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9대 국회의원과 제34대 경기도지사를 지낸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2019년 3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계 은퇴 선언을 하면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고 밝혔다. 조부 남상학이 창업한 경남여객을 바탕으로 14, 15대 의원을 지낸 아버지 남평우를 거쳐 3대째 내려오는 수원의 터줏대감 집안 출신이다.
남경필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제34대 경기도지사)
남경필
南景弼 | Nam Kyung-pil
출생
1965년 1월 20일 (57세)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現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본관
의령 남씨
현직
(주)빅케어 대표이사
재임기간
제34대 경기도지사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부모
아버지 남평우, 어머니 김민정(金珉廷)
배우자
현 배우자 (2018 - )
자녀
남주성(1991년생), 남주형(1992년생)
의붓아들
친인척
조부 남상학(南相鶴)
사촌동생 팝핀현준, 사촌제수 박애리, 사돈 박민재 박시정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 58회)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 / 학사)
예일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 박사 수료)
병역
대한민국 육군 상병 소집해제
종교
개신교 (기침)
신체
167cm, 56kg
경력
예일대학교 한인학생회장
경인일보 사회, 정치부 기자
미래연대 공동대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회장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
IEF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회장
제34대 경기도지사(민선6기)
남경필 생애 고향 학력 이력
정치 입문 전
1965년 1월 20일(입학유예),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서 아버지 남평우와 어머니 개성 김씨(開城 金氏) 김민정(金珉廷)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경복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과(84학번)를 졸업하고 부친이 회장으로 있던 경인일보에서 잠시 기자 생활을 하다 미국 예일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오세훈 변호사(현 서울시장)와 인연을 맺었다.
정치 입문 후
아버지 남평우 당시 제15대 국회의원이 임기 중이던 1998년 3월 13일 갑작스럽게 별세하자, 이에 실시된 1998년 재보궐선거(수원시 팔달구)에 이회창 당시 총재의 공천으로 출마한다.
처음엔 열세가 예상되었으나, 26.2%라는 낮은 투표율 하에서 출구조사에서조차 우세가 예상되던 박왕식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꺾고 만 33살의 나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키며 정치에 본격 입문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3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뜬금없이 아버지의 포지션으로 들어갔고, 아버지를 지지하던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인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시절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 진영의 총괄 대변인을 지내는 동안 한나라당 당헌 개정안(당권 - 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시행)에 투신한 혐의로 이회창 후보와 엄청난 반목을 하기도 했으나, 어찌어찌 설득해서 공천을 받아내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을 실현시키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을 했었다. 이건 딱히 노무현과 원한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당의 방침에 따라간 것이다. 실제로 이후 원희룡, 정병국과 함께 박근혜에게 탄핵 찬성 철회를 주장했으나 씹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초반부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고 이명박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명박 정부로 들어와서 2008년 18대 총선 당시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총선 출마를 반대하였다. 당시 한나라당내 개혁/소장파를 비롯한 공천자 55명이 이상득의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하자 이상득은 본인의 지역구가 있는 포항시로 내려가서 칩거하였는데, 포항까지 내려가서 이상득을 만나 불출마를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득은 결국 불출마 요구를 거절하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파동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 논란에 대해서 비판하고 미국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협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용보다는 '정치와 이념' 잣대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려면 중도를 포용하는 등의 외연확대를 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정책과 한나라당 보수기조를 비판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성공시대, 고소득층 성공시대가 아닌 국민성공 시대를 위해 감세철회, 물가폭등의 원인인 고환율·저금리 정책 등 상당수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의원은 이어 "4대강 사업 등 토목관련 SOC사업 위주에서 벗어나 교육과 복지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며 주장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찍혔는지 이명박 정부 시절 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두언, 정태근 의원과 함께 불법 민간인 사찰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남경필은 “민간인 사찰, 뿌리 깊은 개입이 의심된다”라고 하였고, 검찰의 수사가 의혹 남기면 국조·특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2010년 8월에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전임자인 원희룡이 당 사무총장에 내정되면서 2달만에 위원장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당시 당대표 홍준표, 최고위원은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나경원, 홍문표, 김장수였다. 유승민과 함께 추가감세 철회를 이끌어냈고, 서울특별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와 선관위의 디도스 공격 논란이 일자, 유승민이 최고위 총사퇴를 주장하면서 사퇴를 결의하자 여기에 가세했다. 결국 홍준표 당대표 체제가 붕괴되고 이후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다.
