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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복 고향 재산 자녀 학력 프로필 (인천시장)

대한민국의 정치인. 관료 출신으로서 17대 ~ 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 안행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인천광역시장이었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삽질과 전국적으로 낮은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의 영향,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태옥의 이부망천 발언이 겹치며 낙선하였다. 관선 구청장, 관선/민선 군수, 민선 시장, 민선 광역시장 등 다양한 자치단체장 경력을 가진 인물.

 

유정복

劉正福 | Yoo Jeong-bok

 

출생

1957년 6월 16일 (64세)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

(現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본관

배천 유씨

 

현직

국민의힘 남동구 갑 당협위원장

 

 

재임기간

제33대 경기도 김포군수

1994년 1월 16일 ~ 1995년 3월 28일 

제5대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1995년 3월 29일 ~ 1995년 5월 31일

제35대 경기도 김포군수

1995년 7월 1일 ~ 1998년 3월 31일

제1-2대 경기도 김포시장

1998년 4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제59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2010년 8월 30일 ~ 2011년 6월 1일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

2013년 3월 13일 ~ 2014년 3월 6일

제14대 인천광역시장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형제자매

4남 3녀 중 여섯째

 

배우자

최은영

 

자녀

슬하 1남 3녀

 

 

학력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만기제대

 

신체

174cm, 70kg, AB형

 

종교

천주교 (세례명: 바오로)

 

경력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육군 학사장교 1기 임관
경기도청 기획담당관
제33대 경기도 김포군수 (관선)
제5대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관선)
제35대 경기도 김포군수 (민선1기)
제1-2대 경기도 김포시장 (민선1-2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회장
제17대 국회의원(경기 김포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대통령당선인 특사(중국)
대통령 특사(유럽)
제18대 국회의원(경기 김포시)
제59대 농림수산식품부장관
국민생활체육회 회장
제19대 국회의원(경기 김포시)
초대 안전행정부장관
제14대 인천광역시장 (민선6기)
제9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
윤석열 국민캠프 공동선대위원장
국민의힘 선대본부 인천 총괄선대위원장

 


유정복 고향 재산 자녀 학력 프로필 (인천시장)

 

 

유정복 생애 고향 학력

인천 토박이로 제물포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 학사,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원래는 외교관이 될 생각이 있었으나 한국 외교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행정관료(행정고시 합격)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병역 의무는 학사장교로 이행했으며 학사 1기이다. 그리고 육군학사장교 총동문회장까지 역임하면서 학사장교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학사장교 총동문회 회장 시절에는 매해마다 학사장교 후보생들이 화산 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받는 기간에 방문해서 위문해줬다.

역대 인천광역시장(인천직할시장 및 경기도 인천시장 포함) 중 인천 출신으로서 두 번째이며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민선 시장으로는 최초의 인천 출신 시장이라고 한다. 인천 출신 첫 인천시장은 김정렬(1907).

 

 

유정복 정치 입문 활동 이력

1979년 23회 행정고시 합격 이후 1981년에 학사장교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것을 제외하면 관료로 살아오다 1994년 관선 김포군수에 취임, 당시 38세로 전국 최연소 군수가 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참고로 1995년 3월 1일로 예정된 행정구역 대개편을 1년 앞둔 1994년에 작성된 검단면 인천 편입 관련 정부문서를 보면 유정복 당시 김포군수가 쓴 공문도 있다. 

그 이후 1995년에는 관선 인천광역시 서구청장을 역임하다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도, 야당도 아닌 무소속으로 김포군수에 재선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당선 후, 잠시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가, 다시 탈당해 차기선거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다. 김포군이 그의 임기 중에 김포시로 승격하고,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김포시장으로 재당선 되어 2002년까지 김포시장으로 재직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시장 3선(관선 시절까지 하면 4선)을 노렸으나 한나라당 김동식 후보한테 낙선.

낙선 후 대학 교수로 잠시 활동하다가 그 해 대선 직전인 1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며 2004년 탄핵 정국에도 불구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화려하게 재기한다. 이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포시 지역구로 내리 3선에 성공.

대표적인 친박 인사였으나, 친이계와도 스스럼없이 지냈는지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을 하기도 했다. 이후 박근혜 정권에 들어서자 안전행정부 장관에 취임했다.

 

제14대 인천광역시장 시절

장관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신지였던 인천광역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안그래도 새누리당을 구렁텅이에 빠뜨려버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데다 앞서 서술한 안전행정부의 경력의 직격탄을 맞으며 불안한 출발을 끊어야 했다. 하지만 경쟁상대인 송영길 전 시장이 새해 벽두부터 측근비리로 당시 유정복 후보는 반등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강한 여당 시장, 인천발 KTX를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을 공약으로 내걸어 1%의 근소한 득표차로 당선에 성공한다. 원 지역구인 김포시 지역구는 측근이었던 홍철호 크레치코 대표에게 넘어간다.

