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언론인. 극우 논객이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긴 하지만, 사실 지극히 고전적인 형태의 완고한 반공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좌우 대립보다는 남북 대립에 더 신경이 예민한 경향을 보인다. 과거 2005년 월간조선 대표에서 경질된 계기가 된, 그의 "친일보다 더 나쁜 것은 친북" 발언에서 그의 사상적 기반이 잘 드러난다.
조갑제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월간조선 편집장 출신)
조갑제
趙甲濟
출생
1945년 10월 24일 (76세)
연합군 점령하 일본 사이타마현
직업
언론인, 출판인, 편집인, 작가
병역
대한민국 공군 병장 만기전역 (병 161기)
학력
부산수산대학교 중퇴
경력
국제신문 기자
월간 마당 편집장
조선일보 월간조선부(部) 기자
월간조선 편집장 1기(1991 ~ 1996)
편집장 2기(1998 ~ 2004)
월간조선 초대 대표이사(2001년 ~ 2005년)
조갑제닷컴 대표
종교
개신교
자기 나라를 지킬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써보지 못하고 남한테 구하려고 손을 내미는 것은 노예근성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
- 시국강연회 강연 中
청년 때부터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비리와 조작을 파헤쳤고, 다른 민주화 투사처럼 안기부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에도, 취재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집념이 강했다. 나중에는 안기부에서 고문을 받은 사람들 및 당시의 고문 기술자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두환 정부를 비난하는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라는 책까지 작성했다. 또 전두환 정부 시절에 두 번이나 기자 해직을 당하였다. 그가 극단적인 말을 할 때마다, 언론인 후배들이 반박은 하더라도 조갑제가 기자로서 남긴 업적이 대단하기에 아주 심하게 공격을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를 보고 장래희망을 기자로 정한 사람도 많다. 지금도 비록 조갑제와는 정치적 입장과 노선을 달리 하지만, 과거 70년대 일선 기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언론인으로서 보여준 조갑제의 업적과 취재력, 글쓰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90년대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조선일보에서 칼럼을 연재하며 박정희 미화론에 힘썼으며, 김영삼 정부에 등용된 진보적 인사들을 저격하여 힘을 빼거나 낙마 시키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고,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과거의 총기가 흐려졌는지, 과도한 반공주의에 매몰되어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정일의 첩자'라는 식의 음모론을 설파하는 책을 발간하거나, 서정갑 등의 극우 인사들과 함께 손을 잡고 활동하는 등, 극단성이 더욱 강화되는 행보를 보였다.
조갑제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45년 10월 24일,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으나 얼마후 부모들이 나고 자란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귀국하여 성장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자신의 고향을 경북 청송 출신으로 소개한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가난을 이유로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를 중퇴하였다. 고교 시절, 단파라디오를 통해 미국과 일본의 야구 중계방송을 들으며 영어 및 일어를 공부했고, 군대에서 미 공군과 합동근무를 하고 비행기 식별 업무 때문에 일본 자위대와 연락관계를 유지하면서 영어, 일어 회화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1967년 3월 1일 공군에 입대하여 요격관제 특기병으로 3년 4개월을 복무하였다. 원래는 3년 만기 전역이었는데 훈련병 때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40일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서 자대배치가 늦어졌고, 1.21사태 등으로 군 복무를 몇개월 더 했다고 한다. 전역이 늦어져 제때 복학을 못했고 빨리 사회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부산·경남지역의 신문인 국제신문에 응시하여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971년부터 부산·경남지역의 신문인 국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아프지 않았는데도 회사에 병가원을 제출하고 광주광역시로 내려가 그 곳을 현장취재하였던 경험이 있으며 그로 인해 신군부의 압력으로 신문사에서 해고당하고 신군부 해직기자 명단에도 등재당하는 확인사살을 당했으며 이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와 다시 언론기자로 활약 개시해 월간 마당의 편집장을 지내다가 1983년 조선일보 월간조선부(部)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고 1991년 편집장 1기를 지냈고 1996년 ~ 1998년까지 해외연수를 갔던 경험이 있다. 이후 연수를 마친 1998년에 월간조선으로 복귀하여 편집장 2기를 맡았고 조선일보에 박정희에 관한 일담을 담은 저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연재하였다. 2001년 1월 2일자로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분리독립하여 독립법인 회사로 출범하면서 그 해부터 독립법인 월간조선사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편집장도 겸직하였다. 이후로는 20년 동안 몸 담았던 월간조선을 떠나게 되었으며 독자적으로 세운 독립법인 회사 조갑제닷컴의 대표가 되었다.
언론인으로서의 조갑제
1970~80년대 기자로서 조갑제는 가히 전설적인 족적들을 많이 남겼다. 환경문제와 관련한 심층취재(이를테면 중금속 오염에 관한 실태), 포항 유전설이 나돌 때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다'고 폭로한 특종 보도를 비롯해 박정희의 여성편력, 사생활 문제를 비롯해 권력형 비리에 아주 날카롭게 다뤘으며, 1979년 부마민주항쟁(이때 남긴 책이 '유고' 2권 세트-1987년-이다.) 때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시기 각각 잠입 취재했었다. 군사정권 시절에 빈번히 행해진 수사기관의 고문에 대해서도 여러차례의 심층 탐사 보도를 써낸바 있다. 1980년대까지 국제 기자 및 작가들의 단체인 국제 펜클럽에서 상도 여러 번 탔고 일본에도 정론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언론인으로 알려졌다.
