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학원인 출신 정치인이다. 제17대, 19대, 21대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서울 마포구 을 지역이다. 대학생 시절 주한미국대사관 불법 점거 및 방화, 폭탄 테러 사건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뤘다. 이후 사회에 나와 영어강사가 되어 보습학원을 운영하다가 학원을 접고 정계에 투신하여 노사모를 이끌었다.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열린 총선에서 국민들의 열린우리당 몰표 지지에 힘입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정계에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의 언사로 숱한 화제와 논쟁, 구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유의 높은 전투력으로 당내에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으나, 도가 지나친 언행으로 당 전체에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등 당 내부에서도 비토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정청래 의원 고향 재산 나이 학력 이력 프로필
정청래
鄭淸來 | Jeong Chung-rae
출생
1965년 5월 18일 (57세)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거주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
성산월드타운대림아파트
본관
하동 정씨
가족
부인 김인옥
장남 정한결, 차남 정한백, 3남 정한솔
학력
진산국민학교 (졸업)
진산중학교 (졸업)
보문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 / 학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 / 석사)
종교
개신교 (나성)
병역
병역면제 (수형)
신체
175cm, 72kg, B형
경력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 초대대표
열린우리당 전자정당위원회 위원장
e스포츠 ·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회장
건국대학교 민주동문회 초대 회장
제17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합민주신당 가족행복위원회 운영본부장
민주당 서울시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회 유세본부장
민주통합당 민생공약실천특별위원회 한반도평화본부 간사
민주통합당 인터넷소통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제19대 국회 대한민국 · 미국의원외교협의회 회원
제19대 국회 대한민국 · 이란의원친선협회 이사
제19대 국회 대한민국 · 네덜란드의원친선협회 부회장
제19대 국회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간사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불법진압대책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가계부채특별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가계부채특별위원회 위원장
정청래 생애 고향 학력 이력
학창 시절
1965년 5월 18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아버지 정해일(1921년)과 어머니 박순분(1922년) 사이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현재는 5남매만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형과 둘째형이 15살 차이가 나는데, 이 시기에 홍역으로 아이 5명을 잃었다고 한다. 금산에서 석막초등학교와 진산중학교에 다녔고, 대전으로 올라와 대전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교 졸업 후 대입에 낙방하고 상경하여, 서울의 한 유명 재수학원에서 1년간 재수한 후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85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때 경험이 나중에 학원을 차렸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 직후 1학년때 과대표에 출마하며 '나의 꿈은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이후 운동권 활동에 투신했다. 전대협 산하 서총련에서 활동했다. 재학 중 1988년 안기부 요원들에게 새벽 2시에 끌려가서 어딘지도 모른 곳에서 눈이 가려진 채 무차별 폭행을 3시간 동안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름과 성별 등 그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고.
미 대사관저 점거 사건 및 투옥
1989년 10월 13일 서울 주한미국대사관 점거 사건을 주도하였다. 대사관저를 점거한 후 노태우 대통령의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주한미국대사 추방 등을 요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사관저에 방화 시도 및 사제 폭탄을 투척하기도 했다. 대치하던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집시법 위반, 보안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현주건조물방화예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화염병사용등의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으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1990년 3월 28일)
복역으로 인해 병역에서 아예 제적되었다. 때문에 신체검사 급수도 없다고 한다.
이후 2년간 복역한 후 1991년 출소했다. 이후 1995년 8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완전히 사면복권되었다. 사면복권된 이듬해에 학원업을 접고 90년대 후반부터 여의도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 대사관저 점거 사건 주도는 그가 정치인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 중요한 경력으로 작용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케이스는 주로 87 민주화 항쟁 당시 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이거나 이후 출범한 전대협 의장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청래는 일개 과대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미 대사관저 점거 투옥 경력을 발판으로 다선의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갔다.
