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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스포츠 / / 2022. 4. 10. 23:08

태권도 이대훈 결혼 와이프 아내 안유신 프로필


대한민국의 前 태권도 선수다. 5세 때부터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형과 함께 태권도를 배웠고, 한성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대훈

李大勳 | Lee Daehoon

 

출생

1992년 2월 5일 (30세)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국적

대한민국

 

 

학력

성산초등학교 (전학)

서울중계초등학교 (졸업)

한성중학교 (졸업)

한성고등학교 (졸업)

용인대학교 (태권도경기지도학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스포츠레저학 / 석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과정)

 

종목

태권도

체급

플라이급(-58kg)

밴텀급(-63kg)

페더급(68kg)

 

소속

한국가스공사 태권도단(2014년~2017년)

대전광역시 체육회(2018년~2021년)

 

 

신체

183cm, 70kg, AB형

 

가족

배우자 안유신(1993년 11월 15일생)

아들 이예찬(2018년 11월 27일생)

 


태권도 이대훈 결혼 와이프 아내 안유신 프로필

 

처음에는 이대훈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라저스트 전자호구에 특화된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촌에서 미트를 잡아보고 알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스피드로, 똑같은 힘으로, 똑같은 자세로 모든 훈련을 소화하는 선수는 이대훈이 유일했다. 오죽하면 훈련량으로 이대훈을 한번쯤 쓰러지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대훈의 사각미트를 잡은 날이면 가슴팍에 멍이 박혔다. 이대훈의 노력과 성실함에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前 국가대표 강화훈련단 박정우 코치(現 국가대표 후보선수단 감독)
태권도계의 박지성이 되고 싶어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인터뷰

 

 

이대훈 선수 경력 이력

어린 시절

2010년

같은 재단의 한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만 18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0년 11월 19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63kg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 병역 혜택 대상자가 되었다.

 

2011년

2011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2년

2012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여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상황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2012 런던 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태권도 최연소 그랜드 슬램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문제는 올림픽에 이대훈의 주 체급인 -63kg급이 없고, 남자부 기준으로 -58kg, -68kg, -80kg, +80kg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이대훈은 -58kg급을 선택했지만 운동선수의 체중이 5kg 전후로 변하기만 해도 본인이 기량에 큰 지장이 오는 경우가 많은 점을 보았을 때, 이대훈이 런던 올림픽에서 겪을 고난의 행군은 예견되어 있었다. 원래도 키에 비해 마른 체형이었는데 거기서 극도로 체중을 줄여버리면 몸은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몸이 무거워진다. 근 손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최악의 몸상태로 출전한 런던올림픽에서, 16강부터 4강까지 내리 연장전을 치르며 겨우겨우 올라와 체력적으로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스페인의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와의 결승에서 17:8로 완패했다.

 

 

2013년

2013 세계선수권에서 본인의 주 체급인 -63kg급에 출전해 8강에서 다시 만난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에게 21:8로 압승을 거두었는데 스스로도 통쾌해했던 듯하다. 이 대회에서 설욕전을 펼치길 원하는 주위 분위기에, '안 그래도 되는데..' 하며 다시 마주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결승을 앞두고 대기 중인 이대훈에게 준결승에서 보니야가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했고 설욕에 제대로 성공했다.

 

2014년

이후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던 이대훈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대중에게 다시 모습을 보였다. 역시 본인의 주 체급인 -63kg급에 출전해 전 경기 점수차 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런던 때 보였던 악플러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리우에서는 -68kg급으로 체급을 올릴 것이라 공언하며 런던 때 비판받았던 근력적인 요소를 중점으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갔다.

 

2015년

WTF 태권도에서 랭킹제를 도입하면서 월드 그랑프리를 통해 출전 체급 세계랭킹 6위 이상선수는 올림픽 예선 프리패스권을 얻도록 바뀌었는데 당시 이대훈은 -68kg급 1위였다.