80년대 중후반까지 분명히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인기를 만들어준 실력파 기자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진우, 손석희 등 2010년대에 이름을 얻은 기자나 논객들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기 박정희를 직접 저격하려고 부단히 애썼던 사람이다. 그 당시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대가 절대 아님을 감안해야 한다. 기자정신 하나는 정말 대쪽같은 양반이었고 요즘 문제가 되는 기레기들이 보고 배워야 할 진짜 참기자의 모습을 갖춘 기자였다. 지금이야 조갑제 기자에 대해 흑화된 이미지가 많지만, 현장은 가지도 않고 사실 확인도 없이 최신 유머글 퍼나르는 기자들보다 훨씬 정상적인 기자임을 넘어, 진보언론에서조차 조갑제 기자는 대선배로서 존경해 마지않는 대한민국 대표 기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던 사람이다.
이 밖에도 4공, 5공의 각종 비화에 관해서도 취재해 족적들 남기기도 했다. 1983년에는 월간조선 편집기자로 이직했다. 이 시기 조갑제는 탐사, 심층 취재 도중에 안기부에 붙들려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월간조선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CIA에 관한 기사를 실었는데, 과감하게도 국내에 존재하는 CIA 사무실 전화번호를 공개하는 용자짓을 해버려 이때문에 조갑제는 고문 후유증 영향으로 지인이 부축하지 않으면 혼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조갑제는 어떠한 외압,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자로서 모범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조갑제의 전문 영역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는 항공 전문 기자이기도 했다. 군 복무를 공군 관제병으로 마쳤기에 비행기와 항공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등 대형 항공 사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기사를 싣기도 했다. 앞의 대한항공 사고 나무위키 문서에 기재된 내용의 상당수는 사실 조갑제 기사의 월간조선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대한항공 보잉 747 조종석에 동승해 지구를 한바퀴 일주하고 난뒤 월간조선에 게재한 "점보 조종실 기행 2,000개의 계기 속에 갇힌 고독"이라는 르포 기사도 항덕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명문이다.
이후에 논조에 변화가 생겨서 스탠스가 보수, 반공주의 노선으로 전향된다. 이에 대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지난 시점으로 우익 반공주의 성향으로 확 변했다는 설도 있으며, 1987년 양김 분열과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기대를 가졌던 민주화 세력의 엇나간 행보에 실망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추정도 있다. 여기에 관해 성공회대 역사학자 한홍구는 '조갑제가 안기부로부터 각종 많은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정보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람 속 마음을 들어가보지 않는 한 이 역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스탠스의 변화는 홍준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활동기 때 권력에 맞서고, 업계에서 전설로 불리었으나 전향했다는 점에서 그런듯하다.
조갑제에게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는데 왜 생각이 바뀌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샅샅이 뒤지다가 보니까, 어느 순간 박정희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매료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조갑제는 1991년부터 계속 월간조선의 편집장 자리에 있었고, 월간조선이 독립법인화 된 2001년부터는 편집장 겸 대표이사를 맡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조갑제의 주장과 행동이 강경화, 극단화 됨에 따라, 조선일보는 부담을 느끼고, 송희영 논설위원을 필두로 조갑제를 비판하는 칼럼을 지면에 게재하는 등 그와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실제로 2004년 12월말에 실시된 인사이동에서 조갑제는 편집장 업무에서 물러나 사장직만 수행하게 되었고, 2005년 3월에 일어날 후술할 사건으로 사장자리도 불명예 퇴임했다.
결정적으로 2005년 조갑제의 친일보다 나쁜 건 친북 주장 이후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 논란이 커지자 조선일보는 그를 월간조선 대표에서 경질했고, 월간조선의 대표이사 자리에 조갑제의 극단성을 비판하던 이상철 기자를 앉혔다. 최소한 대중을 상대하는 언론으로 수익을 내야하는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대통령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거나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초극단주의적 성향의 관계자를 책임자로서 마냥 품고 갈 수는 없었던 셈.
또한 몽골 및 징기스칸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몽골 현지 취재도 여러 번 다녀온 경력이 있다. 월간조선 시절에 몽골 취재 기사를 올린 사례가 많으며, 이후 조갑제닷컴 등에도 징기스칸을 소재로 한 글을 자주 쓰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기 집권에 성공한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한 한국언론은 메이저 언론매체도 아니고 정식 언론매체도 아닌 조갑제 개인이었다. 일본의 총리가 언론사 재직중인 기자도 아닌 일개 민간인과 관저 집무실에서 공식적으로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갖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당시 조갑제와 아베 신조 사이의 통역을 맡은 것은 극우인사 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 국제기독교대학 교수였다. 그런데 이 니시오카 츠토무는 정작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을 왜곡한 점이 드러나 크게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최근에는 유튜브에 '조갑제 TV'라는 채널을 만들어 활동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Vlog 영상들을 올리는 중이다. 주로 예전부터 조선일보/월간조선을 구독해온 노인층 내지 이른바 '콘크리트 보수'들이 많이 본다.
