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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정종섭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안전행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역임)

대한민국의 헌법학자, 법조인, 정치인.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쳐 박근혜 정부의 안전행정부장관, 새누리당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저서 '헌법학원론' 이 유명하다.

 

정치인 정종섭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정종섭 프로필
정종섭

 

정종섭

鄭宗燮 | Chong Jong-sup

 

출생

1957년 6월 16일 (66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본관

연일 정씨

 

재임기간

제3대 안전행정부 장관

2014년 7월 16일 ~ 2014년 11월 18일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박근혜 정부)

2014년 11월 19일 ~ 2016년 1월 12일

 

 

배우자

안영안

 

자녀

슬하 1남 2녀

 

학력

안강제일초등학교 (졸업 / 44회)

경주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 57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77 /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 / 박사)

 

병역

육군 대위 만기전역 (군법무관)

 

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및 교수

한국헌법학회장

안전행정부장관

제18대 여의도연구원장 권한대행

제20대 국회의원(대구 동 갑)

한국국학진흥원장

사단법인 세계신지식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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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57년 6월 16일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서 아버지 만취(晩翠) 정병찬(鄭柄璨, 1900. 12. 27 ~ 1966. 7. 6)과 어머니 달성 서씨(1916. 1. 15 ~ )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안강제일초등학교(44회), 경주중학교, 경북고등학교(57회)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77학번)에 입학하였다.

유신 시대 법대를 다니면서 헌법의 정당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서울법대 졸업 후 당시 소장 학자였던 허영 교수를 좇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헌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정종섭 프로필정종섭 장관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14기로 수료하고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육군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거쳐 1992년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 즈음 국내 최초로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여 각광받기도 했다.

1999년 9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회 정치쇄신자문위원회 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한국헌법학회 회장 대구대학교 임시이사 등을 지냈다.

제자로 전종익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상우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기현석 명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윤성현 한양대학교 정책과학대학 교수, 김정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석민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 등이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말 정부조직 개편으로 안전행정부의 일부 기능이 이관되고 행정자치부로 개칭되자, 2016년 1월까지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였다.

2016년 2월 서울대학교 교수 직을 사퇴하고,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이자 친이, 친유 정치인인 류성걸을 제치고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갑 선거구에 공천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한 류성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별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2020년 1월 19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국경제당 합류설이 있었으나, 조선일보로부터 핀잔을 듣고는 합류설을 부정했다. 대구 동구 갑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나선 이진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나, 결국 류성걸이 경선에서 승리하여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면서, 향후 정계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1년 3월 이철우 경북도지사에 의해 한국국학진흥원장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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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논란

청년 시기

1985년에 군법무관으로 입대해 1989년에 제대하였다. 그동안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며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제대 후 5개월 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박사 수학기간을 합하면 군 복무기간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3년 9개월이 된다. 이때 군 복무 지역인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용인군을 이탈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청문회 과정에서 지휘관의 영외 출입 허가를 얻어 다녔으며, 박사과정은 연구발표 방식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직무를 소홀히 한 점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사과정은 몰라도 박사과정 입학까지 하려면 지휘관의 영외 출입 허가만으로는 부족하고 군 위탁교육 허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며, 박사과정이라 하더라도 수업 참가는 필수이고, 당시 경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석·박사 과정에는 야간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위법 및 특혜 논란이 일었다. 

 

국회의원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시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시절에는 어느 토론회에서 "법률지식과 이론을 동원해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학자의 도리냐"고 질타했을 정도로 5.16 군사정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인사청문회에 임했을 때에는 “5.16이 쿠데타가 맞느냐”는 질문에 "제 책에 쓰인 그대로입니다"라고 했다가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이 다그치자 "(5.16은 쿠데타가)맞습니다"라고 하였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강단에서 "현행 민주주의에서 하는 1인 1표제는 문제가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100표를 줘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했다는 증언이 동아일보 등 언론에 실려 안행부 장관 후보자 시절 논란을 빚었다. 해당 증언을 제보한 당시 재학생들에 따르면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 "진지하게" 주장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주 4.3 사건을 "공산주의자 세력의 무장봉기"로 폄하하는가 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 "시대착오적 이념 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종섭은 2013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 및 박근혜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한국현대사학회의 발기인 중 한명이며, 이사를 맡은 바 있다.

