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李長鎬)
1945년 5월 15일 ~
영화감독 이장호 작품 고향 나이 프로필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으로 1945년 5월 15일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영화 검열관이라 국내에서 제작, 수입된 영화들을 개봉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미리 볼 수 있었고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계로 진출할 꿈을 키웠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16회)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배우다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1]으로 입봉에 성공했고 당시 별들의 고향은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당시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46만명을 모았다. 이후 공포 영화 등을 포함한 4편의 작품을 빠르게 만든 후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3~4년 간 활동정지 된 채 있다가 1980년 해금 후 복귀작은 사회적인 소재를 적극 표현하였다. 배우 안성기의 성인 연기 복귀작 바람불어 좋은 날을 시작으로 어둠의 자식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바보선언,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의 외인구단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흥행시키면서 배창호와 상호 경쟁하는 80년대 대표 감독으로 우뚝섰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기 들어와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장호 감독 본인의 매너리즘 문제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부터 영화의 트렌드가 바뀌고 신예감독과 신예배우들이 들어서면서 세대교체가 되는 와중에 본인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 한국 관객들의 눈이 높아진 게 한 몫했다.
1992년에는 당시 엄청난 제작비인 15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가며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3배가 넘는 돈이다.) 러시아와 일본을 오고가며 촬영한 <명자 아끼꼬 쏘냐>가 제대로 평과 흥행으로 망해서 주연과 제작을 맡은 김지미의 영화 현역을 끝장내버렸다. 1995년에도 감독한 영화 <천재 선언>이 흥행에 실패한 후 영화계를 잠정은퇴하게 되는데, 본인과 함께 80년대를 대표했던 임권택 감독이 바뀐 영화환경에도 적응하며 2000년대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내놓는 것을 본다면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2014년 들어 19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본인의 20번째 영화인 시선을 연출하지만 평론가와 관객의 싸늘한 시선 끝에 전국 관객 11,900여명을 기록한 뒤 소리소문없이 내려졌다.
2020년에는 신한대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 함께하는 NFF 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청와대 정무수석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이 매제 중 한 명이다.
이장호 감독 주요 작품
별들의 고향(1974)
어제 내린 비(1975)
바람불어 좋은 날(1980)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
바보선언(1984)
무릎과 무릎사이(1984)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명자 아끼꼬 쏘냐(1992)
천재 선언(1995)
이장호 감독 수상 이력 경력
대종상 영화제
제19회(1980년) 감독상
바람불어 좋은날
제21회(1082년) 감독상
낮은데로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