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인. 소속 정당은 무소속이다. 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5선)으로 지역구는 경기도 평택시 갑 지역이었다.
원균의 백부 원수량(元遂良)의 14대손, 원연의 13대손이다.
정치인 원유철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원균 후손, 국회의원 역임)
원유철
元裕哲 | Won Yoochul
출생
1962년 9월 26일 (60세)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도일리
(現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현재지
경기도 평택시 동삭동 수원구치소 평택지소
신분
기결수 (2021년 7월 29일 ~ 2023년 1월 28일)
본관
원주 원씨
배우자
서세레나
자녀
2남 1녀
학력
태광중학교 (졸업)
수원수성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철학 · 정치외교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공군 상병 소집해제 (방위병)
종교
천주교 (세례명: 다미아노)
신체
O형
약력
경기도의회 도의원
제10대 경기도 정무부지사 (김문수 도정)
제15~16, 18~20대 국회의원
제18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장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새누리당 원내대표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제19대 국회 후반기 운영위원장
미래한국당 대표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
원주원씨대종회장
원유철 생애 고향 학력 이력
1962년 9월 26일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도일리(現 평택시 도일동)에서 아버지 원부식(元富植)과 어머니 삭녕 최씨 최창경(崔昌敬)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평택 태광중학교, 수원 수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 재학 중에 학생회 운영위원장을 지냈으며 졸업 무렵에는 통일민주당 청년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8년 졸업 이후 1990년까지 LG화학에서 근무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 만 28세의 최연소로 당선되어 세계일보가 선청한 '차세대를 이끌어갈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경기도 평택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3선인 신한국당 김영광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시 원유철을 돕던 자원 봉사자가 3천명을 돌파해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신한국당에 복당하여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만섭, 이인제, 서석재, 홍재형, 송광호, 김학원, 홍문종, 황명수 등과 신한국당을 탈당하였다. 이유는 '3김 정치의 연장 음모인 DJP 야합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이인제 후보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였다. 이후 국민신당을 창당하였다.
1998년 국민신당이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신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가 통합하여 만들어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불과 2.24%p 차이로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가하여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가, 정작 자신이 주장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루어지자 아예 복당하지 않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탄핵 역풍을 받아 열린우리당 우제항 후보에 밀려 약 5000표 차이로 낙선하였다.
2006년 2월 지방 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선거 대책본부장을 맡아 김문수지사의 당선을 도왔다. 2008년까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밑에서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통합민주당 우제항 후보를 약 3.69%p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친이˙친박을 아우르는 인사로 '용광로 공천 심사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상대적으로 공천에 대한 잡음이 적었다는 평이 있는 편. 또한 당시 이슈였던 평택 쌍용차 노사 대립 사태 당시 '노사정 여야 중재단' 구성으로 타결을 이끌어 낸 적이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국방위원장 재임 당시 야당의 반대로 난항을 겪던 북한의 <천안함 폭침 대북 규탄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별명처럼 따라붙는 '조건부 핵무장'주장이 시작된 것이 이 시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완구 원내대표가 국무총리로 임명되자, 열린 원내대표 선거에서 유승민 의원과 같은 조로 출마하여 2015년 2월부터 7월까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정책위의장이 되자 밤샘공부했다는 일화도 있다.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민생정책위원회'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가계 통신비 절감', '도시가스 요금 인하', '쌀값 안정', '서민 금융 지원 강화'등 민생 위주의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2015년 7월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후,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추대되었다. 당시 유승민 의원의 거취 정국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명예로운 퇴진을 위한 역할을 하는 등, 중재력을 드러냈으며 특정 계파에 치우치지 않은 스타일이 당내 친박계나 비박계, 청와대까지 거부감을 사지 않았던 것이 추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원내대표 취임 이후 당·정·청 관계 정상화와 당시 메르스, 가뭄 등으로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살리기 위한 추경을 역대 최단 기간에 통과시켰다. 또한 '한중 FTA'와 '한·캐나다 FTA'를 체결하고 10년 이상 지체해왔던 '북한 인권법'과 '테러 방지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2016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지만, 새누리당 선거 참패의 책임 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사퇴 선언을 시작으로, 4월 14일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지도부가 모두 사퇴하게 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기로 결의했다. 원내대표인 원유철 의원이 6월에 있을 전당대회 전까지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하였으나, 비박계 의원들이 '원유철 비대위 불가' 입장을 피력하며 연판장을 돌린 끝에 비대위원장을 맡지는 않았다.
