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이다.
정치평론가 유재일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이름
유재일
출생
1975년 2월 21일 (47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학력
이태원초등학교 (졸업)
선린중학교 (졸업)
오산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행정언론대학원 / 중퇴)
방송 분야
정치평론
유재일 활동
본래 정의당원이었으나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로 탈당하게 된다. 유재일 자신이 '메갈리아 사태' 때문에 정의당을 나왔다고 밝혔다.
원래 학원사업을 접은 뒤 자신에게 논술지도를 받던 학생에게 여러 사회현상과 역사, 문학 등 시사상식을 설명하는 영상을 찍어 올려 보존할 목적으로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다. 2015년에도 영상을 올렸었다. 물론 이때는 유튜버로서의 정체성은 없었기에 시청자에게 말하는 영상은 없었다. 학생과의 대화를 그대로 찍어서 올렸을 뿐. 그러다 메갈사건 후 일반시청자들에게 정치현상을 설명하는 영상도 같이 올리는 유튜브로 바꾸기 시작했고, 최순실 태블릿 사건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시기에 매우 활발하게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19대 대선 이후, 정치조직 활동가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당내 친노 성향 대중을 기반으로 지자체 행정이 원활히 집행될 수 있도록 대중적 정파조직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았다. 친노 대중 조직이 변질되면서 관련 활동은 중단했으며 페미니즘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 당당위와 접촉, 청년 정치조직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는 운동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2020년에는 현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활동가와 지식인을 모아서 시민단체를 형성 스스로 말하기를 친미 좌파노선을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상식적 우파와도 연대를 지속하겠다고 하였다. 다만 현 시점에서 우파로 전향을 선언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없던 말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이후 그를 중심으로 미래대안행동이란 시민단체가 조직되게 되었는데 참여연대 출신으로 삼성 저승사자로 유명한 김경률 회계사, 금융사기 전문 이대순 변호사와 같은 좌파 진영의 굵직굵직한 인물은 물론이요 여명숙이나 김소연같은, 이념보다는 일을 중심으로 보는 우파 인물들까지 포섭해서 중간지대를 만들었다.
유튜브 시작 초기 친문재인 성향 구독자를 바탕으로 채널이 급성장하였다. 그러다가 2019년 9월, 조국 교수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반대하며 친문 진영과 갈등이 생기면서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해당 진영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고 있었다가 이듬해 우파로의 전향을 선언하였다.
2019년 현재 개인 유튜브 채널을 주활동 무대로 삼고 SNS 중에선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활동 중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표적인 친윤 유튜버로 발돋움했다. 2022년 1월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민의힘 소속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탈당한지 2년 4개월 만에 국민의힘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유재일 인물정보
선린중학교 재학 시절 서장훈과 중학교 1학년 때 잠시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서장훈은 원래 당시 국민학교 때 야구를 하다가 야구부를 하려고 선린중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 안가 휘문중학교로 전학을 가서 종목을 바꾸고 농구선수가 되었다. 다만 유재일 본인은 서장훈이 본인을 기억할 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서장훈 본인이 과거에 방송에서도 직접 말한 바 있듯이 선린중학교에 입학하고 몇달 안 되어 너무 금방 스카웃되어 전학을 갔기 때문.
한국외대 93학번으로 재학하던 시절 PD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라고 말한다. PD 교육만 받은건 아니고 NL에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결코 운동권으로 인정 하지 않는다. PD 학생운동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조직을 인수한 후 컴퓨터 동아리로 재편하였다. 후배들과 게임을 하게 된 일화를 통해 스스로를 운동권 마지막 세대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을 중퇴하였다. 대학원생 시절 갑자기 교수가 불러서 운영체제가 도스였던 시절 컴퓨터로 다량의 통계 수치를 입력하는 걸 시켜서 며칠 내내 고생하며 일을 마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직후 어느날 어떤 사람이 연구실로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대학생인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교수의 친아들이었고 유재일이 고생해서 끝마친 일은 바로 교수 친아들의 논문 작성을 위한 무료 봉사였다. 그동안 교수의 수발을 들면서 분노가 쌓이고 쌓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모든 게 허망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본인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공부를 때려치고 레드 얼럿,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그리고 때마침 출시한 스타크래프트 등 컴퓨터 게임에 심취하다가 군에 입대하게 됐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훗날 조국의 딸인 조민의 입시 의혹을 목도하면서 과거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빼도박도 못할 교수의 친자식 특혜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하여 개인적인 정보 조사 및 취재를 통해 확신을 갖고 조국 반대진영으로 돌아서게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했다. 운영하던 학원 이름은 Übermensch(위버멘쉬)였다. Übermensch는 독일어로 니체가 말한 'Overman'의 개념. 당시 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 중 계속 연락이 닿는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 찾아와 유재일과 함께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할 때가 있다. 주로 유재일에게 한국 정치판에 대해 배우는 형식이다. 그중 한 제자는 유재일이 학원 사업을 접은 이후에도 스스로 찾아와 대학 진학까지 계속 지도받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2015년말에서 2016년초에 유재일 유튜브 초기 영상에 나왔던 제자.
