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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4. 6. 17:21

김영춘 부인 자녀 고향 학력 프로필(부산시장 불출마?)


김영춘 부인 자녀 고향 학력 프로필(부산시장 불출마?)

 

김영춘

金榮春 | Kim Young-choon

 

출생

1962년 2월 5일 (60세)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거주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연지자이1차아파트

 

본관

김해 김씨

 

재임기간

제20대 해양수산부 장관

2017년 6월 16일 ~ 2019년 4월 2일

제33대 국회사무총장

2020년 6월 29일 ~ 2020년 12월 28일

 

배우자

심연옥

 

자녀

아들 김준현

 

학력

성지초등학교 (졸업)
부산개성중학교 (졸업)
부산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석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일본학 / 학사)

 

병역

면제 (수형)

 

종교

천주교 (세례명: 다니엘)

 

신체

175cm, 75kg, AB형

 

약력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윤봉길기념사업회 부회장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갑 /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갑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윤리위원장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사)인본사회연구소 소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제17대 문국현 대통령후보 상임선대본부장
창조한국당 최고위원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통합당 영남미래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제20대 국회의원 (부산 부산진갑 / 더불어민주당)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제20대 해양수산부장관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오륙도연구소장
더불어민주당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 상임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코로나19 비상대책특위 공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울경 코로나19 비상대책기구 공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공동선대위원장
제33대 국회사무총장
더불어민주당 2021년 재보궐선거 부산광역시장 후보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20대 해양수산부장관, 제33대 국회사무총장, 제16, 17대, 20대 국회의원이다.

1986년 26세 때 김영삼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하였다. 20대 때 정치를 시작한 덕분에, 5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년의 정치 구력을 가진 중진급 인사. 상도동계 막내 시절에는 '거산의 셋째 아들'로 불렸을 정도로 김영삼의 총애를 받았던 상도동계 직계 막내였다. 문민정부 때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일했고, 불과 35세의 젊은 나이에 YS로부터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는 등 누구보다 빠른 정치적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후 YS의 정적인 이회창계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회창의 정적인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으로 건너왔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 때문에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친노 세력으로부터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아왔고, 이후 친노 및 호남계와 잦은 마찰을 빚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시절 그의 의정 활동의 핵심은 국가보안법 개폐안이었다.

이후 2007년 노무현 정권 및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책임을 지겠다며 총선 불출마와 문국현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문국현 선대위 총괄 선대본부장을 역임했다. 2010년 민주당 손학규계로 다시 민주당에 복귀했으며, 손학규가 당권에서 물러나자 친노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19대 대선에서 김덕룡 지지 선언을 이끌어 대선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낙선, 박병석 국회의장의 부름으로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원과 지역 지지자들의 추대를 받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였다.

2022년 3월 21일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직업적 정치인의 길을 더이상 걷고 싶지는 않다"며 "그래서 다른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넘겨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했다"고 설명하며 부산시장 불출마 및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영춘 생애 학창 시절 학력 프로필

1962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부산 지역구가 있는 부산진구 성지초등학교, 부산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해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2021년 2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학부 재학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 학도호국단을 없애는 대신, 부활된 총학생회의 첫 번째 회장 선거에서 당선(서울대는 이정우, 연세대는 송영길)된 뒤, 같은 해 11월 민주정의당사 점거 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김영춘 정치 경력 이력 인맥 인간관계

상도동계 막내 시절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이후 당시 고향 부산 경남 지역의 정치적 상징이었던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YS가 민정당사 점거사건으로 구속된 학생들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한 것이 첫 인연이라고 한다. 이후 YS 비서실에서 그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영춘은 당시 학생운동계의 하나의 큰 조류였던 노동운동 쪽으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노동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1986년 직접 YS를 찾아갔다. 이를 계기로 민주화추진협의외(민추협)에서 김영삼 총재 비서로 활동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상도동계 안에서도 그는 김덕룡의 직계였다. YS의 비서가 되는 과정에서도 김덕룡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김영춘은 김무성, 정병국 등과 함께 상도동계의 막내로 통했다. 당시 YS의 아들 김현철보다 어렸다. 당시 김영삼이 김영춘을 워낙 총애해서 상도동계 선배들조차 김영삼에게 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아예 김영춘에게 직접 도움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87~88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로 활동하며 1987년 민주화 정국 및 이어지는 대선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1987년 대선 때 김영춘은 정치적 시련을 겪게 되었다. 당시 대선에서 학생운동권은 민주화운동의 두 거물인 김영삼, 김대중 중에서 김대중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려대 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은 당시 고려대에서 열린 시국토론회에 김영삼 총재가 참여하도록 강력히 주장했다. 당내 대다수의 중진들이 반대했지만 김영춘은 고려대에서 자신의 영향력으로 학생들의 지지를 김영삼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로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영삼 총재는 토론회 참석을 결정했다. 하지만 운동권 세력들은 이미 백이면 백 김대중으로 완전히 결집한 상황이었고, 고려대 시국토론회에 참석한 김영삼은 조롱과 야유만 실컷듣는 굴육을 당했다. YS는 “결정은 내가 했지, 영춘이가 했나?”라며 김영춘을 감싸줬지만, 김덕룡을 제외한 당내 중진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1988년 김영삼의 비서를 그만 두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있던 1990년 3당 합당이 일어났고, 이때 세력 확장에 골몰하던 YS가 김영춘의 합류를 요청했지만 김영춘은 이를 거절했다.