한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공약 불이행시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공약을 파기해 논란이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진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치밀한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 수재 혐의로 구속기소된 원 의원의 수석보좌관 권모씨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에 5천500만원 추징이 선고되었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권씨가 원 의원에게 청탁을 전달한 사실은 있으나 원 의원은 지역구 민원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원 의원이 권씨와 공모를 했거나 이익을 나눈 증거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원 의원은 2011년부터 6년 동안 그의 전 보좌관 권모씨와 공모해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평택시 소재 기업인 4명으로부터 뇌물 1억3000만원과 불법 정치자금 1억여원, 청탁비 5000만원 등 총 2억8500원 상당의 금품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7년 2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후보 슬로건은 '강한 대한민국'.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1차 경선은 통과하였으나 그러나 2017년 3월 20일 경선 2차에서 인천 안상수와 함께 컷오프되었다. 후보 당시 내세웠던 공약은 '유라시아 큰 길'구상으로 한반도를 시작으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중국 횡단 철도를 연결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순환 고리로 엮어 내는 구상이라고.
자유한국당이 압도적으로 패배했던 대선이 끝나고 2017년 6월에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친박 진영을 대표해 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졌으나 홍준표에게 밀려 패배하였다.
2017년 11월 15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2018년 1월1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9년 10월 7일, 2011년부터 6년동안 장기간, 여러번 뇌물을 수수한 점을 들어 정치자금법 위반에 징역 1년에 추징금 2억 3000만원, 뇌물 및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7년에 벌금 2억 6천만원을 구형받았다.
2020년 1월 14일 1심 선고공판 결과 의원직 상실형인 징역 10월에 추징금 2500만원,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
2020년 2월 20일 원유철 의원의 부인이 지지자들에게 다음날 원유철 의원은 불출마할 것이며 평택시 을에 출마를 선언한 공재광 후보가 원유철 의원의 지역구인 평택시 갑에 공천받기로 되었다며 “부디 새로운 후보에게 저희에게 보여주셨던 애정을 똑같이 보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라는 특정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다음날인 2020년 2월 21일, 21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2020년 3월 19일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미래한국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다음날 20일, 미래한국당의 대표를 맡게되었다. 그리고 5월 29일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합당하며 통합당 원외 평당원으로 남게 되었다.
2020년 9월 24일,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원유철 전 의원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도대체 대통령은 유엔연설은 왜 하고, 군은 첩보자산을 왜 가지려고 하는가”,“대통령의 유엔 연설도, 군의 첩보 자산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희생당하는 것을 눈 뜨고 보고만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원유철 정치 노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하고 신한국당에 복당한 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인제를 지지하였다. 이인제와 동반탈당하여 국민신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1998년 국민신당이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활동하면서 계파색이 특별히 뚜렷하지 않았다.
2015년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함께 비박계 원내지도부를 구성하였고 친박계의 유승민 퇴진요구에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이후 소위 '신박'(새로운 친박)으로 탈바꿈 한다.
공천 파동
원유철의 친화력과 중재력은 정치권에서 평가가 좋은 편. 2016년 20대 총선을 위한 새누리당 공천 때 심각한 공천파동이 있었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심하게 갈등했을 때 원내대표였던 원 의원이 조정자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소위 ‘옥새 들고 나르샤’ 하고, 원 의원은 비행기 타고 부산으로 ‘도장 찾아 삼만리’ 하고…. 원 의원이 김 대표를 만나 자갈치시장의 한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년 뒤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똑같은 공천 파동을 겪게 된다. 원유철은 이미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였다. 비례 정당인 미래한국당 출범 당시 대표였던 한선교 의원이 비례 대표 공천 파동으로 결국 대표직을 내려놓게 되자, 미래통합당 지도부로부터 연락을 받고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원유철은 바로 미래한국당 대표로 투입됐다. 원 대표는 공천 파동을 수습한 후에 총선에서 비례 정당 가운데 득표 1위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원유철 논란 및 사건 사고
정치자금법 위반 및 알선수재
2017년 12월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수사하면서 "뇌물 혐의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9월 경기 평택 소재 부동산 개발업체 G사 이사 겸 K나이트클럽 실소유주 한모씨가 가짜 토지매입 서류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제출해 365억원 상당의 분양보증을 받아낸 사건을 수사하다 원 의원 전 보좌관 권모씨에게 한씨 돈 수천만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한씨가 건넨 돈이 사업 인ㆍ허가 청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 지난달 15일 원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과 회계 책임자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한씨 사건과 W사 사건에 원 의원이 연루돼 있는지를 확인 중이다.