정치적인 경험 외에, 과거의 사적인 일들에 대해 상세히 밝히지는 않으나, 가족관계는 밝혔다. 육남매의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이라 친형과 동생은 없으나 친누님들이 많고, 조카도 많다. 매형들 중 한 분이 조국일가 펀드의혹 사건에 보도된 관계자 중 1명에게 과거 사기를 당했었고, 조국아들 얘기가 나왔을때는 자신의 조카 중 한명이 조지워싱턴대학교를 합격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학원을 접은 이후, 미디어 사업을 시작했던 듯하다. 어떤 회사의 이사였다는 언급도 했었다. 본인이 유튜브로 사업하기로 한뒤 회사를 나온 듯. 영상관련 전공자로 추정되는 '영길'이라는 제자는 졸업 후 유재일의 법인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원이 되었고, 유튜브 라이브에도 보조를 하고 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 후, 모친과 누님만 있던 상황 중, 물려받은 빌라를 이태원동의 외국인 상대로 운영하다, 2000년대 중반쯤에 처분했다.(유튜브 방송 중 밝힘.). 그 이후의 10년 정도가 학원일을 한 시간이었다.
유재일 정파적 성향
계파로 보면 친노 성향이었으며, 참여계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친유시민 성향이었고 유시민이 정치에서 은퇴하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두 사람을 노무현이 추구했던 대중정치, 시민정치의 후계자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재일은 자신을 공화주의자라 언급했다.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성향 치고 친미, 반중 성향이 강했다. 그러다 현 시점에서는 우파로 전향했기에 전형적인 보수우파성향이다.
20~30대부터 자타공인 친노무현-친유시민 성향이었고 유시민에 대한 강한 정치적 호감 때문에 정의당 당원으로 있었다. 2016년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 이전까지는 정의당의 평범한 참여계 당원이었을 뿐,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한 적은 없었다.
해당 사태 때 정의당 자유게시판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낸 당원들 중 한 명이었으나 당지도부가 미적지근하게 대응한 것에 반발하여 탈당했다. 이때부터 '지식인들이고 언론이고 믿을 수 없다. 답답하니 차라리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유튜브에서 정치평론을 시작하였다. 민주당을 향해 자정적 의견을 내기 때문에 특정 인사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게다가 해당 진영 금기 중 하나인 페미니즘 이슈를 건드렸기 때문에 그를 인정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당직자들도 있다.
통합진보당을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종북 이념에 대해 주사파들의 실상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외대 재학시절 PD 계열이 외대에서 철수한 뒤, 해당 조직을 컴퓨터 동아리로 재편하여 후배들과 게임을 하며 즐기는 와중, PD가 철수했다는 사실을 인지못한 NL계 운동권이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각목들고 와서 협박한 사건이 그것이었다.
당시 NL 주사파는 유재일이 PD를 재건했다고 여겼고, 동아리는 유재일 본인의 친화력으로 꽤 성장했던 상태였다. 이 때 유재일은 역으로 안기부에 신고한다 하여 물리적 충돌 없이 컴퓨터 동아리 해산으로 끝났다. 때마침 터진 민주민족혁명당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전부 감옥에 갔는데, 그쪽 조직과 대립했으나 군 정보기관 조사까지 받은 전력이 있었다..NL과는 동아리 각목질 사건 이전까지 나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딪힌 인연 덕분인지 경기동부연합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 사태와 두 차례 잠수함 침투 사건 등을 통해 주사파들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면서 운동권이 성장 동력을 잃고 정치권으로 진출해 자리잡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운동권 내부의 학벌 카르텔로 인해 차별을 겪기도 했고, 정당의 평당원으로 있으면서 주사파들의 조직인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등의 배타적 계파 싸움 행태를 직간접적으로 접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제 경험과 전공인 정치학을 기반으로, 정당 내부 갈등을 다룰 때는 정파 투쟁 관점의 분석을 동반한다. 한국 정치권 내부에서 정파 간 갈등구조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런 이유로 민주당 안팎 다수를 구성하는 일명 386세대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냉소적으로 본다. 특히 학생운동권 출신 386세대 정치인들의 엘리트주의와 대중을 동원수단으로 보고 비선조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박가분, 박훈과 함께 진보 계열 정치평론가 중에서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세력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정의당에서 탈당하게 된 이유를 제공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 진보진영 내의 여성주의가 저소득층, 비정규직 여성 인권 보호문제 등을 전혀 다루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정의당은 메갈 관련 사건으로 메갈당이라는 멸칭을 얻었다.
