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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고건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국무총리 2대 역임)

대한민국의 관료 출신 정치인이자 제30·35대 국무총리.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일시적으로 정지되었을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가원수의 직무를 수행했다.

 

정치인 고건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국무총리 2대 역임)

 

고건 프로필
고건

 

고건

髙建 | Goh Kun

 

출생

1938년 1월 2일 (85세)

경기도 경성부 청진정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등록기준지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월하리

(현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본관

제주 고씨

 

 

우민(又民)

 

재임기간

제18대 전라남도지사 (관선)

1975년 11월 13일 ~ 1979년 1월 9일

 

박정희 정부 제2대 정무제2수석비서관

1979년 1월 10일 ~ 1979년 12월 6일

 

최규하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1979년 12월 6일 ~ 1980년 6월 7일

 

제27대 교통부 장관

1980년 9월 2일 ~ 1981년 3월 10일

 

제35대 농수산부 장관

1981년 3월 10일 ~ 1982년 5월 20일

 

제46대 내무부 장관

1987년 5월 26일 ~ 1987년 7월 14일

 

제22대 서울특별시장 (관선)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6일

 

제30대 국무총리 (문민정부)

1997년 3월 5일 ~ 1998년 3월 3일

 

제31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제35대 국무총리 (참여정부)

2003년 2월 27일 ~ 2004년 5월 24일

 

대통령 권한대행

2004년 3월 12일 ~ 2004년 5월 14일

 

부모

아버지 고형곤, 어머니 장정자

 

형제자매

형 고석윤, 고경

 

여동생

고혜경, 고혜련

 

배우자

조현숙

 

자녀

아들 고진, 고휘, 고위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52회)

서울대학교 (정치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학 / 석사)

 

병역

면제 (고령) 

 

종교

개신교

 

신체

180cm, B형

 

약력

제18대 전라남도지사 (관선)

박정희 정부 대통령비서실 제2대 정무제2수석비서관

최규하 정부 대통령비서실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제27대 교통부 장관 (전두환 정부)

제35대 농수산부 장관 (전두환 정부)

제12대 국회의원 (전북 군산시-옥구군 / 민주정의당)

제46대 내무부 장관 (전두환 정부)

제22대 서울특별시장 (관선)

제30대 국무총리 (문민정부)

제31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2기 / 새정치국민회의)

초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초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회장

제4대 명지대학교 총장

제35대 국무총리 (참여정부)

6공화국 대통령 권한대행

 

 


고건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38년 1월 2일 아버지 철학자 고형곤과 어머니 장정자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6.25 때는 아버지 고향인 전북으로 내려와 전주북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현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행정 관료로서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새마을 운동을 기획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이후 강원도 부지사, 내무부 지방국장을 거쳐 만 37세에 전라남도지사에 취임했다. 재임중 함평 고구마 사건을 수습했으며, 영산강 하굿둑 착공과 광주 하남공단, 여수 신항 사업 등을 추진했다.

 

고건 졸업사진고건 국무총리

 

1979년 박정희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 제2수석비서관이 되었는데, 이후 1980년 5.17 내란이 발생한 날 군정에 반대해 사임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가 완전히 들어서자 지인들의 요청으로 다시 교통부장관으로 들어왔고 민주정의당에 들어갔다. 이듬해 농수산부 장관을 지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이듬해 1984년 미국 M.I.T. 국제문제연구소 객원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곧 귀국한다. 1985년 민주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며, 민정당 지방자치제특별위원회 위원장, 1987년 민주정의당 전북도 지부장,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봉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5월에는 내무부장관이 되어서 6월 민주항쟁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물론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에 2개월만에 물러났다.

 

 

하야 후 종로구에 사무실을 하나 내고 정계에 거리를 두던 중 1988년 민주정의당의 군산지구당 위원장과 전라북도 지부장에 임명되었다. 임명 직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채영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또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노태우 정부의 관선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첫 서울시장 시절 고건은 서울의 교통 분야에 큰 공헌을 하였는데 실시간 교통 정보 전달을 위한 서울교통방송을 설립했고 서울내부순환도로를 만들었으며 2기 지하철 계획을 추진시켰다. 또한 임기중에 서울올림픽이라는 빅이벤트가 치러졌고 대한제국 황실 인물이었던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의 영결식도 재임기간에 열렸다. 하지만 한보그룹 측 조합들에 알짜배기인 서울 수서지구 택지를 특혜분양하라는 정권의 압력에 원칙을 고수하며 맞서다 1990년 연말에 괘씸죄로 짤렸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박세직이 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터지게 된다.