 

2016년

세계 랭킹이 2위로 떨어졌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레드불레틴> 2016년 5월호 인터뷰에서 "리우올림픽이 자신의 태권도 경력에서 마지막 대회는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고 성숙되고 여유로운 자세를 내비쳤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16강에서 1회전 종료 후 상대에게 기권을 받는 등 압도적인 기량으로 4년 전과는 비교가 안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대훈 본인이 경쟁상대로 뽑았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를 8강에서 만나 8:11로 패배해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나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결정전에 나선 이대훈은 세계 1위 자우아드 아찹(벨기에)을 꺾고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여담으로 이 당시 이대훈은 판정 논란이 있었음에도 경기 종료 직후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게 박수를 쳐 주고 손을 들어올려주며 승리를 축하해줬고, 이후 이대훈에게 승리했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는 결국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요르단 역사상 최초의 메달이기도 해서 아부가우시 본인과 요르단 모두에게 겹경사가 된 셈이며 더불어 태권도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 이 경기 이후 이대훈 본인은 인터뷰에서 "이기면 기쁨보다는 상대 슬픔을 더 달래주고, 또 진다면 제 슬픔보다 상대의 기쁨을 더 높게 만들어주기로 저 스스로와 약속했었다"라고 상대 선수를 축하해준 이유를 밝혔다. 태권도의 재미 논란에 대해서도 "올림픽(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저급 대회에서도)에서는 실력 좋은 선수들끼리 대결하다보니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적극적인 플레이를 통해 태권도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올림픽의 활약에 힘입어 2016년 9월 4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에이핑크의 윤보미와 함께 공동 호스트로 출연하였다. 방송 출연, 특히 대형 예능이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윤보미와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주었으며 전반 막바지 무렵에는 방송에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채팅창의 글도 간간이 읽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후반 모두 1위를 수성하며 최종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TV 방송은 9월 10일, 9월 17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되었다. 올림픽에 출전할 당시에는 -68kg급에서 2위였으나 올림픽 이후 순위가 갱신되면서 다시 랭킹1위에 올랐다.

 

2017년

2017 세계선수권에서 1위를 하여, 이 대회 4회 출전, 3회 우승(2011, 2013, 2017)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이니만큼 응원의 힘이 컸다고 한다. 대폭 개정 된 규칙에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코트디부아르에서 열린 아비장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위를 했다.

 

2018년

처음으로 출전한 것이자 대전시체육회로의 이적 이후 첫 대회였던 세계태권도연맹 주관 '월드 태권도 그랜드슬램 챔피언스'에서 우승해 상금 7만불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이 대회 결승에서, 한국의 김석배를 이기고 올라온 중국의 자오슈아이(리우 올림픽 -58kg급 금메달리스트)를 53:14로 물리쳤다. 이 덕분에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월드 그랑프리 1차 대회(모스크바), 월드 그랜드슬램 챔피언스에서 아부가우시를 눌렀다. 2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아시안 게임 3연패 도전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8년 8월 23일에 결승에 오르기 전까지 다채로운 공격을 선보였고 20점 이상의 점수 차로 여유있게 승리했다. 상대방이 맞다가 지쳐 버리는 상황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결승전에서는 신예인 이란의 바크시칼호리를 만났는데 예상 외로 상대의 힘에 밀리며 2라운드 중반까지 끌려갔다. 그러나 2라운드 중반 이후 침착하게 주먹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고, 지친 상대에게 압도적인 체력을 과시하며 맹공을 퍼부은 끝에 얼굴 공격으로 3점을 따내며 역전승을 거뒀다. 결과는 12:10. 경기 여담으로 경기가 끝난 후 역전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헤드기어를 벗어던지고 주저앉아 있는 바크시칼호리에게 먼저 다가가 잘했다며 토닥여주는 이대훈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에 리우에서의 이대훈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기나 지나 상대 선수를 존중하는 모습이 멋지다.'며 경기 운영 뿐 아니라 선수 개인의 소양이나 품행을 비롯, 모든 것들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이로써 -68kg급 금메달을 획득하며 3연패에 성공했다. 이는 태권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3연패이며 동시에 두 체급 석권에도 성공했다.

메달 획득 이후 8월 24일 오전에 코리아하우스에서 진행 된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경기 규칙이 점점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게 유리해지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 선수들도 그런 경향이 짙은데, 경기를 하다보면 적극적인 플레이가 오히려 독이 되는 타입의 상대 선수를 만나게 되는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런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 충분히 재미 없어 할 수 있지만, 이기기 위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며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는 동시에 선수 입장에서 계속되는 규칙 개정을 바라보는 견해, 그리고 본인이 목표로 하는 '재미있는 태권도'를 위한 소신을 밝히는 등 오랜 선수생활에서 나오는 관록을 볼 수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이후