2년 후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YS가 다시 한번 김영춘의 합류를 요청했고 이에 민자당에 합류하며 정치계에 복귀했다. 이후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캠프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했다.

1993년 1월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하며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정권 출범과 동시에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정무비서관 등을 역임하였다.

1996년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YS의 권유를 받고, 불과 34세의 나이에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김영춘 본인은 고향 부산에서 출마하고자 했지만, 상도동계 선배들과 YS의 뜻을 받아들여 광진구 갑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이후 지역 기반을 다져 4년 뒤인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열린우리당 시절

김영춘은 김부겸,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등과 함께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독수리 오형제라 불리며 격한 환영을 받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 될 당시,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 야당의 탄핵안을 저지하기 위해 11일 밤샘농성을 벌인데 이어,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탄핵안을 통과시키려는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탄핵안 가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끝내 탄핵안이 통과되자 김 의원은 본회의 산회 직후 연단에 올라 "나는 오늘부터 이 더러운 국회의원 배지를 떼겠다. 당장 의원직 총 사퇴를 하자."고 말한 후 제일 먼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탄핵 정국 속에서 열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몰표를 맡아 무더기로 당선되었고, 김영춘 역시 광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며 열린우리당에서 서울시당위원장, 최고위원을 맡았다.

2006년 4회 지방선거 서울시장 강금실 후보 측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강금실 전 장관은 당시 참여정부의 첫 여성 법무장관으로 패션 리더로 거론되며 여론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신인이었고, 당내 기반도 전혀 없었다. 이때 김영춘이 강금실의 선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시절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급속히 추락하는 민심과 지지율 하락으로 열린우리당은 공중분해되었다. 하지만 김영춘은 당에 마지막까지 남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을 지냈고, 결국 스스로 당의 간판을 내리는 역할을 했다.

2007년 10월,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 측에 합류하여 선대위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김영춘은 "이 시대의 화두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과는 다르다"면서 문국현 후보는 "경제적 효율성만 추구하는 기업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문국현 후보는 무소속임에도 돌풍을 일으키며,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후보에 이은 4위를 기록했지만 20대 지지율이 높았기에 차기 대선을 노릴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론이 강했던 여론 속에서 치뤄졌던 2008년 총선에서 현역 지역구 의원 김영춘은 불출마 선언을 했다. 불출마 이유에 대해 "실패로 끝난 열린우리당 정권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국민들에게 직업 정치인인 제가 사죄의 뜻으로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번제물'이 총선 불출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계 은퇴는 결코 아니며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한 자숙 기간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영춘은 2년간 당적없이 야인으로 지냈다.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 자전거 & 도보 여행>(2011)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후 2010년 10월초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정계에 복귀하게 된다.

 

민주당 복귀

2010년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당선된 손학규가 김영춘에게 정계 복귀를 제의했다. 수개월 전 정세균 대표의 제의를 거절한 바 있었던 김영춘은 손학규의 제의를 받아들여 정계에 복귀했다.

김영춘은 정계 복귀와 동시에 서울 광진구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바로 고향인 부산 부산진구로 내려갔다. 이후 김영춘은 부산 지역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결국 3.8%포인트 차이로 낙선하였다. 낙선했지만 다음에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재출마할 의지를 피력했다. 선거가 끝나자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정책연구소인 (사)인본사회연구소를 서울에서 부산 서면으로 옮겨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 부산광역시장에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야권 단일화를 위하여 오거돈에게 양보하며 사퇴하였다. 그러나 부산시장선거에서 오거돈은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제20대 국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미 2012년부터 부산에서 약 4년 동안 지역기반을 다지며 노력했다. 중앙정치계에서 지방으로 진출하는 정치인들이 대개 자녀 교육 등을 고려해 가족을 수도권에 두고 단신으로 지역구 활동을 벌이는 것에 비해 가족을 모두 이끌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해 왔다는 점에서 지역 주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상대인 나성린 후보는 경선을 뚫고 공천되었기에 지역 사회에서 큰 주목을 끌었고, 부산에서 유일하게 야당 간판을 달고 3선이 되었던 조경태의 새누리당행, 야권의 분열 등으로 인해 악재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성린에게 크게 뒤진 상황이었다. (2016. 3. 23. 부산일보 여론조사: 나성린 57.3%, 김영춘 25.7%). 당시 새누리당은 부산 싹쓸이를 낙관하고 있었다.

선거 직후 방송사 출구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개표 이후 계속 앞서갔다. 개표 90% 시점에서 당선을 확정했다. 총 득표 45,706표 (49.6%).

