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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5. 13. 10:51

김성회 고향 학력 나이 논란 프로필 (종교다문화 비서관)


사회기관단체인 출신 공무원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1급 상당)이다.

 

김성회 고향 학력 나이 논란 프로필 (종교다문화 비서관)

 

김성회 프로필
김성회

 

김성회

Seonghoi Kim

 

출생

1965년 (57세)

충청북도 괴산군

 

현직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학력

연세대학교 (행정학 / 학사)

 

종교

무종교

 

약력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뉴라이트전국연합 집행위원장

자유일보 논설위원

대통령비서실 초대 종교다문화비서관

 

 


김성회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충청북도 괴산군 출신으로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로 활동하고 있고 뉴라이트전국연합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전광훈이 창간한 자유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였다. 당시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를 온달과 평강공주로 빗대어 찬양하는 내용의 사설을 쓰기도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5월16일 인터넷신문 <제3의길>에 이준석 대표 등을 폄훼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의 제목은 '자칭 개혁보수들의 운동권 외경심과 컴플렉스’로, 그는 이 칼럼에서 “오렌지 우파들의 운동권 외경심과 콤플렉스는 국민의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이런 정신상태를 가지고는 결코 운동권을 이겨낼 수도 없다. 기껏해야 운동권 아류밖에는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준석 대표, 김웅 의원, 김세연 전 의원 등을 ‘오렌지 우파들’로 규정하면서 “잘난 부모 덕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장한, 운동권 콤플렉스의 소유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 주류와 소통가능한 잘난 부모들, 화려한 스펙 중심의 인재를 영입하다보니 계속해서 오렌지족들만 영입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보수진영 인재양성의 근본적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칭 개혁보수들인 오렌지 우파들이 보수의 주류인 양 나대서는 국민의힘은 결코 미래가 없을 것”, “초선이라고 당 대표 못할 게 무엇이냐고 떠들기 이전에”, “내공이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운동권에 대한 외경심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개혁보수입네’ 떠드는 모습을 보면, 어이없고 가소롭기 그지 없다”고 비판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4월에는 비슷한 취지의 강남좌파 지고 오렌지우파 다시 뜨는 대한민국?이라는 칼럼도 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2022년 5월 6일에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에 내정되었으며, 2022년 5월 10일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임명되었다.

 

 

김성회 논란 사건 사고

공금 횡령

2016년 새로 SUV 차량을 구입하고 차량 할부금 자동이체 계좌를 본인이 대표로 재직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다문화센터 법인 계좌로 해놓았다. 2016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법인 계좌의 437만원이 개인 차랑 할부금 갚는 데에 사용되었고 2019년 3월 업무상 횡령으로 기소되었다.

2019년 11월 1심 판결이 나왔고 법원은 "피고인은 다문화센터의 자금 관리 등을 총괄하는 이사로서 업무상 임무를 위배하여 다문화센터의 자금을 자신의 소유인 경우와 같이 처분하고자 했다. 불법 영득의 의사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 고 판단,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김성회 측에선 "차량은 다문화센터 업무를 위해 사용했고, 횡령의 고의는 없었다"며 항소했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됐고, 2020년 11월 10일, '400만 원 벌금형'이 최종 확정됐다.

 

일본군 위안부 '화대' 발언

페북으로부터 또 차단 당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난 번, 차단에서 풀리고, 며칠 되자마자.. 기억도 없는 수년전의 댓글 논쟁(아마도 박근혜 정부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상대 의 보상금 요구에, "그럼 정부가 나서서 밀린 화대라도 받아내란 말이냐?" 고 비난 한 댓글)을 가지고, 페북 규정위반이라며 차단조치를 취한 다고 알리더니, 한달간 차단조치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제 페북을 보며, 끊임없이 신고 하고.. 얼토당토 않은 사안을 가 지고 차단 시켜서 저의 언로를 막으려고 작정하고 있나 봅니다. 페북의 이런 조치들이 이번 정부 들어서서 너무 심하네요. 예전엔 전혀 경험하지 못하던 일들입니다.
어쨌든, 오늘에서야 풀렸고.. 그래서 가장 최근에 쓴..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59편, 반일민족주의와 바람직한 민족주의의 길(아일랜드 편)을 링크합니다.
페친분들.. 많이 읽어주세요.
2019년 9월 20일