학원 운영
출소한지 몇개월 후인 1992년 정청래는 재수 시절 친구이자, 전대협의 모태가 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조직을 이끌었던 동지인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문과 출신의 양태회와 동업으로 학원을 창업했다. 학원 이름은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당시 대규모 시영아파트 단지가 있던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었다. 성산 시영아파트 단지는 당시 개발 중에 있던 노원구를 제외하면 당시 서울 강북 최대의 아파트 단지였다. 서울에서 매우 특이하게도 소평수 아파트로만 구성된 단지였기 때문에 현재도 단지가 노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초등학생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정청래는 공대 출신이었으나 수학이 아닌 영어를 가르쳤다. 미 대사관저를 점거 테러하며 미 대사 추방, 대통령의 미국 방문 반대 등을 요구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 한편 양태회는 불문과 출신이었으나 국어를 가르쳤다. 정청래는 교육 경험이 없었지만 재수 시절 경험과 문법 위주 강의로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양태회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과외나 학원에서 잔뼈가 굵었고, 나중에는 비상교육을 차려 사교육 재벌이 되는 등 사교육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원장들이 청소와 잡일까지 다해야했다고 말했지만 이런 시절은 개원 후 잠시였고, 이 학원은 곧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길잡이 학원은 불과 2년여 만에 직원이 100여 명일 정도의 엄청난 대형학원으로 성장했다. 당시 길잡이 학원은 마포 성산 지역에서 스파르타식으로 대단히 유명했다. 학원 이름이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동네 초등학생, 중학생 사이에서는 가면 애 잡는다고 애잡이 학원으로 더 많이 불렸다.
길잡이 학원은 90년대 중반 마포 성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1996년경 돌연 공동원장인 양태회와 정청래가 갈라서며 문을 닫게 되었다. 양태회는 학원을 접은 직후 비상교육을 창업했고, 한때 대표적인 사교육 재벌 중 한 명으로 불릴 만큼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정청래는 이후 정계에 투신하게 되었다.
정청래 정치 활동
정계 진출
2002년경 노사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인터넷상에서 '싸리비'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많이 써서 꽤 유명해졌다. 그 후 명계남, 문성근 등과 함께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준비하였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지역구 전환이 가능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무실을 얻어 상근자 30여 명과 함께 착실하게 준비하였다.
그 후에도 노무현을 돕기 위한 유권자 운동을 하였다. ‘열심히 욕한 당신, 이제 찍어라.’라는 구호를 걸고 ‘대학교 내 부재자 투표함 설치운동’으로 전환해 활동했다. 그 즈음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발생하자,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뱃지를 제작해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2004년 2월, 노무현 지지단체인 '국민의 힘'을 이끌던 당시, 문성근, 이상호 등과 함께 정동영의 지지세력인 '정사모'와 '국참본부'가 주축이 된 '개나리 봉사단'이란 조직에 단체원을 이끌고 들어가면서 정동영의 휘하로 들어간 것이 실질적인 정계 활동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이후 열린우리당 안에서 친노이면서 동시에 정동영계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친노의 실질적인 주류가 된 유시민계와 잦은 마찰을 빚게 되면서 친노 안에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후 2달 뒤인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엄청났던 '탄핵 역풍'에 힘입어 44.8%의 득표율을 얻어 한나라당의 강용석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05년 열린우리당 내 친노 조직 중 하나였던 '국민참여연대(국참연)' 조직에 앞장섰다. 국참연은 친노의 외곽조직을 정치세력화한 것으로 당시 명계남이 의장을 맡았으며, 정청래가 대변인을 맡았다. 정청래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당시 국참연에 공개 25명, 비공개 포함 31명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국참연은 당시 국참연 측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 직계였지만 친노의 신주류인 유시민계와 점차 관계가 악화되었다.