20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 당선자 전재수, 김해영, 박재호, 최인호와 더불어 '新'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다. 부산시당 위원장으로서 부산에서 5석을 건짐과 동시에 부산의 심장인 서면까지 공략에 성공하여, 더불어민주당의 영남권 약진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국회에서 3선 의원으로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해양수산부장관

2017년 대선 당시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김덕룡으로부터 문재인 지지선언을 이끌어내, 대선 승리공신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춘을 해수부 장관으로 지명하였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바로 다음날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문재인 정부 1기 해수부 장관 임명 이후, 세월호의 구조 책임 문제로 사라졌던 해경을 부활시켰다. 뉴스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진상규명과 후속대책을 약속하고, 일본 대사를 접견해 해양 수산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양 경제 활성화를 위해 포항과 울산 등 해양도시에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었던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출범시키고, ‘재조(再造·다시 만듦)해양’의 의지로 해양강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등, 해수부의 위상을 제고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부산에 유치되어, 부산 정치인으로서 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2018년 5월 8일 머니투데이에서 발표한 '18개 부처 장관평가에서는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여야의원들은 ▲야당과의 관계 설정, ▲높은 부처 장악력, ▲여야 없는 중립적인 정책설명 등을 김영춘 장관의 장점으로 꼽았다. 

2019년 4월 3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1년 9개월 재직 후 퇴임하여, 역대 최장수 재임 장관 기록을 달성하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김영춘이 이끄는 해양수산부는 사상 최초로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아 행정가로서 김영춘의 능력이 인정받았다고 평가된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한강 이남' 최대의 총선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였던 부산진구 갑 총선은 PK 민주당의 대표 주자 김영춘과 친박계 중진의원이자 전직 부산시장 서병수가 맞붙는 승부처가 되었다. 지역 언론에서는 이를 양당의 대표적인 차기 대선주자인 이낙연과 황교안이 맞붙는 종로구에 비교하기도 했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김영춘 후보가 소속된 부산진구 갑에서만 총 15번의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각 여론조사 모두 오차범위 이내의 경합이었다. 특이한 점은 국제신문(폴리컴, 3월 20~21일), 부산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 3월 25~26일)(한국사회여론연구소, 4월 6일)와 부산MBC(한길리서치센타, 4월 4~5일)의 지역 언론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서병수 후보가 앞섰고 매일경제(알앤써치, 3월 23~25일),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3월 31일~4월 1일), TV조선(메트리스리서치, 4월 2일), KBS(한국리서치, 4월 2~4일), 국민일보/CBS(리얼미터, 4월 4~5일), JTBC(한국갤럽조사연구소, 4월 4~5일), 서울경제(엠브레인리퍼블릭, 4월 6일), 문화일보(엠브레인리퍼블릭, 4월 7일), 뉴시스(리얼미터, 4월 7일), SBS(입소스, 4월 5~8일) 처럼 전국언론과 중소언론이 의뢰한 여론조사 및 회사 자체조사(싸이리서치, 3월 30일)에서는 김영춘 후보가 앞섰다.

선거 당일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는 43.5%를 획득해 서병수의 49.6%에 6.1% 차이로 뒤쳐졌고, 최종 결과 김영춘 45% : 서병수 48.5%로 3.5% 차이 낙선하였다. 보수표를 깎아먹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무소속의 정근 후보가 예상 밖으로 5.5%밖에 득표하지 못하면서, 서병수 후보에게 보수표가 몰린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등 집권여당은 도합 180석의 대승을 거두었는데, 부산에서는 의석수가 오히려 기존 6석에서 3석으로 줄어들었다.

낙선요인 분석

김영춘이 장관으로 임명되고 너무 오래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게 된 것이 낙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있다. 김영춘으로서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며 부산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유치하기도 하고, 북항 재개발에 적극적이었던 등 부산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한 측면이 있다.

  • "장관을 지내서 낙선했다"는 분석은 타국의 사례를 볼 경우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임하는 것은 내각제적인 요소인데, 대한민국은 비록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이렇게 내각제 요소가 일부 가미되어 있다. 정작 장관을 지낸 국회의원인 진선미 등은 접전 끝이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임하는 것은 내각제, 특히 영국식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을 따르는 나라(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는 흔한 일인데, 만약에 김영춘이 "장관직을 지내서 낙선했다"면, 이런 나라에서는 내각 구성원들은 다 떨어져야 맞다. 즉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봐야 할 수도 있겠다.
  • 그 진선미조차도 상대방이 연고가 없는 후보여서 그렇지 연고가 있었던 후보였다면 장담 못했고, 도종환도 만약 상대방의 공천 실패가 아니였다면 장담 못했다. 거기다가 김영춘은 부산광역시에서 고작 초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직으로 간다면 지역구민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이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통치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하는 정치구조적인 쟁점과, 그 장관직 수행으로 인하여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게 되는 문제는 별개로 구분해야 된다.
  • 그러나 예외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법이다. 김영춘이 부산 출신 국회의원의 소신을 가지고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부산을 위해서 일은 하였으나 부산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거나, 인지했더라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오해하여 낙선한 것일 수도 있다. 위에서 "만약에 김영춘이 장관직을 지내서 낙선했다면, 이런 나라에서는 내각 구성원들은 다 떨어져야 맞다"라고 써 놓았는데, 너무 성급한 일반화라고 본다.