아시안 게임 3연패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9월 19일, 대만 타오위안에서 열린 2018 월드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하였다. 브라질 선수 에디발 폰테스를 준결승 상대로 만났는데, 요르단의 아흐마드 아부가우쉬, 이란의 아볼파즐 야고비조위바리를 기세 좋게 꺾고 올라온 터라 만만히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훈은 이에 개의치 않고 평소와 같이 공격을 퍼부으며 상대를 압박하였고 29:8, 큰 점수 차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2018 아시안게임 남자 –63kg급 금메달리스트 미르하셈 호세이니(이란)를 13:9로 꺾었다. 2회전까지는 4:4 동점, 팽팽한 접전이 펼쳐졌지만 3회전에서의 몸통 공격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괸중들의 반응. 결승 이전부터 이대훈의 입장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던 대만의 어린 학생들은, 결승에 다다라서도 이대훈에게 응원을 표했다. 호세이니의 감점으로 이대훈의 점수가 올라가거나 이대훈의 공격이 적중할 때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는 한편, 경고로 인한 이대훈의 실점, 호세이니의 득점 상황에서는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 열 손가락 모두를 펴보였는데, 타오위안 대회로 그랑프리에서 열 번째 우승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대회에서만 개인 통산 열 번째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 그는 '열 번째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랑프리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내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도 있다. 한 대회, 한 대회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임하겠다.'는 말로 대회 첫째 날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제 99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태권도 일반부 -68kg급 경기에, 대전 대표로 출전하였으나 울산 대표로 나선 신동윤(삼성에스원)을 8강에서 만나,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3회전에서 역전을 허용으나 종료 직전, 주심이 소극적 행위를 이유로 상대에게 감점을 선언해 5대 5, 동점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 측에서 감점 부분에 대해 영상판독을 신청하였고 판독 결과, 경기 시간이 초과된 상황에서 감점이 부과된 것으로 인정되어 최종 5대 4의 점수로 석패 하였고, 그를 꺾고 결승에 오른 신동윤이 대회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앞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그였던만큼 2018년 전국체육대회 결과는 아쉬움을 낳았다. 그러나 본인은 이날의 패배에 대해 담담한 반응을 보였고 연장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판독 결과에 대해서도 오히려 자신에게도 더 잘 된 결과라는 소회를 밝혔다.

10월 15일, 체육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제56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 및 2018년 체육발전유공자 포장 전수식에서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받았다.

그랑프리 4차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여 그랑프리 연승 가도를 이어갔다. 점수 차 승으로 올라온 준결승에서 헤드 기어 센서 문제로 경기 중 여러 차례 점검 및 정비를 받아야 했는데 이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 앞선 경기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유독 준결승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는데 -68kg급 경기 직후 이어진 다른 체급의 경기에서도 선수들이 여러 번 센서 점검을 다시 받아야 했다. 센서로 인해 흐름이 과도하게 끊기기도 했지만 무난히 결승에 진출. 결승 상대는 3차 대회 결승에서도 만난 바 있는, 이란의 호세이니. 시작부터 계속 우세한 상황에 놓여 있던 이대훈은 2회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다. 웬만해선 내놓고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이대훈이지만 통증이 심한지 아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가 속행된 것도 잠시, 이대훈에 이어 호세이니까지 무릎 부상을 입었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의료진이 등장, 호세이니 무릎에 파스를 뿌렸다. 이때 이대훈은 선 상태로 허리를 숙여 자신의 무릎을 매만지며 호세이니의 처치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쪽도 무릎이 성치 않긴 마찬가지. 코치에게로 걸음을 옮길 때 절뚝이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는데, 그 그림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부상 상황과 무척 흡사했다. 그렇게 경기는 3회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3회전에서 또다시 상대가 주저 앉는 상황이 발생. 2회전에서의 무릎 부상이 심해졌는지 이번엔 의료진이 부위 근처에 손을 가져다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했다. 누워 처치를 받던 호세이니는 심한 통증에 얼굴을 감싼 채 소리쳤고 상황이 그쯤에 이르자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기권승이 선언된 직후, 이대훈은 상대 진영으로 가서 한쪽에 놓인 헤드기어를 집어 들었고 의료진의 부축을 받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호세이니를 뒤에서 다독였다. 상대 코치와 인사를 나누고도 호세이니가 빠져 나갈 때까지 지켜 보았으며,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란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몇 번 하며 자신도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때 관중들은 이대훈을 향해 박수쳤다. 경기 종료 직후 치뤄진 시상식에서 호세이니는 관계자의 부축을 받고 입장하였는데 이때 이대훈은, 시상대에 오르는 호세이니를 유심히 살폈다. 곁눈질로 그의 상태를 꾸준히 살피는 것은 물론, 시상대에서 내려온 후 이동할 때에도 호세이니가 잘 오고 있는지 고개를 뒤로 돌리고 계속 확인했다. 경기가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빡빡하게 이어지고 있는 대회 일정에 대해 '걱정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선수로써 이렇게 많은 시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한 시합, 한 시합 최선을 다할 뿐이고 지든 이기든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은 응원을 해주시기에 더 힘내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어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것을 다짐했다.