 

시장에 재임하고 첫 관문이었던 인천 아시안 게임 행사를 지휘했으나, 사실상 실패작으로 끝나며 주민들의 평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중화권 여행객들 유치를 위해 대만에 방문, 주리룬 중국 국민당 주석(대표)(신베이 시장 겸직),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 마잉주 총통과 회담을 갖기도 했다.

메르스가 전국을 덮칠 당시 다른 지자체장과의 협연으로 성공적으로 방역을 마쳤고, 전국 지자체 중에서 낮은 발병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19일, 재임기간 중 인천광역시 인구가 300만을 돌파했다. 

2016년 10월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지지율 35.5%로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그 홍준표보다도 낮고 1위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절반에 불과하다. 일단 시정 홍보 자체가 안되어 시민들이 시에서 어떤 정책을 펼치는지 알지 못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2017년 3월에도 17명 중 1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인천시 재정을 성공적으로 관리해 인천시 부채 3조7천억원을 탕감했다는 점에서 여론이 점점 좋아져 그 홍준표에게 조차도 경선없이 공천을 사실상 약속받을 정도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인천시 부채감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의 주장에 의하면 감축된 3조 7000억 중 7000억은 재난구호기금으로 시에서 매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할 예산인데 편성되질 못해서 줄어든 것이고, 3조 원 중 2조 원은 인천시가 아니라 공기업에서 감축한 것으로 실질적인 감축 예산은 1조 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채무 비율의 경우 1조 원 감축과 더불어 3조 원의 예산을 늘렸기 때문에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점을 자신의 재선 도전의 가장 큰 경쟁자인 더불어민주당의 박남춘 의원에게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초 송영길 전 시장이 선거 당시 민주당에서 과거 인천시 부채를 계산할 때 공기업 부채를 시 본청 부채에 합쳐 계산했고 유정복 시장 재임 시기 정부로부터의 거액의 보통 교부금 지원 증가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 공기업인 인천도시공사의 부채는 천문학적이었고 도시공사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결국 시에서 도시공사의 부채를 책임져야 한다. 이는 진보 계열 시민단체에서도 누누히 강조하던 것이다. 토지 매각으로 부채 감축을 했다는 것도 박 의원의 소속 정당이 인천시정을 이끌었을 때 역시 천문학적인 액수의 터미널 부지를 매각하고도 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고 역으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지적받기도 했다. 그 3조의 예산 증가도 결국 세입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2018년 4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위장평화쇼라는 발언을 하자 되려 국민의 기대와 염원에 찬 물을 끼얹었다며 홍준표를 공개 비판했다. 사실 인천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

소속 정당인 자유한국당의 낮은 지지율,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이유로 여론조사에 의하면 6.13 지방선거에서의 지지율은 경쟁자인 박남춘 후보에 비해 많이 낮게 나오나 시정 평가에서 긍정 여론이 48.5%, 부정 여론이 37.4%로 긍정 여론이 10% 이상 높은 것이 주목된다.

그러나 같은 당 정태옥 의원이 사전투표가 진행 중이던 6월 7일 희대의 망언을 내뱉었고, 유정복 본인도 발빠르게 정태옥 의원의 사퇴요구와 함께 화살을 박남춘 후보에게 돌리려 애썼으나 결국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5.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57.7%의 득표율을 기록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남춘 후보에 크게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자신의 원래 정치 거점이었던 김포로 돌아가지 않고 인천에 남을 것을 밝혔는데, 2020년 총선에서 남동구 갑 선거구와,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선거구 중 한 곳을 선택해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정계에 나돌고 있다. 만약 같은 당의 홍일표 의원이 최종적으로 당선무효형을 받게된다면 수도권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중량급 인사를 내보낼 가능성이 높아 재보궐 출마 가능성도 열려있었으나, 2019년 재보궐선거 실시 지역구의 공직자 퇴직 시한인 2019년 3월 4일 이전까지 홍일표 의원의 형량이 정해지지 못하게 되면서 옛말이 되었다. 다만 21대 총선 이전에 홍일표 의원의 형량이 확정된다면 인천 미추홀구 갑 선거구에 출마할 수 있을 것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와 또 한 번의 낙선

인천시장 낙선 이후 해외 유학을 떠났다가 2019년 6월경에 다시 입국하여 정치활동을 재개할 준비를 하였다. 당과 지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서 총선 출마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1월에 인천 미추홀 갑에 출마선언을 하였다. 현역인 홍일표 의원의 불출마가 유력한 상황인데다 시장 시절부터 추진하던 원도심 재생 정책을 이어가기 위한 결정이라고 한다. 출마 선언 이후 당 안팎으로 비판여론이 거센데 같은 당 예비후보인 신보라 의원은 험지에 나가서 최전선에서 싸워야 될 분이 편하게 후방에만 있으려 하며 다른 예비후보들의 밥그릇만 빼앗으려 한다며 비판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원도심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이밀었다며 비판했다. 한국당(현 미래통합당) 공관위도 인천시장을 지낸 분인 만큼 최전선에서 싸워주길 바란다며 재고를 요청했다.