어떤 자금도 불법으로 수수한 적 없다며 부인했으나 결국 이듬해 2018년 지역구 기업인들로부터 수억대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청탁비용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뇌물 방조·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원 의원과 사무국장 황모씨, 전 특보 최모씨, 경기도 평택 소재 건설업체 대표 한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원 의원은 지난 2011년 4월부터 6년 동안 그의 전 보좌관 권모씨와 공모해 한씨를 비롯해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평택시 소재 기업인 4명으로부터 뇌물 1억3000만원과 불법 정치자금 1억여원, 청탁비 5000만원 등 총 2억8500원 상당의 금품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원 의원과 공모한 권 전 보좌관은 지난 2012년 10월부터 1년 동안 플랜트설비업체 W사 대표에게서 '산업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5500만여원을 받은 혐의로 이미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2019년 10월, 검찰은 원유철 의원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특가법) 뇌물 등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7년에 벌금 2억6000만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추징금 2억30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구형 의견에서 “5선 의원으로서 국민 전체 대표자임에도 헌법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채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뇌물을 수수한 바, 통상 공무원에 비해 범행 중대성이 크”고,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그 수수 기간이 장기간이고 횟수도 다수에 걸쳐 매우 중대한 범죄”라며 “사적인 청탁이 반복되며 정치적 영향력과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등 악순환을 반복, 유지, 강화, 고착화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중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 의원과 공모해 특가법상 뇌물 방조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특보 최모씨에 대해서는 징역 3년6월에 벌금 5500만원이 구형됐고, 지역구 사무실 사무국장 황모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벌금 2000만원, 특가법상 뇌물 등 혐의로 징역 3년6월에 벌금 7300만원, 추징금 1300만원이 구형됐다. 2017년 9월 주택 사업 관련 인허가 과정에서 원 의원 전 보좌관 권씨에게 돈을 전달해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동산 개발업체 G사 대표 한모씨는 징역 2년이 구형됐다.
한편, 원유철 의원은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다.
2020년 1월 14일 특경법상 알선 수재 및 정치 자금 부정 지출 혐의에 대해 징역 10개월과 추징금 2500만 원을, 정치 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해서 대출 승인의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 "원 의원이 대출 알선 대가로 3천만 원을 받은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 암묵적으로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주장해서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나, 미필적으로나마 타인 명의로 후원금이 지급되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정치 자금을 불법 수수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원유철 의원은 "검찰이 무려 13가지 혐의로 기소했지만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면서 "유죄를 선고받은 세 가지 혐의도 항소심에서 반드시 결백을 입증해 무죄를 받아내겠다"라고 밝혔다.
2021년 1월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보다 형량이 늘은 징역 1년 6개월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원심과 같이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
2021년 1월 28일,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2021년 7월 21일,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원유철 전 의원에게 징역 1년 6월, 추징금 5천만원을 명령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따른 벌금 90만원 역시 확정했다. 다만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지었다.
