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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정치 / / 2022. 8. 1. 09:20

김태호 의원 나이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태호 의원 나이 고향 학력 이력 재산 프로필

 

김태호 프로필
김태호

 

김태호

金台鎬 | Kim Tae-ho

 

출생

1962년 8월 21일 (59세)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

 

거주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푸르지오아파트

서울특별시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아이파크

 

본관

상산 김씨

 

 

재임 기간

제36대 경상남도 거창군수

2002년 7월 1일 ~ 2004년 5월 19일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2004년 6월 6일 ~ 2010년 6월 30일

 

학력 

거창농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교육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 석사·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86cm

 

종교 

불교

 

가족 

아내 신옥임, 슬하 1남 1녀

 

경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제6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거창군 제2선거구 / 한나라당)

제36대 경상남도 거창군수 (민선 3기 / 한나라당)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민선 3-4기 / 한나라당)

경남FC 구단주

제41대 국무총리 내정자

제18대 국회의원 (경남 김해시 을 / 한나라당)

제18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의원 (경남 김해시 을 / 새누리당)

제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제21대 국회의원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 무소속)

제21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윤석열 국민캠프 공동선대위원장

 

> 윤석열 프로필 보러가기

 


김태호 생애 고향 학력

1962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거창농업고등학교(현 아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회의원 김태호

 

김태호 정치 활동

비서관 시절

상도동계의 중진 의원이었던 김동영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김동영이 고등학교 동문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동영 의원이 임기 중에 사망하자 서울대학교 강사,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을 맡았다.

 

거창군수 시절

이후 고향인 거창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1998년 경상남도의회 의원, 2002년 거창군수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경상남도지사 시절

2003년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혁규 경남지사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국회의원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자, 보궐선거를 통해 경상남도지사로 당선된 후 2006년 재선되어 2010년까지 재임하였다. 도지사 첫 당선 당시 만 41세로, 역대 최연소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경남도지사 3선을 포기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정운찬의 후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아내의 관용차 사용을 비롯한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려 중도 하차했다. 이때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말을 남겨 인구에 회자되었다.

 

> 국회의원 정운천 프로필 보러가기

 

김태호 의원

 

김해시 을 국회의원 시절

이로 인해 정치 인생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였으나,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기사회생했다. 당시 상대 후보는 국민참여당의 이봉수 후보였는데,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나 인지도는 김태호에 비해 떨어졌으나 야권 단일 후보로서 야권의 지원을 한몸에 받았고, 특히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거의 상주하면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김태호 대 유시민의 대결이었던 셈. 게다가 김해시 을 지역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있는 곳으로, 친노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그렇잖아도 이 지역에서 내리 재선을 한 최철국 의원은 친노인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당선됐으니 상당한 힘을 받게 된 것.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민주통합당 김경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비판하며 "민주당이 국민을 홍어X으로 본다." 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원래 친이계였음에도 유승민을 비난했고, 신박으로 분류되었다. 당시 정병국, 조해진, 류성걸, 김희국과 같이 친이, 친유로 동시에 분류되는 인사들 외에도 강석호, 주호영, 정의화, 이재오 등 친이계 중진들이 유승민 편을 든 것을 고려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 애초에 이 때는 사실상 유승민이 사실상 비박으로 돌아선 데다가 친이가 친박과 사이가 좋지 않음을 고려해도 대부분의 친이가 박근혜를 견제하기 위해 당시 유승민을 지지했다.

5년 후인 2020년 10월에서야 김태호의 이러한 행보의 이유가 밝혀지는데, 본인이 마포포럼 강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무성, 유승민을 몰아내고 여권 대권주자의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속셈이었다고 한다.

 

> 유승민 프로필 보러가기

 

제20대 총선 불출마

2015년 8월 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일단 정계 은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는데, 정치인으로는 충분히 야망을 펼칠 수 있는 50대 초반의 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중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 일각에서는 대선 도전을 위한 준비라는 추측도 내놓는 중. 다만 불출마 선언 자체는 대권 행보라기보다 다음 총선에서 낙선할까봐 두려워서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지역구인 김해시 을이 워낙 친노 성향이 강해서 야권에 웃어주는 곳이기도 하고, 지역 현안에 소홀했다는 지역 내의 비판여론도 거셌기 때문이다.

