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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4. 10. 13:36

정운천 의원 재산 고향 자녀 부인 프로필


대한민국의 농업인 출신 관료, 정치인이다. 제20대 국회 당시, 전북의 유일한 새누리당 출신 국회의원이자, 단 한 명 뿐인 전북 지역의 미래한국당 국회의원이었다. 또한 단 둘 뿐인 호남 지역 보수정당 국회의원 중 하나였다. 범친이 중진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새로운보수당에 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가 아닌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이 타이틀은 없어지게 됐다.

 

정운천 의원 재산 고향 자녀 부인 프로필

 

정운천 프로필
정운천

 

정운천

鄭雲天 | Chung Woon-chun

 

출생

1954년 4월 10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現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안길 32-1)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LG개포자이아파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1가 삼천남양아파트

 

본관

연일 정씨

 

 

재임기간

제57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2008년 2월 29일 ~ 2008년 8월 6일

 

배우자

최경선

 

자녀

아들 정용훈, 딸 정다은

 

학력

남성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 / 학사)
원광대학교 (행정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성결교회)

 

경력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 대표이사
한국신지식농업인회 회장
대불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농림부 중앙농정심의회 위원
전남대학교 응용생물학부 겸임교수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한나라당 최고위원
전북대학교 식품공학과 석좌교수
제20~21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전북도당위원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바른정당 최고위원
바른미래당 전북도당위원장
새로운보수당 공동대표 겸 정책위의장
미래한국당 최고위원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국민통합특별위원장

국민의힘 전라북도당위원장

대한닭싸움협회 회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정운천 생애 고향 학력 가족관계

1954년 4월 10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의 인촌 김성수 생가에서 아버지 정종원(鄭鍾源)과 어머니 고흥 류씨(高興 柳氏) 류규호 사이의 4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익산시의 남성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내려가 약 30여년을 농부로 보냈다.

그러다 1991년 키위가 농산물 수입 자유화 대상에 포함되어서 큰 타격을 받았는데, 이때 국내산 키위를 참다래로 명명하고 "참다래유통사업단"이라는 농민 조직을 결성해 큰 호평을 받았다. 물론 도중에 저장 창고에 불이 나 큰 피해를 보기도 하는 등 고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그의 업적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하였다.

 

정운천1

 

 

정운천 정치 활동 이력 경력

정계 입문

그러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의 농업문제의 조언을 해 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명박 정부에서 제57대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에서 광우병 논란으로 인하여 촛불집회까지 벌어지는 사태의 핵심 인물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급기야는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해임건의안이 상정되는 파란을 겪다 당해년도 8월 6일 퇴임하였다. 특히 혐중성향과 친대만성향이 가장 강한 조경태가 자국민 우선주의자답게 30개월건에 매우 격노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이후 2010년 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전북지사에 출마하여 18.2%의 득표율로 민주노동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친 수치보다도 훨씬 선전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19대 총선에서는 35.79%를 득표하는 등 선전했다.

 

 

전라북도에서의 당선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형재 후보를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1표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개표 중반까지는 정운천 쪽이 4,000표 가까이 앞서나갔는데 중후반부터 최형재 쪽이 급속히 치고나오는 바람에 다들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은 개표 후반에 개봉된 사전투표함에서 민주당 표가 대거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전주시 을 선거구에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돈이 많은 부유층, 상류층들이 많이 살아서 지역에 해준 것도 없이 의석만 차지하는 민주당계 정당의 독주 구도를 깨야 한다는 비토 심리도 있었고, 농촌진흥청과 농수산대학 등 농업 관련 공공기관들이 많이 있는 혁신도시 통근자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농업 전문가인 데다가 전직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던 정운천을 밀어줘서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새누리당 소속의 호남 출신 인사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이정현과 많이 묶여서 언급되곤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정현은 친박 성향인데 반해 정운천은 비박 성향이고, 정운천이 석패율제 전도사로 유명한 것과는 달리 이정현은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거나, 정운천은 탄핵에 찬성하는데 반해 이정현은 탄핵 반대의 선봉에 서는 등 두 사람의 노선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선거운동 때 새누리나 계파색을 최대한 지우고 지역일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은 같다. 순전히 본인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도 뜯어보면 판이하게 다른 것이, 이정현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서 착실하게 지역일꾼 여론을 쌓아온 반면, 정운천은 각종 선거에 출마하여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거의 맨땅으로 헤딩하는 수준으로 지역일꾼 여론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또 이정현은 박근혜 정부 이래로 청와대 특보도 맡는 등 푸시를 많이 받은 반면에 정운천은 그러한 지원도 전무하다시피했다. 중앙당 지원은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일절 받지 않았다. 만약 새누리색이 강조되면, 범야권의 결집, 단일화로 인해 당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같지만 실제로도 중앙당에서 지원을 나온 19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게다가 20대 총선 때는 실제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운천 당선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전주에 와서 "전주시민 여러분, 배알 꼴리지도 않습니까!" 드립을 치는 바람에 정운천 당선인이 "아, 낙선이구나." 했다고 한다. 김무성 대표가 이후 사과를 했지만 사과 발표는 대리인이 하는 등 무의미한 사후약방문이었다. 드립이 없었을 경우 초박빙보다야 조금 더 표차를 낼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뭐 결국 당선은 되었다.