세비반납 공약 파기 논란
지난 2016년 4월13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현 원유철 의원등 당시 새누리당 소속 후보자 40명은 국민을 상대로 조건부 세비 반납 약속을 했다. 이들은 갑을개혁, 일자리규제개혁, 청년독립, 4050자유학기제, 마더센터 등 대한민국을 위한 5대 개혁과제를 2017년 5월 31일까지 이행하지 못하면 1년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하겠다고 공언하였으며, 계약서를 작성하고“우리는 ‘대한민국과의 계약’에 서약합니다”라며 “서명일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5월31일에도 5대 개혁과제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서 1년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할 것임을 엄숙히 서약합니다”라고 썼다. 거기다가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고 이 광고를 1년간 보관해달라고 하였다. 이 약속에 이름을 올린 당시 후보는 40명이다. 이들 중 당선자는 26명(강석호, 강효상, 김광림, 김명연, 김무성, 김성태, 김순례, 김정재, 김종석, 박명재, 백승주, 오신환, 원유철, 유의동, 이만희, 이완영, 이우현, 이종명, 이철우, 장석춘, 정유섭, 조훈현, 지상욱, 최경환, 최교일, 홍철호)에 달한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초특급 이슈가 터져 버렸는데 바로 ‘국정 농단 사태’였다. 1년이 되어 세비 반납 공약이 논란이 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보도 자료를 통해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1년간 5대 개혁 과제 법안을 발의함으로써 계약 내용을 이행했다”고 말하였다. 법안들 가운데 ‘노동 개혁을 위한 고용 정책 기본법 개정안’은 마감 시한인 31일 전날 오전에 발의하였다. 이미 발의한 법안들도 모두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상태였다. 이를 두고 '법안 통과가 되지 않았는데 개혁 과제를 이행했다고 볼 수 있는가?'라거나 '세비 반납을 피하려고 졸속 발의한 것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었다.
미래한국당 대표 시절 논란
미래통합당 측에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선출되고 난뒤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을 제시했는데 원유철 대표가 '통합 시기가 아직 이르다', '당내 의견을 모으면서 정무적으로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자 21대 총선때 미래한국당 의석을 19석 확보했으므로 1석만 더 영입하면 원내교섭단체가 되므로 독자노선을 걷는 것이 아닌가란 논란이 있었다. 당 내외로 논란이 심해지자 원유철 대표는 5월 29일까지 합당하겠다고 발표했고 예정된대로 합당이 처리되어 미래통합당으로 복당했다.
핵무장 주장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일어나자 2016년 1월 7일, 원유철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계속 우리 머리에 핵무기라는 권총을 겨누고 있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제재라는 칼만 갖고 있을지 답답한 상황"이라며 "북한의 공포와 파멸의 핵에 맞서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을 가질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6년 2월 15일 임시국회 연설에서도 '평화의 핵'이라는 표현을 쓰며 북핵에 맞서기 위한 독자 핵무장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원유철은 이전부터 여당 내에서 독자 핵무장을 주장했던 대표적 인물이지만 당시 발언은 여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국회 연설을 통한 공개적인 주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논쟁거리가 되었다. 원유철의 해당 발언 직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당론이 아닌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에 따른 논란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2개월 후, 원유철은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를 만나 "북한이 계속 우리를 위협하는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데,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면서 "국민 안전과 국가 안위를 위해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적인 핵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자신의 '자체 핵무장론'을 소개했다. 참고로 아인혼 전 특보는 과거에 여러 차례 “한·미 동맹이 굳건하게 유지되는 한 한국이 핵무기를 스스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의 핵 보유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 왔다. 또한 원유철을 만나기 전날 '아산 플래넘 2016'에서 "한국이 핵무장으로 얻게 될 인센티브는 아주 아주 적다"며 "오히려 핵 역량 보유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막대하다"고 말한 바 있다. 원유철의 말에 아이혼 전 특보는 “한국이 독립적인 핵 억지력을 구축하려 할 경우 상당한 대가가 따를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8월 4일에 국회 내에서 북핵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여 핵무장론을 다시 제기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내에 '북핵 해결을 위한 포럼'를 결성, 총 18명의 여당 의원들을 합류시켰다. 여기서 "독자 핵무장을 추진하고, 국제사회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만 유지하다가 추후에 폐기한다'는 전제로 양해를 구하자"는 '조건부 핵무장론'을 주장했다.
2017년에 있었던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핵유철'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본인도 좋아하는 듯 하다.