11월 24일, 아랍에미레이트(UAE) 푸자이라에서 열린 2018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에서 승리하여 4년 연속 대회 우승의 역사를 썼다. 이로써 그랑프리 통산 금메달은 12개로 늘어났다. 결승전에서는 한국 선수 김석배를 상대로 맞이하여 65:20의 큰 점수로 눌렀다. 뿐만 아니라 세계태권도 연맹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선수 남자 부문에도 뽑혀 선수로써 더할 나위 없이 큰 영예를 안았다.

2018년 12월 15일, 중국 우시에서 열린 그랜드슬램 챔피언스 준결승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을 허용하였다. 이튿날인 16일, 동메달을 획득하며 2018년 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2018년에 출전한 모든 국제 경기에서 입상하였으며 그랜드슬램 챔피언스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우승, 열리는 대회마다 기록을 달성하였다는 점에서 선수로써 그 어떤 해보다 의미 있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2019년

2019년 1월 2일, 라디오 스타 598회 레츠 氣릿 편에 출연하였다. 박세리, 이봉주, 이종범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유일한 현역 선수였으며 승패나 연승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멘탈왕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보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연유에 대해, '(특별한 사유 때문이라기 보다) 그냥 지는 것 같다'고 덤덤히 말하였고 '리빙 레전드'라는 평가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세계 2위와 랭킹 점수 차가 많이 나는 세계 1위라는 사실을 덧붙여 강조해 웃음을 더했다. 이날 방송에서 연금점수를 이미 다 채워 최근 우승했던 경기들에 대한 포상은 일시불로 받았다는 것과 오는 5월에 결혼할 예정이라는 입장 등을 밝히었다.

5월 25일, 결혼식을 올려 품절남 대열에 합류하였다. 10월 8일에는 전국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68kg급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지난해 우승자였던 울산의 신동윤을 예선에서 꺾었고 더욱이 해당 대회가 100회를 맞는 해에 정상을 탈환한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갖기 충분했다. 이는 도쿄올림픽 관련, 이대훈에 대한 언론의 기대감이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올림픽이 2021년으로 연기되었고 SBS 집사부일체 5월 3일 방영분에 출연했다. 이후, JTBC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 6월 28일 방영분에 일일 용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7월 5일 방영분에서 정식 입단하였으며 합류 이후 맹활약하여 어쩌다 FC는 이대훈 입단 전후로 나뉜다는 대내외적 평가를 이끌어 냈다. 축구 이외의 다른 종목에도 두루 소질을 보였을 뿐 아니라 훈련을 소화함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이대훈은 어떤 종목을 해도 잘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마지막회에서 최다득점상을 수상하며, 올림픽이 있을 2021년을 맞이하였다.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 -68kg급 16강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라시토프를 만나 1, 2회전 내내 앞서갔으나, 2회전과 3회전 사이 상대의 이의제기도 없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비디오 판독에 들어감에 따라 경기가 지연되며 이대훈의 상승 흐름이 끊겼고, 휴식을 통해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여 기세가 팍팍 오른 라시토프에게 연거푸 점수를 내줘 3회전 후반 19-19로 동점이 되었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허리를 얻어맞으며 19-21로 충격의 대역전패라는 아쉬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라시토프가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 이대훈의 올림픽 도전은 이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었으나 다행히 라시토프가 결승에 진출하여 이대훈은 패자부활전을 통하여 동메달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는 체급별로 16명이 출전하지만 이번 대회에는 난민팀 선수 3명이 참가하여 남자 68kg급을 포함한 세 체급은 17명이 메달을 겨루게 됐다. 다시 말해, 2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세 명(포파나, 호세이니, 자오슈아이)을 이겨야 동메달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인데 1회전에서 이대훈은, 32강에서 라시토프에게 패배한 포파나(말리)를 9-11로 꺾고 2회전에 진출했다. 이어진 2회전에서는 8강전에서 탈락한 이란의 호세이니를 상대로 21-30으로 꺾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자오슈아이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자오슈아이에게 17-15로 패배하면서 메달 없이 도전을 마쳤다. 한편 16강전 상대였던 라시토프는 기어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즉, 올림픽에서 이대훈을 이긴 선수는 자오슈아이를 제외하고 모두 금메달을 획득한 셈이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서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평가