 

1991년 공동체의식개혁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1994년부터 명지대학교 제4대 총장직과 한국그린크로스 공동의장을 지냈고 총장 임기 종료 후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직에 임명되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였다.

이후 문민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호남계 인사이면서, 군사정권 하에서 승승장구했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넓은 인맥을 가졌으면서, 부패에서도 자유롭다는 점 덕분에 민주화 이후로도 중용되었다. 퇴임 다음 날인 차기 대통령 취임일 각료제청권을 행사한 뒤 물러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김종필 전 총리 서리가 인준되지 않았기 때문.

1998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당선되어 4년간 시정을 이끌었다. 당시 고건은 서울에 전국 최초로 온라인 민원 처리 공개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시내버스로 CNG(압축천연가스) 버스를 도입했고, 대중교통 환승할인 제도를 마련하고, 서울종합방재센터를 설립하고, 월드컵을 앞두고 공중화장실 선진화와 개방화장실 도입 등 많은 일을 했다. 또한 난지도 재개발과 서울월드컵경기장 건립, 월드컵 당시 서울 시내 운영 등 월드컵 관련해서도 서울을 무리 없이 이끌었다.

그리고 2003년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YS 시절에 이어 두 번째다. 군부-YS-DJ-노무현까지 좌우 가리지 않고 중용된 나름대로 화려한 실적. 국무총리 기록만 놓고 본다면 민주화 이후 각기 다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지낸 진기록을 갖고 있다.

이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게 된다.

 

정치인 고건고건 국회활동

 

대권주자 고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5월 24일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여러 정치 세력에서 일한 점과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직 수행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점을 인정받아 유력한 여권의 대권 후보로 떠오른다. 2006년 중반까지만 해도 차기대권주자 여론조사상 1등이 이명박, 박근혜가 아닌 고건이었을 정도였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2006년 고건 총리의 지지세력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일명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약칭 한미준)이란 당을 창당하기도 했으나 고건 스스로 '한미준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당'이라고 부인하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지지율을 어필할만한 매개체가 없어서인지 대권주자로서 스퍼트를 하지 못하며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되었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경제 성장에 대한 화려한 비젼을 내세워 여권 지지층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대권 주자' 고건의 중도 포기는 정권과 여당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2006년 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그 유명한 민주평통 연설에서 고건 전 총리를 "사실상 실패한 인사"라 평했는데, 이에 맞서 '대통령의 자기 부정'이라며 고건 전 총리가 발끈했고 여권 내에서도 큰 논란이 일어났다. 이후 이런 여권 내 갈등 때문인지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다. 고건은 동력을 잃었다고 느꼈는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 1월 16일 스스로 대통령 선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한다. 그리고 3년 뒤 정계도 은퇴하며 야인으로 돌아갔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그의 불출마를 아쉬워하던 한 지지자가 (고건처럼) 고향이 호남인데도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불출마 철회를 요구하자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이인제가 표를 분산시켰기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한다. 실제로 해당 대선에서 호남 출신의 정동영 후보는 큰 표차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으니, 고건의 정계 은퇴 결정은 지독히 '합리적'이었던 셈이다.

 

> 정동영 프로필 보러가기

 

 

그 후

2009년부터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가, 2013년 중앙일보에 자신의 공직자 시절을 비롯한 불출마 뒷이야기 등을 회고록으로 묶어 연재하였는데,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한 이유를 민주당계 정당 후보는 영남과 충청지역에서 어느정도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는데, 자신이 호남 출신이라 그런지 여론조사상 그 영남과 충청에서 지지율이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보여 포기했다고 밝혔다.

 

고건 노무현 권한대행고건 근황 인터뷰

 

고건 여담 일화

김종필, 이회창, 허정, 이해찬, 정세균과 함께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관선 전라남도지사와 정무제2수석, 최규하 정부에서 정무수석, 전두환 정부에서 교통부·농수산부·내무부장관, 노태우 정부에서 관선 서울특별시장, 문민정부에서 제30대 국무총리, 국민의 정부에서 민선 서울특별시장, 참여정부에서 제35대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 이명박 정부에서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성향이 다른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거듭 중용되어온 인물이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이양하 교수의 수필 중 <경이, 건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고건과 그의 형 고경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을 썼던 1940년 당시 동아일보에 실제 연재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국무총리에 지명된 1997년 같은 신문을 통해 다시 회자되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몸이 약해,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급정거한 버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다친 적도 있는데, 사실 그날 버스 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지만, 고건은 "평소 몸이 약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판단하고, 그날부터 아령과 역기 같은 운동기구를 갖춰 본격 몸만들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8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정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 시절부터 꾸준히 운동을 거르지 않은 덕분이라는 후문.