2004년 초선 의원 시절부터 정청래는 같은 당의 유시민을 공개적으로 여러차례 비난했다. 정청래는 "노사모 조직에 유시민이 나중에 들어와 플랫폼까지 다 뺐어갔다"고 말하며 아주 깊은 감정의 골을 드러 낸 바 있는데, 정청래가 공식적으로 유시민을 비판한 이유는 유시민이 당내 다른 중진인 정동영, 문희상, 김근태 등 호남계를 맹비난한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유시민은 같은 당의 정동영을 수차례 비난해왔고, 그밖에 문희상, 김근태도 비난하면서 여러 의원들로부터 당내 분열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청래의 유시민 비판은 점차 강도가 강해져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는 "유시민이 당내 대선 주자인 정동영의 당선을 고의로 방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시민을 "간신"이라 지칭하며 그를 출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동시에 "청와대가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고 못하고 있다"면서 '치사빤스',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옹졸한 행위'라고 청와대를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이때를 전후로 정청래가 사실상 친노와 결별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동시에 차기 대권주자인 정동영의 최측근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 하락으로 결국 열린우리당이 해체되었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기 얼마전 정청래는 정동영 등과 함께 통합민주당으로 갈아탔다. 이후 대선에서 정동영 캠프에서 홍보위원장 등을 맡으며 정동영의 당선을 위해 헌신했으나 정동영은 이명박에게 패해 낙선하고 말았다.
2007년 7월에는 열린우리당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법 재개정안과 로스쿨법 직권상정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민주노동당 의원 8명, 무소속 임종인 의원과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에게 밀려 37.9%의 득표로 낙선하였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4년 뒤 다시 민주당 지지세가 강력해졌던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김성동 후보와 무소속 강용석 후보를 상대로 54.5%의 득표율을 얻어 경쟁자들을 모두 꺾고 당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청래 의원은 당내에서 만들어진 특별위원회에도 자주 참여했다. 주로 권력형 비리와 관련된 부분인데 가장 최근에는 '국정원 댓글 진상조사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사건을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와 국정원 개혁 특위 위원, 정치 검찰 공작수사 대책 특별위원회 등에도 참여했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선거의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여 김한길 & 안철수 지도부가 어설픈 중도 스탠스를 취하다가 오히려 지지층의 대거 이탈만 불러왔던 것에 대해 본인 스스로 '당 대포'가 되어 당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당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겠다는 슬로건으로 지지층의 호응을 얻어 유승희 의원, 주승용 의원, 전병헌 의원 등과 함께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종합 득표에서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은 주승용 의원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는데 여론조사 분야에서는 전체 1위를 기록하였다.
종합 순위 1위 최고위원이었던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 탈당을 하자, 문재인 지도부에서는 문재인 대표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인물이 되기도 했다.
막말 논란으로 말썽이 많지만 19대 국회에선 의정활동 성적이 우수한 편이다. 정청래 의원이 19대 국회의원이 된 시점부터 2016년 2월 5일까지 만든 법안은 무려 170건에 달한다. 이 중에서 45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법안을 발의한 숫자로만 따지면 19대 국회에서 10위 안에 드는 상위권이다.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들의 숫자로만 따져도 상위 20위 안에 들 정도로 의정 활동 성적이 좋은 편이다. 수개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과 해직된 언론인들의 복직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 북한의 영유아들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북한 영유아 지원법'을 제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와 안전행정위원회 간사를 맡기도 했다. 국회 상임위 간사들은 실질적으로 상임위 운영을 책임지는데 보통 재선 의원부터 시작한다. 4년 동안 간사를 역임했다는 건 그만큼 의정 활동에 대한 당내 평가도 높다는 증거라고 전한다.
일련의 막말 논란들은 그의 영향력과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김종인 대표에 의해 20대 총선에서 컷오프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2016년 20대 총선 컷오프 이후
이후 2016년 1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원장 겸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되면서 선대위와 비대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문재인 대표 및 최고위원들이 함께 2선으로 물러나기로 결정하자 최고위원들 중 가장 먼저 사퇴 의사를 밝히며 2선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최근 영입된 인사의 멘토를 자칭해서 맡았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추미애 의원의 뒤를 이어서 연설을 끝마쳤다. 최종 연설시간은 11시간 40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의 10시간 18분 최장시간 기록을 경신해 최장시간 연설자가 되었는데, 이후 같은 당 원내대표였던 이종걸 의원이 이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광주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 경신할 생각은 없었는데 시계를 보지 않고 토론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넘어갔다며 은수미 의원에게 미안하게 되었다는 뜻을 전했다.