 

김성회는 과거 페이스북으로부터 차단조치를 받았는데, 그 이유가 위안부 할머니의 보상요구를 두고 그럼 정부가 나서서 밀린 화대라도 받아내란 말이냐?라고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발언은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이 없었던 것을 두고 누리꾼과 논쟁을 벌이던 중 김성회가 페이스북에 남긴 댓글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를 향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를 두고 '밀린 화대'라며 모욕한 것이다.

화대는 성매수자가 성매매의 대가로 지불하는 돈을 뜻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성매매 여성에 비유한 것이다.

 

 

동성애 가치관 논란

한동안 페북에 글을 못썼습니다.
지난번 제 포스팅에 "레인보우 합창단은 동성애와 상관없다"며,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병의 일종으로 생각한다"고 쓴 글이 성적 취향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말이라며, 페북 포스팅을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런 규칙을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페북의 규칙이라며 막무가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에 그동안 올리지 못한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연재를 다시 올립니다. 이번엔 임진왜란 때 가토의 우 선봉장으로 와서 휘하 장병을 이끌고 조선에 귀화한 뒤, 울산성 전투 등 크고작은 전투를 수없이 치르고.. 또 북방으로 가서 국경수비를 자청하고,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공로를 세 운 일본인 출신 조선 장군 사야가 김충선을 소개합니다.
2019년 6월 28일.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여러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 것과 혐오하는 것과는 별개이며, 의학계에서는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정신병이 아니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평이 많다. 종교 다문화 비서관이라는 직책이 새로운 사회에 대해 좀더 유연적으로 대처하자는 의미를 포함하는 자리인만큼, 비서관의 성인식이 그러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그는 '혐오발언의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사과하면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성애는 흡연처럼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과문 논란

저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에 임명되었다고 발표된 뒤, 일부 언론들이 집요하게 저를 파헤치고 있네요. 그동안 제가 내로남불 586세력과 종북주사파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을 해왔던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몇가진 해명하거나 사과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페북 포스팅을 올림니다.

1.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밀린 화대" 발언
아마, 전에 쓴 글에서도 나타났듯이 박근혜 정부때 진행된 한일정부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하 면서, 포괄적 사과와 배상이 이뤄진 것을 트집잡고, 개인보상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누군가와 언쟁 하면서 댓글로 짤막하게 대꾸한 것이 문제가 된 듯 합니다.
이에 대해 페북에서 개인간 언쟁을 하다 일어난 일이지만, 지나친 발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깨끗이 사과드립니다.

2. 동성애가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한 발언
개인들의 다양한 성적 취향에 대해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선천적인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후천적인 버릇이나 습관을 자신의 본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경우에도 동성애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흡연자가 금연치료를 받듯이 일정한 치료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의 성적취향에 대한 혐오발언의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이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3. 레인보우합창단의 일부 학부모에 대한 민사소송 패소의 건 지난 18년 평창 올림픽 후 mbc의 편파 왜곡보도가 진행된 뒤 2건의 민사소송을 진행했습니다. 하나는 mbc의 이덕영 기자와 임영서 부장에 대한 소송이었고, 다른 하나는 mbc에 거짓제보를 한 3명의 학부모에 대한 소송이었습니다. 두 건의 소송은 1심에선 개별로 진행되었고, 2심에선 합산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mbc에 대한 소송은 한국다문화센터가 부분승소하였고, 학부모들에 대한 소송은 거짓은 인정되나 학부모로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기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mbc와의 소송은 감춰둔 채, 학부모와의 소송만을 떼어서 편집 보도하는 행태가 균형잡힌 언론의 태도인지에 대해 되묻고 싶습니다.