결국 공관위와의 합의 끝에 출마지역을 인천 남동 갑으로 변경했다. 남동 갑 지역구가 인천시청이 위치해 인천의 종로로 불리는 지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박남춘 현 인천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이기 때문에 인천시정에 대한 평가가 최악을 달리는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권과 박남춘 시정에 대한 심판여론에 불을 지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더불어 같은 당 출신 전직 인천시장인 안상수 의원과 함께 인천 지역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당일 출구조사 결과 맹성규 49.9%, 유정복 49.0%로 나왔으나, 막상 개표때는 이보다 더 벌어진 54.4%:44.4%로 10%p 차로 패배해 낙선하였다. 2018년 지방선거에 인천시장 재선에 실패한 후 이번에도 2연속으로 패배했다.

낙선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0년 8월 15일 열린 광복절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2020년 8월 태극기집회 참석 이후로는 몸이 안 좋아서 한동안 정치 행보를 중단하고 본인의 몸 관리를 했다고 한다. 주로 등산이나 수영을 하면서 몸을 돌봤던 것으로 보인다.

2021년 5월 들어서부터는 다음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시장 선거 재도전을 위해 관련 정치인들을 만나고 인천시 현안을 돌아보는 등 물밑에서 정치 행보를 재개하였다. 현재 당내 경쟁 후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이학재 전 의원 정도가 있다고 한다.

2021년 6월 경인방송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현직 박남춘 시장을 상대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이며 인천광역시장 재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2021년 7월 국민의힘 인천시당 위원장직에 출마하였다. 지역언론에서는 차기 인천광역시장 출마를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차기 지방선거에 인천시장 출마가 예상되고 전직 시당위원장이었던 이학재 전 의원의 지원을 받는 배준영 의원과 시당위원장직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시당위원장 경선에서 패배하며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6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경인방송의 7월 인천광역시장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는 현직 박남춘 시장을 상대로 유정복 전 시장이 오차범위 내에서 열세를 보이고 8월부터는 오차범위 내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박남춘 시장과 경합을 보이고 있다.

2021년 10월 24일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김태호 의원, 박진 의원과 함께 윤석열 대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였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2년 3월 9일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인천시장에 재도전할 것이 전망되었고 3월 15일에는 인천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이를 공식화했다.

 

 

유정복 논란 및 사건 사고

인천광역시 스마트시티 무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관 의혹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통해 최순실 씨와 유착 의혹을 받는 K스포츠재단의 체육관 무상 임대 요청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검단스마트시티 역시 최순실 연루 의혹이 제기되어 특검이 수사에 나섰다고 오마이뉴스에서 전했다.

 

공약 이행률 과장 및 사전선거 운동 의혹

공약 이행률 과장 및 사전선거 운동 의혹이 제기되었다.

 

 

유정복 여담 일화 인간관계

2015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 시절, 간석동에서 온 가족이 거주하였다. 자택 옥상에 항상 태극기를 게양했다고 한다.

제물포고등학교 후배인 김구라와 친분이 깊다. 유정복 시장의 출판기념회 때 MC를 맡았으며, SBS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하여 제물포고, 차이나타운,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송도국제도시를 같이 둘러보았다. 김구라도 명랑히어로에서 자기 지역구 의원 이름은 알아야되지 않겠냐며 유정복의 이름을 언급하며 동문이기도 하다는 인맥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당 대표인 홍준표가 "위장평화쇼"라며 문모닝을 시전하자 "제발 오버 좀 하지 마시라."며 홍 대표를 질타했다. 참고로 유정복은 이전부터 남북화해에도 신경을 많이 쓴 인물 중 하나다. 김포시 국회의원이던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갔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도 찬성했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의 대남도발이 재개되어 이 발언은 흑역사가 되었다.

 

 

 

유정복 재산

2017년 인천광역시장 시절 신고된 재산은 8억 8천 391만원이다. 이후 내리 2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신고된 재산은 없다.

 

 

 

유정복 선거 이력 경력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김포군수

무소속

27,832 (45.35%) 당선 (1위)

초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김포시장

29,625 (63.89%)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8,298 (36.01%)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김포

43,344 (47.7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44,551 (65.57%)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61,591 (56.48%) 당선 (1위)

3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광역시장

615,077 (49.95%)

초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70,937 (35.44%)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남동 갑

59,466 (44.44%) 낙선 (2위)

 

 

유정복 저서 책

녹색연필: 2001년 작

찢겨진 명함을 가슴에 안고: 2008년 작

여우와 고슴도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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