2016년 3월 5일에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더불어 콘서트 시즌 2 1부에서 말하길 "시간은 이종걸 원내대표가 더 길었는데, 속기록 분량은 자기가 더 많았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빠르게 말했음에도 그 시간을 버틴 게 대단할 정도인 것이다. 게다가 최초 2시간은 자료나 원고를 안 보고서 프리스타일로 테러방지법을 반대해야 하는 근거를 주장했다. 이런 것을 보면 보좌관 말대로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찬 사람'이 맞는 듯 하다.
2016년 3월 5일, 20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 하의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발표한 20대 총선 컷오프 1차 명단 5명에 포함되었다. 언론에서도 그동안 막말 논란으로 정청래가 컷오프 대상 0순위라 예측하면서도 동시에 여당의 공격수로의 입지 때문에 실제로 정청래가 컷오프 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정청래 본인은 가까스로 공천을 통과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컷오프되었다는 발표를 듣고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 어떤 모욕감과 수치심 이런 것들이 온몸을 둘러싸서 동아줄에 감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청래가 컷오프되자 민주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큰 후폭풍이 일었다. 정청래 지지자들은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정청래 공천배제 철회 시위를 벌였다. 주요 진보 언론들은 김종인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일보는 국회의원 한 사람의 컷오프가 이렇게 크게 화제가 된 적은 처음이라고 보도할 정도였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정청래 구제론이 일기도 했다. 추미애, 최재성, 원혜영, 박남춘, 진성준, 홍종학 의원 등이 정청래의 구제를 언급했다. 한편 손혜원 민주당 홍보위원장은 부산에서 열린 더민주 정책콘서트에서 “당에 청춘을 바친 사람이자 당을 위해 싸운 사람을 이렇게 내보내서는 안 된다. 무소속 출마를 해서라도 꼭 살아서 당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3월 12일 정청래는 여의도 당사를 방문하여 재심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3월 14일 윤후덕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정청래의 재심 신청은 기각했다. 이로서 정청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정청래가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할 것인지 여부가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향후 거취에 대한 언론의 수많은 질문에 정청래는 답하지 않고 있다가 고심 끝에 3월 말 마침내 당 잔류를 선언하면서 출마를 최종 포기했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에게 섭섭하다고 말했다.
정청래의 지역구인 마포을 지역구에는 손혜원 민주당 홍보위원장이 전략공천되었고,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컷오프 이후 방송 활동을 하고 있으며 판도라에 자주 출연한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을 때 언론 인터뷰에서 손 의원을 두둔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손혜원 의원이 투기 논란으로 차기 총선에 사실상 공천받지 못할 것이 기정사실화되자, 이에 정청래는 손혜원 의원에게 후원금 500만 원을 기부했다. 사실상 마포을 지역구를 다시 물려받기 위한 수순이었다. 결국 손 의원이 투기와 관련해 불구속 기소되자, 2019년 6월 19일 마포구 을 지역위원장에 임명됐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2020년 4월 21대 총선에 마포구 을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후보로 단수공천됐다. 그리고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며 미래통합당 김성동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며 21대 국회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당선 이후 국회사무처로 제일 먼저 달려가 금배지를 첫 번째로 수령했다.
21대 국회 첫 법안으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기로 했다.
페북 어느 유저가 사유지지만 도로인 곳에 불법 주차하는 차량을 견인 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댓글을 남겼고 검토 뒤 법안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불법주정차구역에 주차하는 차량들에 대해 더 강한 처벌을 내리는 법안을 준비했다. 역시 이번에도 댓글에서 시작된 법안이었다.
