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조인. 2011년 9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재임 기간은 2017년 9월 24일까지로 제 임기를 다 채웠다. 2019년 1월 24일,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역대 대법원장 중 헌정 사상 최초로 구속 기소됐다. 비록 전직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엄연한 사법부의 수장을 구속시키는 일은 법원이 하는 것이기에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자유당 정권 때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때도 전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적이 없는 걸 감안하면, 양승태의 사법농단 사태가 매우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히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Dred Scott v. Sandford, 1857)를 맡은 로저 터니(Roger B. Taney) 연방대법원장과 비교될 만하다.
양승태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제15대 대법원장)
양승태
梁承泰 | Yang Seung-tae
출생
1948년 1월 26일 (74세)
경상남도 밀양군
(現 경상남도 밀양시)
현재지
경기도 성남시
본관
남원 양씨
재임기간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09년 2월 16일 ~ 2011년 2월 25일
제15대 대법원장
2011년 9월 26일 ~ 2017년 9월 25일
배우자
김선경
자녀
슬하 2녀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 전역 (군법무관)
종교
개신교
경력
제12회 사법시험 합격
제2기 사법연수원 수료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제15대 대법원장
양승태 경력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2기다. 이후 판사로 재직했으며, 2001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현, 서울북부지방법원장),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이 되었으나 4차 사법파동으로 인해 특허법원장으로 이동했다. 2005년 대법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에는 포스트 이용훈으로 낙점돼 국회에서 245명 중 찬성 227명, 반대 17명, 기권 1명으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돼 대법원장이 됐다.
재임기간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법무부의 태클이 결정적이었다는데, 이유는 상고법원 안이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키우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줄이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때였다.(19대 국회에서 발의)
평생법관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원로법관제'와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관철해 고위직 판사의 이직을 막고 1ㆍ2심 기능을 강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원로법관제'란, 대법관에 오르지 못한 법원장이 법원을 떠나지 않고 하급심에 복귀해 재판하는 등 65세 정년을 채울 수 있게 한 것이고, '법원장 순환보직제'는 법원장과 재판부 재판장을 오가며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이상 법조경력자 중 법관을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도 2011년에 시작해 2013년에는 전면 시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는 전원합의체 회부사건을 늘리고 공개변론을 확대해 대법원 재판기능을 강화했다. 대법원 공개변론의 생중계도 양승태 임기 말에 시행하기 시작했다.
임기가 박근혜 탄핵 전후에 걸쳐 있어 임기를 다 마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였다. 반대파들로부터 법관 관료화, 권위적 운영, 우경화된 판결 등으로 비판 받은 데다, 결정적으로 임기 말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 적폐라고 거세게 비판받고 있다.
결국 사상 초유의 대법원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양승태 비판
2011년에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에 한겨레에서 양승태 후보의 성향에 대해서 '보수적'이라고 평가내린 적이 있다. 노동, 집회·시위 관련 사건에서는 무관용 및 엄단주의를 보였으나, 사학이나 기업 관련 사건에서는 관용 및 포용주의를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스탠스 때문에 노동운동계와 진보진영, 젊은 층에서는 사법거래 이전부터 그를 좋지 않게 봐왔다. 아무리 판사가 성향이 보수적이라도 법리검토에는 철저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사법부 수장이란 자가 철저히 자기 이념에 따라서만 재판을 해왔고, 심지어는 노골적인 재판거래까지 하였으니 이런 점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성향이고 박근혜 추천으로 뽑혔으나 헌법정신과 중립적인 소신을 지켜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서기석 재판관, 조용호 재판관과 대비된다.
그 외에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일부러 사건 처리를 지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차단 지시'에 불복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이 징계처분을 받은 사건이 있는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이틀 전에 상고가 제기된 사건인 데다가 쟁점이 복잡한 사건도 아니었는데, 양 대법원장의 퇴임 때까지 심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사건은 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직후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고, 2018년 7월에 파기환송 판결이 나와 결국 군법무관들이 승소했다.
제18대 대선에 관하여 2013년 1월 선거무효소송이 제기되었는데, 대법원은 공직선거법대로라면 180일 이내에 가부간 판단을 해야 하는데도 심리를 미루다가 박근혜가 탄핵되어 파면되고 난 후에야 '대통령이 이미 파면되었으니 소의 이익이 없다'라는 이유로 각하판결을 하였다.
사법부의 독립과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시스템 개선 등을 주제로 한 판사들의 학술대회를 앞두고 대법원이 행사 축소를 지시하고 이에 불응하는 판사를 인사 조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이 잇달아 판사회의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1971년과 1988년, 1993년, 2003년, 2009년 등 역사상 5차례에 걸쳐 사법 파동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제6차 사법파동이 일어날 뻔하였던 것.