위에 서술했다시피, 남경필은 한때 범친이계에 속하기도 했으나,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날세워 비판하면서 친이계에서 벗어났고, 이후에는 계파 자체를 거부하는 무계파 정치인으로 변하게 된다.
19대 국회에서 폭력국회를 종식한 국회선진화법 발의를 주도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 비판이 일자, 대화와 토론, 타협과 양보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 여야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만들어낸 것이 선진화법이라고 설명하며 국회선진화법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선진화법을 악용해 여당의 발목을 잡고 투쟁 도구화하는 것은 그 당시 정치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야당 지도부의 정치철학의 부재라고 비판하면서도 여당 역시도 야당을 설득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김기현 의원이 정책위의장 후보 러닝메이트였다. 이한구 의원(원내대표)과 진영 의원(정책위의장)조, 이주영 의원(원내대표)와 유일호 의원(정책위의장)조가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는 남경필-김기현 의원 조가 58표, 이한구-진영 의원 조가 57표를 각각 얻어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이한구-진영 조가 전체 138표 가운데 72표를 얻어, 66표를 얻은 남경필-김기현 의원 조를 꺾고 1차 투표의 결과를 뒤집었다.
새누리당 소속 경기도지사 시절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어 4년간 재임하였다.
당초에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의 3선 출마를 주장하였고, "짜장면 중에서 삼선짜장이 제일 맛이 있듯이 도지사는 삼선 도지사가 가장 최고다."라는 개그를 시전하기도 했으나, 결국 김문수가 불출마 입장을 굳히고 당내에서도 남경필의 출마를 종용하면서 결국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 경선에서 정병국, 원유철, 김영선과 맞붙어 승리하면서 새누리당 경기지사 후보가 된다.
남경필 후보는 여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개혁 성향이고,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는 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었던지라, 이념의 차이가 거의 크지 않은 두 수원시의 왕자가 맞붙은 선거라는 평가였다. 심지어 SBS 선거방송에서는 보수성향이 아니라 진보성향으로 표시되기도 했다.
남경필은 네거티브 선거를 펼치지 않고 정책선거를 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끝까지 네거티브를 하지 않았다. 네거티브로 당선이 된다한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되어서 통합이 되지 않아서 도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지방선거 곳곳에서 네거티브전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선거만 거의 유일하게 버스 준공영제, 교통 문제, 주거 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대결이 주목을 받았을 정도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여론이 악화된 와중에 결국 43,000여표, 득표율로는 불과 0.8%p의 근소한 차이로 김진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통합진보당 백현종 후보가 사퇴하면서 무효표가 14만표나 발생하였기에, 남경필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승부였다는 평이었다.
경기도지사 당선 후 야권 출신의 이기우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로 내정하여 도내 연정을 실시했다. 경기도정을 이끌면서 야권과 협력하는 협치모델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2016년 4월 도내 프로젝트 중 하나인 G-MOOC(경기도-온라인 대중 공개강좌)의 추진단장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했다.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과 이영조 경희대 교수도 같은 시기에 영입했다.
2016년 10월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청와대의 정상적 업무가 불가능하여진 탓에 우선은 당이 손수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하였으며, 그것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1월에는 9명의 친박 의원 모임, 이른바 친박 9인회에 대해 폭로했다. 한마디로 친박계와 제대로 각을 진 것이었다.
2016년 11월 15일, 비박계의 임시 지도부인 비상시국위 12인 공동대표 중에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비상시국위 출범으로 분노한 이정현 대표로부터 지지율 합쳐 10%도 안 되는 대선주자들이 당에 먹칠한다는 막말을 들었다. 남경필은 이에 발끈하면서 이정현, 박근혜교 사이비 신도 같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이정현 대표가 사퇴 안 하면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연정 시도
2014년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경기도정을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연립정부로 이끌면서 무난한 행정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정을 아예 '자기브랜드화'하려는 것 같다는 평도 있다.
6.4 지방선거 결과 새정치민주연합 도의원들이 경기도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경기도의회가 여소야대 상태이기 때문에 원활한 도정 운영을 위해서는 새정연 측과 협력을 해야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도내 국회의원들도 야당 의원이 과반수기도 하다. 다만 소장파로서의 의정 경력, 국회선진화법 발의, 도지사공약, 고려대 특강에서의 발언 등을 보면 단순한 유불리 때문에 한다기보단 본인의 평소 소신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연정은 크게 야당 출신 부지사와의 연정, 도의회와의 연정, 진보교육감과의 연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2014년 사회통합부지사직을 신설해 야당이 추천한 이기우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임명해 사회, 보건, 복지 분야의 인사권 등 몇몇 권한을 부여했다.