공격과 방어가 모두 좋은 선수다. 초등부 시절에는 전형적인 오른발잡이 스타일이었으나 중등부로 오면서 양발을 고루 능하게 쓸 수 있어야 함을 자각해 후천적 양발잡이가 된다. 주로 왼발잡이 자세인 사우스포로 서서 오른발로 견제하고 왼발로 받아차는 식이다. 주특기는 오른발의 다채로운 컨트롤을 이용한 견제 능력이다. 타고난 고관절 유연성을 이용해 예측하기 힘든 변칙적인 발차기로 차분히 점수를 쌓아간다. 몸통 회전발차기 득점이 3점으로 개정 된 2015년 이후로 왼발 연습에 중점을 둔 것인지 왼발 돌려차기와 뒤차기를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압도적인 실력과 훈훈한 미모로 인해 이대훈이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라는 점이 잘 부각 되지 않는 면이 있다. 2분 3회전 내내 발차기와 풋워크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 상대 선수가 맞다가 지치는 흠좀무한 상황이 되어도 본인은 끝까지 마이페이스로 공격한다. 또한 초반에 말리더라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역전하는 경기가 매우 많아서 본인도 체력의 중요함을 알기에 더 열심히 훈련했다고 한다.

 

 

이대훈 대회 수상 기록 이력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58kg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68k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1 경주

-63kg

 

금메달

2013 푸에블라

-63kg

 

금메달

2017 무주

-68kg

 

동메달

2019 맨체스터

-68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

-63kg

 

금메달

2014 인천

-63kg

 

금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68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2 호치민

-58kg

 

금메달

2014 타슈켄트

-63kg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15 멕시코시티

-68kg

 

금메달

2016 바쿠

-68kg

 

금메달

2017 아비장

-68kg

 

금메달

2018 푸자이라

-68kg

 

금메달

2019 모스크바

-68kg

 

그랜드슬램 챔피언스

금메달

2017 우시

-68kg

 

금메달

2019 우시

-68kg

 

동메달

2018 우시

-68kg

 

 

이대훈 여담 일화 인간관계 인터뷰 

태권도 선수 최초로 팬카페가 개설된 선수며 다음과 네이버로 대표되는 양대 검색엔진 모두에 팬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이루어진 선수단 결단식에서 아나운서 배성재가 팬카페 두 곳의 이름을 나열하자 쑥스러워 했다. 태권도 선수 최초이자 유일의 팬카페 보유자였으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김태훈 선수 팬카페가 개설되어 유일하지 않게 되었다.

이긴 경기는 충격적인 점수 차를 만들어 내고, 진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라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태권도 팬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편이다. 어지간한 태권도 경기 영상에는 이대훈을 언급하는 댓글을 볼 수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답변이 화제였다.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졌다. 체중 감량 때문도 아니고, 부러진 코뼈 때문도 아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이유도 대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고, 곤잘레스에게 졌을 뿐이다. 리우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본 문서에 상술되어 있는 내용과 인터뷰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차분하고 반듯하며 단단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본인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장난도 치고 밝았지만 크면서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고 하며 자신 또한 본인의 성격을 차분하다고 표현한다. 선수의 사고관이나 내적 단단함에 있어서는 다음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가장 좋다. 모든 인터뷰에서 그의 기초성향을 느낄 수 있지만, 아래의 것에서 가장 잘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것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강 탈락 후에 이뤄진 인터뷰다.

태권도 후원 발전기금 전달 콘텐츠로 태권도 신문에서 <미션 임파서블 위드 본 브릿지>를 진행 중이다. 이대훈이 중ㆍ고등학교 태권도부를 찾아가 미션에 성공하면 발전기금을 전달하는 형식. 해당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대훈을 동경하는 유소년들, 미션 성공에 열을 쏟는 아이들을 귀엽게 여기는 이대훈의 모습 등 의외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SBS 영재발굴단에 2017년, 2018년에 걸쳐 두 번 출연했다. 방송의 주인공은 영재들이므로 출연 분량 자체는 3~4분 남짓이지만 매번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3회에서는 강원도 태권도 유망주 손효리 양의 학교로 찾아가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141회에는 태권 소년 오만재 군을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이때 전한 말들은 상당한 울림을 남겼다.