부산의 정치 문제에선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정치현안 관련 이슈에서 빼놓을 수 없다. 부산 지역민들은 빨리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해결하라며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상당한 지지를 보였다. 이는 캐스팅보트인 기성 세대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엄청난 기대를 불러왔는데, 김현미 장관의 어마어마한 시간지연으로 "신공항 빨리 해결하라고 3번이나 찍어줬는데 바뀌는게 없다" 같은 이유들이 작용했다. 특히나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21대 총선에서 어지간한 곳을 제외하면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정도라 특히나 아쉬움을 삼킨 부산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현미는 미래통합당에서 부산을 되찾기 위해 보낸 X맨이다"라고 비꼬는 등 김현미에 대한 반응도 매우 안 좋고, 민주당에서도 PK와 TK를 따로 분리하고 봐야하는데 괜시리 한데 묶어서 보는 바람에 당 전략이 실패한 것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영춘으로는 어떻게든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는 셈이다.

유시민은 선거 이후 '알릴레오'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낙선한 김영춘, 남영희, 박수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정도로 '유시민의 180석 발언'이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서울경기인천, 대전충청, 전라남북, 제주 등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싹쓸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TK와 PK 보수 유권자들을 결집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오거돈 부산시장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당선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이 요인을 보면 전 부산시장이었던 서병수를 뽑아준 구민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부산경실련은 21대 총선 후 미래통합당이 15석, 더불어민주당이 3석을 기록한 부산 총선 결과에 대하여 부산지역 전문가와 오피니언리더 등 110명에게 문의한 결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시정에 대한 실망 및 비판"이 1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21대 총선을 앞둔 2020. 4. 8.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전국 시도지사 지지도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은 37.2%를 기록해 전국 시도지사 17명 중 16위에 머물렀다. 오거돈에 대한 최악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경쟁후보였던 서병수 전 부산시장에 대한 부정평가를 상쇄시킨 측면도 있었는데, 결국 오거돈 시장은 마지막까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며 2020년 4월 23일 시장직을 전격 사퇴하기에 이른다. 어떻게보면 김영춘 개인에게 있어서는 부산시장 선거를 오거돈에게 양보했던 것이 2년 뒤 예상치 못했던 나비효과로 돌아온 것.

 

제33대 국회 사무총장(장관급)

제21대 국회 개원 이후, 박병석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유인태 사무총장의 뒤를 이은 21대 국회 첫 사무총장으로 내정되었고, 2020년 6월 29일, 찬성 177표로 김영춘 국회사무총장 임명안이 가결되면서 공식적으로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사무처를 총괄하는 장관급 포지션으로, 국회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 직원들까지도 관할하는 총책임자 자리이다. 이로서 김영춘은 해양수산부에 이어 국회라는 대규모 조직을 관할하는 장이자 행정가로서의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이는 향후 큰 정치적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월 30일 발표된 국제신문-폴리컴 2021년 재보궐선거 부산광역시장 지지도 조사에서 11.9%를 기록하며 전체 3위, 여권 1위에 올랐다. 여권 후보 중은 유일하게 두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1위를 기록한 국민의힘 김세연 전 의원이 9월 4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의 뒤를 이어 전체 2위가 된 셈.

9월 18일 일요서울 심층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내에서 김해영 전 최고위원과 변성완 부산시장 대행의 지지율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자 김영춘 국회사무총장에게 출마를 적극 권유했고 김 사무총장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12월 17일, CBS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약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2월까지 입법할 경우 보궐선거에 무조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12월 22일, 부마항쟁 이후 2020년까지 약 41년간의 한국 현대사를 당대사로 다룬 고통에 대하여 : 1979~2020 살아있는 한국사를 출간하게 되었고, 15일엔 YTN 라디오에 출연하여 "역할있다면 피할 생각 없다.“고 의사를 밝히는 등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2020년 12월 28일 국회사무총장식을 사임하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갔다. 후임 총장으로는 21대 총선에서 컷오프]된 이춘석 전 의원이 내정되었다. 이춘석 전 의원이 1월 8일 본회의에서 국회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되면서 사무총장 사퇴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낙선