4. 페북 포스팅 숨김처리에 대해
페북 포스팅 숨김처리하거나 삭제처리 한 적 없습니다. 지난 게시물에 대해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친구만 보기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개인 페이지에서 그럴 뿐, 관련 페북인 레인보우합창단 페이지 등은 그대로 둡니다.
마치, 제가 무슨 큰 잘못이나 하고 도망이라도 치는듯이, 일부 언론에서 "숨김처리" "삭제" 등의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합니다.

5. 결론
위에서 밝혔듯이 지난 과거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와 동성애 문제에 대한 저의 지나친 표현에 대해 깨끗이 사과드립니다. 그 외, 균형감을 상실하고 신상털이식 보도를 하는 일부 언론에 대해선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2022년 5월 11일에 올린 글

 

 

"조선 여성 절반은 성노리개" 망언

독백(부끄러운 고백)
1. 조선시대 태종 때 15% 이하였던 노비가 세종 때 노비 종모법으로 27~8%까지 늘고, 성리학적 신분제 사회가 확립된 성종조에는 42%까지 늘어났다는 것은 실증적인 역사다.
고로 조선조에 절반에 달하는 40~50%의 인구가 노비였고, 그중 노비 2 세를 낳을 수 있는 여성노비가 더 선호되었다.
그리고 노비들은 자유가 없었으며, 여성노비는 외거를 하더라도 양반 주인이 수청을 요구하면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은 역사 학계에서는 일반화된 이론이다.
결국 여성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인 양반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 던 것이다. 그런 부끄런 역사를 반성하자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2. 중도입국자녀를 받아들인 이유는 재혼 결혼이주여성 중에서 본국에 있을 때, 전 남편과의 사이에 서 나은 아이를 어머니품으로 데려오자는 취지였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국 중도입국자녀의 대부분은 결혼이주여성이나 한국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국인들의 친인척들이었다.
그 비율이 92%까지 되었고, 정작 정확한 의미의 중도입국자녀는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2015 년 계명대 김혜준 교수의 논문 중, 중도입국자녀에 대한 실태조사로 확인되었다.
3. 도대체 왜 대한민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자기만의 도덕적 편견에 사로잡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가?
예전 2차대전 때 영국이 승리한다는 거짓 찬양만 하던 언론들 사이에서.. 한 언론이 "그렇지 않고, 고전증"이라는 진실을 보도한 덕택에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영국정부가 심기일전해서 이길 수 있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4. 불편한 진실을 얼굴 붉히면서라도 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세상은 좀 더 진실해지고, 사람들 은 좀 더 자유로워지고, 함께 번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목숨이 두려워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듯이..!!
두려운 것은 사회적, 도덕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 언론들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안락함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나의 비겁함이다.
2022년 5월 12일, 페이스북에 쓴 글 원본

 