사설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로 인해 이송중이던 폐암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택시기사에 관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나오자, 이에 즉각 응급환자 이송 차량운행을 방해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7월에는 신문이 오보를 1면에 내면 1면에 정정보도를 내게 하는 법을 발의했다. 본인이 2008년 18대 총선 막바지에 겪은 일과 관련이 있는듯.
2021년 6월,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1년 12월 13일, "인간 이재명을 흐느끼며 읽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실력과 자격이 있다."라고 발표하며 오열하였다.
그러나 사찰 통행세 비난으로 참다 못한 불교계가 완전히 폭발하자 조응천을 필두로 한 이재명계 핵심 관계자들에게 탈당을 요구받는 등 정계 입문 이후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대선에 패배하면서 책임론에 휩싸이게 됐다.
2022년 3월 12일, "이명박 인수위때도 여가부, 통일부 폐지를 주장했었으나 실패했다. 여가부 폐지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사실상 반대를 위한 반대를 선언하며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 여가부 폐지를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2022년 3월 14일, 민주당 내에서 요즘 이재명의 평에 대해 누군가 묻자 "이재명 욕하면 맞아죽는 분위기. 저 사람은 이재명 싫어할 거 같은데 하는 사람이 더 소리를 높이니까."라고 전했다.
정청래 여담 일화 인간관계
586 운동권 흙수저가 판치는 민주당계 정당의 국회의원답지 않게 꽤 잘 사는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과는 약간 괴리감이 있다.
불교계를 탄압했다가 최근에는 사과를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바에 따르면 10남매 중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약사를 하고 있는 부인도 전남 강진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한다. 아들은 3명이 있다고 한다.
상술했던 바와 같이 과거에는 보습학원을 운영한 경력도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한 공천을 위해 지역구에서 시민들과 만날 때 오마이뉴스와의 현장 생중계에서 말했다.
인기 시사 팟캐스트 방송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출연해 본인의 삶을 이야기했다.
정봉주랑 친한 관계여서 그런지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 "이명박은 구속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명박 구속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를 복권시켜주자, 정청래는 이제 이명박이 감옥에 들어갈 차례라고 언급했다. 안민석 의원 또한 정청래와 같은 언급을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문재인 대표와 함께 단식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파파 이스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은 단식을 하면 초췌하게 되는데 자신은 오히려 얼굴에 기름이 돌고 표정이 화사해져서 단식을 안 한 것 같아 보였다고 한다.
팟캐스트에 자주 출연한다.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기도 하고 당의 공식 팟캐스트인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 2의 메인 패널로 발탁되었다. 게다가 개인 팟캐스트 '나는 정청래다'를 운영하기도 했다. 팟캐스트 이름은 자신의 책 이름과 같다. 이 책과 팟캐스트에서 정청래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본인의 주전공은 통일 문제와 문화콘텐츠 사업이며 비주류 세력의 탈당 및 분당으로 인해 여러 모로 상황이 안 좋은 더불어민주당의 현상을 감안했을 때 20대 총선에서 110석 이상만 얻는다면 성공이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지역구에서의 지지 기반이 아주 탄탄하다고 한다. 마포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동교동이 속해 있는 지역이었지만, 보수 지지세가 강하고 새누리당 계열 후보들이 많이 당선된 지역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소속 후보였던 강용석이 통합민주당 소속이자 당시 현역이었던 정청래를 꺾고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청래가 국회의원을 지내기 시작한 17대 국회부터 점점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졌고, 18대 총선 때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19대에서는 복귀에 성공했다. 그리고 20대 총선 때에는 정청래의 대타로 전략공천을 받은 손혜원이 당선됐다. 이는 정청래 개인의 인기에 의지한 영향이 크다. 한 예로 정청래 컷오프 이후로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오죽하면 지역구 주민들이 정청래의 공천 배제를 못 받아들이겠다면서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라고 정청래가 보일 때마다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고 할 정도였다고도 한다.