오거돈 부산광역시장이 성추행을 이유로 2020년 4월 23일에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선거 전까지는 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고 2021년 4월 7일에 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됐다.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내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로 김영춘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영춘은 2014년과 2018년에 부산시장에 출마하려다 무소속 오거돈에 후보직을 양보한 전례도 있다(김영춘은 이에 대하여 이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다만 총선에서 낙선한 사람이 바로 재보궐선거에서 마저 낙선하면 진짜로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아야할 정도로 큰 위험부담이 있다. 특히나 PK 지역 총선 부진에 더해 오거돈 사태까지 터지면서 "동남권 신공항을 바로 통과시키는 지역호재가 있지 않는 이상 민주당은 부산에서 향후 10년 동안 힘들다."란 비관적인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라서 김영춘이 이러한 것들을 다 끌어안고 출마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2021년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졌잘싸 구도로 상당한 득표에 성공하면, 2022년 3월 벚꽃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허니문 기간인 2022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2021년에 무조건 김영춘이 안 나온다고 단언하는 것도 섣부르다. 결국 김영춘 개인의 선택과 당에서 누구를 밀어주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여론때문인지 오거돈의 사퇴 뉴스가 나온 2020년 4월 23일 오전 11:15~16 사이 김영춘의 이름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10위 사이에 랭크 되는 등, 관심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6개월 앞둔 2020년 10월, 언론에서는 김영춘과 서병수의 리매치를 예상하고 있다. 서병수 의원이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굳힐 경우, 그의 사퇴로 공석이 될 부산진구 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산 정치의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대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검찰로부터 라임 사태 연루의혹 관련 소환조사를 통보받은 상황이라, 경우에 따라서 상황의 변화도 예상된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처리한다고 약속을 확실하게 해주면 보궐선거에 무조건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2월 28일 국회사무총장직 사퇴 이후, 경남으로 내려와 김해 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후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 북항 재개발 지역 등을 연달아 방문해 부산 지역 현안을 챙기고 있다고 한다.

이어 2021년 1월에는 변성완 부산시장 대행,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을 연달아 만나면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사실상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보궐선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중에는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고, 여론조사 가상대결은 민주당 후보로는 거의 김영춘 전 사무총장을 내정한 채로 이뤄지고 있다.

1월 12일, 부산 영도구의 한 카페에서 공식 출마 선언 예정이다. 이로서 민주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으로 밝혔다.

1월 13일, 오후 2시 여권 후보 중엔 처음으로 부산시장 보궐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사과하면서 출마 선언을 시작했는데 해수부 장관 시절을 회고하며 "해운 재건 계획 등으로 비록 지난 시장 선거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부산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 진정한 반성은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철저히 검증하고 평가해달라"고 당부했다.

보궐선거 1호 공약으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함께 이와 연계할 준고속열차 설치를 내세웠다. 동시에 낙후된 서부산권에 아마존닷컴, 알리바바 등 글로벌 물류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1월 21일, 부산을 방문한 이낙연 대표와 함께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해 2월 임시국회 때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여당 단독으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월 27일, 변성완 전 부산광역시장 권한대행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경선은 김영춘 vs 변성완 vs 박인영의 3파전이 되었다. 2월 7일에는 민주당의 영남권 국회의원과 부산·울산·경남도당 위원장과 함께 가덕도 대항전망대에 다시 방문하여 가덕도신공항건설촉진특별법안 국회통과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2월 26일 통과되었다.

2월 17일 있었던 민주당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는 다른 후보들과 함께 국민의힘이 내세운 한일해저터널 제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편 알리바바를 부산에 유치하겠다는 김영춘의 공약도 현실성이 없다며 타 경선 후보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3월 6일, 최종 경선에서 67.74% 득표를 올리면서 박인영, 변성완 예비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이기고 본선에 진출하여 재보궐선거 부산광역시장 최종 후보로 뛰게 되었다. 김영춘 개인으로서는 부산시장 도전 3수 끝에 드디어 본선 진출. 후보 선정 직후 다시 한번 전임 민주당 시장의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열리는데 대하여 사죄의 절을 올리고, 하지만 “부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시장이 나와야 한다는 책임의식에서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3월 18일, 김영춘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3월 23일 11시까지 자신과 그 직계존비속의 과거 20년간 부동산 거래내역과 등기부등본 등 관련자료 전부를 언론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며, 박형준 후보도 검증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부산의 명소 해운대를 망가뜨린 그 '아파트'에서 1년도 안 되어 시세차익만 40억원을 벌어들인 것이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하셨나고 물었다.

4월 7일, 개표 결과 낙선이 확정되었다. 워낙 크게 패했던지라 평가도 엇갈렸는데 보궐선거를 만든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오 시장이 소속되어있던 민주당의 후보로 나선데다가, 선거 직전 LH 투기 사건 등 악재가 연속으로 터진 상황이라 사실상 후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사지에 나섰음에도] 의지를 가지고 선거를 끝까지 완주한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이 있고, 그럼에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전임 시장 문제에 대한 사과와 정책검증보다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에 지나치게 매달렸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측도 있다.

4월 12일, 정세균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식 지명될 경우, 문재인 정부의 잔여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점을 고려해볼 때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4월 16일, 같은 영남이지만 TK를 지역 기반으로 둔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이 지명되면서 재입각은 무산되었다.