2019년 자유한국당 북핵 외교 안보 특별위원장 재임 시에는 <안보가 안 보인다>라는 안보 백서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원균옹호론
원유철이 원균의 후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원유철은 원균의 백부 원수량의 후손이다. 어쨌든 원균과 같은 원주 원씨로 지역구가 원주 원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 경기도 평택이다. 원균장군묘와 사당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원균과 닮은 꼴로 인해 이슈가 되었으나 영정의 경우는 과거의 기록과 후손의 모습을 본따 그리는 상상도가 대부분이라 엄밀히 말하면 원균과 닮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원균의 아들인 원사웅이 임진왜란 당시 전사하여 원균의 직계 후손은 없다는 루머도 있으나, 당대의 공식기록인 공신회맹록과 승정원일기를 보면 원사웅은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살아있었다. 심지어 원씨 족보에도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살아 남았다고 명기되어 있다.
원유철 본인이 원균과 같은 원주 원씨인데다 원유철의 지역구가 원균의 출생지인 평택시다 보니 한국사상 원균을 은근슬쩍 성웅과 동렬에 놓거나 최소한 그 절친 위치에 놓으려는 시도를 줄창 하고 있다. 완전한 역사왜곡이며, 이순신에게 원균은 그냥 철천지원수이다.
원유철은 평택시와 그 외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원균 기념사업회에서 원균을 재조명하는 일에 열중한다. 평택의 지역 언론-2014년 평택시사신문, 2014년 미디어평택, 2015년 평택시민신문 등등-을 살펴보면, 원균 재조명 사업에 꾸준히 참여한 기사가 여럿 발견된다. 게다가 평택시에서는 시신이 없어 가짜로 만든 원균무덤을 정비한답시고 세금으로 4억 5천만원을 쏟아붓는다.
평택시 등에서 여는 각종 원균 기념사업회에 참석하면서 원균을 높이는데 열중하고 있다. 평택의 지역언론에서 보면 원균 옹호 사업에 꾸준히 참여한 기사가 여럿 발굴된다.2014년 평택시사신문 2014년 미디어평택 2015년 평택시민신문 이외에도 많다.
참고로 원균옹호론자들은 원균이 이렇게 된 건 선조 때문이라고 하는데, 선조는 이순신을 감옥에 보내면서까지 원균을 총애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오죽하면, 사관이 원균의 행실을 비판하는데 원균 탓하지 말라며 사관에게 욕을 했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 그 것도 모자라 이순신이 병력 달라고 할땐 수군도 육군으로 돌려버리는 치졸함을 보이고, 원균에게는 육군의 병사를 빼다가 수군으로 돌렸을 정도였다. 심지어 원균은 부산포 점령하라는 명령 받아놓고, 운주당에서 기생들이랑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던 것은 유명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원균에게 병력을 빼주다 못해 도원수였던 권율의 육군 병사까지 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포는 코빼기도 보지 못 하고, 최악의 패전을 보이자, 이 때 빡칠대로 빡친 권율은 결국 원균을 직접 곤장으로 패버렸을 정도.
원균옹호론은 환빠들이나 주장할법한 억지 논리가 많다. 공과 과를 나눠야 하는 건 맞으나, 그렇다고 원균을 이순신급의 명장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 사료에도 칠천량 해전은 조선의 지휘관(원균)이 상당히 무능한 전술을 펼쳤다고 평가할 정도. 게다가 사관이 왕의 입맛에 맞게 쓰인다고까지 주장하는데, 전형적인 환빠들의 주장. 상기하다시피 선조는 사관과도 자주 싸웠다.
정작 원균 보다 유능한 원연 장군에 대해서는 입닦고 침묵 중이다. 참고로 원연은 원균의 동생인데 실제로 왜적과 맞서 대승을 거둔 의병장이다. 이 승전을 계기로 현감 직을 제수하였고 휴전 기간 동안 전란에 힘들어한 백성들을 돌보아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이 당시 원균은 휴전 기간 중에 선빵쳤다가 선빵 필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반격한 일본군에게 탈탈탈 털렸다
게다가 원연의 아들, 즉 원균의 조카인 원사립은 정유재란 때 서천군수로 왜적을 막아낸 전공도 세웠다. 그런데 정작 원씨 집안의 진짜 호국영웅인 원연 장군 기념 사업은 전혀 없다. 아무리 원연 장군이 서자 출신이라지만 엄연히 원주 원씨 타이틀 달고 공을 세운 것인데 말이다.