조갑제 논조
새누리당 공천 내홍에 대한 평가
2016년 20대 총선 과정에서 친박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존영'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조갑제는 친박계가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트렸고 친박계가 개인 박근혜에 대한 충성이 아부로 비춰진다고 지적하면서,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은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직이라는 것은 프레지던트(president)가 아니고 프레지던시(presidency)이며,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통령 사진을 거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통령 개인을 중심에 두고 친박(親朴), 비박(非朴), 진박(眞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스스로 보수의 윤리가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인들은 특유의 '저항적 정의감'을 갖고 있다면서 권력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또한 당 정체성 위반을 이유로 유승민, 이재오 등 컷오프시킨 논란에 대해서도 공천관리위원회가 찍어내리기하는 것보다는 공천을 탈락시키고자 한다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경선을 붙이든지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다 보니까 국민들한테는 정치 보복처럼 비춰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의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고 좌파영합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안보관과 국방문제, 중부담 - 중복지로의 복지강화, 단기적인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동조하였다. 조갑제는 유승민의 공천문제에 대해서 공관위가 당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유권자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논조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광주사태 당시 시위대는 반정부적이었지만 친북적이진 않았다. 시위대가 간첩 같은 사람이 끼어 있다고 군 당국에 신고하기도 했었다.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늘 나왔다. 대한민국 세력은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해선 안 된다. 신념보다 사실이 더 중요하다.
조갑제 《조갑제의 광주사태》, 조갑제닷컴 2013., 45쪽
"전두환 타도!"란 구호 뒤에는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따랐다. 시민들이 간첩으로 의심 가는 시위자를 붙들어 계엄당국에 넘겨주기도 했다. 광주사태의 기본이념은 반공·민주화였다."
조갑제 《조갑제의 광주사태》, 조갑제닷컴 2013., 195쪽
“대대규모 북한군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조갑제닷컴)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지만원을 비롯한 극우 반공주의 진영이 어떻게든지 폄하하려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면서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한다. 무엇보다 조갑제 본인이 당시 기자 신분으로 광주, 즉 생생한 현장에 있었고, 당시의 상황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봤기 때문이다.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를 경험했기에 부실공사를 철저하게 취재하여 당산철교의 조기 재시공을 이끌어낸 최일구와 더불어 현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사람이 확실히 알려준다.
이미 조갑제는 80년대부터 5.18 연고대생 북한간첩설을 강하게 부정했으며 월간조선에서도 이것만은 아니라고 계엄군의 무차별한 시민 학살이라며 계엄군의 총에 피투성이가 된 시신 사진들을 실으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조갑제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잠입해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광주 시민들이 플래카드로 북괴는 오판말라!라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조갑제가 5.18은 반공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그렇다고 조갑제가 5.18을 무작정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일에 대해서 조갑제는 자기가 보지 못했다며, 좌파 성향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과장했다며 부정적으로 보는데 계엄군의 광주 시민 학살은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판명이 난 일이다.
- 문제점
조갑제는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 머물렀는데, 그 때는 공수부대가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상황이었다. 즉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벌어졌던 공수부대의 만행을 잘 모른채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들의 이야기만 주로 듣고 '시위대가 괜히 과격'한 것처럼 보이거나 양비론이 나올 수 있다.
김문수, 조갑제 할 말은 한다-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 에선 화려한 휴가에 화를 내면서 (시민들 무장 후에) "학살이라 할 수 없다"고 하며 "서로 살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또 그는 "광주사태는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여지껏 밝혀지지 않았다. 차량을 탈취한 시위대가 전남도청 앞을 지키고 있던 군인 두 명을 깔아뭉갰고 한 명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장교가 한 클립 정도의 M-16 실탄을 가지고있었는데, 격분한 나머지 차량을 향해서 사격한 것이 최초의 발포. 이후 경찰서 무기고를 털어서 무장한 시위대가 반격에 나서면서 상호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다만 훈련된 군인이 유리하기에 시위대가 더 많이 희생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화려한 휴가에서처럼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을 향해 일제사격하는 장면은 거짓이라고 했다. 또한 영화 시작 부분에 '이 영화는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습니다.'는 문구가 있는 만큼 관람자들이 전남도청 앞 일제사격이 실제 있었던 일로 생각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에 대한 일제사격, 조준사격이 실제로 있었더라면 당연히 발포를 명령한 지휘관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까지 아무리 조사를 해도 발포 명령자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발포 명령자가 있었으면 진작에 사형에 처해졌을 거라고 말했다. 구술은 실증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거.