애당초 초창기부터 이런 논란은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자마자 법원 분위기는 경직되어갔다. 2012년 2월 9일 오후 4시 양승태 대법원장 주재로 대법관회의가 열렸다. 이 날 3시간동안 진행된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서기호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가 탈락했다. 대법원은 "서기호 판사의 근무평정 결과가 하위 2%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판사들은 대법원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서기호 판사 문서를 가 보면 알겠지만 서기호 판사는 2달 전 페이스북에 '가카의 빅엿' 글을 올렸다. 서기호 판사는 "나의 근무평정이 하위 2%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100장이 넘는 소명자료을 제출하고 헌법소원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흘 뒤인 2월 13일 대법원은 이정렬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에게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린다. 이정렬 부장판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교수의 재판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다만 이정렬 판사도 페이스북에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통령을 풍자하는 패러디물 ‘가카새끼 짬뽕’을 올려 의구심을 자아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재임용 탈락과 중징계는 판사들에게 충격을 줬다. 판사들에 대한 공개제재는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는 볼 수 없던 일이었다. 이옥형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성군이 오기를, 그래서 모든 판사들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할 것을 기도하였으나, 그 반대로 억압과 배제, 통제와 관리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나는 쫓겨나는 그가 슬픈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우리의 처지가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며 한탄했다.
2017년 6월 19일 전국판사회의에서 직접 '사법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수사하겠다고 결의했다. 이보다 며칠 전에는 시민단체가 양승태 대법원장을 고발한 사건도 있었다. 일단 전국판사회의에서 직접 지명한 판사 주도하에 자체 수사를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사법 블랙리스트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사법행정원에서 조사 중 컴퓨터 내부 파일 공개를 거부해 깨끗이 모든 것을 조사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한 판사회의에서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양승태가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 수사를 끝내 거부하자 사법개혁에 관심을 촉구하는 다음 아고라 서명운동까지 터졌고, 현직 부장판사 중 한 명이 스스로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며, 양승태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당사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속으로 기각되면서 사법부를 향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이에 발끈하듯 부들거리며 과도한 비난으로 인해 재판 독립을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주진우는 "법원의 김기춘"이라고까지 혹평하였다. 정작 김기춘은 박근혜 정권내 시도된 양승태의 상고법원 거래 시도를 앞장서 막아왔던 건 함정.
2017년 9월 22일, 대법원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자리에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말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충하는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화돼 거의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하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면서 다른 쪽의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진영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고 염려하며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극언을 마다않는 도를 넘은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인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다"며 "이는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우려와 경고를 동시에 보이는 등, 실로 비단결 같은 말만 골라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이 한 말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
자신이 사법부를 행정부의 시녀로 격하시킨 장본인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퇴임사에서 이런 유체이탈 화법을 썼던 셈이다. 또한 보통 이렇게 퇴임사 마지막 부분에 후임 대법원장에 대한 덕담을 하는데, 양승태는 그것을 생략하면서 많은 추측을 낳기도 했다. 결국 2017년 11월, 후임 대법원장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위해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그 결과,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관한 추가 조사 과정에서,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한 부장판사를 징계하려고 한 정황마저 포착되어, 충격을 주었다. 이는, 대법원이 행사를 축소시키려고 한 문제의 학술대회에서, 법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전체 판사의 약 1/6 대상) 결과, 상급심 판결례의 판단 내용에 반하는 판결을 한 법관에 응답자의 47%가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 재재조사 결과,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와 각종 논란이 되는 정치적 사안의 재판결과를 가지고 '딜'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마저도 법조계의 여론은, 양승태가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했던 건 오직 고위법관직을 늘려서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4심제를 만들어 검찰 또는 헌법재판소의 견제를 막겠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근혜 청와대와 사전 교감해온 사례는 다음과 같다.
①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 (국가배상 제한 등)
②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 원세훈, 김기종 사건 등)
③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KIKO 사건 등)
④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⑤ 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돼 있다. 즉 스스로 범죄 행위임을 알면서 미화하는 사례 내용
퇴임 1달 후, 양승태가 업무용으로 사용한 하드디스크를 자성제거기의 '디가우징'으로 파기했다는 게 알려져 큰 파문이 일어났다. 하드디스크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지워서 복구를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신의 모든 행적을 사실상 없애버렸다. 대법원 관계자가 "통상적인 관례와 법령대로 처리한 것"이라고 변명하였으나, 실제 대법원규칙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 이에 따라 이미 하늘을 찌른 사법불신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 됐다. 검찰에 제출한 자료도 이 사건과 무관한 자료만 선별하여 제출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마저 생겼다.
임기말 또 한번 큰 사건이 터진다.