도의회와는 2015년 1월 도의회와 집행부,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경기도 연정 실행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예산 배분과 운용을 설정하는 재정전략회의가 신설돼 집행부와 도의회가 '함께 짜는 예산 연정'의 기틀이 마련됐다. 생활임금을 광역자치단체에서 처음 도입했으며 2015년 5~7월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초당적 협력, 중앙정부 및 타 지방과의 공조를 원활하게 이끌어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과 더불어 행정력,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감과의 연정을 통해서는 무상급식 관련 비용도 마찰없이 통과시키고, 상당히 왼쪽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재정 경기교육감과의 연정에 합의했다. 무상교복 정책을 추진하며, 보수 진영에서 무상급식을 비판할 때 거론되던 학교 화장실 등 시설물 문제도 합의하는 등 전임 김문수 도정 때와 달리 교육감과의 마찰도 줄었다.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등의 정책과 여당의 본래 공약을 함께 이루는데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으며, 연정이 법률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 정치계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12월 고려대학교 초청 강연에서 남경필 도지사 본인이 밝히길,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다른쪽 상대방이 짓밟히는 꼴을 봐왔다. 연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여 우리나라의 정치를 한 단계 개선시켜나가야 하지 않나'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2016년 들어서 누리과정 예산 문제로 연정이 한차례 무너졌고, 특히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자체 예산으로 시행하려는 3대 복지사업에 제한을 걸면서 연정이 삐걱하는 모습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남 지사는 연정 Ver 2.를 제안해서 다시 연정을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2016년 상반기 내로 재협상을 완료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2016년 5월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가 다시 화해에 성공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하는 대신(2차 추경에 반영) 더불어민주당 측에 좀 더 권한을 양보하였다.
새누리당 탈당, 바른정당 창당
2016년 11월 22일, "진정한 보수 중심을 세워 먼저 헌정 질서 복원 로드맵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과 그 일파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의법조치 되도록 앞장서겠다"고 밝히면서 김용태와 함께 새누리당 탈당의 스타트를 끊었다.
뒤이어 새누리당을 덩달아 탈당한 비박계 정치인들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하였다. 2017년 1월 25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승민과 경쟁하였으나, 탈락했다.
2017년 7월 31일, 채인석 화성시장과 함께 동탄신도시 사랑으로부영아파트 부실공사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바른정당 내 통합파와 자강파의 입장을 절충해 자유한국당의 서청원 등 친박 중진을 쳐내고 나서 신당 창당의 형식으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당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통합전대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양측 지도부 모두가 사퇴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낮은 제안이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자유한국당에 복당하기 위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선도탈당한 사람이 다시 자유한국당에 투항하는 꼴이라 기회주의자라고 비판받고 있다.
남경필 본인은 합당이나 신당 창당이 아닌 이상, 절대로 당을 탈당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른정당 탈당, 자유한국당 복당
2018년 1월 9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잘 되기를 희망하지만 생각이 달라 지금 동참하기는 어렵고 이후에 큰 통합의 길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탈당계를 제출하였다. 페이스북에 “동탁을 토벌할 수 있다면 기꺼이 조조가 되겠다”며 자유한국당 복당을 시사한 데 이어 2018년 1월 15일 공식 복당 선언을 하면서 약 1년 만에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재명은 남경필이 조조가 아니라 여포라고 비난했으며, 바른정당 하태경은 "'조조'는 새 조(鳥)를 두 번 쓴 것이다. 철새가 두 번 이동했다는 뜻"이라고 비웃었다.
'철새'라는 비판에 대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도 숱하게 당적을 옮겼다. 내가 철새면 노무현-김대중도 철새라고 해야 하나'라고 반론하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막말대열에 합류한 남경필 지사, 자유한국당 복당 신고식이라도 하는가?'라는 논평을 냈고,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어찌 두분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는가? 함부로 모욕하지 마라'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내 경선 없이 자유한국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단수공천되어 출마하였으나, 상대 후보인 이재명에게 여러 잡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5.5%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낙선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연임에 성공한 것과 대비되면서, 복당이 악수가 되어버렸다는 평가가 많다.
