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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고향 학력 이력 재혼 프로필 (인천시장 출신, 공직선거법 논란)

기업가 출신의 정치인이다. 민선 3·4기 인천광역시장과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정치인이며,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와는 동명이인이다.

 

안상수 고향 학력 이력 재혼 프로필 (인천시장 출신, 공직선거법 논란)

 

안상수 프로필
안상수

 

안상수

安相洙 | Ahn Sang-soo

 

출생

1946년 5월 28일 (75세)

충청남도 서산군 이북면

(現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거주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본관

순흥 안씨

 

재임기간

제11·12대 인천광역시장

2002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배우자

전처 정경임 (1983 ~ 2010)
후처 이름 미상

 

학력

서림국민학교 (졸업)
인천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 학사)
트로이 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병역

병역면제 (연령초과, 생계곤란)

 

 

종교

개신교 (감리회)

 

신체

176cm

 

약력

LG유플러스 이사
동양선물 대표
동양그룹 종합조정실 사장
제15대 국회의원 (인천 계양구·강화군 갑 / 한나라당)
제11·12대 인천광역시장 (민선 3·4기 / 한나라당)
제19대 국회의원 (인천 서구·강화군 을 / 새누리당)
제20대 국회의원 (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 무소속)
제20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전국위원회 의장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
홍준표 jp희망캠프 공동선대위원장 겸 인천광역시 총괄본부장

 

 


안상수 생애와 가정사 학력

충청남도 태안군 시골 마을 가난한 어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재학 중에 인천으로 혼자 유학을 갔고 이모 댁에 머물렀다고 한다. 인천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자취를 하고 신문팔이,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당대의 최고 명문고등학교 경기고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등록금을 빌리러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경기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학과(현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경기고 3학년 때 3선 개헌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가 주동자로 몰려서, 학교에서는 법대 등 주요 학과의 입학원서를 써 주지 않아 사범대 체육학과를 택했다고 한다.

그의 30대 초반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또 안상수의 부인 정경임 교수는 결혼 이후 뇌졸중의 일종인 모야모야병이라고 하는 희귀성 질환을 앓다가 회복되었으나, 그 기쁨도 잠시 1999년 8월, 다시 쓰러져 2010년 1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식물인간으로 지냈다. 안상수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로 부부가 같이 살던 아파트를 아내의 모교인 이화여대에 기부했다. 이화여대는 '정경임 글로벌 인재 육성장학금'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제세산업을 거쳐 동양그룹에서 근무했으며, 1996년 신한국당의 전문경영인 영입 케이스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안상수1

 

 

 

안상수 정치 활동 경력 이력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계양구·강화군 갑에 출마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이기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년뒤인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한나라당 인천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당시 전국을 휩쓴 DJP 열풍과 불과 1년 전 전국민을 울렸던 IMF 사태의 여파, 그리고 인기 절정이였던 현직 시장 최기선 후보의 아성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구·강화군 갑 지역구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 송영길을 누르고 당선되어 약 1년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다시 송영길과 맞붙어 낙선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출마, 당선되었고 2006년 전임 시장인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각종 실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3선에 도전했지만 송영길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민선 3 ~ 4기 인천광역시장과 이후의 정치 활동

8년간 인천광역시장을 지내면서 건실했던 인천광역시의 재정을 파탄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안상수의 임기가 끝나고 보니 인천광역시 자산 중 즉시 출금 가능한 금액이 수십만원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도시전설까지 존재할 정도다.

사실 민선 3기 시절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막장이진 않았고 무난한 행정능력을 보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재선까지 해냈다. 당장 버스 무료환승제도를 도입한 것도 민선 3기 시절의 일이다.

그런데 2006년, 뜬금없이 아시안게임 유치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도시 축전이나 월미은하레일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뉴타운 열풍에 발맞추어 루원시티, 도화도시개발사업를 야심차게 추진했는데 이게 대침체 때문에 다 망해버리면서 모두 빚더미로 돌아온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막장 행정으로 인해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본인이 3선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에 인천을 넘겨주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후 안상수는 2015년 보궐 선거와 20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송도국제도시

송도국제도시를 추진하여 건설하였다.

 

월미은하레일

위의 도시축전 개막에 맞추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다가 부실공사 논란에 휩쓸려 준공 승인 조차 못 받고 백지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백지화된 이유는 2010년에 안상수가 퇴임하고 나서야 알려졌는데, 인천시가 의뢰한 감사원에서 밝혀진 바로는 무면허 업체가 하도급을 받아서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까지 나왔다. 이로 인해 철도 동호인들에게 두고 두고 까이는 중. 자세한 건 해당 항목으로... 그리고 이런 진짜 뭐라 변명할 수 없는 최악의 실정이다.