또한 조갑제는 화려한 휴가가 과장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조갑제는 5월 23일부터 현장에 있던 사람이다. 5월 18일~19일에 있었던 공수부대의 잔인한 만행과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 양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5월 18일부터 광주 상황을 예의주시한 김영택 기자는 오히려 화려한 휴가가 실제보다 못하다고 한다. 이건 조갑제 본인이 본 게 아닌, 시민 측과 계엄군 측의 증언들을 토대로 파악한 광경을 전체로 잘못된 일반화한 것. 무엇보대도 광주는 조갑제만 간 게 아니다. 중앙일보 장재열 기자, 동아일보 김충근 기자,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는 오히려 조갑제보다 먼저 광주상황을 목격했던 사람들이다.
조갑제의 시각
오늘날 조갑제는 대체적인 논조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는 강하게 옹호하는 논조를 가졌고,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은 극렬히 비판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언론인으로써 초창기 활동했을 당시 썻던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랑 <박정희> 전기 시리즈(1992년 까치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는 같은 사람이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내용이라는 것이다. 김지하와 마찬가지로 6월 혁명 이후 논조가 바뀐 케이스 중 한 명이다. 그의 확 틀어져버린 논조에 대해 '진짜 조갑제는 남산에 끌려가서 죽고, 대역이 조갑제라는 이름을 쓴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사실 이래저래 엇나갈 때도 많고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긴 하지만, 2010년 이후부터 규모가 확 커져버린 넷우익에 비하면 확실한 논조가 있으며, 자료수집이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등 여러 방면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강하게 옹호하는 점이 그와 정치성향에서 반대에 있는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비판하는데 있어 조금 신중해야 하는 것이, 위에도 언급했듯 박정희 정권 시절에 누구보다도 날선 비판을 했던 인물이 조갑제다. 유신정권에 아부하며 이권을 챙기던 지식인이나 언론도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분명 큰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고 또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오히려 스탠스를 옹호 쪽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것이 시류 편승적이거나 기회주의적 발로에서 기인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 사람의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잘한 것은 칭찬하고,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잘못한 것은 비판하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젊은 시절 박정희를 강경하게 비판하다가 90년대 이후 찬양으로 돌아선 것도 그냥 자기 소신에 충실한 것 뿐이다.
그런 이유로, 다른 강성 보수 지식인들과 달리 조갑제에 대한 반대 진영의 평가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강성보수 인사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여타 극우인사들과는 달리 반대 진영에서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대 진영에서 군사정권시절을 비판하는 근거로 드는 역사적 비화들도 알고 보면 조갑제가 치밀한 취재로 발굴해낸 것이 많다.
또 진보측의 의견을 옹호하거나 사실관계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에서 이명박의 BBK 스캔들을 폭로했을 때 한겨레를 옹호했던 보수 진영 인사로는 조갑제가 유일하다. 일베 등 극우 사이트에서는 '결정적일 때 좌파 편 들려고 보수 코스프레하는 프락치'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격적인 모독을 당하기도 한다. 정작 극우는 뉴라이트, 몇몇 보수 논객, QAnon의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를 부추기는 병크를 저지른 대안 우파, 사이버 렉카화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 받는 우파 유튜버로 화려하게 삽질해서 조갑제를 비판할 처지가 못 된다. 보수우파에서 노인공경을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자타공인 여겨진다는 걸 감안하면, 극우들은 위의 각주에서 고문으로 혼자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고 알려진 나이로 노쇠한 노인에게 쇼크를 줄 수 있는 폭언이나 하니 보수우파 자격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우파 언론인의 표상이긴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글만큼은 자기가 직접 목숨 걸고 취재를 다녀와서 쓴 글이기에 이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인정받는 수준이다. 또한 5.18과 관련된 많은 역사자료를 내놓기도 하였다. 이 때문인지 진보측에서도 비슷한 논조의 지만원에 비해 조갑제는 크게 까이지 않는 편이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지만원과 비교하는 것은 큰 실례이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2020년대 들어서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입체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2022년 2월 5일 자신의 유트브 채널 조갑제 TV에서 공개한 윤석열, 제주 강정마을에서 노무현 언급하며 ‘울컥’ 이란 영상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노무현이 김대중의 친북 노선을 이어받은 것은 실책이었으나,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중국의 위협에 대비한 현명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한 것도 국익을 위해 옳은 결정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러한 정책에 반발하여 돌아선 지지자들이 노무현을 욕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이 영상은 윤석열의 안보 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를 언급한 것은 과거 반공 일변도에서 벗어난 아주 스마트한 전략이라고 극찬했다.
그 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긍정적인 맥락에서 언급한 적이 또 있는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정몽준 후보 자택 앞에서 기다린 일화를 언급하면서, 윤석열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이런 자세를 본받아 안철수를 설득하여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윤석열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고 윤석열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내놓은 메시지이긴 하지만,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의 우직한 면을 긍정적으로 봄을 알 수 있다.
사실, 조갑제는 북한과 관련하여 논조가 강경할 뿐이지,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예의를 갖춰 언급한다. 그러한 점에서 흑백논리로 일관하거나 자극적인 언어를 쓰는 다른 정치 유튜버들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조갑제의 기준이 어디까지나 국익이라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북한에서 좋아한 기자가 조갑제였는데, 이는 조갑제가 목숨 걸고 취재하여 밝혀낸 사실들을 북한에서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공산독재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북한에서 살포한 삐라에 집값, 취업난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많다는 내용이 있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남한도 어차피 지상낙원이 아니니, 탈북을 하거나 체제를 바꿀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조갑제의 기사를 악용한 것이다.