그러면서 엘리트주의와 정파 싸움에 매몰된 행태를 비판했다. 또 호적제 철폐 이후 당내 페미니즘 활동에 대해서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본다. 여성주의의 가장 큰 숙원사업이었던 호적제 철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진 조직이 원래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도 불필요하게 유지되며, 남녀평등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워마드와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파시스트로 본다. 워마드의 순직하사 비하사건에 대해 언급없는 정치권을 향해 비판하며 19대 대선 이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페미니스트들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표창원 의원에게 《더러운 잠》 관련으로 당직 정지를 먹이는데 영향을 준 여성 의원들에게도 여성주의를 앞세워서 공격하는 비겁한 행위를 했다고 분개했다. 이 때의 경험 때문인지 표창원은 이후 친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다. 이후 특정 사건에 대해 여성계와 여성 정치인들의 대응이 정파적이고 선택적이었음을 지적하며, 이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평론가로서의 특징
오로지 유튜브만으로 단기간에 민주당 계열을 대표하는 정치평론가의 위치로 성장한 인물. 탄핵, 대선, 지선, 당대표 선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구독자가 늘어 범민주 진영 유튜브 최다 구독자 채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극문과의 친문 친민주당 스피커 내전에서 2019년 초를 기준으로 사실상 거의 완승에 가깝게 대중에게 영향력을 확대한 상태. 단, 민주당 내부에서 극문 및 여성운동계와의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결국 민주당을 나가게 된다.
2018년 후반기를 기준으로 나꼼수팀, 이동형, 팟캐스트 '새가 날아든다'와 함께 친민주당계의 대표적인 대중적 정치평론가로 자리잡았지만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2016년 이전까지의 잘 알려진 공적인 정치활동이나 시민단체활동은 전무하다. 비록 국민참여계 정당의 평당원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시민이었을 뿐이고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법조계, 언론계, 정당조직이나 시민단체의 활동가로서 활동해 본 적도 없고 학계 인물도 아니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나꼼수라는 비주류 언론인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했지만 그들 역시 전통적 엘리트 언론인들이 아니었을 뿐이지 언론경험이 있었고 각자의 분야에서는 인정받는 경력을 갖춘 실력자들이었다. 김어준은 딴지일보 총수이자 날카로운 정치인터뷰어로서 활동하면서 슬슬 본격적인 언론의 영역으로 그의 관심과 능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주진우는 이미 알아주는 탐사보도 베테랑이었다. 김용민도 종교방송의 PD 생활과 프리랜서 방송인 활동으로 방송PD 경력이 충분히 쌓인 상태였다.
2017년 대선에서는 아예 그런 비주류 언론사 경력도 없는 평범한 시민인 유재일이 홧김에 유튜브 채널 시작했다가 유튜브 활동만으로 대한민국 범진보 진영의 대표적 논객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은 인터넷 환경과 유튜브 채널의 대중화라는 매체환경의 발달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유튜브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정치평론가.
한국나이 42세(게다가 빠른 나이라 실질적으로 43세)인 중년의 중소 사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언론, 학계와 무관하게 갑자기 등장했고 동안인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그가 새날에 출연했을 때 호스트인 푸른나무는 그를 정치신동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박종진의 경우는 유튜브 주간 박종진 방송 초기에 유재일의 나이를 잘 모르고 그냥 형동생 사이로 지내기로만 정한 상황에서, 방송 중에 유재일이 이준석과 비슷한, 40살 될까말까한 나이인 줄 알고, "준석이랑 재일이처럼 젊은 친구들이 정치계에서 중요한 위치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뒤늦게 나이를 물어봤고 이준석보다 유재일이 10살이나 많은 걸 알게 되어 당황하며 "야 나는 너네 둘이 비슷한 나이인 줄 알았어"라고 한 적이 있다.