 

151 인천타워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착공식 이후 잠정 중단되었다.

 

안상수2

 

5년간의 야인 생활과 국회 복귀

낙선 이후 2년간 야인 생활을 하다가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5위로 떨어졌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 겸 가계부채특별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초까지 상대 후보였던 송영길의 실정, 그리고 인천시 기반 정치인 중 최상위권의 인지도를 가졌다는 장점으로 인해 새누리당 인천광역시장 후보로 거론되었다. 당시 유력 후보군으로는 친박 실세 윤상현, 이학재 등이 거론되었으나 두사람 모두 안상수와의 대결에서는 밀린다는 의견이 중론이였기에 충분히 해볼만한 대결이였고 안상수 본인도 경선에 의욕적으로 임했었다. 그러나 당시 수도권에서의 압승을 노리던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친박 실세로 꼽히던 유정복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을 사퇴시켜 경선에 참여시켰고, 이에 안상수는 20년 동안 김포에서 정치하다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며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으나 김포시장 경험 + 친박 마케팅을 내세운 유정복 후보에게 패하고 만다.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인천 서구 강화군 을 선거구에 출마, 새정치민주연합 신동근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15년 만에 원내로 복귀, 이번에도 약 1년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인천광역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개표 결과 31.9%(41,504표)를 획득하며 당선되었다. 참고로 31.9%라는 득표율은 20대 총선 전국 지역구 후보 중 최소득표율 당선 기록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후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이라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2018년 7월 16일 부로 후반기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이 되었다.

 

2019년 12월 21일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집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쥐고 " 전광훈 목사를 구속하면 그 다음 날로 정권이 망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3.15 부정선거 해서 당시 내무부 장관이 사형되지 않았느냐"며 "선거 조작한 사람들은 처단돼야 할 것이다. 맨 꼭대기에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2020년 2월 1일엔 범투본 집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통마늘 7개 넣고 끓인 물을 하루 3번 마시면 효과가 있다."란 헛소리를 퍼트리기도 했다.

 

 

21대 총선과 낙선

21대 총선에서는 본인의 지역구를 떠나 인천의 험지인 계양구 갑에 공천을 신청했다. 20년 동안 보수정당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험지이자 자신이 처음 정치를 시작한 계양구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을 외치겠다며 출마의 변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2월 28일, 미추홀구 을에 단수 추천되어서 다행히 비교적 무난한 곳에 출마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이 지역구에서만 3번 연속 당선된 현역 의원 윤상현이 컷오프에 불복,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나섰는데 선거 결과 안상수는 3위로 낙선하면서 다음 선거를 기약하기 힘들어졌다. 만약에 인천광역시 지역구 의원 중 누군가가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사퇴해서 보궐선거가 열리면 그 지역구에 출마할 거라는 예측도 있지만, 그런 일이 있기는 매우 힘든 일이고, 설령 하더라도 공천받을 거란 확률이 100%란 확률도 없다. 거기다 팔순에 접어든 고령이기 때문에 향후 정치 활동이 진짜 불투명해졌다.

그런 와중에 자신과 맞붙었던 윤상현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기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7월 무렵 자신의 부하 직원을 시켜서 고소했을 때도 검찰은 경찰에게 윤상현을 입건하지 말라고 2번이나 말했지만, 10월 초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안상수가 직접 고소장을 써서 내자 나흘 만에 수사를 해서 기소를 했다고.

 

제20대 대통령 선거

문제는 경제다

 

2021년 7월 1일,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2021년 현재의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주장하며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대통령제가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하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 분산형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선 토론회에서 토론 도중 갑자기 망치를 들거나 이재명 경기지사의 사진을 찢는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각종 기행들을 펼치며 화제를 받았다. 다만 이에 대해선 호불호가 꽤 갈렸는데, "사이다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씬스틸러다.", "재미있었다.", "응원한다." 등의 좋은 반응도 있었는가 하면, "토론회에서 저게 뭐하는 짓거리냐?", "인천을 말아먹은 주제에 나라까지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보는 내가 다 민망하다.", "대체 누가 저런 질떨어지는 사람을 대선 후보로 올렸냐?", "도가 너무 지나쳤다.", "역시 국힘도 인물이 없어도 너무 없다.",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다.", "국힘 수준이 대충 보인다.", "저러니까 국힘은 항상 뭘 하든 안 되는 거다." 등의 나쁜 반응도 있었을 정도로 반응은 꽤 엇갈렸다.