 

정계 은퇴

2022년 3월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차기 지방선거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소감문에서 "2011년 부산으로 귀향해서 일당 독점의 정치풍토 개혁과 추락하는 부산의 부활에 목표를 두고 노력해왔고 그 목표는 절반쯤 성공을 거둔 것 같다"고 자평하며 부울경 메가시티 건설, 가덕도신공항 건설, 북항재개발 1·2단계 사업, 부산항 신항 추가 확장 등을 성과로 열거했다. 

 

 

김영춘 정치 성향

김영춘 "저는 정말 자부심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게 젊은 정치를 했던 청년 YS정신, 염산테러를 당하면서도 박정희한테 굴복하지 않았던 그 김영삼의 정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야당 총재를 제명시키던 정권과의 그 험한 싸움을 감당했던 70년대 말의 그 김영삼 총재의 정신, 이게 내가 자부심으로 갖고 있는, 내가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였다는 자부심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청년 YS의 제자라는 것입니다."(딴지일보 인터뷰, <착륙을 준비하는 부산 갈매기, 김영춘을 만나다>, 2012. 4. 3.)

 

김영춘은 상대당 국회의원들("김영춘 장관은 야당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이나 지지자들("김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보통 인물론")로부터 "인물이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그 이유는 YS 직계 출신으로서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비노 그룹이었던 김영춘의 특수한 위치 때문이었다.

YS가 총애하던 30대 정치인이었고 YS 밑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고 그의 공천으로 불과 만 34세의 나이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지만, YS 레임덕 시기에 YS와 대립하던 이회창으로 갈아탔고, 이회창이 낙선한 후에는 이회창의 만류를 뿌리치며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비난했던 열린우리당을 택하는 정치적 선택을 한다. 또한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을 때 대부분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여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재기를 노릴 때, 김영춘은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선언을 한 후 '사람 중심 경제'를 외쳤던 문국현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이후 손학규에 의해 부산 공천을 받고 손학규 직권으로 민주당 최고의원에 선임되었고, 2012년 대선에서 손학규 후보 측으로 뛰었지만, 이후 손학규가 당권에서 멀어지자 2013년 이후 손학규와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김영춘은 2013년에도 "386 정치인들은 줄서기에 급급해 약자를 대변하지 못했다"며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김영춘은 선거 결과나 나올 때마다 줄을 다꿔 타는 전형적인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어려차례 받기도 했다.

친노와는 사실 오랜 기간 앙숙으로 지내왔다. 이미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 총괄본부장을 맡으며 노무현 후보를 여러차례 저격했었다. 그러나 이회창이 몰락하자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친노들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왔다는 상징성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김영춘의 입당을 환영했지만, 실제로 당내에서 김영춘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특히 2005년에 유시민을 비판했는데, 당시 당내 여러 중진들이 유시민을 비판했지만, 그중에서 김영춘만 친노 지지자들에게 타깃이 되어 철새 정치인, 너나 잘해라라는 원색적인 비판을 듣게 되었고, 이후 열린우리당이 무너질 때까지 그는 당내에서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008년 열린우리당의 후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면서 친노를 저격한 후 친노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다.

이후 손학규계로 민주당으로 복귀한 후에는 친노 측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면서 여전히 친노 측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 손학규는 몰락했다. 한때 안철수 쪽으로 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았지만 그는 민주당에 남았다. 그후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을 추모한다고 말하며 친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덕인지 부산진구 갑에서 민주당 당적으로 승리하는 쾌거를 올린다.

이후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측과 정치적 이해 관계가 맞물리며 관계 개선을 하게 되었다. 특히 YS와 김덕룡의 직계이자 최측근이었던 김영춘은 YS의 정신적 후계자 노릇을 하고 있던 김덕룡을 설득하여 문재인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그결과 YS에 우호적인 영남 보수층의 표를 상당히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김영춘은 문재인 후보 당선의 최고 공신 중 한명이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해양수산부 장관에 김영춘을 임명하면서 빚을 갚았다.

한편, 김영춘은 스스로에 대하여 진보라기 보다는 개혁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정동영이 "확실한 진보"를 외칠 때 김영춘은 "합리적 보수도 함께 가야한다"고 외치는 등 진보 보다는 리버럴(liberal)로서 민주당 정치인으로서의 컬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력세습을 단호히 비판하고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특색 때문에 김영춘은 계파나 조직이 없다. 그러한 점 때문에 본인은 스스로를 '타협과 책임의 정치'에 능한 정치인이라고 설명한다. 

계파와 정파를 뛰어 넘어, 지방분권을 실현하고 경제, 사회, 정치, 통일 등 모든 것을 내다보는 총체적인 국민적 토론에 근거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제 4년 중임제 개헌을 통해 적대적인 증오와 대립의 정치를 끝내고, 준연방제 개헌을 주장한다.

김영춘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다. 모든 지방 경제는 수도권에 의존해 연명을 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 방치하면 썩어서 돌이킬 수 없을 지역의 경제 잠재력을 다시 활성화함으로써 대한민국 전체의 경제 성장 동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부산일보, 김영춘 “부울경 메가시티 최종 목표는 준연방제 개헌”, 2020. 1. 14.)