애초에 조갑제는 친북도 아니고 일관되게 반공적 입장을 지켜 왔으니, 북한 좋으라고 쓴 기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변하고 싶었을 것이고,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적어도 박정희와 전두환은 김일성, 김정일보다 훨씬 나은 지도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주사파가 독재 정권의 실정을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갑제의 박정희 쉴드는 갑자기 사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쓴 기사가 악용되어 사회가 혼란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냉전 시대에는 미국이 공산주의 억제 전략을 위해 자유 진영의 독재를 어느 정도는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조갑제의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조갑제닷컴을 보면 냉전시대 외교 비사를 담은 기밀 해제 문서를 번역한 글이 꾸준히 올라오는데, 미국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를 묵인한 이유가 나와 있다.
이러한 문서의 내용을 소개하는 의도는 주사파들이 주장하듯이, 미국의 패권주의가 절대 아니며, 독재를 비판하는 미국의 엘리트층마저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국익을 위해서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인 시각이 조갑제의 지론인데, 이것이 OECD 국가 대열에 올라선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시대에 안 맞는 부분도 있고, 개인의 행복 존중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의 관점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이래저래 엇나가는 부분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진영 논리 거부한 조갑제
2022년 8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이 왜 진영 논리를 거부했는지를 강변했다.
독재 정권을 강경하게 비판했다가 박정희 찬양으로 돌아선 것도, 그래도 잘한 건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기본 신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 박정희에 비판적인 진영에서는 박정희의 업적도 부정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보수 유튜버들이 줄기 차게 밀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도 강력 비판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이 황교안이다. 조갑제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수를 궤멸시키려는 반대 세력의 프락치라 보고 있다.
반북
그가 저술한 <종북백과사전>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키는 건 우리의 임무다.
자위적 핵무장론
적이 핵무장 했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핵 필요해 핵무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핵무기는 비대칭전력이기에 이를 해결하려면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거나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북한이 핵무장해서 제제를 받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한국이 핵무장을 선언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제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미 동맹 해체론
여느 보수들과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는 점인데 이스라엘과의 비교를 들면서 북한과의 비교를 들면서 남북이 일대일로 싸워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물론 좌파 진영에서 줄곧 이야기하는 급진적인 반미주의적 시각은 아니고, 점진적으로 우리 국방을 키워서 장기적으로는 한미 동맹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6.25 전쟁에 대한 시각
정규재: (중략) 6.25 전쟁은 어떻게 보십니까? 6.25 전쟁 자체는 고통의 과정이었지만, 그 이후 근대화로 새 출발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최근 들었습니다.
조갑제: 6.25는 재앙으로 위장한 축복이었어요. 6.25 없었으면 1960년대 초에 한국은 월남 식으로 공산화됐을 겁니다. 6.25가 났을 때 한국은 출구가 없었어요. 한미 동맹도 없었고, 주한 미군도 나갔고, 국회에는 좌익들이 들어와서 여러가지 분탕질을 하고 있었고, 이미 산악 지역에는 북한 게릴라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중략) 저는 6.25 없었으면 한국은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역사학계에선 16세기 조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선조 시기 사림파가 기존 인식과 달리 전혀 개혁적이지 않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기묘사림 이후 제대로 개혁을 부르짖은 건 이이 정도밖에 없던 상황에서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전란 덕분에 대동법 등 기존에 받아들여지지 않던 개혁과 재분배 정책들이 시행되었다는 시각이 있는데 이것과 비슷한 시각이다. 국토가 폐허가 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비극이지만 가만 있었으면 내부 혼란과 체제 모순이 걷잡을 수 없어졌을 대한민국이 전쟁으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는 것. 조갑제는 다른 글에서 6.25로 인해서 남한이 사라질 뻔했다고 하는 주장한 바도 있으며, 6.25 전쟁을 한국과 자유진영의 승리로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발언이 김일성의 남침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 관련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반대 집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비록 최순실 게이트 사태가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이기는 하나 국가의 기본과 정체성을 뒤흔들 정도까진 아니니 임기 5년까지는 보장하는 게 맞고, 부친인 박정희의 딸이니 봐 주는 게 낫지 않냐는 입장이며 탄핵 반대 집회에도 연설을 위해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현직 대통령을 보좌하던 보수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논조도 공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과 관련하여 12가지의 이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주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조갑제는 박정희 탄신 100주년에 일어난 박근혜의 추락 앞에서 그리스 비극을 떠올렸다며 "그리스 비극은 못 되더라도 국민적 연민의 부족, 이 점이 한국식 비극의 핵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어머니-딸이 대를 이어서 동족의 손으로 요절이 나는데 외국 언론이 동정론을 펴는 게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한국인은 원래 이토록 잔인한 민족인가? 과연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라고 했는데,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문학동네》 2017년 여름호에서 이런 조갑제의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받아쳤다.
