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인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하다 우선징집되어 원주 38사단 공병대에서 복무했다. 의열단으로 활동하였고,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사건(김상옥의거)에 연관된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1887~1938)의 외손이다. 김한 선생은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우원식 의원 학력 이력 고향 나이 재산 부인 자녀 프로필
우원식
禹元植 | Woo Won-shik
출생
1957년 9월 18일 (64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동 이코아빌
본관
단양 우씨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노원구 을 지역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수석부의장
더불어민주당 국가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도시공간정책포럼 대표의원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부모
아버지 우제화, 어머니 김례정
형제자매
형 우영식
누나 우관혜, 우정혜, 우덕혜, 우승혜, 우난혜
배우자
신경혜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경동국민학교 (졸업 / 57회)
성수중학교 (졸업 / 3회)
경동고등학교 (졸업 / 32회)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 / 학사)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공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기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예장합동)
신체
174cm, AB형
경력
연세대학교 기독교인 총학생회 회장
평화민주당 민권부국장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총무국장
서울시의회 의원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을 / 열린우리당)
국회 서울균형발전국회의원모임 대표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
열린우리당 사무부총장
건국대학교 생명환경과학대학 겸임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공동본부장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을 /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
국회 탈핵 에너지전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책임연구의원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 이사장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서울특별시당 노원구 을 지역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을 / 더불어민주당)
제3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제21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을 /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우원식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실향민 2세
9남매 중 막내이다. 아버지 우제화 옹은 황해도 연백군 출신이고, 누나 둘은 북한에 살아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황해도 출신. 즉 실향민 2세이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나고 당시 육남매 중 형 영식과 두 누나 정혜와 덕혜는 아버지의 고향인 연백으로 피난을 가고 어린 아이들만 서울에 남았다고 한다. 그러다 1.4 후퇴가 시작되고 어린 정혜와 덕혜는 남고 맏형 영식만 황해도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우원식 저 ’어머니의 강‘에 적혀있다.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모친인 김례정 씨가 남측 최고령자(당시 나이 96세)로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헤어진지 60년 만에, 상봉신청을 한지 15년 만에 누나 정혜 씨와 상봉이 이루어졌다.
정계 입문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로 대통령직접선거가 치러진 그해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김대중 지지운동에 참여했다. 선거 패배 후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에 대한 퇴진 압력이 거세졌고, 이듬해 1988년 민통련 주요 간부였던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등 재야민주화운동가 98명이 결성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약칭 평민연)을 통해 평민당에 입당해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민당 인권위원회 민권부국장을 맡아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유린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사건을 기록하고 원인을 추적한 ’88-89인권백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 회동 시에 전달했다고 한다.
서울시의원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 노원갑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92년 노원구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문제가 불거지자 주민대책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환경운동에 나선다. 서울시의원이 되고 폐기물 관련 조례 개정, 단식농성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앞장섰다. 결국, 1996년 서울시와 주민 간의 쓰레기 소각장 운영협의를 4년간의 분쟁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특히 1996년에 경실련 지방의회 평가에서 전문성 등 7개 항목 모두 만점을 받아 700점 만점으로 환경관련부분 서울시의회 1등 의원으로 선정되는 명예도 얻었다.
제17대 국회의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7대 국회에서 4년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에 열린우리당 수석 사무부총장으로 활동했다.
‘서울균형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 (대표의원 임채정, 연구책임의원 우원식)을 만들어서 강·남북간 재정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방세법을 개정하여 강북지역에 자치 재정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2007년 4월, 당시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재산세 100%를 공동과세하는 ‘지방세법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강남지역 구청장 및 한나라당 의원들의 법안처리 반대로 인해 결국 재산세 40~50%만을 공동과세하는 것으로 타협해버렸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서울시 자치구의 재산세를 서울시가 2008년도에는 40%, 2009년도에는 45%, 2010년도 이후에는 50% 공동과세하여 각 자치구의 재정력, 인구, 면적 등을 고려하여 각 자치구에 배분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장애인을 전체 직원의 2% 이상 의무 고용을 법제화해 장애인도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05년 대표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의해 의무고용 대상에서 제외됐던 법관, 헌법 연구관, 공립 유치원 및 초등학교 교사, 정무직 및 일부 기술직 공무원 분야에도 장애인 의무고용 원칙이 적용되었다.
2007년 주한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문제점과 미군의 기름 유출에 따른 환경오염 치유를 위한 국회 청문회를 이끌어 냈고, 반환 협상의 부당함과 미군의 환경오염 은폐 사실을 밝혀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이후 2008년에 재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해 경선에 승리해 후보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권영진 후보에게 5.7%차로 밀리며 낙선해 재선에 실패했다.
제19대 국회의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2012년 원내대변인을 거쳐,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총무본부장으로 캠프 살림살이를 맡기도 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거쳐 2013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5월25일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결과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초동대응 실패, 해경 녹취록 공개, 해수부의 관리부실 등을 밝혀냈다.
을지로위 위원장
2013년 ‘남양유업 갑질 사태’(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와 같은 연이은 대기업 갑질 사건이 벌어지자, ‘갑의 횡포를 막고, 을의 눈물을 닦아주자’라는 목적을 갖고 ‘을지로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을지로위원회’는 중구 을지로가 아니라 ‘乙 ’을 위한 길(路), 법(law), 노력(勞 )라는 뜻이다.
을지로위원회는 각종 불공정·부당 행위로부터 자영업, 중소기업, 간접고용 비정규직 등 을(乙)의 권리를 보호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2017년 전당대회 때 전국위원회로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갑질 사례인 남양유업 교섭을 이끌어 낸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 기술편취로부터 중소기업 보호,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 확보 및 정규직화 추진, 우체국 택배 기사 처우개선,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폐쇄 타결,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보상 중재, 간접고용 비정규직 위험의 외주화 개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성과를 냈다. 더불어 2015년에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3,000명이 ‘을 당원’으로 입당하기도 했다.