조선시대 절반의 여성이 성노리개였다.
-세종의 노비 종모법은 전체 인구 5~10%였던 노비(노예)를 전체 인구 40~50%에 달하게 해
-사노비던 관노비던 낮엔 허드렛일, 밤엔 성노리개였던 여성노비. 양민과 결혼해도 자식은 노예
-일본군 위안부에 분노한다면, 조선시대 노예제와 지금 북한에서의 반인권 참상에도 분노하자
1. 선택적인 분노와 정략적인 분노가 아니려면
세종 때 만들어진 노비 종모법은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노비면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 제도에 의해, 전체 인구 5~10%밖에 안되던 노비(노예)가 급속히 늘어나 전체 인구의 40~50%에 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인구 절반이 노비였던 것이다.
그중 가장 비참한 것이 여성 노비였다. 여성 노비들 중에는 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밤 시중도 드는, 한마디로 성노리개이면서 노예노동을 하는 관비도 많았고, 양반이 드나드는 일반 주막에서 허드렛일과 성노예를 겸하는 기생도 흔했다.
1890년대까지 노예제도를 유지했던 조선은 전체인구 40~50%가 노예였다. 프랑스 대혁명기 이전에 흑인 노예제도까지 폐지된 서구유럽과 비교해도, 뒤늦은 링컨의 노예해방과 비교해도 100년 가량 뒤늦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일반 여성 노비들의 경우도 결혼하기 전에는 낮에 집안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양반집 주인이나 그 아들의 성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결혼은 노비를 양산하기 위해 주인이 정해주는 대로, 다른 외거 노비나 일반 양민과 결혼해야만 했다.
외거 노비나 일반 양민과 결혼하면 좋지 않냐고? 좋은 것 같지만, 실제는 그녀가 낳은 자녀는 원래 주인의 노비가 되었다. 심지어, 원래 주인이 노비가 결혼해 살림하는 곳으로 찾아와 남편을 내쫓고 잠자리를 갖기 일쑤였다. 즉, 결혼하고서도 성노리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와 같은 일 때문에 벌어진 사건 사고들이 수없이 많다. 또, 외지나 변방에 근무하는 군관에게도 허드렛일과 잠자리를 해주는 변방 관기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주변 마을 양반들이 거느린 노비 중에서 선발되어 배속되었다. 선발된 관기 중에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성 노비도 많았다.
심지어, 정약용 같이 중앙에서 힘 깨나 쓰던 관료가 귀양살이를 할 때는 관에서 귀양살이를 도우며 허드렛일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여성 노비를 배속하기도 했다. 정약용 역시 그 여인 사이에서 애까지 낳았으나, 귀양살이가 풀려난 뒤그녀가 서울까지 찾아오고 매년 선물 꾸러미를 보냈음에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고 싶은가? 위안부 제도를 운영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가? 반인권적인 행태를 미워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분노의 절반만큼이라도,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는 반인권의 참상에도 분노하자. 조선시대 벌어진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반성하고 분노하자. 그렇지 않다면 선택적인 분노가 정략적인 분노를 하는 것에 무엇이 다르겠는가!

2. 1890년대까지 피붙이를 노예로 삼던 조선사회
조선 노비는 로마 노예보다 훨씬 비참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조선시대 노비는 세종 때 만들어진 노비 종모법, 일천즉천 제도에 의해 전체 인구의 40~50%까지 늘어난다. 양반이 20% 정도, 중인과 상인이 5~10% 정도, 양민 20~30% 내외가 조선사회 인구 구성이었다.
이토록 양인이 허약하다 보니, 조선의 국방력이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다. 즉, 양반이나 노비는 군역에서 제외되니 결국 20~30%되는 양인이 조선 국방력을 떠받치는 셈이었다. 그나마 양인만으로 군역을 채우기 어렵다보니, 면천이라는 특혜로 노비들을 동원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조선의 노비제도는 같은 종족을 대상으로 하는 노예제도로, 전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제도였다. 로마 등의 고대 국가에서도 타 종족을 정복한 뒤 그 종족을 노예로 부렸으면 부렸지, 자기 종족을 가축의 일종인 노예로 부리는 경우는 없었다. 반면에 조선의 노비는 로마 또는 다른 어떤 나라의 노예보다 훨씬 비천한 존재였다.
몽골의 경우 노예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일정한 노동력을 제공하면 얼마되지 않아 면천되어 일반인처럼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도 향·부곡·소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고려시대까지는 그러했다.
로마의 경우는 노예가 주인 자식들의 과외 선생 노릇도 했고 학교의 교사가 되기도 했다. 집정관이나 황제 밑에서 서무 회계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은 노예 출신들이 많았다. 의사 등의 전문직 대부분은 노예출신들이었다. 심지어 노예출신 중에서 나중에 황제가 된 인물도 있었다.
그런데 조선의 노비는 그 같은 신분상승은 꿈을 꿀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주 특이한 경우로 반기문 총장의 선조인 경우인데, 주인에 의해 면천이 되어 과거급제를 해서 벼슬길에 올랐으나 노비였던 과거가 들어나 탄핵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왕의 총애로 간신히 탄핵은 면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노비제도는 그 비율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을 뿐 아니라, 어떤 나라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처지에서 벗어날 길이 사방팔방 막혀 있어 참으로 비참했다. 이는 로마의 정복전쟁이 극성기를 이룰 때 로마 인구의 30%정도가 노예였다는 것과 비교를 해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비참한 노예제도를 1890년대까지 유지했던 것이 조선이었다. 이미 프랑스 대혁명기 이전에 흑인 노예제도까지 폐지된 서구유럽과 비교해도, 뒤늦은 링컨의 노예해방과 비교해도 100년 가까이 뒤늦은 것이었다.
인구의 4~50%가 노비이고, 놀고 먹는 양반을 제외하면 겨우 20% 남짓의 사람들에 의해 지탱하던 조선사회. 그런 사회에서 누가 국방력을 담당하고, 근대화를 이룩할 힘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거기서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가 있었겠는가?
국뽕에 취해서, 다른 나라에게 삿대질하기 이전에 우리 역사의 꼬라지를 제대로 알고 분노하더라도 해야 할 것이다.
2022년 3월 1일 제3의 길이라는 사이트에 올린 글 아카이브