 

김태호 정치김태호 국정활동

 

제7회 경상남도지사 선거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침묵을 지켜오다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김경수 의원이 출마하면서, 2012년에 김경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바 있는 김태호가 자유한국당의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홍준표 색깔 지우기'에 집중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개표 초반 김경수 후보에 5% 이상 앞서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으나, 인구가 많은 창원 성산, 김해 등 동부경남 지역의 개표가 뒤늦게 진행되면서 김경수 후보의 득표율이 치고 올라와 결국 새벽시간대에 역전, 김경수 후보에게 약 10%p의 큰 차이로 패배, 정치 커리어 처음으로 낙선을 하고 말았다. 지선에서 낙선한 자유한국당 후보들 중에서는 그나마 타격이 덜한 편. 몇몇 군데를 빼앗기긴 했지만 그래도 서부 경남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나름 선전하였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내내 홍준표와 거리를 두며 상대적으로 지역 밀착형 선거전을 펼친 것도 그나마 타격이 덜한 요인. 물론 개표 초기 몇 시간 동안은 출구조사와 달리 본인이 상당히 앞섰기에 희망고문을 많이 당했을걸로 보인다.

 

제21대 총선

재선 경남지사, 험지인 김해에서 국회의원 재선 경력 등으로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급 인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중앙당에서는 차기 총선에 PK에서 판세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PK 험지로 분류되는 김해시 을 지역이나 창원시 성산구 혹은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등 파급효과가 큰 지역에 전략공천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태호 본인은 지난 지선에서도 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인만큼 이번 총선에는 험지 출마 의사가 없다고 한다.

결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이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와 함께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했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현역 강석진 후보에게 밀렸으나, 결국 강석진 후보를 꺾고 4년만에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제21대 국회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한 후에, 7월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9월 25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9월 17일, 국민의힘에 복당을 신청했지만 3개월 째 계류 중이다. 결국 연내 복당은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전봉민 의원이 편법 증여 및 부친의 기자 매수 시도 논란으로 탈당하고 다수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상황에 처하는 등 개헌저지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홍준표, 윤상현 의원과 함께 복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김태호

 

2020년 12월 22일 자기 지역구의 숙원 민원인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등에 대한 배상법을 대표발의했다.

2021년 1월 7일 국민의힘에 복당하였다. 6월 4일 국민의힘 비대위에서 강석진 위원장의 당협위원장직을 사퇴시키고, 김태호 의원을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차기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7월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33일 만인 8월 17일 대선 출마를 철회하였다. 이번 대선 출마 대신 차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차기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경상남도지사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지역언론의 보도가 있다.

2021년 10월 24일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유정복 전 인천광역시장, 박진 의원과 함께 윤석열 대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였다.

 

> 국회의원 심재철 프로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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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여담 일화

키가 186cm로 굉장히 크며 그가 1962년생인 걸 생각하면 상당히 거인 수준이다. 184cm인 정진석보다도 크며, 키가 168~9cm인 홍준표와 서 있을 때는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수준이다. 국민의힘 현직 최장신 의원인 187cm의 김웅에 이어 2위다.

제21대 국회의 장신 의원으로는 180cm인 박용진, 홍문표, 기동민, 181cm인 김두관, 이형석, 182cm인 송영길, 소병훈, 183cm인 곽상도, 이상헌, 184cm인 윤영석, 장철민, 정진석, 185cm 한준호, 186cm 김태호와 김홍걸, 최장신인 187cm 김웅이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유세를 하면서 구순이 되신 아버지께서 고향에 내려와 일을 해야 보람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왔다는 말과 함께, 자기 때문에 욕을 먹으셨다며 울기도 했다. 

역대 민선 경상남도지사들 중 유일하게 권한대행 체제를 거치지 않고 임기 만료 퇴임한 지사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 합의를 다소 늦게 하자 국민을 홍어X으로 아냐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여 논란이 일었다.

 

 

김태호 재산

2021년 3월 기준으로 11억 2877만 7천원을 신고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1억원 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김태호 재산
김태호 재산

 

김태호 선거 이력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의회 거창 2

8,277 (55.74%)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거창군수

20,782 (57.14%) 당선 (1위)

초선

 

2004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

454,883 (61.60%) 당선 (1위)

초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852,377 (63.12%) 당선 (1위)

재선

 

2011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남 김해 을

44,501 (51.01%) 당선 (1위)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김해 을

63,290 (52.11%) 당선 (1위)

재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765,809 (42.95%)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무소속

49,123 (42.59%) 당선 (1위)

3선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도의원,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선거를 두루 거치면서 6전 6승을 기록했으니 선거의 왕이라고 불릴만 하다. 그것도 6번 모두 과반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경남이 보수 후보가 유리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에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김해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 되었고, 실제로 2018년 선거에서 패배할 때는 김해에서는 상대 후보인 김경수에게 몰표를 줬다.

그리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를 맛보며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도 반납하게 되었다.

그나마 패배한 자유한국당 주자 중에서는 가장 선전한 편이지만, 최초로 민주당에게 경남지사를 헌납한 인물이라는 불명예도 같이 얻게 되어 버린지라 국회의원은 있을지언정 당권이나 대권 같은 정치행보에 나아갈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이때 판세가 워낙 보수가 궤멸하다시피 상황이긴 했다. 일단, 21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중앙 정치 생활은 이어나가고 있다.

 

> 경상남도지사 박완수 프로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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