‘을지로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1호 경제민주화 공약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정·청 을지로민생회의’를 만들어 민생과제 해결을 위한 당·정·청의 공조·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자영업, 중소기업, 노동자 등 현장 전문가들이 함께 민생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민생연석회의’출범을 주도하여 카드수수료1%대 인하, 편의점주 최저수익보장 및 상생협력 확대, 제로페이 활성화, 택배노동자 과로사 해결을 위한 사회적합의 등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데 기여했다.
제20대 국회의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지역구에 현역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한다. 그리고 당선되어 3선에 성공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출마선언문 우상호 후보에게 결선 투표에서 7표차로 낙선하였다. 2019년 한 언론사의 초선의원 대상 설문조사에서 의정활동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배의원 1위로 뽑혔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특위 위원들과 함께 영국에 있는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 본사를 방문하여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과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2기 원내대표
2017년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홍영표 의원을 61표 대 54표로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제19대 대통령 선거)으로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인 출범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내대표 당선 이후 야당과의 타협과 유화적 메시지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을 위해 당시 국민의당 당 색깔인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던 게 있다. 정치인에게 넥타이의 색은 보이는 메시지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므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당 색깔에 맞추는데, 대통령이 직접 야당의 색에 맞춘 것이다. 이를 근거로 추경안 통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야당과의 협치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8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법정 시한은 지키지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을 패싱하고 국민의당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워 공무원 인원을 양보하고 거의 모든 정부 정책을 지켜내 우 원내대표를 미심쩍어 하는 강성 지지자들도 이번에 우 원내대표가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우 원내대표 개인적으로는 이번 협상에서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서 상위 10%를 제외해 '보편 복지'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 가장 아쉽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드루킹 특검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자,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통과,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그 외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했으나 야당에서 '무조건 특검 수용'을 주장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지점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국회가 정상화되나 싶었지만 5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대상에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여 판이 깨졌다. 우 원내대표는 야당의 본심이 드러났다며 "더 이상의 협의는 어렵겠다"고 하여 특검 관련 협의를 중단했다.
2018년 5월 9일부로 원내대표 임기가 마무리되었다. 우 원내대표는 마지막 원내대표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원내대표 자리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그 책무와 숙명이 참 무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면서 "한국당의 정치 파업으로 6월 국민개헌의 기회를 놓친 것은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 뒤 한국당에 추경 및 민생입법에 대한 협조를 촉구했다.
마지막 대표회의를 끝마치고 같은 날 오전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김성태 원내대표의 병문안을 갔다. 이때 김 원내대표가 “힘들어 죽겠다. (합의) 좀 해주고가”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됐잖나. 어제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수사범위를) 문재인 대통령까지 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겠나”며 거절했다.
제21대 국회의원
21대 총선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지역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4선에 도전한다. 상대는 한때 같은 당 동지로서 노원구 5회 지방선거를 지휘한 미래통합당 이동섭 전 의원이었지만, 이변 없이 62%의 득표율로 큰 차이로 4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0년 8월에 열릴 예정인 제4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 할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낙연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당대표로 출마하게 되자 “당 안팎의 많은 분들과 상의한 끝에 비상한 시국에 치열한 경쟁보다는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당의 개혁을 일구며 뒷받침할 때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열린 조기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그러나 송영길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했다.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는 이재명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이재명과 회동에서 불평등, 불균형,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 정신을 실천할 사람이 아니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고 우리는 이길 수 없다며 강력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해낼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승리하고 정권 재창출을 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우원식 재산
2021년 3월 기준으로 21억 3611만 3천원을 신고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4억원 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우원식 선거 이력
1991
1991년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의회 노원 당선 (1위)
초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의회 노원 3 당선 (1위)
17,037 (55.44%)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을
44,720 (41.51%)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을
38,104 (44.09%)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을
50,844 (49.72%)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을
55,687 (51.95%) 당선 (1위)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을
71,708 (62.67%) 당선 (1위)
4선
우원식 여담 일화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에 대해서 반환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북한 도발은 냅두고 사드만 문제 삼는 건 안 된다고 하였다.
언론에서는 민평련계, 비노계 혹은 비문계로 분류한다. 민평련은 故 김근태계 모임이였다. 때문에 우원식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손학규 캠프에 합류하기도 했다.
꽤나 늦둥이다. 우원식은 1957년 생인데, 우원식의 모친인 김례화 여사는 1917년 생]으로 2020년 9월 별세하기 전까지의 나이는 103세였다. 덧붙여 모친은 실향민이다. 우원식의 두 누나는 현재도 북한에 있고,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큰누나와 상봉하기도 하였다.
2013년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 당시 최고위원을 역임하며 조경태 의원과 설전을 주고받은 바 있다. 조경태 의원이 "어디 재선이 삼선한테..."라고 발끈했고, 우원식 의원은 "나이도 어린 X이..."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개정 법률안에 반대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소속 중 몇 안 되는 의원이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내곡동 땅 셀프보상' 논란과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해운대 엘시티(LCT) 매매 특혜 의혹을 보면 'MB(이명박) 시즌2' 같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 11주기이며 여섯 번째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희생한 ‘서해수호 55용사’를 추모한다”고 입장문을 밝혔다. 11년이 지났지만, "천안함 사건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건의 트라우마, 사회적 냉대가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다.”며,“더불어민주당은 천안함 장병 국가유공자 지정 및 예우에 더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4.7재보궐선거를 돕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루에만 전화를 300~400통을 걸 정도로 자택에서 대의원, 당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연고자 찾기’를 독려하는 등 서울 선거운동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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