2019년 1월 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포토라인을 거부하고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논란이 되었다. 양승태 "포토라인 대신 기자회견"..대법원 '난색'·검찰 "황당" 대법원은 "그러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당황해하고 있단 것으로 알려졌고, 검찰 또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또한 지켰던 것을 대법원장이 거부하고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니 황당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 또한 이것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건지 1월 10일 아침부터 양승태란 이름이 실검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포토라인이란 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국민에게 알리는 자리, 그러니깐 죄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검찰의 판단에 따라 범죄의 선상에 선 것이니만큼, 그곳에 서서 공직자 또는 공직자였던 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책임을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것을 대법원장이란 사람이 거부하겠다고 하니, "대법원장이 대한민국 제일 꼭대기냐"며 안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에서도 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지켰던 것을 그 시절 대법원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안 지키겠다고 하자 "대법원장이 대통령보다 높은 거냐"는 식의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9년 1월 11일 검찰 출석에 앞서 정말로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는, 검찰청 포토라인에는 서지 않은 채로 검찰청에 들어가 버렸다. 참고로 대법원 정문 앞에서는 "부덕의 소치였다. 책임은 내가 지는 게 마땅하다."는 식으로 말해놓고 검찰 조사에서는 부정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대다수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월 24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결국 구속 수감되었다. 이에 따라 양승태는 '헌정사 최초로 구속 수감된 대법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2019년 7월 22일,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났다. 양승태는 앞으로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구속 이후
2019년 2월 11일, 검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소장에 기재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은 총 47개에 달한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및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 사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상고심, 통합진보당 의원직 상실 관련 행정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는 물론, 사법부 방침을 비판하는 판사들을 사찰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 등이 망라돼 있다. 공소장 분량만 별지 포함 296쪽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공소장(259쪽)의 두께를 압도했다. 특히 상고법원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동원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인사권’을 무기로 안팎의 어떤 영향력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할 법관들을 마음대로 움직였다. 대법원장에 사법정책을 건의하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법관들에게는 여지 없이 인사 불이익이 돌아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임한 2013~2017년 동안 사법행정에 비판적이거나 부담을 줬다는 평가를 받은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은 모두 31명. 양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이들에 대해 문책성 인사조치를 검토하거나 소속 법원장에게 부정적 인사정보를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법관의 경우에는 여러 해에 걸쳐 ‘물의야기 법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총 8명의 법관은 실제 문책성 인사로 이어졌다.
법관들이 대법원장에게 공개적으로 건의를 하면, 내용을 검토하는 대신 해당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 처리 이후 국민적 반대여론이 확산하던 2011년 12월 건의문을 올렸던 김하늘 전 부장판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법원 산하에 한미 FTA 연구를 위한 테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야 한다”는 단순한 건의문이었지만 행정처 측은 김 전 부장판사의 질문에 “양 전 대법원장은 관련 검토를 지시했다”고 일축한 뒤 인사 불이익을 줬다. 김 부장판사를 지지하고, 한미 FTA를 비판하는 글을 SNS에 게시한 최은배 부장판사도 같은 방식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송승용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박상옥 당시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했다는 점을 문제삼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인사 불이익을 받았고, ‘미스 함무라비’의 작가로 잘 알려진 문유석 부장판사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글을 언론사에 기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
사법부 수뇌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도 인사 불이익의 이유가 됐다. 마은혁 부장판사는 2009년 민주노동자 당직자 12명이 국회 로텐더홀을 점거하고 퇴거요구에 불응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함께 농성하던 민주당 의원은 입건하지 않으면서, 이들만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라며 공소를 기각했다. 행정처는 5년 넘게 지난 판결을 문제 삼아 2015년 2월 인사에서 마 부장판사를 문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김기영 당시 부장판사도 2015년 9월 대법원 판례와 달리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는 이유로 징계가 검토되었다.
양승태 여담 일화
4차 최순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에게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청와대에 사찰을 당했다"라는 증언이 나왔다.
김승규와 사법시험 동기이자 사돈이다. 2005년 양승태의 둘째 딸과 김승규의 셋째 아들이 결혼을 하면서 사돈이 됐다. 당시 양승태는 대법관, 김승규는 법무부 장관이어서 화제가 됐다.
대법원장이 되고 난 이후 6년 동안 반대의견, 보충의견은 하나도 쓰지 않았으며 2010다28604에서 별개의견만 썼다.
등산을 좋아한다. 유튜브 대법원 영상에도 등산 영상이 있고, 대법관 퇴임 후에는 미국의 로키 산맥과 중국의 히말라야 산맥을 트레킹했다고 한다. 세계일보를 통해 공개된 국정원의 사찰 문건을 보면 대법원장 시절 금요일마다 근무시간임에도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단 내용이 있다.