 

 

10월 8일 있었던 4강 경선에서 컷오프 되었다.

10월 12일 홍준표 후보의 선거캠프 jp희망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위촉되면서 홍준표 캠프에 합류하였다.

 

4월 1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안상수3

 

 

안상수 책 저서

뉴욕은 블룸버그를 선택했다 : 2001년 작.

국제금융 선물거래 : 2002년 작.

안상수의 혼이 담긴 인천이야기 : 2012년 작.

아 인천 - 안상수가 인천시민들께 드리는 편지 : 2013년 작. 송도국제도시에 쓰나미가 몰아치는 강렬한 표지로 유명하다.

긍정이 멘토다 - 삶을 무조건 행복으로 이끄는 긍정의 힘 : 2014년 작. 권인아, 김근화, 김노진, 백호민, 소재현, 안상수 공저.

 

 

안상수 기타 일화 여담

공교롭게도 동명이인 안상수와 나이도 같고 두 명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 둘의 경력도 꽤 비슷하다. 둘 다 같은 정당 소속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 및 시장을 역임했고, 비박, 친이 출신이며, 고령으로 병역면제를 받았고, 본관도 같다. 그나마 차이점이라면 이 문서의 안상수는 자녀가 없지만, 창원의 안상수는 슬하에 2남 1녀로 3명이나 두었다는 것과 종교도 이 문서의 안상수는 개신교(감리교)지만, 창원의 안상수는 개신교였다가 천주교로 개종하였다는 것과 정치 입문 전의 직업도 이 문서의 안상수는 회사원이지만 창원의 안상수는 법조인이라는 것과 각자 고향도 인천의 안상수는 태안군, 창원의 안상수는 창원시. 국회의원 선수도 이 문서의 안상수는 3선이지만, 창원의 안상수는 4선이다. 여담으로, 두 사람이 국회의원으로써 함께 일했던 시기는 제15대 국회만이 유일하다. 줄여서 저 쪽은 '보온상수' 또는 '행불상수'로 불리고, 이 쪽은 인천시장 안상수로 불린다. 참고로 둘이는 한자 표기도 다르다. 인천 안상수는 安相洙, 창원 안상수는 安商守.

3선 국회의원(15대, 19대, 20대)이지만, 3선 중 15대와 19대는 국회의원 임기 만료 1년여를 남긴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실질적인 국회의원 활동은 초선 의원 임기의 절반인 2년 정도밖에 하지 못하였다. 더불어, 정식 총선에서는 모두 패하였으나 20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정식 총선에 당선된 경력을 만들었다.

숫자 2와 연관이 은근히 많다. 인천시장 2번 당선, 인천시장 2번 낙선, 국회의원 2번 낙선, 게다가 '안상수'란 이름의 정치인이 2명이다.

태권도 명예 8단이다. 실제로는 태권도 공인 2단인데,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 태권도를 정식 종목으로 계속 유지하는데 도움을 줬다 해서 국기원 명예 8단이다.

2021년 현재 만 7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20년은 젊어보이는 엄청난 동안의 소유자다.

파란 정장 같은 튀는 정장을 입고 공식 석상에 나오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의외로 쇼맨쉽과 유머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정치인이다. 19대 대선 자한당 경선에서는 태권도 격파 퍼포먼스를 선보였었고, 20대 대선을 국힘 경선에서도 관이나 망치 등 소품을 들고 오거나 이재명의 사진을 가져와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덕분에 젊은 보수층들로부터 상당히 높은 호감과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안상수 재산

2020년 3월 기준 3억 8천만원이다.

 

 

안상수 선거 이력 경력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계양·강화 갑

24,697 (27.93%) 낙선 (2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광역시장

238,708 (34.26%) 낙선 (2위)

 

1999

1999년 재보궐선거

인천 계양·강화 갑

36,784 (54.89%)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계양

48,953 (44.41%) 낙선 (2위)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광역시장

393,932 (56.17%) 당선 (1위)

초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526,932 (61.93%) 재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69,040 (44.38%) 낙선 (2위)

 

2015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인천 서·강화 을

33,256 (54.11%)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중·동·강화·옹진

무소속

41,504 (31.87%)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동·미추홀 을

17,843 (15.57%) 낙선 (3위)

 

안상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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