세계태권도연맹 갈라어워즈에서 2014년, 2015년 연달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나 2016년에는 아흐마드 아부가우쉬가 받으면서 3연속 수상은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이례적으로 3번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받게 되었는데,시상식에서 영어로 수상 소감을 얘기해 화제가 되었다. 외국선수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틈틈이 공부한 영어가 빛을 발한 셈이다.

상술했듯이 화천군에서 태어나 유치원 때 서울로 이사갔음에도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출생지가 서울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 이후 열린 전국체전에는 강원도 대표로 출전한 것으로 보아 출생지는 화천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5월 16일에 진행된 일간스포츠 인터뷰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만큼, 보기와 다르게 턱걸이를 잘한다고 밝혔다. 본인 말에 따르면 대개 사람들은, 태권도 종목은 상체 단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다보니 그런 편견들을 깨기 위해 턱걸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턱걸이를 한 개도 제대로 못했어요. 훈련 중 잠깐 쉬는 시간에도 10초씩 매달렸어요. 제가 어딘가를 가면 동료들이 '또 철봉 하러 가냐'고 농담할 정도로 철봉과 씨름했어요.''' 3개월쯤 되었을 때 정확한 자세로 5개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10개씩 5세트가 거뜬하다 밝히었다.

평소 대표팀에서 근력운동을 할 때 상체의 경우 머신을 쓰기보다 맨몸운동을 선호하지만 턱걸이와 딥스 같은 경우 자기 체중만으로는 근성장에 필요한 만큼 부하가 걸리지 않아 20~30kg 원판을 매고 한다고 한다.

선수 생활에 지장이 갈 만큼의 큰 부상과는 거리가 먼 이대훈이지만 코 부위 부상 전력이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결승 1회전에서 코뼈 부상을 입어 경기 중 치료하였으며, 2013년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멘도자 선수의 발차기에 코피가 났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3회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으며 2018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발목 부위 부상이 있기도 했다. 특히 은퇴 후까지 남아있는 후유증으로 '휘어있는 손가락'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오른손 약지와 소지가 휘어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손으로 상대 발차기를 막다가 꺾인 손가락이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부상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운동선수에게 자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부상이기에 이대훈 역시 부상을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단기에 극복 가능한 부상들이었고 이대훈 역시도 자신의 오랜 선수 생활의 비결로 큰 부상이 없었던 것을 꼽았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국가대표 일진 자리를 유지했었다. 태권도 선수가 많은 한국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 태권도 남자부 사상 최초로 고교생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때, 각종 언론은 신예 이대훈의 출현을 두고 돌풍이라 표현하였는데, 태권도계 내부에서도 이후 행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깔끔하게 불식시킨 것은 물론 매 시즌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내고 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활동했던 -54kg급 김태훈과는 룸메이트 사이로, 닮은 점이 많은 친한 후배 사이다. -74kg급 김훈 선수와 셋이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로 유명하다. 세 명 다 이름에 '훈'이 들어가 '트리플 훈', '훈 형제' 등으로 불린다.

-74kg~-68kg에서 활동했던 김훈과 ~63kg~-58kg에서 활동했던 이대훈이 공교롭게도 둘 다 -68kg으로 참가한 2015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결승전 상대로 붙었던 적이 있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경기였다고. 결과적으로 연장전에서 김훈에게 패하였는데 김훈의 경우, 이 대회가 생애 첫 우승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열린 영국 맨체스터 그랑프리 파이널 준결승에서 김훈을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했다. 이대훈의 경우 영국에서 있었던 시합 때마다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이때 그 징크스를 떨쳐냈다. 이때를 기준으로 김훈과는 총 네 번 맞붙어 두 번 승리했고, 진 것과 이긴 것 모두 연장전에서의 1점 차였다. 그만큼 그에게 김훈은 어려운 상대라 이길지, 질지 스스로도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2017년 아비장 월드 그랑프리 출전 시 본인 띠를 미지참하여 함께 출전한 -58kg급 김태훈 선수의 띠를 매고 참가했다.