저 질문에 답을 해 주기로 하자. 한국인은 헌법을 유린한 범죄자에게 이 정도로 '잔인'할 만큼의 정치적 이성은 가지고 있다고. 또 현대사를 수십 년 퇴행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날의 민주공화정에 파시스트 '영웅' 따위는 필요없다고. 그리고 '국민적 연민'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국가가 방치해서 바닷속에 가라앉은 304명을 위한 것이지, 그들이 죽어가는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고 이후에도 유가족을 철저하게 외면한 한 냉혈한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신형철 「굿바이 박정희 -2017년 여름호를 펴내며-」, 《문학동네》제24권 제2호(2017년 여름호), 문학동네, 2017, 3~4쪽
그뿐만 아니라 조갑제는 월간조선 2017년 4월호에서도 탄핵을 두고 내전이나 다를 것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눈 감고 귀 막고 탄핵을 반대하기만 하는 다른 보수 성향 인물들과는 다르게, 이번 사건이 국민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한다는 점과 비판 없는 보수들이 박 대통령을 파멸로 몰고 갔다고 비판하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탄핵 이후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및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탄핵 찬반을 떠나서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를 지지했고, 탄핵 사태로 보수가 형해화된 상태에서 '중도' 성향의 안철수가 대통령에 당선하게 된다면 절반의 성공 내지는 선방을 한 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대선 뒤에도 보수통합, 우파통합을 주창했는데 결국에는 박근혜 탄핵 사태가 이를 꼬이게 만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보수가 살아나려면 음모론 퍼트리지 말자."라고 했는데,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조갑제 본인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정일의 첩자라는 식의 음모론을 아주 진지하게 주장한 책들을 썼다.
3김에 대한 평가
김대중과는 10회 이상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짧게하면 2시간, 길게 하면 8시간 이상 했다고 한다. 1993년 경에 김대중과 7시간 이상 인터뷰 할 당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을 김대중 측에게 검토 요청하여 김대중이 직접 글을 고쳐서 보내왔는데, 그의 문장력이 정확하고 달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념적으로 자신과는 다르지만,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성실하고 가장 전략적인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흠으로는 독선과 사물을 바라볼 때, 단편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점을 비판했다.
김영삼에 대해서는 타이밍을 잘 잡는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강단과 기개가 있었고, 기자들의 질문을 잘 받아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 속에 한 번 각인이 된 것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집권 후에 원초적 민족주의에 빠진 것은 그의 큰 불행이었다고 했다. 가장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이며, 약속을 잡아 시간에 맞춰가면 먼저 기다리고 있더라고 언급했다.
김종필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와 만나게 되면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 영화, 문화, 자신이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박학다식하고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종합적인 능력과 소양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했다.
부림사건, 영화 변호인에 대한 비판
2022년 6월 14일에 올라온 이 영상에서 조갑제는 권양숙 여사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운동이며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변호인은 선동 영화라고 비판한다. 또한 그 근거로 보수 단체 국민행동본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부림사건은 대법원에서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사건이라고 단언했다.링크
하지만, 부림사건은 해당 문서에도 언급되듯이, 결국 2014년에 사건 관련자 5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링크 조갑제는 김건희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지만, 어쨌든 대법원에서 무죄로 최종 결론을 낸 사건이므로, 조갑제의 발언은 결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부정한 것이다.
그가 인용한 국민행동본부의 발언은 2014년 이전에 나온 것으로, 결국은 사법부에 의해 뒤집혔다.
따라서, 김건희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권양숙을 방문한 것이라면, 조갑제의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물론,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자유이나,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운동이란 결론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매카시즘에 대한 시각
강력한 반공 논조로 인해 의외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매카시즘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반대한다. 이는 최장집 교수 사상 검증 사건 때 보인 태도에서 드러난다. 당시 월간조선에 몸담고 있던 조갑제는 섣부르게 남을 공격해선 안 된다며, 최장집 교수를 김일성 옹호자로 규정하는 기사를 막으려 했었다.
하지만, 결국 문제의 기사가 나가 버렸고,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기성 언론의 신뢰성이 급하락하여 조중동이 싸잡혀 찌라시로 몰리게 되었다.
박원순의 자녀 병역비리 의혹
의외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박원순의 자녀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서 명백히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군사문화 찬양
조갑제닷컴에서 "군사문화의 전통이 강한 곳에서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글을 올릴만큼, 군사 문화를 열렬히 찬양한다. 심지어 조갑제가 박정희를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찬양하는 이유도 그가 문약에 빠진 한국 사회에 군사 문화를 심어주었다는 것 때문일 정도다. 다만, 그런 식의 논리라면 "북한은 남한보다 군사문화의 전통이 강한데 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또한 2003년 개봉한 영화 황산벌을 두고 "한국사의 가장 감동적 장면을 파괴한 非국민적, 反역사적 행태", "자기 역사의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짓밟고 이로써 돈을 벌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견제하지 못하고 나무라지 못하는 나라는 자멸하기 쉽다"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월간 조선에서도 이런 논조로 긴 글로 영화를 비난했지만 되려 이걸 보고 황산벌에 흥미가 생겨 극장에서 보았다고 조갑제 닷컴에서 황산벌 홍보 잘해줬다고 비아냥거리는 글도 올라오곤 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자 조갑제 닷컴에서 영상을 올려 이재명이 대통령되면 우크라이나처럼 된다느니 윤석열을 뽑아 군사적인 강국으로 될수 있다느니 찬양하고 있지만 군대도 면제이고 사드 추가 배치 공약만 내세운 윤석열이 군사적 강국을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할게 있냐는 일부 보수 지지자들의 반론도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을 군사적 강국으로 이끌 인재라고 너무 억지로 연결하고 주장하고 옹호하는 느낌이 강하다.
