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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9. 4. 23:10

우리공화당 조원진 나이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대한민국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 제18-20대 국회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병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재 우리공화당의 당대표이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나이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조원진 프로필
조원진

 

조원진

趙源震 | Cho Won-jin

 

출생

1959년 1월 7일 (63세)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

(現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거주지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기로

 

본관

배천 조씨

 

 

현직

우리공화당 대표

우리공화당 대구시당위원장

 

가족

배우자 성희숙, 슬하 1남

 

학력

대구종로초등학교 (졸업)

협성중학교 (졸업)

청구고등학교 (전학) →

인창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 석사)

 

이력

자유공화당 공동대표

우리공화당 공동대표

대한애국당 공동대표

새누리당(2017년) 19대 대선 대통령 후보

우리공화당 20대 대선 대통령 후보

이하 원래 새누리당에서 맡았던 직책들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새누리당 18대 대선 중앙선대위 불법선거감시단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병역

대한민국 육군 하사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예장합동)

 

별명

진박 감별사, 조트럼프, 조동아리, 곰탱이, 원진곰, 조진핑, 욕망의 항아리

 

 


조원진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59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종로초등학교, 협성중학교, 인창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책분석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시절 예비역청년협회장으로 학생운동에 앞장섰으며 당시 총장이었던 황병태의 퇴진 시위를 주도했다.

그런데 총장직에서 물러난 황병태가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조원진을 불러들여 그도 통일민주당 당원이 되었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황병태가 출마하면서 조원진은 그의 보좌관이 되었다. 그러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병태가 낙선하자 정계를 잠시 떠났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이후 1993년 황병태의 소개로 김우중을 알게 되어 대우그룹에 취업이 되었고 황병태가 김영삼정부에서 주중대사로 발령받아 나가면서 함께 (주)대우 베이징 주재원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1996년 퇴사한 후 먼저 귀국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 중이던 황병태의 신한국당 캠프에 보좌관으로 다시 합류했으나 황병태가 1997년 한보사태에 휘말려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이인제가 이끌던 국민신당에도 가담해서 대구 수성구 갑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한 적도 있었지만, 1998년 7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신당을 탈당하고 북구 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처음 선거 경력을 시작했다. 이때는 4등으로 낙선했고, 2년후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다시 무소속으로 대구 북구 갑에 출마했지만, 또 4등으로 낙선했다. 이때까지는 극우 성향은 아니었고, 오히려 민주계 출신인 만큼 개혁 성향에 가까웠다. 낙선 후 중국 베이징으로 다시 들어가 개인사업을 하면서 재중국한인회 부회장 겸 세계한인무역인협회(OKTA) 베이징(北京)지부 회장을 지냈다.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일 불과 열흘 전에 입국하여 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YS계 황병태의 비서이던 그가 어떻게 박근혜와 연결되어 갑자기 공천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명쾌히 알려진 바가 없다.

2016년 기준 새누리당의 원내수석부대표 겸 국회운영위원회 간사였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과의 대립 과정에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하였다.

2016년 20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같은 당 소속인 신상진 전 의원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1년씩 나눠서 맡기로 했다. 그러나 조원진 의원이 중도에 탈당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9일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2016년 12월 탄핵국면에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 윤상현 프로필 보러가기

 

제19대 대통령 선거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가정보원장인 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의 극우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비박과 온건친박의 보수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박근혜 즉각 석방, 박근혜 탄핵 주동자 심판, 언론에 대한 강력한 제재, 5.18유공자 전수조사, 동성애 금지(반동성애법 제정), 국정교과서 의무화, 세월호 관련 조사 중단 및 금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1% 안팎이다.

2017년 4월 24일 열린 19대 대선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서는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에게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들이대다가 '철 지난 메뚜기'란 조롱을 들었다. 나머지 후보들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 비초청후보 토론의 최대 승자는 이재오 후보라는 게 중론이다.

19대 대선 선거송으로 유명 동요인 곰 세 마리를 각색하여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실제로 곰을 닮은 외모를 의식해서인지 19대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캐릭터를 내세워 홍보했다.