비록 낙선했다고는 해도 남경필은 당내 계파 싸움에서 자유롭고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높은 인지도, 탄탄한 경력, 젊음, 그리고 가장 중도실용에 가까운 마인드를 갖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향후로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졌지만...
정계 은퇴
2019년 3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땀 흘려 일하는 청년 남경필이 되겠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계를 떠난다는 말을 덧붙이며 정계은퇴 선언도 덧붙였다. 앞으로는 스타트업 창업과 운영에 몸을 담겠다는 계획.
아직 55세의 젊은 나이이고 한국당 복당 정도를 빼면 큰 실책도 없었다는 점을 보면 의외이지만, 22년간 그가 정치인으로 살면서 전처의 총리실 사찰이나 정치로 인한 이혼, 장남의 범죄까지 겪어오며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빅케어(모두의건강) 대표
블록체인 기술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건강검진 관련 일처리를 하는 스타트업 모두의건강 대표를 맡고 있다. 이후 2019년 하반기 빅케어로 사명을 변경하고 가천대 길병원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가 된 이후로 남경필은 정치 관련 언급은 공개적으로 단 한 차례도 하고 있지 않으며, 정치인들과의 만남도 오해를 살까봐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다고 한다.
2021년 MBN에서 인터뷰를 가지던 바 있었는데, 정계 복귀 제안은 여전히 빗발치며 당시 재보궐선거로 치뤄지던 서울특별시장 출마도 제의받았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거물급 정치인으로 활약하던 시절을 잊지않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복귀 제안은 단칼에 거절하는 중이고 커리어가 탄탄대로인 이재명의 정치 인생을 되려 걱정하는 반응을 보면 굴곡진 정치 여로에 지쳤음과 정계에 더이상 미련이 없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도 남경필의 경기지사 복귀 귀추가 주목받았고 여전히 죽지 않은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으나, 남경필 본인 요청으로 여론 후보군에서 일찍이 제외되어 복귀설은 일단락되었다.
남경필 정치 성향
국민의힘에 소속된 대표적인 소장파 정치인으로 꽤 리버럴한 관점을 가진 정치인이다. 같은 당내 리버럴한 관점을 가진 유승민 전 의원과도 비교되는 편이다. 어떤 면에서는 유승민보다 더 진보적인 면도 있다.
유승민은 경제 정책, 사회문화 정책, 사회복지 정책에 있어서는 중도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동시에 대북정책,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원칙론을 내세우며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반면, 남경필은 이런 사안에서도 다소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모병제에 대해서는 유승민은 중산층 이상이 부사관 이하의 군인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 안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모병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남경필 지사는 군 입대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모병제를 찬성하는 편이다.
다만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유승민, 남경필 모두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면서 시장의 자유, 성장을 중시하고 관치경제와 확장 재정,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추고 있다. 유승민은 보수가 오히려 사회복지와 분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경필은 복지보다는 시장에 자유를 맡기는 시장지향적 경제 모델을 더 선호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같이 2000년대에는 남원정이라고 불리며 한나라당 - 새누리당 내의 소장파 역할을 했었다. 5선 국회의원, 경기도지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지만 계파색이 없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친박, 친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비교적 중립을 지켜왔다. 같은 남원정의 정병국 의원이 이명박을 지지하고 박근혜와 거리를 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역구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 강하기에 계파 및 정당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서 가능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중반 <판도라>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투명성만 보장한다면, 자주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19대 대선 바른정당 내 경선에서 개성공단의 즉시 재개를 내걸었으니, 사실상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셈이다. 핵을 없애고 공개적으로 시행한다면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때문에 우파, 친박 진영에서는 좌빨, 종북이라는 등의 막말을 듣기도 했을 정도였다. 후술할 아들의 군대 폭행 논란도 남경필 본인이 박근혜에게 밉보여서 묻힐 만한 일이 까발려진 거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다.
다만 사드 배치에는 찬성하며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핵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어느 정도 보수적인 면도 있다.