한글 전용 혐오와 한자 찬양
2020년 총선 패배의 원인을 두고 "한자 포기가 근본 원인"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올렸으며, "한글 전용을 저지하여야 선진화가 이뤄진다. 좌파득세와 한글전용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두 가지 장애물이다. 좌파가 한글 전용을 확산시키고, 한글 전용이 좌파가 득세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었다."고 말할 만큼 한글 전용을 혐오하고 한자를 찬양한다.
그런데 저런 조갑제의 주장대로라면, 한글 전용 정책을 추진한 박정희야말로 좌파이거나 좌파가 득세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든 원흉이 되어 버린다. 실제로 박정희는 "1970년 1월 1일부터 행정·입법·사법3부의 모든 문서뿐 아니라 민원서류도 한글을 전용케 하고 국내에서 한자가 든 민원 및 모든 공용서류는 접수치 않을 것이며 이날부터 각급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덧붙여 박정희는 "한글이 제정반포된 지 5백20년이 넘는데도 아직 무어라고 핑계를 붙여 한글 전용을 반대하고 이의 실천을 주저하는 것은 한글을 언문이라 하고 한자를 진서라 하는 비주체적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며 한문을 모르는 대다수 국민을 문화로부터 멀리 하려는 행위."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그렇다고 조갑제가 한자어만을 선호하는 성향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게도 두 딸의 이름을 모두 순우리말로 지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시대적 배경과 맥락이 있다.
박정희의 경우는 철저히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한글 전용 정책을 추진한 것이므로, 박정희의 실용주의적 측면을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로서는 굳이 박정희의 한글 전용 정책을 깔 이유가 없다.
반면, 조갑제가 비판한 좌파 세력의 경우는 조갑제의 시각으로는 실용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북한의 어문정책과 발을 맞추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순우리말을 권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근거도 없이 일본어 잔재설을 퍼트리는 사람들도 섞여 있고 그중 일부가 반미 운동권인 것도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현재 언중의 관점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한자를 배척하는 순우리말 운동가들의 관점은 실용주의적 관점과는 한참 거리가 있으므로, 현실 속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이 배척해 버린 한자어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결국 순우리말이 아니라 영어였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가 추구한 공문서 한글화 정책과는 아예 결이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박정희의 공문서 한글화 정책은 현재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순우리말 운동가들이 제안한 단어는 그들만의 언어로 머물러 버렸기 때문이다.
즉, 조갑제에게는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냐가 중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고서는 자녀들의 이름을 모두 순우리말로 지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국수주의적인 좌파 진영이 억지로 제기하는 순우리말 정책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한글 전용이 좌파를 득세하게 하였다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오히려 과거처럼 메이저 언론이 국한문 혼용을 고집했다면, 더 많은 국민들이 한글 전용을 하는 좌파 언론에 선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자 교육을 강화하면 어휘력이 풍부해질 수는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표의문자인 한자를 쓰는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은 한자를 아예 쓰지 않는다. 물론 서구권 지식인 중에 라틴어 계열 단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문자 체계는 자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음문자이다. 따라서 조갑제의 주장처럼 한글로 적은 한자어가 발음 기호일 뿐이라면, 서구권이 사용하는 알파벳도 어차피 발음기호일 뿐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처럼 동음이의어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자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문제는 한자도 모양이 비슷한 글자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김재박 선수를 김재전으로 잘못 읽는 사례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차라리 한글로만 적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자는 획수가 많기 때문에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가려내기가 더욱 어렵다. 괜히 중국이 간체자를 쓰는 게 아니다. 즉, 한자의 발상지에서도 한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무운을 빈다는 말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처럼, 최근에는 한자어 지식이 너무 부족하여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있지만, 한글 전용을 하면서도 한자 교육을 병행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국민들의 한자어 지식이 떨어지는 것은 한글 전용만이 원인이 아니라, 떨어지는 독서율, 잘못된 교육 방식 등 다양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의 주장의 또 다른 문제점은 2020년 무렵부터 인터넷에서 불거지는 만물중국기원설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동북공정처럼 고대사 문제로만 국한되었으나, 지금은 김치도 자기네 전통에서 기원했으며, 한국이 이를 훔쳐가 한국 전통 문화로 날조했다고 우기는 상황이다.
중국의 만물중국기원설은 인류 공통의 요소마저도 중국의 고유 문화로 침소봉대하는 것인데, 만약 조갑제의 주장처럼 국한문 혼용을 했었다면, 중국이 이를 악용할 것이 뻔한 상황이다.