 

 

“여성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인 남자 양반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다”는 망언으로 또 다시 논란이 되었다.

대응한답시고 글을 올렸지만 태반이 틀린 소리로 역사를 제대로 배운 것이라 할 수 없는 답변들이다. 김성회의 뉴라이트식 뇌피셜과 달리 주류 사학계는 저런 헛소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제일 문제 되는 노비와 성노리개 부분은 애초에 관노비가 국가의 재산이기 때문에 양반이라고 건들 수 없었고 사노비의 경우도 집도 따로 살림도 따로지만 주인에게 세금만 내는 형태가 많았으니 역사적으로 보나 윤리적으로 보나 왜곡된 발언이다. 김성회가 서양과 한국의 노예제를 단순 비교하며 100년 가까이 늦었다는데, 사회과학을 접하며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일반론과 특수성 이론도 구분 못하고 사회현상을 본 것이다. 학계의 정설은 사회구성의 발전사 설명에서 흔히 고대 노예제 중세 농노제 등을 들지만, 이런 설명만으로 전근대 신분제의 충분한 해명을 하기 어려우며, 고대 로마의 만민법과 노예제는 신분법제의 범주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동양의 경우 국가형성기 이래 노비가 다수 존재했다고 해서 동양의 신분법제를 노비제라고 부를 수 없다고 본다. 동서양의 노비 노예 형태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한국사특강>, 개정신판,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출판부, 255~256p) 또한 조선의 신분제도도 갑오개혁 이전 18~19세기에 이미 붕괴되어 갔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한국사특강>, 269p)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16~17세기 양란을 거치며 양천제가 급속도로 무너졌고 조선 정부가 노비를 해방시키는 것을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했기에 양인 인구 증가가 이뤄졌다고 서술하고 있다.(<다시 찾는 우리역사>, 제2전면개정판, 한영우, 경세원, 378p) 김성회가 제시한 정체불명의 1890년대까지 노비 비중이 40~50% 수치조차도 틀렸다. 연구에 따르면 18세기 전반 울산 지역의 노비호 비중은 14%~0.6%로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었다.(<한국사특강>, 269p) 노비의 호구수가 급속하게 감소했다는 말은 당연하게도 노비들이 대거 신분상승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자료들은 교과서에도 그대로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부 검정, 금성출판사, 192p, "울산의 직역별 인구 구성비") 김성회의 글은 냉정하게 말해 한국사 교과서를 제대로 공부한 고등학생의 과제물보다 가치가 없다고 봐도 좋다.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대등 주요 명문대 교수들이 검토를 다 거친 팩트가 나와 있음에도, 자료를 자기들의 의도에 맞게 취사 선별하여 우리가 소수 목소리지만 진실이라고 떠드는 게 뉴라이트 학자들이기에 환빠의 극우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정약용에 관한 명예훼손은 정약용 종가에게 고소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양인이 20~30%였고 이들이 군역을 다 떠맡았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우선 조선 초기의 군역제도를 보면 군역을 담당하는 양인들은 정군, 또는 정군을 보조하는 보인으로 배정되었고 공노비와 사노비를 포함해 나머지 신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잡색군이나 잡색군을 보조하는 보인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당시 군역제도를 보면 잡색군과 정군 모두 기병의 경우 보인이 3명, 보병의 경우 2명 배정되는 형태였고 정군에 속하는 수군의 경우 3명, 갑사의 경우 4명이 배정되는 등의 형태였는데 잡색군은 거의 다 보병이고 수군이나 갑사 등은 아예 잡색군에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군 한 명당 배정되는 보인의 수는 평균적으로 잡색군에 비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군역제도의 구조로 보았을 때 만약 양인의 비율이 20~30%였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군의 수가 잡색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잡색군의 수는 정군의 2/3 수준이였다. 정군 한 명당 배정되는 보인의 수가 잡색군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는 정군, 또는 정군을 보조하는 보인으로 편성된 양인의 수가 잡색군, 또는 잡색군을 보조하는 보인으로 편성된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양인이 전체 인구의 20~30%였고 이들이 군역을 다 떠맡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매우 다른 주장인 것이다. 또한 노비가 전체 인구의 40%라는 주장 역시 잡색군에 소속된 각종 중인 계층, 장인, 목자 등의 수가 결코 적지 않으며 양쪽에 모두 소속되지 않는 교생, 승려 등의 수도 무시할 수 없는 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21년 3월 인터넷 웹진 '제3의길'에 쓴 조선시대 절반의 여성이 성노리개였다는 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엉뚱한 노예제나 북한 인권 문제를 빗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의 발언을 갈릴레오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발언에 비유한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적절한 근거 없이 자신의 발언을 팩트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 논란을 가중하는 것이다.