최고의 순발력을 지닌 이슈파이터
자유한국당이나 극우세력, 종편, 조중동 등에서 제기하는 각종 정치적 공격에 대해 거의 실시간으로 악의적인 왜곡과 오류를 잡아내고 대응논리를 제시하여 방어와 역공을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특정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에 유튜브 채널의 특성을 활용하여 누구보다도 빨리 이슈파이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순발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진보 진영의 다른 어떤 유명 정치평론가들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
본인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내용에 의하면 발군의 순발력은 사실 사전에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어서 가능한 듯하다. 평상시에 각종 언론매체와 자신의 정치권 및 언론 인맥을 통한 끊임없는 사전취재를 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거나 보수쪽에서 왜곡하고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들은 주의깊게 구체적인 내용과 진행경과를 살핀다고. 그가 그렇게 주목했던 사건들 중에서 실제로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에 그가 사전에 취재하고 축적해 둔 구체적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미리 준비해 둔 팩트폭력과 대응논리로 재빨리 보수매체의 공격에 대응하고 반격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기 혼자서 여러 세력들이 생산하는 이슈를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고 힘에 부치는지 민주당 공식채널인 씀에 이슈 파이팅 5분대기조를 4교대로 만들라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의 이런 준비성과 순발력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SBS를 비롯한 언론과 야당에게 맹폭을 당하고 있을 때에 손혜원 의원을 맹공하던 나경원 의원의 부동산 투자 내역을 추적하여 밝히면서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한편, 언론에게는 국회의원 부동산 관계 자료 전수 조사를 요구했다. 실제로 이 무렵 이후로 손혜원 의원에 대해 야당과 언론의 공격은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이해관계 충돌로 수위가 대폭 낮아졌다.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청문회에서 남편의 주식 투자 문제로 야당 전체에게서 맹공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아예 직접 나경원 의원의 대장동 부동산 매입지 현지로 출동해서 나경원을 맹공했다. '나도 이미선 부부 주식투자 짜증나긴 한데, 니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이 영상은 주된 공격 대상이 나경원이긴 하지만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맹렬히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는 깐족의 마스터피스.
이런 평소 사전취재와 정보축적은 여성계의 공격에서 그를 보호해주는 방패로도 작용한다. 진보 여성계는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어떻게든 꺾어왔지만, 적어도 유재일에 대해서만은 공개적 공격, 비판을 못한다. 물론 악플, 비추테러 등은 당연히 한다. 여성계가 당당위, 홍준연조차 위축시킨 전례만 봐도 저게 얼마나 든든한 방패인지는 이하생략.
그리고 유재일 자신도 자신이 그들의 공격으로 죽는 상황이 되면, 실명이고 뭐고 다 까발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일명 핵폭탄.2019년 시점에선 진보지지자가 들으면 기겁할 만한 내용을 마구 이야기하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죽을 땐 죽더라도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남기고 죽겠다는 의미에서 진영논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에는 그간 축적한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민주당과 청와대의 이너써클들을 비롯한 친노 친문 진영에 속하는 인물들의 어두운 부분을 사정없이 맹공하고 있다.
전공자로서의 전문성
유튜브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눈에 두드러지는 정치적 활동이 없었으면서도 현재 정치평론가로서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는 그의 출신 대학과 전공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대학원 과정을 밟다 중퇴해서 석사학위는 없다. 정치덕후 경력 20년 이상의 내공을 쌓는 과정에서 이러한 그의 배경이 학문적인 측면과 인맥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그가 다른 비전문가 계열의 정치 유튜버들을 압도하는 정보를 가졌던 이유는 독서량의 힘이 크다. 자신은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학생운동을 하기로 결정했을때 누구보다 열심히 1학년 때부터 학교도서관에서 사회주의 전문서적과 논문에 대한 독서량을 늘려갔다고 했으며, 나이가 들어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게 된 뒤에도 독서량은 어느정도 유지했다고 했으며, 성실한 독서량에 대해서는 어느 유튜버에게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과격 진보세력(특히 과거의 외대NL이나 386세대)을 깔 때 다른 것도 까지만, '니들은 선배랍시고 거만 떨기만 하지 말고 공부 좀 해라. 나는 그래도 학교다닐 때 신입생일 때부터 학교강의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책 이것저것 다 찾아서 정말 열심히 읽었다. 막상 당시에 그책들 대여한 기록들 보니까 책 빌려간 사람들도 별로 없더라. 니들 니들이 학생운동하는 사상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도 깊게 안 했지?'라며 깠을 정도.