 

조원진 인터뷰

 

심지어는 선거 현수막에 공약이 아니라 "박근혜를 석방하라!"라는 문구로 박근혜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 1주 전가량 바른정당에서 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며 15명의 국회의원이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려 하자 '자유한국당도 탄핵 주역에 배신자이다'라 비난하며 홍준표와의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홍준표 후보 측의 댓글부대 운용 의혹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투표 당일인 5월 9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넣은 현수막이 등장했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조원진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0.3%라고 한다.  1%도 못 넘은 예상 득표율이지만 그나마 원외정당 후보들보단 높은 수치이다.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6위로 낙선이 확정되었다. 이는 5위를 한 심상정의 약 47분의 1 정도 되는 득표 수이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는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확실히 정치 약체이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주낙영이 경주시장 선거에서 얻은 47,656표보다 4,707표를 적게 받았다. 참고로 주낙영은 당선되었다. 이렇게 조원진은 무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개 시장, 그것도 군소 시장에 출마한 후보보다 표를 더욱 적게 받을 정도로 처참한 결과를 냈다. 심지어 "무공약이 공약"이라던 대선 후보 14대 대선에서의 김옥선(86,292, 0.36%)보다도 절반 정도밖에 표를 받지 못하는 굴욕도 달성했다.

여담이지만 5월 7일 eUnited 팀의 팬미팅 때 옆에서 유세를 하고 있었는데 해리슨 폰드를 보러온 학생들이 자신들을 도우러 온 것이라며 주장을 하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2017년 6월 1일 새누리당에서 13개월 당원권 정지를 당했다.  그리고 15일 뒤인 6월 16일, 공식적으로 제명 처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당법 33조에 의해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제명처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소속 의원의 1/3의 동의가 필요한데 자기 자신뿐이라 애초에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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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 대한애국당과 우리공화당 시절

2017년 6월 30일 신당 창당을 결의했다고 한다. 7월 8일 대한애국당을 공식 창당했다.

21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원 지역구인 대구광역시 달서구 병의 출마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대구에서조차 강성 친박은 부담스러웠는지 미래통합당 김용판 후보에게 크게 밀려 4선 연임에는 실패했다.심지어 더불어민주당 김대진 후보의 득표율보다도 낮은 15.0%의 득표율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나마 간발의 차이로 선거비용과 기탁금 전액을 보전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보수의 텃밭이다 못해 성지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지옥인 대구광역시 지역구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후보보다도 더 적은 표를 받는 바람에 조원진은 선거 경쟁력이 아예 없음을 입증하고 말았다, 나중에 22대 총선 때에 기성 빅텐트 보수정당으로 복귀하여 출마한다면 모를까, 나중에 또 극우성향 소수정당 후보로 출마한다면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2020년 7월 6일 우리공화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박근혜 사면

대선이 75일쯤 남은 시점에 2021년 12월 31일자로 박근혜의 사면이 결정되자 우리가 승리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곡동 자택이 수감 중 경매로 넘어가 거처가 없어진 박근혜를 대구로 모시겠다고 하고 있다. 박근혜를 잡아넣은 윤석열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22년 2월 12일에는 반윤이라는 공통 기치하에 친민주당계 유튜버인 시사타파 TV에 출연했다. 

 

조원진 박근혜 사면

 

제20대 대통령 선거

"잘못된 탄핵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면서 20대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2022년 2월 22일에 열린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 김동연과 함께 불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석방되어서인지 선거홍보물에는 박근혜와 악수한 사진을 제외하고는 관련 언급이 없이 양당 비판과 공약 위주로 올라왔다.

결과는 총 25,972표(0.07%)를 얻어 6위로 낙선하였는데 순위상으로는 지난 선거였던 제19대 대통령선거와 동일하지만 해당 선거에서 얻은 42,949표(0.13%)보다 못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거기다 박근혜 정부가 해산시켰던 통합진보당 출신 김재연한테 37,366표(0.11%)에 밀렸다는 결과에 우리공화당 안팎에선 지지자들이 심한 충격과 논란에 휩싸였다.

3월 10일 우리공화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대선에 대한 결과에 책임지고 조원진은 정계은퇴를 시사했고 이에 조원진 지지자들은 적극 만류하고있다.  이후 행보를 보면 은퇴를 번복한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이재명, 윤석열마저 제치고 가장 많은 대선후원금을 모은 것으로 밝혀졌다. 25억 6500만원이다. 이 보도에 대해 화난 모양인지 '대한민국의 선거 역사에서 처음으로 100% 순수 자원봉사자들의 자원봉사와 순수한 민초들의 후원금만으로 선거를 치뤘다'고 했다.