 

 

중도입국 자녀 관련 허위주장

김성회: 정부에서 숨기고 있는데 이 경우가 비공식 조사에 의하면 4%만이 정상적인 중도입국자녀입니다.
김대호: 96%는 가짜?
김성회: 네. 친척을 자기 자식이라고 속이고 데리고 가고, 그 경우입니다.

 

중도입국 자녀는 한국인과 재혼한 외국인 배우자가 데리고 들어온 아이들을 말한다.

2021년 9월, 김성회는 보수 유튜브 방송인 펜앤드마이크TV 에 출연해 "정부에서 숨기고 있는데 비공식 조사에 의하면 4%만이 정상적인 중도입국자녀다", "나머지는 친척을 자기 자식이라고 속이고 데리고 가는 경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KBS에 김 비서관이 언급한 통계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복수의 다문화 전문가들도 처음 들어보는 수치라고 밝혔다.

 

5월 12일 새벽, 김성회는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중도입국 자녀를 받아들인 이유는 재혼 결혼 이주 여성 중에서 본국에 있을 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나은 아이를 어머니품으로 데려오자는 취지였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국 중도입국 자녀의 대부분은 결혼 이주 여성이나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국인들의 친인척들이었다.
그 비율이 92%까지 되었고, 정작 정확한 의미의 중도입국 자녀는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2015년 계명대 김혜순 교수의 논문 중, 중도입국 자녀에 대한 실태조사로 확인되었다.
<김성회 종교다문화비서관 SNS 게시글 중>

 

KBS 취재진이 김혜순 교수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김 교수는 "김성회 비서관이 (제 논문을) 인용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걸 쓴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 교수가 작성한 2015년 <지역 사회 연구와 이민 현상> 논문을 비롯해 여러 저작물도 추가로 확인해 봤지만 "'중도입국 자녀'가 대부분 정부를 속이고 들어오는 비정상적인 사례"라는 김성회의 주장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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