수나 보통 쎈 스케이트를 쓴다, 아니면 시티런 고급 모델. 동호인용 중고 물품은 시즌 동안 주로 선수들이 쓰던 물건이고, 2018년에 와서는 작정하고 구하지 않는 한 규 스케이트를 보기는 좀 힘든 편이다. 사실은 규스포츠는 이름만 규혁 형제의 것을 따온 것이고, 대표이사가 어머니에 설립자는 외할아버지인 가업이며, 인숙 스포츠와 브랜드만 다르고 같은 회사였다. 현재는 규스포츠로 통합되었다.

빙상계는 물론 연예계 인맥도 상당하다. 싸이가 그에게 무대를 헌정하기도 했다.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도 출연했고, 과연 현역 스케이터 답게 피겨 스케이팅에도 빨리 적응해서 준수한 스케이팅 스킬을 보여줬다. 은퇴한 후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종주국인 네덜란드에서 매우 좋은 경기를 펼치면서 현지에서의 인지도도 높은 편이다. 소치 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네덜란드의 미첼 뮐데르 선수가 올림픽 공식 선수 프로필에서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이규혁을 꼽았다. 또한 올림픽 당시 네덜란드 중계 방송에도 깜짝 출연했다.

 

 

2017년 10월 29일 이규혁 집안에서 처음 연맹통합부터 무려 24년 동안 빙상연맹을 독식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2014년 소치의 노장으로 인기를 떨치다가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며 많이 깎아먹은 명예가 또다시 추락하게 되었다. 당연히 많은 시민들의 비판을 받는 건 물론이고 일명 '스포츠 4대악'을 내걸며 스포츠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조직 사유화 금지를 외쳐오던 문화체육관광부도 같이 논란이 되었다. 

2018년 4월 9일 엠스플뉴스에서 그의 몰락을 전명규가 기획했다는 기사를 냈다. 기사 내에서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올림픽 6회 출전, 어머니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 2014년까지 현역이었다는 설명 등을 통해 이규혁에 관한 기사임을 유추할 수 있다.

2021년 12월 2일 손담비와 열애설이 났고, 교제 사실을 인정했다. 둘은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 같이 출연한 이후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 왔으며, 2021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022년 1월 25일 손담비가 인스타그램에 손편지를 올리며 2022년 5월에 이규혁과 결혼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기사로도 올라왔다.

미국의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브리타니 보우가 이규혁과 비슷하게 올림픽 운이 없는 편이다. 여자 스프린트 세계선수권 대회를 2 우승하는 최정상급 선수임에도 올림픽에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때는 10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약간의 한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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