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인, 변호사이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2020년 이후로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인 문병호 나이 학력 이력 고향 프로필 (국회의원 역임)
문병호
文炳浩 | Moon Byung-ho
출생
1959년 12월 27일 (62세)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연소마을
본관
남평 문씨
가족
배우자 민유숙, 슬하 1녀
학력
광주학강초등학교 (졸업)
숭의중학교 (졸업)
광주인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수료)
병역
면제(수핵탈출증)
종교
개신교(감리교)
약력
제28회 사법시험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인천 부평구 갑 / 열린우리당 )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민주당 인천시당위원장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제19대 국회의원(인천 부평구 갑 / 민주통합당 )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비서실장
새정치민주연합 전략홍보본부장
국민의당 인천시당위원장
국민의당 수석최고위원
바른미래당 부평구 갑 지역위원장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바른미래당 인천시당위원장
문병호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연소마을에서 태어났다. 1978년 광주인성고등학교(2회)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군사정권하에서 학생운동 지하서클 활동을 하였다. 1981년 군부독재정권이 조작한 '반파쇼 학우 투쟁선언 사건'(무림사건)으로 체포됐고 강제징집 당했으나 학생운동 과정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심각한 허리부상을 얻어 훈련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수핵탈출증) 판정을 받았고 퇴소조치 되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1989년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변호사 시절
보통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전담으로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여성 인권 신장에 노력했던 편.
여성실업자 구직등록 운동 전개, 여성노동자 권익 보호 `평등의 전화', '인천여성노동자회' 무료 법률상담/취업알선] 등 매년 여성의 인권이 합리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노력을 가하였다. 평등의 전화는 직장여성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 주었다. 임금체불과 해고,차별정년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 직장내 성폭력 추방과 평등한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활동을 하였다. 연간 5백건이상 상담이 들어왔지만 해결률은 80%에 육박하였다.
1999년 벌어진 옷로비 사건의 특별수사관이기도 했다.
2001년 1월 국민방송 설립을 위한 시민모임을 출범시켰다.
정계 입문 이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갑 지역구에 출마, 탄핵 역풍에 힘입어 당선됐다.
2006년 여당 제5정조위원장 자격으로 의약 분업이 부작용없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아닌 의회 차원의 평가를 시행하도록 했다. 시행 후 5년이 되도록 의사 협회와 약사회의 알력으로 갈등이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조진형에게 지역구를 내줬으나, 2012년 19대 총선에서 재선돼 원내부대표까지 지낸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댓글 조작 제보를 받고 국정원 여직원이 머무르는 오피스텔 호실 앞에 진을 쳤었던 민주당 의원중 한명이다.
2013년 12월 31일 국정원 개혁안 가결을 주도했다. 국회 국정원개혁특위를 통해 국정원 개혁을 위한 입법에 합의하고 마무리했다. 오전 11시께 열린 전체회의에서 여야는 국정원 정보관이 정당, 언론사, 정부기관을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해온 데 대해 '상시 출입 금지'를 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사이버 심리전 활동 처벌문제도 국정원법 '정치관여금지 조항'에 포함해 명문화하기로 했고, 7년이하의 징역을 부과하도록 했다. 공무원 정치관여죄에 대한 공소시효도 10년으로 통일했다.
2015년 12월 17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2016년 2월 23일에 시작된 이른바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의 두 번째 주자로 나섰다. 문병호 의원이 발언을 시작한 것은 2016년 2월 24일 오전 12시 40분 경. 그리고 그날 2시 30분, 약 1시간 50분의 발언을 마쳤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부평구 갑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정유섭 후보를 상대로 불과 26표 차이로 낙선했다. 재검표 결과, 표차는 23표 차이로 줄어들었으나 최종적으로 낙선은 확정이었다.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서 2위를 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8년 2월,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찬성하여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에 합류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바른미래당의 인천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었다. 당내 경쟁자였던 이학재 의원과 정대유 전 차장이 모두 불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 선거 결과 3위로 낙선했다. 득표수가 지난 총선 때 지역구에서 얻은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함정.
친안계로 분류되었으나, 2018년 6월 안철수가 추진하는 김문수와의 단일화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때문에 문병호마저 안철수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이학재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후 공석이 된 바른미래당 인천시당위원장을 맡았으며, 2019년 5월에는 손학규 대표에 의하여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2019년 10월 27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2020년 1월 29일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이 구성한 보수통합 논의 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에 합류했다. 2020년 2월 17일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미래통합당 소속이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평구 갑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당내 조정을 거쳐 서울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다. 선거 결과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후보에게 18%p 차이로 패하여 낙선했다.
이후 당협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2021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섰다. 영등포 지역이 서울지역 전체 득표율과 상관관계가 비슷했다며, 영등포에서 승리하면 서울시장을 얻을 수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영등포에서도 오세훈 후보가 승리, 25개 구에서 전승 달성에 성공했다. 다만, 본인은 벌써부터 원래 연고가 있던 2022년 지선 인천광역시장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수정당 우위가 지속된다면 굳이 인천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영등포에 남아 국회에 등원하는 걸 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대선에서도 영등포는 윤석열이 이긴게 호재다. 이와는 별도로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군에 포함되어 있다.
문병호 여담 일화
부인은 대학 후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여흥 민씨 민정근(閔正根)의 딸] 민유숙 대법관이다.
문병호 선거 이력
1991
지방선거
인천시의회 6
무소속
낙선 (3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부평 갑
48,617 (40.79%)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부평 갑
30,322 (33.96%)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부평 갑
54,889 (50.52%)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인천 부평 갑
42,248 (34.19%) 낙선 (2위)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광역시장
54,054 (4.06%) 낙선 (3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갑
49,292 (38.28%)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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