정청래의 지역구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마포구 을 지역의 보수적인 성향의 해병대 전우회 등이 주 지지층이라고 할 정도이며, 마포에서 학원 운영 경력이 있어서 그 제자들이 수만 명이고, 현재 제자들이 학부모들이 돼서 정청래 의원에게 원장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는 인근에 있는 항공대 비행장 때문에 지역구 내 아파트 소음 공해가 심각하자 국회에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을 소환해서 결국 비행장을 제주도로 이전시키고, 지역구 예산도 상당히 많이 따 왔다고 한다. 언론에서 항상 다뤄지는 막말 이미지와는 달리 지역구 주민 밀착형 정치와 공적 의정활동을 잘 병행해 왔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평가인 듯 하다. 게다가 2020년 6월 22일 21대 총선에서 당선직후 서울 경전철 서부선을 본인 지역구로 끌어오는 데에도 최종적으로 확정을 지어 2023년부터 착공에 들어간다. 보통 이러한 교통사업을 지역구에 유치시키면 재선에 유리한 걸 생각하면, 지역구 사업만큼은 잘따오는 스타일인 듯. 게다가 부천과 서울 강서구를 지나가는 서부광역철도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만약 서울 경전철 서부선에 이어 이 서부광역철도도 유치확정에 매듭을 짓는다면 지역구 사업만큼은 그야말로 잭팟이 제대로 터진 셈.
유기홍과 당선된 선수(17,19,21)가 완벽하게 동일하다. 다만 20대의 경우 정청래는 낙천, 유기홍은 본선에 올랐으나 낙선.
자신과 반대로 자기 이익에 더 맞는 것 같다는 이유로 국민의당으로 넘어간 이언주에게 원조 철새 도래지 드립을 날린 인물이다. 이언주가 부산으로 낙향할 때 우상호가 날렸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정청래가 먼저다.
흔히 장로회 신자로 알려져 있는데 장로회가 아닌 나사렛성결회 상암동교회 신자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도 자신이 상암동교회 권사임을 밝힌 바 있다. 참고로 성결교회도 감리회와 마찬가지로 남녀 구별없이 권사와 장로 직분을 받을 수 있다.
색깔론을 풍자하기 위해 왼손에 파를 들고 왼손으로 파를 들었으니 좌파냐는 사진을 올린 바 있다. 여러모로 그의 아재틱한 유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7월 8일 국회 문화콘텐츠포럼 창립총회 관련 행사로 임요환과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임요환은 핸디캡으로 한손을 쓰지 않고 했음에도 핵 두방을 날리며 핵 관광을 당했다.
본인이 밝히기로는 20대 총선 컷오프 이후 방송 출연이 많아졌는데, 출연료 수익이 국회의원때 보다 더 많았었다고 밝혔다.
20대 총선 당시 1차에서 공천이 됐었으나 속히 말해 빠꾸를 먹었고, 이후 문재인 당시 전 대표가 전화가 와서 재심 신청을 하라고 언급을 했고, 재심 신청을 했었으나 재심 신청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역구 인기의 영향으로 당시 정당 지지율이 4%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 전국적으로 유세를 다녔었는데, 당에서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19대 국회의원일 때 법안 발의에 168건, 통과된게 56건이라고 한다.
17대 국회의원 당시, 문화방송을 상암에 이전하게 한 장본인이다.'MBC방송국 마포유치 주민추진위원회’(가칭) 설립 준비모임 당시 이전할때의 사장은 최문순 현 강원도지사였으며, 원래는 상암이 아닌 다른 곳에 이전을 할려고 했고, 문화방송이 상암으로 오게 되자 JTBC나 YTN도 상암에 이전을 하게되었다.
MBTI는 ENFP이다. 본인은 엔프티(ENPT)라고 알고있다.
묘하게 홍금보와 외모가 닮았다.
정청래 재산
2021년 3월 기준으로 10억 8740만 5천원을 신고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2억 1천만원 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정청래 선거 이력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45,405 (44.77%)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30,050 (37.88%)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58,163 (54.48%) 당선 (1위)
재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을
69,336 (53.75%) 당선 (1위)
3선
더 많은 인물 정보는 아래 인물이야기 카테고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