본인이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면서 연립정부를 직접 조직했던 것이라든가, 바른정당의 "청년정치학교" 개소식 당시 "국민들이 먹고 사는 데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느냐, 실용의 길을 가야 한다."고 밝힌 바를 보면, 그의 평소 신념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남경필 여담 일화
광역자치단체장 역대 당선자들 중 의원 선수가 가장 높은 인물이자 최초의 5선 이상 의원 출신 광역자치단체장이다. 관례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은 3~4선 의원이 주로 도전해왔는데 5선의 원로급 선수에도 불구하고 관례를 깨고 의원직 중도 사퇴 후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되었다. 이후 5선 이상 의원이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되는 사례는 한동안 없었다가 홍준표 의원이 5선 임기 중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구시장에 당선되면서 남 지사와 같은 기록을 갖게 되었다. 물론 홍 시장은 여기에 재선 경남지사까지 했었으니 이걸 포함하면 대구시장 당선 당시 7선이었던 셈이다.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부인과 이혼했다. 이에 대해 정치인 커리어로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 반면, 21세기에 이혼은 개인 사생활의 문제로 큰 흠결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이에 대해 남경필 본인은 MB정권 시절 불법사찰 때문에 부인의 스트레스가 컸다며, 의원까진 용인해도 도지사는 안 된다고 했다는 등 이혼에 정치적 이유가 상당히 크게 고려되었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즉,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하고 이혼한 셈이었다. 이혼이야 뭐 개인의 선택이니 장남 관련 문제에 비해선 논란이 훨씬 덜한 편이다. 비록 도지사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지방선거에서 이혼 사실은 이슈조차 되지 못했고 유권자들도 관심두지 않은 걸 보면, 이혼은 개인 사생활 영역일 뿐이란 주장이 결과적으로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민선 경기도지사 중 유일하게 도청 소재지이자 최대 도시인 수원시 출신 도지사이다.
2018년 8월 10일 재혼했다. 신부는 교회에서 만난 4살 연하의 여성이며, 직계가족만 참석하에 조용히 식을 올렸다고 한다. 또한 남경필의 전처와 새 아내의 전남편이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출구조사를 두 번이나 뒤집었다. 첫 번째는 1998년 국회의원 재보궐, 두 번째는 2014년 경기도지사 선거.
가수 팝핀현준이 그의 사촌동생이다. 원래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4년 경기도지사 당선 당시 팝핀현준의 트위터를 통해 서로 사촌 지간이라는 게 알려졌다. 실제로 팝핀현준은 남경필의 당선을 축하하는 글을 올리며 "형 힙합공원 하나 만들어줘요" 라고 하기도 했다.
자수성가한 정치인이 아닌 소위 말하는 금수저 정치인이다. 이에 대해 본인도 자신이 금수저 정치인이 맞음을 인정하면서도 금수저를 갖고 혼자 파먹는 게 아니라 소위 ‘흙수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정치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나도 노력하겠다고 답변하였다.
민주당과 가장 연정을 잘 하던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 건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실제로 남경필은 보수 내에서도 개혁을 주장해온 소장파로서의 행보를 줄곧 해왔다. 홍준표 경남지사나 오세훈 서울시장과는 달리 도지사 시절 야당 의원들과 마찰을 자제하기로도 유명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 대한 무료 진료만 하더라도 남경필이 전폭적으로 야당의 의견을 수용한 사례이며 야당 의원들도 남경필 도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똥파리라고 불리는 '극문' 성향 유권자들이 경기지사 선거에서 이재명 대신 남경필을 지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안희정, 정병국, 우상호 등과 함께 미남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외모가 좋은편이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정치인으로선 안 어울릴 수 있는 동안상이라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원로 정치인이었던 유인태가 농담삼아 안철수와 남경필에 대해 어린 사람이 정치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남경필의 경우는 너무 어려 보여서 그렇게 봤다고 정두언이 밝힌 바 있다. 다만, 안철수는 다소 눌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것 때문에 그리 봤다고 한다.
정계입문 초창기에는 안경을 썼으나, 200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안경을 벗고 다니고 있다. 이건 원희룡, 우상호, 황영철, 신기남도 마찬가지. 다만 우상호처럼 필요 시 안경을 착용한다.
2016년 9월 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국군 모병제를 통한 군 병력 30만 규모 감축과 사병 월급 200만 원 등 작고 강한 군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또한 대선 경선에 출마한다면 공약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9월 7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모병제 주장을 비판하자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북한 5차 핵실험 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 모병제가 답이라고 자신의 SNS에 말했다. 그리고 안보불안에 대한 해법으로 동시에 핵무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교육을 마약이라고 규정하고 사교육 철폐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왕좌의 게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다만 남경필의 언급과 다르게 존 스노우는 윈터펠이 아니라 캐슬 블랙의 야경대원이다.
