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기업인. 현대그룹 회장. 본래는 평범한 주부였으나, 남편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후 현대그룹을 이끌며 소위 왕자의 난 이후 실추한 현대그룹의 이미지를 살리고 현대그룹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범현대가와의 지속적인 갈등, 실적 부진, 재계 순위 하락 등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해운업 위기에 따른 현대상선의 용선료 문제 등에 따라 현대상선이 그룹에서 분리되는 등 악재는 현재진행형이다.
현대 현정은 프로필 나이 학력 이력 남편 자녀 (현대그룹 제5대 회장)
현정은
玄貞銀|Hyun Jung-eun
출생
1955년 1월 26일 (67세)
거주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종교
개신교
학력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 / 학사·석사)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교 (인성개발학 / 석사)
배우자
부모
아버지 현영원, 어머니 김문희
형제자매
언니 현일선(玄日善)
여동생 현승혜(玄承惠), 현지선(玄智善)
자녀
장녀 정지이
차녀 정영이
장남 정영선
본관
연주 현씨
국적
대한민국
직업
기업인
현정은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55년 1월 26일,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현영원과 어머니 김문희 사이의 네 자매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72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60회로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2월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교에서 인간개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1976년에 정몽헌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원래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으나, 2003년 8월 4일에 남편 정몽헌이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면서 2003년 10월 21일,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여 현대를 이끌게 되었다.
현정은과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VS 정상영
2003년 정몽헌 회장 사후 현대그룹에 대한 경영권 분쟁을 처음 제기한 것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 KCC그룹 회장이었다. "정씨의 현대그룹이 현씨에게 넘어가게 놔둘 수는 없다."며 범현대가의 결집을 호소한 정상영 회장은 정몽준의 현대중공업 측과 손잡고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며 승리하는 듯 했으나 다른 범현대가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는 데에 실패했고, 현정은 회장이 그룹 지주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40% 이상 확보하며 현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VS 정몽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현대그룹 인수를 시도한 사건이다. 2006년 정몽준 회장 측은 외국인이 보유한 현대상선 또 현대상선이야?의 주식을 26.68% 매입하였다. 이는 기존 최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인 17%를 10% 가량 상회하는 것으로 현 회장의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왔고 KCC그룹 측도 간접 지원하며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재발되는 지에 관심이 쏠렸으나, 결과적으로 정몽준 측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가져오진 못하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2011년과 2013년 주주총회에서 각각 내놓은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안에 반대하며 현대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남아 있는 실정이다.
현정은 경영능력 논란
현정은 회장은 남편의 사망으로 회장이 될 때까지 기업 경영 커리어가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에, 회장 취임 당시부터 경영능력을 의심받았다. 실제로 회장으로 취임한 후 삐걱리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는데, 바로 그룹 전체 매출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시장 상황을 오판하고 장기 용선 계약을 했다가 엄청난 적자를 내게 된 것이다.
2006~2008년 경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고 그에 따라 국제 물동량이 급등함에 따라 해운사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은 현대상선은 벌크선을 빌리면서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어버렸다. 장기계약의 경우 10% 정도 용선료가 할인되는데다 운임이 계속해서 상승 추세였으니, 단기적으로도 실적을 개선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도 손해 볼 계약은 아니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문제는 2008년 경제위기가 닥쳐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경제 성장률이 줄어들었고(한국 역시 평균 5%대 성장을 하다가 3%대 성장으로 반토막이 났다), 중국을 포함한 각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미국이 셰일 가스 혁명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기 시작하면서 국제물동량은 현상유지에 그쳤다. 자연히 해운 단가는 급감했는데, 발틱운임지수가 2008년 7170에서 2015년 742로 떨어지는 등 타격은 극심했다. 해운사의 수입인 해운 단가가 몇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는데 장기계약으로 용선료는 이전 호황기 기준의 비싼 단가로 고정지출되었으니, 그 차액분이 고스란히 적자로 누적되었다.
결국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현대상선은 부채비율이 5000%에 이르는 등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현정은 회장이 300억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채권단에 의해 2016년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사명을 HMM으로 변경하였다. 사실 재무상태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300억으로는 이자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또한 이 현대상선의 채무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증권 역시 매각되었다. 결국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모두 매각되었고,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만을 지킬 수 있었다. 사실상 사세가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재벌이라 부르는 것도 민망한 수준이 되었다. 실제로 현대상선을 매각한 2016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하는 대기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물론 이러한 사태가 오로지 현 회장만의 실책에 의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동종 업계의 한진해운 역시 장기 용선계약으로 현대상선과 같은 최후를 맞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2006~2008년 해운업계 초호황 당시에는 경제위기를 맞고 시장 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예견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리스크를 헷징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항도 삽입하지 않고 관련 보험도 들지 않아 엄청난 손실을 자초한 것은 분명하다. 현정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 경영을 일임하고 최소한의 관리를 했다고는 하나, 그룹 매출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 10년 단위의 장기 초대형 계약을 맺는데 현 회장이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한 구조적 변화로 인하여 해운 시장이 침몰을 거듭한다면 현대상선을 빠르게 청산하거나 매각하여 썩은 살점을 도려냈어야 했고, 이러한 결정은 오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현 회장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빚을 내며 버티다가 다른 알짜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마저도 그룹이 매각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 같은 실책들로 인해 현재 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그룹 내에서도 정상영 회장의 KCC그룹으로 넘어가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현정은 여담 일화
2009년 8월 16일에 현대그룹 회장 신분으로 북한의 김정일과 면담하였다.
전 국회의원 김무성이 불과 4살 연상인 외삼촌이다.
2018년 9월에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다. 대북 사업에서 현대그룹의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므로 참석이 가능하였다.
최근에 맏딸 정지이를 계속 승진시키면서 후계자 수업을 시키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추원 주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어 친일의 길을 걷고, 일본군에 수차례 거금을 헌납했던 그 당시 손꼽히는 거부 현준호(친일반민족행위자)가 현정은 회장의 할아버지이다.
2019년 11월 북한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을 다 철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가운데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회동을 가졌다.
2021년 6월 1일 통일부 장관 이인영과 면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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