180cm에 육박하는 신장을 가진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가 태어난 연도는 물론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장신인 셈. 만약 대통령직을 역임했다면 역대 2번째로 장신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도 얻을 수 있었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 중 최장신은 182cm의 최규하이다. 얼굴도 하얗고 갸름하게 생겨 젊을 때는 한 인물했다고..

 

 

“2016년 10월 30일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사회원로 몇 명과 함께 차를 마시며 ‘국민의 의혹과 분노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를 표명하고, 국정시스템을 혁신해서 새로운 국정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진언했다”며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탄핵안이 발의, 가결됐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어린시절부터 공직생활을 마감하기까지를 담은 고건회고록:공인의 길을 출간하였다.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 기자간담회가 열린 현장에서 "아버지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 한다"라며 "정말 답답했다. 오만, 불통, 무능… 검증 안 하고 대통령으로 뽑은 것 아니냐"라면서 박근혜를 정면비판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장 시절 가정방문을 한 자녀의 담임선생님을 허둥지둥 맨발로 맞이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면서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2021년 9월 29일 부인상을 당했다. 같은 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부인도 세상을 떠났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권 2인자의 모습의 예로 '총리 전문 행정가'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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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정치고건 선거이력

 

고건 연도별 전체 약력

1950.4. 전주북중학교 입학

1956.3. 경기고등학교 졸업

1956.4.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입학

1959.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1960.3.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1961.12.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지방행정사무관 임용 (당시 3급 을류, 현 5급)

1962.6. 내무부 수습사무관

1965. 내무부 행정과 기획계장

1968.4. 지방행정서기관 승진, 전라북도청 식산국장 (당시 3급, 현 4급)

1970.3. 전라북도청 내무국장

1971.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1971.8. 행정부이사관 승진, 내무부 지방국 지역개발담당관→새마을담당관 (당시 2급, 현 3급)

1972. 홍조근정훈장 수훈

1973.8. 내무부 지방행정담당관

1973.11. 행정관리관 승진, 제4대 강원도 부지사 (1급)

1973.12. 내무부 지방국장

1975.11. 제18대 전라남도지사 (차관급)

1979.1. 제2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제2수석비서관

1979.12.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1980. 국토개발연구원 고문

1980.9. 제27대 교통부장관

1981.1. 민주정의당 입당

1981.3. 제35대 농수산부장관

1982. 청조근정훈장 수훈

1983. 미국 하버드 대학교 객원연구원

1984.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1985.2.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군산시·옥구군 후보 (민주정의당)

1985.4. 제12대 국회의원 (초선)

1985. 민주정의당 지방자치제특별위원회 위원장

1987. 민주정의당 전라북도지부장

1987.5. 제46대 내무부장관

1988. 민주정의당 군산시지구당 위원장

1988.4.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군산시 후보 (민주정의당, 낙선)

1988.12. 제22대 서울특별시장 (관선)

1991. 공동체의식개혁국민협의회 공동대표

1992. 원광대학교 법학 명예박사

1994.3. 제4대 명지대학교 총장

1995. 한국그린크로스 공동의장

1996.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1997.3. 제30대 국무총리

1998. 국제투명성기구 세계청렴인 상 수상

1998.4.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1998.6.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 (새정치국민회의)

1998.7.1.~2002.6.30. 제32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1999.1. 초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2001. 초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회장

2001.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 법학 명예박사

2001.3. 국제투명성기구 올해의 세계청렴인 상 수상

2002. 국제투명성기구 대한민국지부 회장

2002.9. 몽골국 북극성훈장

2003.2. 제35대 국무총리

2005. 암창 상 수상

2009.12. 초대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고건 선거 이력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군산·옥구

67,179 (49.71%) 당선 (1위)

초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군산

28,118 (35.54%) 낙선 (2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1,838,348 (53.46%) 당선 (1위)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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