 

 

김영춘 논란 사건 사고

철새 정치인 논란

이인제, 김한길, 강길부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철새라고 욕을 많이 먹는 편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선거 때마다 철새 정치인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처음에 김영삼에 의해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으로 정치계에 입문해 신한국당에서 공천까지 받았지만, 김영삼이 퇴임할 때 즈음 세력이 약해졌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김영삼의 정적이었던 이회창계로 갈아탔다. 이때 일각에서 배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상도동계와 이회창계에 몸담는 동안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와 대립각을 세워왔고, 김대중이 현역 대통령 시절 '신독재'라 부르며 김대중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었다.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 측 총괄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를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난하는 등 노무현 후보를 여러차례 비난했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패한 후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계와 상도동계의 당내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상도동계와 이회창계에 모두 걸쳐 있었던 김영춘은 당내에서 자신의 지위가 불안해지자 곧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신생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다. 한나라당 시절만 해도 노무현과 친노를 그렇게 비난하더니 정작 같은 당 소속이 된 셈이다. 이때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김부겸,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5인을 '독수리 오형제'라고 언급되는데, 이는 사실 당시 이들을 철새라고 하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만든 별칭이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해 민주당계 정당에 몸담게 됐지만,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전력 때문에 당시 열린우리당 주류였던 친노 및 정동영계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며 당내 주류들과 여러차례 갈등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친노 진영과는 관계가 상당히 나빴고, 특히 2005년 유시민을 비판했다가 친노, 호남계 모두에게 비판받으며 당내에서 입지가 사실상 박살나고 말았다. 당시 유시민 지지자들은 김영춘을 향해 "김영춘은 철새, 유시민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열린우리당이 공중분해되던 와중에도 어디에서 쉽사리 참여할 수 없었기에 탈당하지 못하고 있다가 막판에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으나 이마저도 17대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탈당, 창조한국당에 합류한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만도 못한 당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17대 대선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고, 대선이 끝난 후 얼마 안 되어 열린 18대 총선 역시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되자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책임지며 국민에게 사죄하겠다"며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에도 "열린우리당은 실패한 당"이라고 주장하며 친노 계열, 열린우리당계를 대놓고 비판했다. 한편 이 시기 문국현 및 창조한국당 중진들과의 갈등으로 17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직전 창조한국당을 탈당,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갔다.

이후 정계와는 거리를 두고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부산 공천을 제의하자 민주당에 재입당했다. 복귀 직후 기존 지역구였던 서울 광진구 사무실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상술했지만 민주당 주류인 친노, 호남계 모두와 껄끄러웠기 때문에 중앙 정계와는 거리를 두고 부산 지역구 관리에 전념했다.

이러한 정치 행보로 인해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주류 지지자들로부터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2년 총선 때는 기존 광진구 갑 지역구 대신 고향인 부산진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면서 철새 정치인 논란이 일었었다. 경쟁이 버거운 서울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지지 기반을 쉽게 다질 수 있는 고향으로 내려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이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얼굴이었던 유시민이 기존에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던 고양시 덕양구에서 지지율이 떨어지자 돌연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출마했던 전력이 언급되기도 했다.

철새라는 비판에 대해 김영춘은 "저는 제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더 출세하기 위해서, 국회의원에 더 쉽게 당선되기 위해서 그런 행보를 보인 적이 한번도 없다. 철새들은 추운데서 따뜻한 데로 날아다닌다. 하지만 저는 항상 따뜻한 곳에서 더 추운 곳으로, 더 어려운 그런 상황으로 저 스스로를 내몰아 갔다."고 말하며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반박했다.

 

라임 사태 연루 의혹

2020년 라임 사태 초기부터 연루설이 돌았으나 김영춘은 부정하였다. 그러나 11월 시사저널은 김봉현 라임 회장이 김영춘에게 2억 5천만원의 금품을 줬다고 말한 녹취록을 단독 보도했고, 김영춘은 부인하며 김봉현과 녹취록을 보도한 시사저널을 고소했다.

 

친형과 부산진구청의 땅 특혜거래 의혹

2020년 4월에 노컷뉴스에 의해 최초로 보도되었던 친형의 땅 특혜매매 의혹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다. 김영춘 후보는 지방선거 전 구청의 매입이 결정됐고, 행정 절차를 거쳐 선거 뒤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며, 감정 평가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해 특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가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흑색선전에 나섰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 과정에서의 논란

"부산은 3기 암 환자" 지역비하 발언 논란

3월 26일 부산광역시를 3기 암 환자에 비유하면서 자신이 시장이 되려는 지역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암 환자들에게게 상처를 준다는 비판도 받게 되었다. 설사 좋은 의도 한 말이었다고 해도, 전임 부산시장은 민주당 사람이었고, 지난 4년간 대통령도 PK 출신에 민주당 사람이었으니 이는 자폭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이로 인해 민주당 인사들의 과거 부산광역시 지역비하 이력들도 재조명되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운동에서 "부산이 초라하다는 민주당 대표, 부산이 한심하다는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부산이 암 환자라는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이런 정당 뽑고 싶은가"라며 "김영춘, 이해찬, 박재호 세 사람은 부산이 그렇게 싫은가. 부산을 초라하고 한심하다고 한 것도 모자라 암환자에 비유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사실관계 틀린 박형준 후보 고발장

김영춘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측에서 박형준 후보와 배우자 조현 씨를 공직선거법, 주민등록법, 지방세기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 후보가 주소를 허위기재했고 비거주용 건물에 전입 신고를 했으며, 지방세 과세 대상에서 누락되었다는 것.