대법관 퇴임 당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다시는 법원으로 안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고, 수십억 원대의 연봉을 제시하는 대형 로펌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미국 로키산맥과 중국 히말라야산맥에 트레킹에 나섰다. 심지어 이명박의 대법원장 자리 요청도 여러 번 거절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도록 후보 명단에 이름을 넣는 것조차 동의해주지 않았다고. 친지들이 “아무리 당신 인생을 맘대로 살고 싶다고 해도, 평생 법원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나라에 선택권을 주는 게 순서가 아니겠느냐?”고 권하자 그제서야 대법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가 끝난 시점에 보면 씁쓸하다.
대법원장 퇴임 이후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2018년 2월 8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흑터뷰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수괴로 지목되었기 때문. 질문특보 기자로 활동하는 前 개그우먼 강유미가 그의 집까지 찾아갔지만 양승태 측에서 무례하다며 거절했다.
사법부의 하나회로 불리는 민사판례연구회의 회원 중 한명이다. 수많은 대법관을 배출한 조직으로 현재는 김재형 대법관이 이 곳 소속이다.
사법 농단 의혹이 불거진 2018년 6월 1일, 자택이 있는 경기도 성남시 동산마을 어린이 놀이터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무죄를 주장했다(입장문 등 전문).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지 않았으며, 재판을 왜곡하고 그것으로 거래를 하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임은 물론,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한 법관이나 특정 성향의 일반인에게 불이익을 준 일이 전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하나 둘씩 공개되는 문건들과 드러나는 증거들을 보면, 추후 사법절차가 진행될 때 이러한 혐의 부인이 나중에 구속 심사에서 증거인멸의 우려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위험이 있어 보인다.
사법연수생 수료식 등에서 "로완 중위를 본받으라"는 훈시를 하곤 했다고 한다. 애시당초 군인과 달리 법적 정의에 맞지 않는다면 국가와도 대립해야 하는 법관들에게 맞지 않는 훈시였고, 훗날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매우 씁쓸함을 주는 일화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무력화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생겼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직후 5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박근혜 정부의 부담을 줄여주려 했던 문건이 드러났고, 결국 실제로 소송이 제기되긴 했지만 2년 6개월이 넘게 심리가 열리지 않았다. 이 문건은 2018년 7월 30일 한겨레신문과 JTBC에 의해 단독 보도되었다.
법원 체육행사 때 여판사가 세일러문 코스프레를 했다는 폭로가 있어, 숨덕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18년 10월 7일 MBC의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보도된 양승태 판사의 과거 긴급 조치 판결은, 그가 독재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충견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권에 단순한 비판적인 언행을 했다는 것에도 4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거나, 정부가 과거사에 사과하여 지급 보상금을 반납하게 하는 대법원 판결을 주도하는 등, 사법 농단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여 사법부의 독립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사법 농단의 주역임이 만천하에 여실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2018년 11월 18일 MBC 스트레이트 단독 보도 내용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퇴직 연금 인상을 위해 노력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사 피해자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피눈물로 비교되는 상황
2018년 11월 18일 MBC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장 산하 사법부는 그야말로 양승태의 작은 왕국이었다고 한다. 신격화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위의 양승태 퇴직 연금 인상도 그에 해당되는 거였다고 한다. 머리 좋은 판사들이 모여서 어떻게든 양승태 퇴직 연금 인상을 위해서 법을 일일이 따져보고, 인사혁신처에 요구까지 했었다고 한다. 또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합성사진을 들고 양승태 사법부를 비판하는 고은광순 씨를 어떻게든 현행범으로 체포하려고 머리를 모았었단 정황이 담긴 문건도 공개됐다. 그야말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변호사단을 자처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이게 심각한 문제인 게, 판사가 현행범을 지정하고 처벌할 권리가 당연히 없다. 그걸 법원행정처라는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가장 큰 기관이 저지른 거다.
2018년 11월 18일, MBC 스트레이트가 양승태가 최근까지 지내고 있었던 은신처를 발견해서 찾아갔지만,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는 다른 곳으로 옮긴 상태였다.
2018년 11월 30일, 양승태의 블랙리스트를 수사하기위해 다시금 검찰이 대법원을 수색했다.
사법농단으로 인해 시사저널 선정 2018년 올해 최악의 인물로 뽑혔다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는 "양승태가 구속된 것이 통진당을 해산시켰기 때문"이라고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통진당을 해산한 주체는 어디까지나 헌법재판소다. 양승태가 받는 의혹은 통진당 해산 이후 의원들의 지위에 관한 소송에 개입했다는 혐의다. 어차피 이거 말고도 다른 혐의도 수두룩하다.
일명 '서울법대 거지'라는 김기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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