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서울특별시 용산구 17~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의 2대 행정안전부장관이다.
정치인 진영 나이 고향 학력 이력 프로필
진영
陳永 | Chin Young
출생
1950년 10월 23일 (73세)
전라남도 담양군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본관
여양 진씨
재임기간
제50대 보건복지부 장관
2013년 3월 11일 ~ 2013년 9월 30일
제2대 행정안전부 장관
2019년 4월 6일 ~ 2020년 12월 23일
배우자
정미영
자녀
아들 진명헌, 딸 진서연
학력
서울광희국민학교 (졸업)
경복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66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 만기 제대 (법무 45기)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
신체
176cm, 74kg, AB형
약력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제7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 한나라당)
제17대 국회 전반기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
한나라당 전국위원회 수석부의장
국제의원연맹 부회장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 한나라당)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
한나라당 직능특별위원회 상임부위원장
한나라당 새만금특별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수석부의장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제50대 보건복지부 장관 (박근혜 정부)
제19대 국회 후반기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 후반기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제20대 국회 전반기 헌재소장후보자청문특위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공동인재영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장
제2대 행정안전부 장관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 겸 위원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당연직위원
대통령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자치제도분과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당연직위원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당연직위원
진영 생애 고향 학력 이력
학창 시절·법조인 시절
1950년 6.25 전쟁 중에 외가가 있는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본가가 있는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성장하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특별시로 이주 그리고 경복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를 역임하다가 사표를 제출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여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노무현과 친했던 3인의 야당 의원 중 한 명이였다. 본인의 기억에 의하면, 사법연수생 59명 중에서 가장 가난했었다고 한다. 그런 노무현이 판사에 임용이 되자, "무현이 형님, 출세했네, 출세했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축하했다고 한다. 진영 말에 의하면, 사법연수생들이 단체로 속리산에 놀러갔을 때 노무현은 손수 팔도 사투리로 사람들을 웃겨주었던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게다가 노무현은 고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들과도 법률 논쟁을 하며 설전을 벌이는 등 연수생 대다수가 서울대 또는 법대 출신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고 한다. 5월 25일에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왔고, 이후 봉하마을에 다녀왔다고 한다.
1988년에 노무현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진영은 축하인사를 할 겸 선물들을 챙겨서 국회의원 노무현의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국회의원 되니까 뭐가 제일 좋으신가요, 형님?"이라고 물어보니까 "국회에 들어가면 공무원들이 인사를 해 줘서 좋다네!"라고 해서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졌다고 밝혔다.
진영 정치 활동
보수 정당에서
1998년 9월에 결성된 이회창 후원회에 참여한 것이 정치행보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설송웅 후보와의 새벽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3표 차이로 낙선. 재검표에선 107표 차이로 줄어들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해 이 때부터 친박계 정치인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진영이 물러나면서 온 사람은 유승민이며 유승민이 물러나면서 유정복이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한나라당측 간사로 활동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때 상대후보가 성장현 현 용산구청장이다. 당시에는 통합민주당 소속이었는데 현재는 진 의원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새만금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한구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당선되어 2013년까지 역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영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게 된 2016년 진영을 컷오프한 공천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이 이한구였다.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3년 3월 보건복지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이른바 '인사 참사'로 청문회만 갔다 하면 탈탈 털려 낙마하기 십상이었던 박근혜 정부 공직자들 중에서 청문회를 별 탈 없이 무사 통과한 몇 안 되는 케이스였다.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임명에 동의해 준 유일무이한 장관이다.
이전부터 정치 후원금 하나도 불의하다 생각되면 어떻게든 보좌진을 시켜서라도 찾아서 돌려주는 진영 의원의 깐깐함은 그 쪽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노인 기초 연금 공약을 기다렸다는 듯이 후퇴시키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이걸 어떻게 국민들한테 설득하라는 말이냐?"며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계와 갈등을 빚어 왔고 결국 같은 해 9월 보건복지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때부터 소위 탈박 인사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 경질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말이 많았다.