다만 이렇게 커다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의 PK 대약진 김부겸의 당선,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2년전 재보궐선거에서 이정현이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보수정당 호남 당선자의 상징성을 먼저 가져가버린 영향도 컸다.

다만 이정현처럼 친박 덕질로 호남 사람들을 격분시킨 것도 아니고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이 있으며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기에 재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를 더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지역구가 수도권이라면 몰라도 보수 정당의 불모지인 호남 지역인 까닭에 정당 지지율이 아닌 개인 지지율로 당선된게 크고 이 개인 지지만 잘 지켜내도 재선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긴 하다. 전주시 한정이지만 일을 제대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한지라 앞으로 어느곳에 출마해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대다수다.

더군다나 광우병 파동 때 자신을 가루가 되도록 질타했던 조경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새누리당으로 옮겨와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둘의 미묘한 관계 또한 흥미거리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 같은 SNS 관리도 직접 챙기는 등 시민들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자신에 대한 비판까지도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 정치인으로써 기본적인 소양은 갖췄다. 첫 행보는 나쁘지 않다. 중앙당 지도부에게 호소한 끝에 탄소법과 국민연금공단 일괄 이전을 통과시켰기 때문. 신문기사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과장되게 부풀려서 여러 시민들이 SNS를 통해 항의했지만, 본인 또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답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정운천2

 

바른정당에서

새누리당에 소속되어있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강력히 주장하는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고, 2016년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 후 2017년 1월 24일 정식 출범한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2017년 5월 2일 바른정당 1차 탈당사태 당시 정운천 의원도 탈당 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비유승민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할지 고심했으나, 5월 4일 지역구 민심을 반영해 탈당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7년 6월 13일 바른정당 당권 출마를 선언하였으며, 18일 호남지역 당원투표에서 1위를 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이혜훈, 하태경에 이어 3위를 기록하여 당 대표는 되지 못했지만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7년 11월 2차 집단 탈당때는 참가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탈당파를 비판하는데 앞장 선다. 오히려 유승민, 하태경, 지상욱, 이혜훈과 함께하며 자강파에 속한 의원이 되었다. 이후 3차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3등을 하여 최고위원직에 올랐다.

4인과 오신환 원내대표와 함께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파인데, 아무래도 지역구가 호남 지방이기 때문에 국민의당과 통합을 하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고 오히려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는 것보다 표를 얻기 더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덕분에 만일 통합 정당에서 또 다시 엑소더스가 일어난다 해도 앞선 5인과 당에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하태경 최고위원과 함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특히 국민의당 내에서 친안계 중진이기도 한 김관영 의원이 옆 동네를 지역구로 갖고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바른미래당의 전북권 벨트를 형성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바른미래당에서

바른미래당 출범 후 바른정당 몫으로 최고위원직을 유지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 복당파로 거론되었으나 2018년 9월 2일 바른미래당 당 대표 전당대회에 출마하였다. 1차 선거에서는 장성민 전 의원과 연대하였으나 정작 단독으로 2차 선거까지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최고위원에도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2019년 5월 3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호남선 라인 순회 장외투쟁 중에 전주역에서 우연인듯 우연이 아니게 만났다 이로써 한국당 복당설에 무게가 좀 더 실린다.

 

 

전주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상산고등학교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재지정 탈락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70점대를 맞은 전국의 다른 자사고들은 재지정되고, 79.61점을 맞은 상산고만 탈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누가 봐도 결과를 정해놓고 룰을 만들었다"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라북도교육청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재지정 취소 부동의를 요구하였다. 정 의원 뿐만 아니라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과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전 국회의장 등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상산고 탈락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이후 정 의원은 '전주 상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 부동의 요구서' 서명을 주도했고, 그 결과 전체 국회의원(297명)의 과반인 151명의 서명을 받아 교육부에 전달했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6명, 자유한국당 106명, 바른미래당 23명, 민주평화당 10명, 우리공화당 1명, 무소속 5명 등이 부동의 요구서에 서명했다. 정 의원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이 서명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평가가 잘못됐다는 데 여야 가릴 것 없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의 이런 노력 덕분인지 교육부는 상산고등학교의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이념편향적 '정책 폭주'를 막아내 정 의원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 발표 직후, 전북도민·전주시민과 상산고 학생·학부모들이 정 의원에게 수백 건씩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출입기자들에게 입장문만 발송해 겸손하다는 평을 얻었다. 

 

 

새로운보수당에서

2020년 1월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에 입당했다. 새로운보수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미래한국당에서

새로운보수당에 입당했지만 보수통합으로 2020년 2월14일 새로운보수당을 탈당하고 미래한국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전주시을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새로운보수당 시절 나온 여론조사 기사에 의하면, 민주당에서 누가 나와도 정운천은 앞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 관계도 있는 듯 하다. 결국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순위 18번을 받게 되었다. 당 득표율에 따라 아쉽게 낙선할 수도, 겨우 당선될 수도 있는 순번이다.