그러나 고발 과정에서 토지의 소유주와 건축 시기 등에 대한 기초 사실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고발장이 작성됐다. 박형준 후보 부부의 소유가 아닌 바로 옆 건물을 착각한 것이다. 결국 김영춘 후보 관계자는 "해당 부분에 대해서만 취하를 하고 다른 고발건은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영춘 저서 책

2021

호밀밭

희망에 대하여 : 부울경 메가시티(공저)

 

2020

이소노미아

고통에 대하여 : 1979~2020 살아있는 한국사

 

2014

호밀밭

김영춘의 부산희망찾기 길에서 만난 부산, 부산의 길을 찾다!

 

2011

도서출판청람

나라 뒤집기 사람의 정치학

 

2011

세상의모든책들

대한민국 자전거 & 도보 여행

 

2006

범우사

新 40대 기수론

 

2003

새로운사람들

내 손으로 바꾸는 정치

 

 

김영춘 여담 일화 인간관계 인맥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5년 유시민에 대해서 '저토록 옳은 말을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도 재주'라고 한 발언이 유명하다. 김영춘은 위 표현이 언급된 글에서 유시민의 정치스타일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김영춘은 유시민을 비판했다가 분노한 유시민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노들의 맹공을 받아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찍쳤고,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정치 생명은 거의 끝나다시피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 2021년에 호를 '가덕'으로 지었다고 한다.가덕 김영춘 동남방언으로 '가득'을 발음할 때 '가덕'에 가깝게 들리는 점도 있어 마음에 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영삼은 김영춘과 이명박을 모두 아꼈고, 김영춘 또한 상도동계의 일원으로써 김영삼이 서거할 때 까지 계속 친밀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회창이나, 상도동계 대부분의 지지를 받아 17대 대통령이 된 이명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비판을 했다. 원래 YS계였지만 YS가 퇴임하고 상도동계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히 나빠지자 당시 YS를 비판하며 대세 정치인이 된 이회장계로 갈아탄 바 있다. 때문에 한때 김영춘은 '이회창 키즈'로 불렸다. YS계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지만 결국 그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당직을 맡으며 정치지망생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이회창 총재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회창의 공천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2030 총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회창은 대선에서 2회 연속 낙선하고 완전히 몰락했고, 김영춘은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꾼 후에는 자신의 옛 주군인 이회창을 심심치 않게 비판했다. 문국현 역시 마찬가지로, 김영춘은 문국현 지지를 선언하고 민주신당을 탈당하고 문국현의 선거 본부장을 맡았지만 문국현이 선거법 위반으로 몰락하자 또다시 문국현을 맹비난하며 탈당했다.

김영춘의 가장 큰 정치적 후원자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문정수 전 부산시장으로, 모두 김영춘의 후원회장을 맡은 바 있다. 강금실은 선거철마다 김영춘에 대한 지지글을 이어가며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같은 당 후배인 최인호, 허인회와 더불어 출구조사의 대표적 피해자이기도 하는데(...) 피해 사례는 아래와 같다.

15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당선 유력으로 나왔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상우 후보에게 패배.

19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경합우세로 나왔으나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에게 패배.

21대 총선: JTBC 예측조사에서 경합우세로 나왔으나 미래통합당 서병수 후보에게 패배(김영춘 53.5% : 서병수 38.7%).

의외의 당적으로 창조한국당에 입당한 적이 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17대 대선 때 참신한 이미지로 나름의 지지를 모으고 있던 문국현이 이끌던 창조한국당에 입당했었는데 얼마 안 가서 18대 총선을 앞두고 문국현의 독선적인 당 운영을 비판하며 탈당했다.

개비스콘으로 유명한 김하균 씨가 지지선언을 한 바 있다.

2020년 4월 2일 선거를 앞두고 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과 클리앙에 인증글을 남겼다.  

2021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를 7년만에 졸업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 이전의 인터뷰에서 '만약 진실 한 가지를 말해 주는 수정구슬이 있다면 무엇을 알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지구 밖 어느 별에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가 있는지 알고 싶다'라는 답변을 남겼다. 반응은 60대 정치인치고는 꽤나 순수하다는 반응이다.

 

 

김영춘 선거 이력 경력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22,309 (27.93%)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37,446 (50.79%)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44,519 (50.73%)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34,238 (35.76%)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5,706 (49.58%) 당선 (1위)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48,287 (45.02%) 낙선 (2위)

 

2021

2021년 재보궐선거

부산광역시장

528,135 (34.42%)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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