한 영상에서는 정치 유튜브를 새로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조언 중 하나로 "일단 정치 및 사회에 대한 전문적인 책은 무조건 많이 읽으셔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동아시아, 미국, 유럽의 정치사, 특히 경제와 깊게 연계된 정치사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특출나게 돋보이며, 개인의 경험으로 인한 정치적 호기심이 생겼을 때 끝까지 파고들어 조사하는 능력도 상당해서, 모든 분야는 아니지만 본인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특정 세계사적 사건들이나 한국정치사 사건들에 한해서는 여러 사회과학자들 논문에다가 과거 언론자료들, 나아가 휴민트 정보까지 두루 섭렵하여 진짜 교수 수준으로 깊게 알고 있는 경우가 있을 정도.
라이브를 거의 안하던 유튜브 초기 시절 영상들을 보면 20세기 초중반의 해외 정치이슈나 대중이 주목을 안 했거나 보도가 적었던 근대 한국 이슈들에 대해서,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상당한 지식을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전문독서량 유지와 장기간 다양한 비주류 언론 보도정보까지 찾아 섭렵하는 것에 게을러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연달아 말하고는 했다. 그 내용과 관련된 전문서적과 논문까지 함께 소개하는건 덤.
자기 서재에서 유튜브 녹화를 자주했기에, 말하던 중에 책장에서 그 책들이나 논문을 꺼내다가 보여주곤 했다. 속독에도 재능이 있는지 본인말로는 날 잡고 독서만 하기로 한 날엔 하루에 500쪽씩 읽었다고 한다. 정치경제 전문서적을 기준으로 하면 엄청난 양이다.
민감한 정치권 내부정보도 상당한 수준으로 입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 때의 그의 지인들 중에서 정당의 당료, 국회의원 보좌관, 언론사 직원 등 직접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현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통해 비교적 정치권 내부의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었던 듯하다.
본격적으로 정치평론을 시작한 이후 인간관계 파탄에 대해 푸념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가장 먼저 문제가 생겼던 건 연애사로 유튜브로 인지도가 갓 조금 높아질 무렵 당시의 여자친구가 방송하는 걸 크게 반대하는 바람에 의견조율이 안 되어 헤어졌다고 한다. 당시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도 지나가는 말로도 했고 SNS에도 짧게 올렸는데, 그가 여자친구를 애칭으로 '마누라'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어 오해를 샀다.
'마누라가 최근에 제가 방송한다는 걸 알고 너무 싫어해서, 몇번 싸우다가 결국 얼마전에 헤어졌네요'라고 말하고 정치 얘기로 다시 넘어가니 이혼으로 오해받을 수 밖에. 유투브 시작 초기 1년 정도의 방송에서는 10년전 20년전 연애사의 여자친구들 이야기를 잠깐 할 때도 마누라로 호칭하곤 했으나, 결혼해본 적이 없던 그가 유부남이나 이혼남 등으로 유입시청자들에게 오해를 몇번 받은 뒤로는 오해를 피하려고 그렇게 부르지 않게 되었다.
특히나 현재 대한민국 민주, 진보계 정치계의 가장 두터운 현업 정치가들이 깔린 운동권 386과 그 밑세대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일명 왕산조직이라고 불리는 자들을 통해 직접 얻은 현장경험이 남다르다.
국회 내부에서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국회의원과 국회의원보좌관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동영상을 찍었는데(비공개 영상), 국회의원보좌관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웃픈 썰 속에 풍부한 인사이더 정보가 녹아 있다.