당내 공천 잡음으로 3월 19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원유철 대표 체제에서 하루 만에 다시 최고위원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비례대표 명단이 수정되었는데, 기존의 18번에서 16번으로 재배치되면서 당선권에 들어왔다. 결국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국민의힘에서

농림축산식품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소속되었으며 농림어업 관련법과 반려동물 관련법을 주로 입법하고 있다.

농가소득과 무관하게 고액연봉자가 늘어나고 있는 농협중앙회를 비판하고 있다.

2020년 8월 국민의힘 국민통합특위 위원장 , 2021년 2월 전북도당위원장에 위촉되었으며 2021년 5.18 유족회의 초청을 받아 성일종 의원과 함께 광주 5.18 민주화운동 추모제에 참석하였고 유관단체의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2021년 5월에는 영호남 공동으로 추진해야 하는 철도-교통 관련 사업의 조속한 진행을 촉구하였다.

2022년 3월, 전주시 을에서 재보궐선거가 열리면 출마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전북도지사에는 불출마 한다고 밝혔다. 

 

정운천3

 

정운천 논란 사건 사고

오지 발언

제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의 청년 철벽을 해결하는 방법은, 개발도상국가의 취업인력이 엄청 늘어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돈 한 100만 원만 가지고 캄보디아 가면 한 1,000만 원 이상의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 보면 나이지리아 같은 데 또 콩고, 동남아에 보면 캄보디아 이런 전 세계 오지에 우리 청년 한 10만 명쯤 보냈으면 좋겠어요.

2016년 10월 산자위 국정감사

 

국정감사회장에서, 대한민국 청년 10만명 정도를 오지에 보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 비판받는 측은 KOTRA 사장 김재홍이다. 물론 맥락상으로는 청년 10만명을 오지로 그냥 보내버리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런 곳에 이주시켜서 농업 발전을 도모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뜻에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거기 가는거 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거기서 뭘 해먹고 살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정운천이 농경제학을 전공했고 원래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국내 이주를 주장했다면 좀 더 나았으련지도 모를수도 있겠다. 어디까지나 위 발언에 비해서 나을 뿐이다. 그리고 지칭한 나라들을 오지(奧地)로 지칭했는데,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을 이르는 벽지, 두메산골과 유의어로 쓰이는 단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우방인 해당 국가들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이미 한국 정부는 과거에 젊은층들을 오지로 보냈다가 백기투항을 한 사례가 있다. 그게 광주대단지사건이다.

 

바른정당 집단탈당 시도 및 번복

2017년 5월 2일, 탄핵 정국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했던 선두주자인 정운천이 도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을 고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아무래도 유승민 후보가 갖은 노력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자유한국당이 규모가 월등히 큰 만큼, 현실적인 결정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매우 큰 자신의 지역구 전주시 을의 반대, 탈당 의원 13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겹쳐 결국 황영철 의원과 함께 이를 취소하고, 바른정당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비박 성향이 강하고 자유한국당의 성향과 일부 달랐던 것으로 여겨진 정운천 의원의 이미지에 다소 타격이 갈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재탈당파에게 "철새"의 이미지가 생길 가능성도 많고, "번복할 일을 도대체 왜 섣부르게 결정했는가"라는 비판도 생기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탈당을 확정한 13명에 비하면 덜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대선때 열심히 돌아다닌데다 이후 2차 전당대회 등을 통해 여러모로 당내 활동을 열심히 한 편이라 당 내 여론은 어느 정도 좋아진 편.

 

 

정운천 재산 

총 24억 7천3백2십만원 가량으로, 작년보다 조금 증가한 재산을 유지하고 있다.

정운천 재산

 

 

정운천 기타 활동 이력 경력 여담

전북 출신으로 새만금 간척사업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정치인이다.

의외의 행보가 있는데 대한 닭싸움 협회 회장이다. 닭끼리 싸우는 투계가 아니라 사람끼리 하는 닭싸움을 주관하는 단체이다. 실제로 전당대회에서 "꼬끼오"로 대놓고 소개할 정도. 당 대표 후보 토론에서는 꼬끼오 + 마크롱 + 정운천이라며 자신을 꼬끼오 마크정이라고 불렀다.

정운찬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자. 물론 두 사람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위원을 지낸 것은 공통점이지만 같은 시기에 국무위원으로 재직한 적은 없었다.

일본의 프로레슬러 출신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와 외모가 매우 닮았다.

한식재단(현재는 한식진흥원) 출범 당시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정운천 선거 이력 경력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북도지사

151,064 (18.20%)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전주 완산 을

30,406 (35.79%)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전주 을

40,982 (37.53%) 당선 (1위)

초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9,441,520 (33.84%) 당선 (16번)

재선

정운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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