물론, 운동권 세력의 국수주의적 언어관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이에 대한 과한 비판이 오히려 그가 혐오하는 중국의 국수주의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될 문제다.
신라에 대한 찬양
대한민국을 신라에 비유하면서 신라를 본받아서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한다. 삼국 중에 신라를 정통으로 놓고 대한민국이 신라로부터 정통성이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춘추도 매우 좋아한다. 이승만, 박정희, 김춘추, 문무왕을 민족사의 4대 위인으로 꼽는다.
국정교과서 찬성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한 것을 박근혜 정권의 잘한 정책으로 꼽는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국정교과서를 쓰는 곳은 희귀하며 그중에는 조갑제가 비판하는 북한도 있다.링크 애초에 국정교과서가 비판받은 가장 큰 이유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를 쓰는 곳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하면 국정 교과서를 쓰는 곳은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일부 이슬람 이슬람 국가 뿐이다.
또한 일종의 독점이란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장 경제를 부정한다는 점도 문제다. 물론 검인정 교과서도 엔하위키를 출처로 표기하는 등링크, 부실 검정 문제가 심각했지만, 이 경우는 그래도 일부 출판사의 문제라서 다른 교과서로 대체라도 할 수 있지만, 국정교과서는 만에 하나 실수라도 있으면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처음부터 교과서 검정을 철저히 해서 부실 교과서를 막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나라에서 한 종류만 지정해야만 이러한 문제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굳이 공권력을 동원할 필요 없이, 문제가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자연히 도태시키는 방법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 이는 일본의 사례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는데, 과거 문제가 되었던 새역모의 극우 역사교과서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채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극우나 친북 역사 교과서도 문제를 공론화하고 채택하지 않는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다.
게다가 어차피 수능에서는 공통적인 내용을 출제해야 하므로, 문제를 출제할 때 팩트 위주로만 출제한다면, 학교 수업도 자연히 그러한 방향을 따르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정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인데, 반대로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면, 오히려 좌파 정권에서 국정교과서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조갑제 여담 일화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글에 대해서 자신이 판단하기에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은 대개 무시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서 비판문을 쓴 사람들 중에서 고마웠던 사람이 있느냐 질문에 강준만 교수를 꼽았다.
영국의 작가인 조지 오웰을 매우 존경하며, 오웰의 저서를 자신의 글에 인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조지 오웰이 골수 사회주의자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의외라면 의외. 하지만 오웰이 반 스탈린주의자에 발로 뛰는 르포 작가였고, 현직 기자 시절 조갑제가 이를 충실히 계승했던 점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부분.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으로 판문점에서 북한 기자들과의 접촉이 잦았던 함영준 기자의 회고에 의하면, 1990년 무렵까지만 해도 조갑제는 북한에서 가장 좋아했던 대한민국 기자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서 나온대로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수많은 탐사보도 특종을 냈으며,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용기 있게 폭로하며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여러 차례 난처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반정부 기사를 써대는 용감함에 북한 언론인들도 감탄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황산벌이나 변호인에 대해서는 정치적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연기자로서 거둔 성과는 인정한다. 일례로 송강호가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는 영화 같은 나라에서 상복이 터졌다며 축하 영상을 올렸다.
조갑제 저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 1986년, 기자 조갑제가 인천 일가족 살인사건의 사형수 오휘웅의 억울함과 무고함을 입증한 전설적인 책. 사법부의 문제점과 사형제에 관련해서 조목조목 파헤친 책이다. 법대 전공수업이나 대학원 수업에서도 읽혔던 책이다.
『대폭발』 - 1985년 2.12 총선에 대한 분석 및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 관련 다룬 르포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박정희의 일생을 다룬 전기로,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내용을 엮어서 펴낸 책이다. 박정희에 대한 조갑제의 평가가 잘 드러난 책이다. 취재를 바탕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많아서 좌우파 연구자를 막론하고 박정희 시대사 연구자들의 저술 등에서 종종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 나무위키의 수많은 관련 문서들도 이 저서의 내용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국가안전기획부』
『유고』 (2권 세트) - 1979년 부마항쟁, 10.26 사건을 다룬 책. 그밖에 이 책에서 박정희의 비리 및 사생활 문제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다뤘다.
『조갑제의 광주사태』 : 왜 총을 들고, 왜 총을 쐈나? 광주 사태 루머와 싸운 30년 이야기 - 5.18을 왜곡하는 지만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
『군부』 - 안기부의 행태들을 날카롭게 본격 해부한 책.
『한강의 새벽』 -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종북 백과사전』 - 일종의 종북인명사전이다. 한때 조갑제닷컴에 신청하면 무료로 배송해 주기도 했다.
『송의 눈물』 - 군대에서 정신 교육 시간에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2014년 기준. 평화 조약과 강화 협상의 부질없음을 강조한다.
『트루먼과 스탈린의 한반도 게임 비사』 - 소련이 왜 유엔 안보리에 불참했는지 편지를 갖고 와서 설명한다.
『역적모의』 - 김대중, 노무현은 김정일에 굴종한 사람들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우리 생애의 가장 길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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