당시 이 선택이 거의 신의 한 수가 된 것이, 진영의 후임 복지부장관인 문형표 장관이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구속된 것이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이재용 측에 유리하게 설정된 합병비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찬성하여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이재명 경기지사에 따르면) 5,000억 정도 까먹었다는 혐의 때문인데, 깐깐한 진영 장관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했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는데, 안전행정위원장 역임 중 허준영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의 답변 태도가 부실하자, 이를 호되게 지적했었고 2014년도 국정감사 기간 때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상대로 폭언을 퍼붓던 조원진 의원과 이에 지지 않고 맞불을 놓던 이재명 시장을 말리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2016년 3월 15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과정에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그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구에 여성 신인인 황춘자 후보를 전략공천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당했다. 2014년에 용산구청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이었다. 진영 의원은 3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 편에 섰다가 쓰라린 보복을 당했다'고 규정하며 새누리당을 떠났다. 그리고 3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확정지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용산구 후보로 공천되었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에서 가장 먼저 박근혜 정부를 대놓고 비난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도 보수 성향이 강한 용산구에 내보낼 만한 마땅한 후보가 없어서 고심하고 있었는데 김종인 대표가 '새누리당 공천을 보고 결정할 생각이니 용산구 공천은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걸 보면 김 대표 또한 진영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될 거라 내다보고 영입을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용산구 예비후보였던 오유방 전 의원은 이 결정에 반발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였는데, 오유방 전 의원이 인지도가 없었던 탓에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유방은 1988년 13대 총선에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은평구에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시작했지만 1992년에 아예 낙선해서 정계를 떠났고, 국민회의로 옮겨 1996년 15대 총선에 용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이후로 정계를 떠났다. 24년 동안 국회를 떠난 탓에 아예 잊혀져 버린 것.
3월 21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김종인 대표의 셀프 공천 논란에 대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실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합당한 공천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같은 날 JTBC 뉴스룸 인터뷰에 출연하였다.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 용산구에서 새누리당 황춘자를 누르고 당선되어 4선 의원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다만 쉬운 선거는 아니었는데 선거 기간 내내 박빙이라는 예측이 종반전까지 이어졌었고 선거결과도 약 2.9% 차이의 신승이었다. SBS에선 '진영' 바꾼 '진영'이라는 이름 개그를 선보였다. 용산구 개표 상황을 보여줄 때 '진영을 바꿨다' 라는 드립도 쳤는데 이는 '진영'을 바꾼 진영 후보를 뽑거나 황춘자 후보를 진영 후보 대신 뽑거나 용산구민 입장에선 어떤 의미로든 진영을 바꾸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정 반대되는 케이스로 더민주에서 새누리로 이적한 조경태 의원과 비교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조경태와 진영 모두 20대 국회 기준 4선 의원이며,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2004년 17대 국회부터 같은 선거구에서 쭉 당선되었다는 점도 동일하다.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됨에 따라 진영 바꾼 진영이 임시직이나마 당 지도부까지 오르게 되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진영을 바꿔 4선 의원이 된 상징성이 선임의 이유였다고 한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자신의 지역구 현안인 용산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의정활동을 하게 될지 관건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에 있으면서 한때 친박계 인사였던 인물이지만, 친이계가 주도 창당한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창당식에 찾아와서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친박계 인사였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에 의외로 이명박의 최측근인 이재오와 친이계 정치인하고도 사이가 상당히 좋았다. 이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찾아간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이재오의 제자인 노웅래 의원이다. 그리고 친박 진영을 비롯한 새누리당에서는 탈당한 진영을 배신자, 철새 정치인이라 하였다. 같은 시기에 문재인과 갈등을 빚다가 옮겨온 조경태도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자신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했던 김종인 전 의원을 따라 탈당할 거라는 썰이 돌았으나, 적극적으로 탈당하려는 모습은 아직까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총선 직후에 민주당에 오면서 전직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점에 대해 감동받았다는 등 완전히 눌러앉을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었다. 대선 체제에서 원혜영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것으로 보아서는 잔류 쪽으로 가닥이 기울어진 듯. 이후 문재인 캠프 선대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친박에서 민주당 중도파가 된 케이스.