수려한 외모로 유명해진 케이스인데 본인은 TV를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방송에서 외모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권도 선수로 주목받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외모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잘생겼다는 말을 메달의 후광효과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메달리스트라 소개하면, 사람들이 그제야 갑자기 '어우 너무 잘 생기셨어요~'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에게 호감 표시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순진무구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는데, 현재까지도 외모 칭찬에 대해서는 적응이 안 되는 듯하다. 그때마다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내심 싫지는 않은 듯하다. 여담으로 이상형은 배울 점이 많은 여자라고 한다. 이국주의 영스트리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름답고 예쁘면 좋지만, 외적인 것보다는 성격이 자신과 잘 맞고 배울 점이 많으며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원한다고. 연예인 중에서는 이상형이 누구냐는 질문에, 연예인은 외적인 것 외에 내적으로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이상형으로 꼽기 어려워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직후 인터뷰에서 말하길 태권도 외에 한가한 시간에는 주로 영화를 보러 가곤 했는데 고등학교 때까진 친구들과 다니다가 어른이 되고부터는 친구들로부터 남자들끼리 무슨 영화냐는 소리에 점점 횟수가 줄었다며 영어 공부를 하거나 기타를 친다고 한다. 태릉선수촌 그룹 교습 지도를 했다고 밝힌 기타 선생님이 계신데 태권도 종목에서는 이대훈이 유일했다. 2017년 3월 23일 방영된 KBS 자랑방 손님 2회에서, 기타 실력을 보여주려 했으나 마음같이 잘 안 되어 당황했다. 독학으로 한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는 식의 부연이 있는 거로 봐서 실력은 초보자급이며 기타를 오래 다루어 본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태권도 선수가 아닌 삶을 산다면 무슨 직업이 하고 싶냐는 질문에 축구 선수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슛포러브'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한 영상에 출연했는데 '태권도 국가대표가 축구를 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를 모았으며, 축구왕 슛돌이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태권도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모두의 슛이 이렇게 날렵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선수 본인이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18년 10월 6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대전시티즌과 아산 경기의 시축을 맡았고, 팬사인회를 열어 구장을 찾은 대전 축구팬들과 만났다.

목소리가 하이톤인 편인데, 유명 스트리머 양띵 크루와 태릉선수촌에서 진행된 유튜브 촬영에서 단점이 없어 보인다는 질문에 "목소리를 들으면 깬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먹었다 하면 보통 2~3개, 여름에는 하루에 5개까지 먹기도 한다고 한다. 그의 아이스크림 사랑이 뉴스 영상으로도 송출되었다.

중학생 시절, 여름 훈련이 너무 고된 나머지 어린 마음에 코치님께 "오늘 하루만 훈련 쉬고 다 같이 축구나 하면 안 되나요?"라고 했다가 된통 혼났었다고 한다. 그 뒤로 훈련 일정은 묵묵히 지킨다고 하는데 후배들 말에 의하면, 훈련 전에는 하기 싫다고 엄청나게 투덜대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제일 열심히 한다고 한다.

기상 시간은 선수촌 일정 상 9시 25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생활한다고 한다. 취침 시간은 주로 밤 12시에서 1시 사이인데 피곤하면 그보다 일찍 자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늦게 자는 일이 잦다고 한다.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음식을 짜게 먹을 때가 많아 최근에는 샐러드, 육류를 많이 먹으려고 한다고. 그 외에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스크림과 닭발인데, 몸에 좋다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다만 특정 음식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먹는다고. 국제대회 차, 아제르바이잔에 갔었는데 양갈비가 굉장히 맛있었다고 한다. 현지 음식에 적응을 못 하는 선수들이 한국에서부터 캐리어에 각종 가공품을 가득 담아 가고, 가서도 고생하는 것에 반해 자신은 그런 고충이 전혀 없다고 한다.

훈련 중 힘들 때 버티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냐는 질문에 "한계다 싶을 때 속으로 '한 발만 더', '5초만 더'를 무한 반복한다고 답했다. 그러다가 정말 못 버틸 만큼 한계가 찾아오면 "아! 더는 못하겠다"고 크게 내뱉고 다시 훈련한다고. 스스로는 ‘부정의 힘’이라고 하는데 ‘더는 못하겠다’는 말로 고통을 다시 이겨내고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 한다.

