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검사 출신으로 정치 초년생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검사 특유의 강직함, 외교관(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며 익힌 국제 감각, 차관급인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재직 시 부당한 차별시정을 몸소 시정하는 등 다양한 경험으로 다져진 인물이다.
정상환 나이 고향 학력 이력 부인 자녀 프로필 (검사 출신)
출생
1964년 7월 18일 (57세)
경상북도 영주시
(고향 : 경산시)
거주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본관
동래 정씨
부모
아버지 정문덕, 어머니 전지영
형제자매
3남 중 장남
배우자
오**
자녀
슬하 2남
학력
대구영선초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졸업)
능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 / 석사)
병역
5군지사,백골부대 군법무관
종교
기독교
주요 경력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
1993 수원지검 검사
1995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
1997 서울지검 검사
2000 대구지검 검사
2002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
2002 대구지검 의성지청 지청장
2005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2006 대검찰청 정보통신과장
2007 서울 중앙지검 부장검사
2007-2010 주미국대한미국대사관 법무협력관(외교관)
2010 청주지검 차장검사
2011 수원지검 제1차장검사
2012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2013-2014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2014-2016 변호사 개업
2016-2019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현 국민의힘 전 새누리당, 차관급)
2021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 부위원장
2021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윤석열대구선거대책위원회 법률자문위원장
2022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클린선거전략본부 법률지원부단장
정상환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출생 ~ 학창시절
1964년 7월 18일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은 경산시이지만 영주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교직에 몸을 담고 있어서 큰 재력은 없었으나 삼시세끼 끼니는 거르지 않았다.
이후 대구 대명동으로 이사하여 영선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중학교 재학 중 삿포로재일문화원 원장으로 부임하신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1년간 거주하였다. 이 당시 대다수의 일본친구들은 잘 대해 주었으나 조센징이라고 놀리는 친구가 있었고, 민족차별 느낌을 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이로 인해 부당한 차별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맹목적인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아닌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각오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 후 경북대학교 사대부중을 졸업하였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만촌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아버지가 지인에게 빚보증을 잘못 서주어 살던 집을 처분하게 되었다. 다섯 식구는 남의 집살이를 시작했고 여러 곳을 거치다가 황금주공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게 되었다.
고교시절 그의 학업성적은 전교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고교 동창들은 그를 ‘본인도 어려운데 주변을 돌아보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동창생 중 한명은 ‘고아인 한 친구가 거처할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 숙소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했다. 또 다른 동창생은 ‘쉬는 시간에 잘 모르는 것이 있어서 그에게 물어보면 몇 번이라도 짜증내지 않고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어떤 동창생은 ‘특히 그의 성품을 봤을 때, 주변에 알려지지 않는 선행은 더 많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학업을 위해 서울에 와서 생활했는데 당시 과외금지 조치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어서 어렵게 지냈고, 저녁을 매일 학교식당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가 사법시험에 도전한 이유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공정은 단순히 균등한 기회제공을 넘어서서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받고, 도저히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1987년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제29회)에 합격한 그는 백골부대(3사단)와 5군지사의 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검사시절
1993년 3월 그는 수원지검에서 검사로 첫발을 내딛었다. 대구지검 평검사를 거친 그는 의성지청장, 대구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지냈다. 2007년 2월 주미대사 법무협력관으로 발령 난 그는 3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국제적인 감각을 익혔다. 귀국 후 수원지검 차장검사, 부천지청장 등을 거친 그는 2014년 1월, 20여년간의 검사생활을 마감했다.
1999년 검찰사상 초유의 항명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국민으로부터 신망이 높았던 한 고검장이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당시 검찰총장은 진상규명도 하지 않고 그 고검장을 내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고검장은 이에 반발했고, 전국의 평검사들은 검찰총장의 조치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비단 그 고검장 사건 뿐만 아니라 평소 검찰총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공정하게 수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검사 정상환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평검사로서 검찰총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직접 작성하여 검사들의 서명을 받아서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 사건은 그 후 검찰의 조직문화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2002년 3월호 '허물벗지 않는 뱀은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정권에 충성하는 일부정치검사들과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검찰조직문화를 비판하는 기고를 하였으며, 2003년 1월 14일 MBC가 기획시리즈로 제작한 4대권력 대해부 '검찰'편에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변호사시절
2014년 2월 그는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소 문을 열었다. 많은 이들이 변호사 사무소 문을 두드렸고 그는 수익금 중 2억원이 넘는 돈을 장애인 복지재단과 장학재단 등지에 기부하였다. 한편 그는 의성지청장 시절에 관내 불우 청소년 및 청송교도소 재소자 자녀를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였고, 그 자신이 누구보다 많은 금액을 기부하였다.
2년이 지난 2016년 3월 잠시 변호사 생활을 접고, 당시 새누리당의 추천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마침 ASEM노인인권 컨퍼런스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는데 전세계 노인전문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그는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는 모두 현재 노인이거나 곧 노인이 될 사람이다’라고 발언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외에도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교도소 생활체험을 하였는데 만 24시간 수감자와 똑 같은 대우를 받으며 생활을 하였다. 이와 함께 한센인 마을 방문, 도시빈민가 방문,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방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인권 강화에 매진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출마
2019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서 퇴임 후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대학 입학 후에도 대구 지역에서 8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대구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수성구 시지에서 새둥지를 튼 그는 지역발전의 작은 벽돌이라도 되어야겠다는 심경으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였으나 공천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사유로 꿈은 좌절되었다.
즉, 정상환 예비후보는 2019. 10.부터 수성(갑) 출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경선준비를 했는데, 2020. 3. 6.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수성(을)의 주호영 의원을 수성(갑)으로 전략공천하고, 정 예비후보를 수성(을)과 다른 지역구 1군데 중 선택하여 1:1 경선하라고 통보해 왔다. 손바닥 뒤집듯 지역구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서울의 믿을 만한 분에게서 전략공천 배경과 경위를 전해 들었던 정 예비후보는 수성(갑)에 남아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인지, 아니면 중앙당에서 통보한대로 수성(을)로 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3. 11. 정 예비후보는 중앙당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당원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여겨 수성(을)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수성(을)로 지역구를 옮긴 정 예비후보는 3. 17.부터 시작되는 여론조사에서 46.8%를 얻어 57.2%(여성가점 4% 포함)를 얻은 이인선 예비후보에게 패했다. 이 예비후보는 2016년 총선에서 수성(을)지역에서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한 전력이 있었고, 당초부터 수성(을)에서 출마준비를 해온 반면, 정 예비후보는 수성(갑)에서 수성(을)로 지역구를 옮긴지 5.5일만에 시행된 여론조사 결과였다.
특히, 정 예비후보는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차관급)의 경력으로 가산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지지율은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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