2017년 11월에는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 청문특위의 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 문재인 정부 3년 차에 들어 내각을 개각함에 따라 같은 당 소속 박영선 의원, 우상호 의원과 같이 정부 내각에 입각할 가능성이 거론된 바있다. 특히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이 되면서 후임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2019년 3월 8일 대규모 개각에서 행정안전부장관으로 내정되었다. 임명이 된다면 장관을 두 번 역임하게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김의겸 대변인은 진영 내정자가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사실 나이도 이제 70줄이 넘었고, 연속해서 4선 의원에 장관직까지 두 번 하였으니 한 명의 정치인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히 할 만큼 한 셈이다.
2019년 3월 27일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다. 여야의 날카로운 설전으로 싸늘했던 다른 인사청문회와 달리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의에 앞서 "장관님이라 불러도 될까요?"라고 훈훈한 인사말을 건네는 등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사실 기본적으로 같은 국회의원 간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의원간 친분이 있는 경우가 많아 청문회에서 날선공방이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일명 의원불패 법칙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진영의 경우는 비록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갈등을 겪어서 다소 틀어진 바는 있으나 어쨌든 이전에 새누리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야당에도 친분이 있는 인사가 많아 더더욱 순탄하게 진행된 편. 야당 측에서도 주로 "당적을 바꾼뒤 민주당 의원들과 정치성향은 잘 맞는거 같냐"는 식의 안부인사에 가까운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진영의 대답은 "매우 잘 맞는다"
하지만 정작 같은 자유한국당 소속의 이채익 의원은 진영 후보자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지 않으면 청문회 통과가 안 된다는 소리를 하면서 청문회 통과 과정이 험난해짐을 예고했고, 특히 같은 날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서 청문회 통과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이 있었다. 아무튼 박영선과는 다르게 임명동의안이 칼같이 처리되었다.
행정안전부장관 진영
2019년 4월 4일 청문회 보고서가 적격·부적격 동시 명기로 채택되었고 당일, 문재인 대통령이 진영 장관을 정식으로 임명했다. 김부겸 장관이 5일에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어 진 장관의 공식 임기는 4월 6일부터 시작됐으며,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써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수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보니 산불 현장에서 바로 인수인계를 받고 업무를 시작했다. 사태 수습 와중 전신주 관리 소홀 등 한전의 귀책 사유가 입증될 시 정부 차원의 적극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2020년 1월 3일, 의원과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유은혜, 김현미, 박영선과 함께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기로 했다. 3명의 장관과 달리 진 장관은 선거관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라서 불출마 선언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이해찬 당대표에게 불출마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같은 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각종 국가시험이 연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 측에서 6.13 지방공무원 시험을 강행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행정안전부와 함께 공무원 시험 수험생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20년 8월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권영세 미래통합당 의원이 "과거 행정수도 이전에 비판적이었는데 요즘은 어떤 입장이냐"고 묻자, 진 장관은 "그때도 반대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또 권 의원이 김태년 원내대표가 수도이전과 관련해 정부와 사전 합의를 했었냐고 묻자, 진 장관은 "정부 전체를 칭할 수는 없지만 행안부와는 논의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여당 일각에서 진 장관에 대해 당정 간 엇박자를 냈다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다만, 진영 장관이 밝힌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은 어디까지나 현재 세종시-서울시 이원 구조를 비판한 것으로, 행정수도의 완전한 이전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점이다.