심지어 원유철은 원균의 직계자손이 아니라 원연의 직계자손이다. 그런데도 원균을 옹호하고 띄워주는 이유는 뻔한데, 한때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불멸의 이순신에서, 원균이 간지나는 배역으로 등장해 당시 대중문화에 원균 재평가설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기에, 대중들에겐 원연보다 원균의 유명세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며,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을만한 상업적 가치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원균에게 있지, 인지도가 아예 없는 수준인 원연에겐 없기 때문이다.
원유철 여담 일화
국회내에서 바둑 기우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아마 5단의 기력이라고 한다. 이인제 전 의원과 함께 국회내에서 최강자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바둑으로 일본, 중국의 의원들과 교류회를 가지기도 하였고 국내의 각종 바둑 대회에도 얼굴을 자주 비치는 편이다. 그리고 20대 국회에는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조훈현 九단이 입성하여 국회 기우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훈현의 원내입성에는 원유철의 공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2018년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제1회 한중일 의원 친선바둑교류’가 열렸다. 그동안 한일 의원 친선 바둑 대회나 한중 의원 친선 바둑 대회는 여러 번 열렸지만, 3개국 국회의원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7년 2월 대선 출마 시 내세웠던 '유라시아 큰 길'이라는 대표 공약이 있었는데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극대화 시키는 비전이라고. 대한민국 한반도가 출발점이자 중심이 되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와 중국 횡단 철도(T.C.R.)를 연결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링(Ring)과 같은 하나의 순환 고리로 엮어 내는 구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한중‧한일을 해저 터널로 연결하고, 철도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중국 횡단 철도를 연결하면 물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유라시아 큰 길’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열차페리(train ferry, 열차를 선박에 적재하여 나르는 나룻배를 말한다. 스스로 항해할 능력은 없으나 갑판에 궤도를 깔아 화차를 탑재하여 항해하는 카 플로트도 이에 포함된다/네이버 지식백과 남북철도용어 비교 사전)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철도기술 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라시아 큰 길은 교통‧물류뿐만 아니라 에너지‧관광‧문화 교류까지 가능하다”면서 “북한, 중국, 일본까지 연결해서 한반도 평화는 물론 미래를 위한 공동 협력체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인구의 70%, 면적의 40%를 차지하는 유라시아의 경제 영토에 대한민국이 진출해야 하는데, 북한이 가로막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항로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원 의원은 당시 대선 공약에서 경기도의 항구에서 열차페리를 이용해 중국 산동 엔타이를 거쳐 대륙으로 가는 '황해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을 내놓으면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4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571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원유철은 국회를 떠나 있는 동안 그간 구상해 왔던 개인 싱크탱크 연구소 '유라시아 큰 길'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유라시아 큰 길'이라는 싱크탱크를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어떻게 넓힐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정책 연구소"라고 소개하며, 조만간 서울에 사무실을 낼 예정이라고.
2016년에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 20대 국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 적이 있다. CPE는 세대 간 형평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아동, 인구,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입법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1989년에 49명의 국회의원들이 조직한 의원 모임이다. 원 회장은 취임사에서 "아동, 인구, 환경 문제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국회는 북한의 아동, 인구, 환경 문제에도 UN 및 주변 지역과 함께 힘써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원 회장은 2019년 10월 8일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을 중단하고 식량난으로 심각한 영양 결핍 상태에 있는 영유아들을 위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쌀 5만 톤 지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2019년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제19차 아시아태평양환경개발의원회의(APPCED)를 개최하여 ‘기후 변화와 미세 먼지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원유철 선거 이력
1991
6월 지방선거
경기도의회 송탄 1
무소속
7,777 (39.70%) 당선 (1위)
초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평택 갑
26.365 (40.16%)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평택 갑
20,884 (32.73%) 당선 (1위)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평택 갑
27,644 (40.74%)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평택 갑
32,051 (50.76%) 당선 (1위)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평택 갑
42,031 (60.25%) 당선 (1위)
4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2,503 (55.48%) 당선 (1위)
5선
더 많은 인물 정보는 아래 인물이야기 카테고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