 

이재명 프로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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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이후

말 그대로 박근혜의 충신 그 자체로 변희재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윤석열에 대한 비판(비난이 절대 아니다)적 발언을 계속 쏟아내면서도 예전과 달리 비교적 논리적으로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문재인 사저 집회에 맞불을 놓겠다고 서울의소리에서 박근혜 사저에 집회 신청을 하자 전화를 걸어 문재인 사저 시위자들은 친박이 아닌 친윤이라며 집회를 철회하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박근혜 사저 앞에서 하지 말라고 했지 윤석열 사저 및 집무실 앞에서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했다는 것이다. 결국 서울의소리는 진짜로 집회 장소를 서초 아크로비스타 앞으로 옮겼다. 우리공화당 측에서는 그렇게 먼저 전화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진실은 저 둘만 알 것이다. 이쯤 되면 변희재와 함께 사실상 민주당과 협력하는 모양새이니, 어지간히도 윤석열이 싫은 모양이다.

2022년 8월 27일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우리공화당 제3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한근형 후보를 꺾고 대표로 선출되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우리공화당 후보들의 선거를 도왔다. 서산시 서태모 후보 등의 개소식에 참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원 낙선.

 

 

조원진 대우그룹과의 인연

만 34세에 대우자동차를 거쳐 대우 중국기획조사부 부장까지 했었다. 그 후 황병태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선거공보물에는 명동판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인 2001년엔 중국에서 무역 컨설팅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때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의 베이징 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는 등 사업 수완은 있는 인물로 사료된다.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이 있다.

 

조원진 반윤

 

조원진 여담 일화

김진태와 김태흠이 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도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당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정치적 행적 뿐 아니라 과격한 언행으로 잦은 논란을 일으켜 국민의힘 계열 정치인들 대부분과 사이가 좋지 않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친박계에서도 거리를 둘 정도로 박근혜 팬덤에 의존한 정치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여론의 반작용을 일으킨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과 탄핵 과정에서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우리공화당으로 사면 복권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음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년간 조원진의 직접적인 요청이나 대화에 응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조원진이 원했던 박근혜의 복심'으로 자리한 것은 소위 친박계에서 그의 위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19대 대선 당시 무매독자 아들이 아버지가 출마한 대통령선거에서 유세하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아들은 1998년 생이며, 외모가 꽤 훈훈한 편이었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조원진에게 전라도 출신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일베 회원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2017년 한해 동안만 4개의 당적을 기록했다.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새누리당(2017년) → 대한애국당) 모두 6개월 동안 일어났으며, 이는 10년 전인 김한길과 김한길계 정치인들과 타이를 이룬다. 이렇게 당적을 갈아 치워도 특이하게도 철새 취급은 받지 않는다. 철새는커녕 변경된 당적의 공통점이 전부 친박, 탄핵 반대 집회 쪽 노선이라 오히려 그가 가진 정치색이 더욱 진해졌다고 봐야 한다.

2017년 10월 23일, 박근혜 석방 등을 주장하면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가 11일만에 단식을 포기하고 휠체어에 앉아 실려나갔다.

새누리당 시절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광주 망월동 묘지에 들러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이 있다. 다른 친박들은 잘 따라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재 모습을 보면 참 웃긴 부분이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1살 위의 친누나 조화영 씨가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대한애국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녀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동구에서 개업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7월, 국감을 진행하는 도중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강창일이 질의하는 도중에 옆에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언쟁을 벌였고 격노한 강창일에게 양아치 소리를 들었다.

2018년 10월, 서울특별시 국정감사 도중에 서울시청에 난입한 김성태 의원을 언급하여 "김성태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고 발언했다.

20대 국회에서 본회의 출석율이 50.0%였다. 20대 국회의원 중 가장 낮은 출석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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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 재산

2019년 기준 7억 3720만원을 신고했었다.

 

조원진 집회

 

조원진 선거 이력

1998

7.21 재보궐선거

대구 북 갑

2,453(5.0%) 낙선(4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북 갑

5,526(7.6%) 낙선(4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 병

26,357 (49.23%) 당선 (1위)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 병

49,842 (74.77%)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 병

43,817 (66.24%) 당선 (1위)

3선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42,949 (0.13%) 낙선 (6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 병

12,707 (15.08%)

낙선 (3위)

 

2022

제20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25,972 (0.07%)

낙선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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