이날 행안위 회의에서 행정수도 이전 이슈 외에도 여러 현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권영세 의원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목적으로 접경지 일부를 위험구역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무리한 법해석"이라고 지적하자, 진 장관도 이론적으로 맞다고 동조했다. 또 서범수 미래통합당 의원이 "집회 관리 위해 투입한 경찰은 전부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정부에선 실제 집회한 민노총 사람들에겐 왜 자가격리, 진단하란 소리를 안 합니까?"라고 묻자,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서 의원이 재차 "국민 안전 앞엔 여야 구분이 없다. 진영대결, 이념대결로 갈라치기를 하지 말라"고 하자, 진 장관은 그제서야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옵티머스 사태 때 증권사 직원의 말만 듣고 예금과 아들의 전세금을 합쳐 6억을 태워 난데없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재산이 80억이 넘고 부인도 의사인 만큼 생계에 타격이 갈 정도로 큰 손해는 보지 않은 듯 하다.
2020년 12월 4일, 청와대가 개각을 단행하며 진영 역시 교체 대상자로 지명되었다. 후임으로는 친문 성향 중진 의원인 전해철이 지명되었다. 교체가 예상되었던 이정옥 여가부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다르게 진영 장관의 교체는 꽤나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일각에선 청와대가 2월 교체론이 돌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후임자로 임명하기 위함이라는 추측이나 혹은 이듬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려는 생각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장관직을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기 총리설에 대해선 "이제 쉬는 일만 남았다"라고 하며 정계 은퇴의 뜻을 강조한 데다 나이도 70대를 넘긴 고령이다 보니 위에서 언급된 서울시장 후보나 국무총리 지명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진영 정치 활동 요약
본디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해 2016년까지는 줄곧 보수 정당에 있었던 인물인데다 원조 친박 중 한 명이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호남 출신 초선의원임에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파격적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정책 위원장으로 박근혜 후보 정책 공약 발표시 함께 했으며,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이를 보면 단순히 친박 중 한 명이 아니라, 10년간 친박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노인연금 공약 문제를 놓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그만 두면서 본격적으로 비박계로 돌아서게 된다.
이후 2016년 총선 때 친박계에 의해 사실상 공천 보복이나 다름 없는 컷오프 대상이 되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하였고,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의 손을 잡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와 새로운 정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20대 총선을 전후해 각 정당의 의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신당을 만들거나 다른 정당으로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역전승을 올리게 된다. 이후 탄핵정국, 19대 대선을 거쳐 역대급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신의 한 수를 놓은 정치인이 되었다. 탄핵 이후 적잖은 전직 친박 의원들이 배신자 이미지로 정치적 위기에 놓이고 태극기 부대의 표적이 되고 있으나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적했으므로 배신자 이미지가 크지 않고, 각기 다른 정당 소속으로 장관을 두 번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후 본인이 고령이라는 이유로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2020년 12월에 성공적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후임 전해철 의원에게 넘겨줌으로써 명예롭게 은퇴하였다.
진영 여담 일화
역대 문재인 정부 국무위원들 중 유일하게 전임 정부 국무위원 경력이 있다.
삼각지역에 용산초등학교 바로 옆에 2층에 줄곧 사무실이 있었다. 용산에서 주로 선거 캠프가 생기는 곳은 숙대입구나 삼각지에서 넘어오는 백범로와 원효로간 교차로 쪽이 많았는데 그 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다 다소 교통상 편하지만은 않은 위치였다.
서울시의원 김제리 의원(용산 제1선거구)이 15년 간의 정치적 멘토였던 진영 의원을 따라 탈당하여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김제리 의원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6%의 압도적 득표로 3선 고지에 올랐다.
본인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것처럼, 본인 지역구의 후임 국회의원인 권영세 의원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진영 선거 이력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
42,736 (44.66%)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
51,025 (46.0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
47,533 (58.03%)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
56,067 (52.43%) 당선 (1위)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용산
48,965 (42.77%)
4선
공직 선거 첫 출마였던 16대 총선을 제외하면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사실 이때도 100여표 차이로 아쉽게 석패했다. 지역구를 굉장히 잘 관리한지라 당적을 바꾼 2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었다.
더 많은 인물 정보는 아래 인물이야기 카테고리에 있습니다.