지식소매상으로서의 능력
위에서 언급된 전공자로서의 능력과, 거기서 발휘되는 비평가로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끊임없이 강의를 통해서 정치, 경제,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 또한 유재일의 장점이다. 이를테면 정치비평이라는 컨텐츠가 유튜브에서 마구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용어나 사실관계를 풀이해서 기초적인 정보를 전달하려는 유튜버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마디로 특정 정치인을 욕하거나, 정책에 대한 인상비평, 혹은 언론과 특정 정당의 주장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등 깊이가 얕은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 그러나 유재일은 기본적인 용어 하나하나까지 풀이해가면서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디테일하게 풀어서 설명하면서 자기만의 컨텐츠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관해서 진보 진영 주류와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 다수와도 대립하고 있는데,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수 진보를 막론한 다른 매체에서 접하기 힘든,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씁쓸한 부분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를 논하고, 또 정치인을 욕하지만, 정작 현실 정치와 시민 참여의 방법을 논하는 사람은 그만큼 드물며, 모두가 감정의 배설구로서 정치 담론을 써먹고 있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직업 여하를 떠나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연결된 현실 정치라는 분야 자체가 실제로는 공교육/사교육에서 거의 외면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치공작에 대한 이해, 혐오, 폭로
인터넷 상의 여러 시사정치 관련 방송들과 비교했을 때 유재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현실정치의 구체적인 모습인 정당 내부의 정파와 계파/당파의 정치활동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정당 내부, 특히 민주당이나 진보계열 정당에 엄연히 존재하는 정파와 계파, 당파, 혈연, 학연, 지연 등의 각종 인연에 따른 친분관계와 계파 내에서 주고받는 이해관계에 따른 차이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에서 일어나는 정치권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런 정파, 계파, 당파적 차이에서 오는 협조·타협·갈등·경쟁·적대감 등을 통해서 설명한다. 범진보진영의 시사관련 컨텐츠에서 이러한 내부 정파나 계파의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대중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태도와 발언이 이런 설명을 통해 좀더 잘 이해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모두까기 성격이 강하긴 한데, 정치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처럼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서 무조건 정치인을 욕하거나 정치인들에게 한없이 이상적인 수준의 순수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정외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정치를 도덕적 이상주의로 접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의 비노, 비문에 대한 친문 입장의 적대적 태도와는 별개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사람들이 다 자기와 똑같은 줄 안다"라는 비판을 하며 비노, 비문 세력이 생겨나는 이유를 이들에게 챙겨줄 것을 챙겨주지 않아서 생긴 서운함이라 규정한다. 그 증거로 '정치' 일반에 대한 그의 현실주의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는 동영상이 올라왔으나 2020년 1월 이후 비공개 처리되었다.
즉, 정당 내부의 정파와 계파의 존재와 갈등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현실정치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실제로 본인의 정파성에 대해 과거엔 친유시민, 현재 대선후보로 문재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정치평론을 하고 있다.
계파 간의 경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더티 플레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이 정책과 비전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정치공학과 공작을 통해 정적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 일상화된 한국의 정치에 대해 통탄한다. 평소에는 멀쩡했던 진보개혁진영 인물들이 선거 때만 되면 눈이 뒤집히는 계파정치의 양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이런 스탠스는 2018년 지방선거에 들어서면서 친문에게조차 공격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재명과 전해철의 경선에서 전해철 의원의 경선 전략이 매우 잘못되어있고 이재명을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지지선언을 하는 선에서 끝을 내었지만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소위 극문이라고 불리는 문팬층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에 유재일은 경선에는 승복하자고 하고 친문을 당내에서 고립시키는 행위를 중단하며 대승적 차원에서 지방선거 승리에 집중하자고 요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팬 사이에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렇게나 계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던 유재일이 보인 행보는 기본적인 눈치도 없는 짓이었다. 당시 드루킹 재판으로 인해 친문쪽은 누군가, 특히 영향력 있는 스피커가 달라붙는 그림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뒤로 자신이 전해철에게 실망했다며 순식간에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던 이재명을 지지하는 등 자신도 눈이 뒤집혀 뒤통수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해찬의 당대표 당선으로 친문 고립은 사실이 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문과 민평련이 이인영을 밀면서 이해찬의 영향력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유재일은 친문인 표창원, 양향자, 손혜원 등을 향한 비문, 민평련의 노골적인 정치공학적 견제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격식을 갖추고 설명하기보다는 게임에서 나오는 용어를 통해서 젊은 층이 직관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감정적인 용어나 욕까지 섞어 쓰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의 유튜브 채널의 시청자는 대부분 평균 연령층이 높은 편이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주된 시청자가 30대 이상이며 30대-50대에 다수가 분포한다. 2002년에 적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 정도 연령층의 친노 성향 야권 지지자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시사정치 채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계파에 대한 지식을 대중적으로 알린 가치는 있으나 심도가 꽤 낮은 것도 사실인데, 유재일이 직접 계파의 중심 내지는 주류에 서 본 경험이 없을뿐더러 계파의 중심에 있던 정치인들과 토론을 했을 때 여러가지로 잘못된 소스를 가지고 와 지적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더 많은 인물 정보는 아래 인물이야기 카테고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