태릉에서 진천선수촌으로 옮겼을 때 외출 시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에 "외박을 할 때면 서울로 갔을 때 미용실부터 치과까지 하루에 다 끝내고 복귀한다. 선수촌 내 휴식 시간에는 게임(피파온라인, 배틀 그라운드)을 하곤 하는데 피파 온라인은 대표팀 내 상위권이었으나 최근에는 태훈이(김태훈)에게 많이 진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2018년 8월 아시안 게임 3연패 달성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한 경기도 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었다. 실제로 이대훈은 2018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기 전인 2018년 6월, 월드 태권도 그랑프리 1차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대회 9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2018 그랜드슬램 우승 후 "최근 실적이 너무 좋아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다. 그래서인지 불안감도 있다. 언젠가는 추락할 때도 있을 테니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며 겸손하면서도 진솔한 심정을 밝혔다.

2018년 3월 31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 시구자로 내정되어 깔끔한 시구를 선보였고 같은 해 8월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선수단 출국에서 '출국 본진 기수' 라는 중책을 맡았다.

선수촌 내에서도 소문난 노력파로 알려졌다. 아래는 강함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정해진 100번의 발차기를 다 차고, 다시 101개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성장이다. 몸이 안 좋은 날에도 그 몸에 맞춰 훈련 중 극한을 끌어내고, 넘어서야 한다. 몸이 안좋다고 해서 경기를 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탄력이 좋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노력뿐이다. 노력이 없으면, 매일 사점을 넘어 성장하지 못하면 바로 그때가 나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장은 무한하다. 정말 힘들 때 바로 그때 거기서부터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회다. 그 기회를 손에서 놓지 않으면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다."

2018년 10월 22일, 동갑내기와 2019년 봄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2018년 해 5월, 비공개 약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5월 25일, 화촉을 밝혀 유부남이 되었다.

위에 언급된 것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만큼 축구 실력도 상당하다. 2020년 6월 28일, 뭉쳐야 찬다에서 신진식과 함께 용병으로 출연했으며, 어쩌다FC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완전히 다른 팀으로 만들어 내주었다. 그 결과, 사실상 1회성 출연으로 그친 신진식과 달리 53화에서 정식으로 입단했으며, 이대훈이 합류한 이후부터 어쩌다FC는 승률이 대폭 증가하였다. 현재도 어쩌다FC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또 막내 멤버인 만큼 뭉찬 멤버들의 예쁨도 받고있는 건 덤이다. 등 번호는 77번인데 이 번호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날인 7월 7일의 의미를 담았다고 하여 사랑꾼임을 인증했다. 후속인 뭉쳐야 쏜다에는 올림픽 출전 일정으로 인하여 출연하지 않았으나 뭉쏜에서 77번을 다는 선수도 에이스가 되어 77번은 뭉쳐야 스포츠 시리즈의 에이스들의 번호가 되었다.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자 뭉쳐야 찬다 2에서 불러줬으면 하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많아졌다. 이에 힘입어 2021년 8월 18일, 9월부터 프로그램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으며 방영분으로는 11회부터 합류했다.

뭉쳐야 찬다 2 폭로전에서 이장군이 폭로하기를 "동현 형님이 대훈이를 어떻게든 격투기 시키겠다고 하시더라"라고 했고 김동현은 "격투기는 서른 살부터가 시작이다. 마흔다섯 살까지 충분히 할 수 있다. 딱이다"라며 이대훈에게 격투기를 적극 추천하였다.

집사부일체에서 말하길 훈련 중 본인이 진짜 힘들어서 쓰러질 때면 이미 다른 동료들은 다 쓰러져있는 상태라며 훈련 때 '됐어, 한 명 제쳤어'라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마지막까지 해낸다고 한다.

사실 이대훈을 전자호구 세대의 득을 본 선수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은퇴 후 무카스에서 인터뷰한 바로는 "스스로도 남들보다 발차기가 느린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일반호구 시절에는 발차기 속도가 득점 유무를 결정할 정도였다. 사실 태권도 선수들이 뒷발을 차기 전에 앞발을 구르는 습관을 열에 아홉은 갖고 있다. 그래서 사전동작 없이 상대의 타이밍을 뺏어서 반박자 빠르게 나갈 수 있는 발차기를 연구했다." 라며 일반호구 시절 선수 생활 얘기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전자호구 도입 이후 득점을 위한 수많은 변칙발차기가 등장하고 경기 운영 방식이 바뀌는 추세를 따라가지 못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적극적인 공격과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63kg급에서 활동할 때는 원래 상의를 105 사이즈를 입었었는데 체급도 올리고 벌크업을 하며 110사이즈를 입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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