2015년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 오쓰카 다쿠 중의원과 만난 적이 있다. 9일 도쿄에서 정계 주요인사를 잇달아 면담, 한일관계 개선과 지방 활성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일본 외무성 초청을 받기는 남 지사가 처음이다.
가장 본받고 싶은 정치인으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꼽은 바가 있다. 상기한대로, 혼자 파먹지 않고, 금수저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겠다고 했다.
유시민과 몇 번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밀리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김문수, 나경원과는 달리 자기 소신을 제대로 주장하면서 토론했다. 대체적으로 유시민에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나름 잘 펴 나갔다는 평이 많은 편. 유시민과 호형호제하면서 시민이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석에서는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유시민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남경필의 중도실용적이면서 사교적인 성격이 의외로 서로 잘 맞는 듯하다. 거기다가 박형준하고도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경필이 박형준한테 자기 맏아들놈이 또 사고쳤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여하튼, 민주당계와 두루두루 친하다고 한다.
소위 모두까기 기질이 강한 진보성향 논객인 진중권이 보수정당계 정치인 중에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실제로 외부자들에서 진중권이 이를 언급했다. 실제로 진중권과 남경필은 성향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및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특히 남 지사와 안 지사가 매우 친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강적들이나 100분 토론 등 TV에도 같이 나오며, 정책에 있어서도 서로 옹호를 많이 해준다. 특히 연정론이라던가 정책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면이 많으며, 공동 공약도 발표했을 정도. 실제로 이 네 사람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권영진 대구광역시장과 더불어 15여 년 전부터 정책 논의를 많이 해 왔다고.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맞붙었던 김진표와 같은 교회(수원중앙침례교회) 교인이다. 김진표는 장로, 남경필은 집사라고 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같은 경복고등학교 동문인데, 무려 17년 선후배 관계이다.
한 때 이명박 前 대통령의 측근으로 일컬어지던 정두언, 정태근 前 국회의원이랑 매우 친한 사이이며, 이들과 행보도 자주 엮인다. 김용태 국회의원하고도 매우 친한 사이이다.
선거 이력이 화려하다.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라는 큰 직책을 건 선거, 그것도 소속 정당의 텃밭이 아니라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6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자랑했으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재명에게 참패함으로써 연승 기록은 끝이 났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경기도 역점 사업인 '청년통장'을 '사행성 포퓰리즘'이라고 언급한 이재명 성남시장을 강력 질타했다. 이재명 시장이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경기도가 추진중인 '청년통장' 사업에 대해 "경기도의 '1억 통장'은 도가 5천만 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인데, 그 대상은 도내 300만~400만 명의 청년 중 최대 4천~5천 명밖에 안 된다"고 말했으며 또 "1천 분의 한 두 명 정도 뽑아 5천만 원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사행성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남경필은 '사행성'을 언급한 이재명을 정면 반박하며 청년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경기 북부지역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자신의 별명을 '북경필'이라고 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도시락을 선물받았다. 전해철 의원은 tvN 프로그램 '우리가남이가'에 출연해 백암순대, 죽순밥, 낙지호롱구이, 순대볶음을 만들었고, 이 요리를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전현무, 박명수, 황교익 등 멤버들은 경기도청 비서실과 연락한 후 남 지사를 직접 찾아가 메뉴를 전달했다. 남경필 지사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장성민과 외모가 닮았다. 공교롭게도 둘은 나이도 서로 비슷하다.
남경필 선거 이력
1998
7월 재보궐선거
경기 수원 팔달
19,112 (44.28%)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팔달
51,893 (48.93%) 당선 (1위)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팔달
44,287 (49.01%) 당선 (1위)
3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팔달
41,025 (64.08%) 당선 (1위)
4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병
50,011 (50.34%) 당선 (1위)
5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2,524,981 (50.43%) 당선 (1위)
초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2,122,433 (35.51%) 낙선 (2위)
윗 부분에서도 언급되었듯히 선거 이력이 화려하다. 비록 부친의 후광과 운이 따라주었다고는 해도 33살에 원내에 입성해 총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그리고 출구조사를 뒤집은 적만 두 번이다.
수도권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지지율이 비교적 높은 지역구에서 연이어 5선을 했다는 점에서 선거의 달인으로 통하는 이해찬 전 총리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결국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재선에 실패하고 본인도 정치 커리어 첫 낙선 경험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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