 

 

행정자치부장관 시기

2015년 6월, 국회법 파동과 관련하여 말바꾸기 행각으로 곡학아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과 합의하여 법률에 반하는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게끔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진노하면서 유승민을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아낸 일이 있었는데, 문제는 정종섭이 예전에 집필한 '헌법학원론' 교과서에다가 "법률에 대한 국회입법의 독점을 보다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위임입법의 경우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썼다는 것. 그 외에 "대통령이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대통령령을 발하지 않거나 법률에 위반하는 내용을 정하는 경우, 이러한 권한의 남용은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도 같은 책에서 발견되었다. 그동안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대해 날 선 비판으로 반대한 것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2015년 6월 24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추미애 의원이 이에 관해 입장 표명을 요구하였으나, 끝까지 답변을 회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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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정종섭

 

2015년 8월 25일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하여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쳤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고위 공무원, 그것도 선거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의 장관으로서, 2016년 4월 13일까지 무려 여덟 달이나 남은 총선 얘기를 굳이 꺼내면서 특정 정당 의원들 앞에서 뜬금없이 한 발언이었기 때문. 본인은 단순한 덕담이었다고 변명하였지만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이 일었고,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20대 총선 시기

결국 2015년 8월 28일 '총선 승리' 건배사 발언과 관련해 야당이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야당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이라 약속하고 그 일환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던 야당도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며 탄핵소추를 그만두었는데, 상황이 진정되고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총선 불출마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고 20대 총선에 출마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며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힌 유승민을 겨냥하면서 이번 총선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어둠의 세력과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희망의 세력의 전쟁", "배신의 정치 대 의리의 정치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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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원 시기

2016년 5월 24일에는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국회 독재를 가져올 위험성이 높다. 위헌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는 기류에 발맞춰 당선자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같이 주장한 것. 하지만 11년 전인 2005년 4월,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서울대 법대 교수 신분으로 국회 공청회에 참석하여 이와 정반대 입장에 선 것이 확인됐다. 당시 유사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열린 국회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대통령제 정부 형태라도 국정운영 중심은 대통령에서 국회로 전환돼야 한다. 24시간 모든 (국회) 위원회에서 입법·인사·국정통제와 관련해 조사위원회와 청문회가 열려야 한다"고 진술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말 바꾸기 논란이 일어났다.

2016년 5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에 이송된 청문회 활성화법을 국회 임기만료 때까지 공포하지 않으면 폐기되느냐, 법률로 확정되느냐’는 것도 역시 큰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학자 시절 저서에서 ‘확정설’을 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의 학문적 견해대로라면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은 곧 확정될 수밖에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2016년 5월 24일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이 이에 대해 묻자 “입장을 추후에 밝히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정치인 정종섭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최순실이 저지른 범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가능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그는 그의 저서 '헌법학원론'에서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표적인 친박의원으로 분류되는 그가 자신의 이 법학적 견해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되었는데,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그때와 생각이 바뀐 것이 없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론적으로 수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고, 수사가 실제로 필요한지는 수사기관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고. 

2018년 6월 보궐 및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궤멸적으로 참패하자, 초선의원들을 모아다가 '중진들 정계은퇴하라'는 이른바 '정풍운동'을 주도하는데, 6월 15일 그 대표로서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전여옥 전 의원은 "진박 인증하던 정종섭, 보수 궤멸의 진짜 책임자"라며 "역대급 철판"이라 평하였다.

 

> 전여옥 프로필 보러가기

 

2018년 6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수 그라운드 제로’ 토론회에서 자신은 "친박·비박 다 적용이 안되는 사람"이라며 운을 떼며 "박근혜 팔아 정치한 사람들 다 내려놔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집권기간 내내 그는 장관으로서나 의원으로서나 진박 중에서도 골수 진박임을 인증하려는 언행으로 일관해왔다. 심지어 선거 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복사기에 넣어 복사하면 나와 똑같다. 국가와 시대를 보는 철학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했을 정도. 이외에도 이른바 '진박'임을 인증하느라 연출한 튀는 언행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중 대표적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이 이른바 진진박(眞眞朴) 인증샷. 물론 본인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고 실제로도 출마하지 않았다.

 

정종섭 정치활동

 

정종섭 여담 일화

로스쿨이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로스쿨 도입을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확대를 위해 ‘행정고시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 수업시간에 "내가 한국의 칸트가 아니라 칸트가 독일의 정종섭이다" 라는 파천황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위 정칸트 발언은 서울대 법대생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며, 법대가 없어진 지금도 인문대나 사회대 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온다.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는 스누라이프에서도 부정적인 행보를 보일 때마다 빈정대는 의미로 정칸트라고 불리우고 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옥영보, 채동욱, 신기남과 사법연수생 시절 일주일에 한번씩 칼 포퍼의 원서를 읽고 토론하였다고 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승민, 류성걸, 정종섭의 공천파동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이 세 사람이 경북고등학교 제57회 동창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특히 류성걸과 정종섭은 2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했는데, 20대 총선에서 무소속 vs 새누리당으로 진검승부를 벌였다.

서예에 능하며,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명사서예전에 출품하였다.

 

 

정종섭 선거 이력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갑

36,017 (49.06%) 당선 (1위)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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